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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것들만 솎아주면…"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 돼지들의 숲

돼지 대장이 숲길에서 가로누운 나무에 걸려 넘어졌다. 돼지들이 달려가 돼지대장을 일으켜 세웠다.

"구부러진 것들이 꼭 말썽이야."

돼지 대장은 부어오른 코를 문지르며 부아를 냈다.

"주로 그늘에서 사는 나무들이 이렇게 비틀어져서 발을 걸지요. 잘라버릴까요?"

한 돼지가 절뚝거리는 돼지 대장을 부축하며 살그머니 의중을 물었다.

"우리 숲은 너무 빽빽해서 나다니기 무서워요. 구부러진 것들만 솎아주면 전부 반듯해지고 사는 것도 훨씬 나아지겠죠?"

돼지 대장은 돼지 일꾼들에게 나무들이 살기 좋아지도록 숲을 정돈해줄 것을 부탁했다.

'우린 햇빛을 보려고 굽은 거예요.'

돼지들의 대화를 들은 숲의 반듯한 나무들은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곳곳의 굽은 나무들은 가지를 뒤흔들며 한목소리로 웅웅 울부짖었다. 옆으로 쓰러져 있던 덤불들도 모조리 일어나 우우 반대했으므로, 숲이 우렛소리를 냈다.

그러나 돼지 일꾼들은 톱이나 낫을 들고 넝쿨나무나 음지나 비탈의 굽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칙칙한 덤불까지 쳐냈다.

곧, 숲에는 덤불이나 굽은 나무라곤 보이지 않았고, 일직선으로 곧게 자란 반듯한 나무들만 듬성듬성, 서로 감시하며 오돌오돌 떨고 서 있었다.

산이 휑해진 덕분에, 사냥꾼들은 돼지몰이가 아주 쉬웠다.


한정선 작가의 지난 연재를 보고 싶은 분은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참고하세요.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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