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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출신 '빨갱이'가 대통령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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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출신 '빨갱이'가 대통령이 된다면…

[프레시안 books]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

한번 상상해보자.

'보수의 아성' 경상북도 도청이 들어설 농업 도시 안동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그곳에서 새누리당을 강경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시장 선거에 나왔다. 동성애자·여성·이주민과 연대하고, 감세 정책을 비판하며, 주류 언론을 맹렬히 비난한다. 심지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비판해 온, 간단히 말해 '종북 빨갱이'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그는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진보 정당의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 도지사 선거에도 나온 적 있다. 놀랍게도, 그가 당선됐다.

그는 3선 시장이 되었고, 내친김에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까지 나섰다. 놀랍게도, 또 당선됐다! 그리고, 그는 내리 10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압도적인 표차로 새누리당 후보를 눌렀다. 마지막 선거 때 지지율은 무려 70%가 넘었다. 그의 등장 이후 안동은 한국의 진보 정치를 상징하는 도시가 됐다. 그를 이어서도 시민운동가, 진보운동가가 시의회, 시장 선거에 나서 이겼다. 안동을 바꾼 그는 이제 "한국을 바꾸겠다"며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섰다.

우리 식으로 요약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정치 경력이다. 지금 미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74살 '민주사회주의자'의 성장 스토리다.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버니 샌더스 지음, 홍지수 옮김, 원더박스 펴냄)은 2016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 나선 미국 버몬트 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의 자서전이다. 1997년 출간된 초판을 개정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책이다.

▲ 소외받고 천대받는 모든 미국인의 새로운 희망. ⓒwikipedia.org

이 책은 그가 상원의원이 되기 전, 1996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가 펼쳐질 때까지를 다룬다(4선에 성공했다). 따라서 약간의 시차가 느껴진다. 책에서 그가 분노하는 대상은 네오콘과 함께 악의 질주에 시동을 건 공화당과 아버지 부시 정권, 공화당과 다를 바 없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클린턴 행정부, 그리고 온갖 정치적 음험으로 그와 맞서는 상대 후보다. 그러나 지금 읽는 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이름들을 현재의 대상으로 치환하면, 그때와 지금 달라진 건 없기 때문이다. 버니 샌더스가 상원의원이 된 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서기까지 이야기는 그가 직접 쓴 개정판 서문과 저널리스트 존 니콜스가 쓴 에필로그로 보충 가능하다.

책을 보면 피상적으로만 알던 한 정치인의 생각과 행보가 보인다. 그리고 세계를 상대로 폭주하는, 이 시대 진정한 위험국가 미국에 살아있는 양심이 들리고, 그 땅 장삼이사들의 삶이 그려진다.

책에 흩뿌려진 사람들의 이야기 조각, 그리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버니 샌더스의 진보적 의제를 묶으면 책 제목대로 그의 행보가 미국 사회에서는 혁명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알다시피, 미국 정치 구도, 사회 구도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극우 파쇼에 가까운 공화당과 월스트리트의 후원을 받는 민주당 틈바구니에서 진보정당은 설 자리가 없다. 자본에 워낙 제한이 없는 덕분에 미국 주류 방송사는 전부 대자본 소유다. 따라서 소수의 목소리, 진보적 의제가 시민에게 알려질 방법이 없다. 학력 격차, 소득 격차는 (한국과 함께) 선진국 중 최악을 달리고, 그 때문에 온갖 형태의 차별이 만연하다.

이런 사회에서 버니 샌더스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 그의 정치적 고향인 버몬트 주는 100여 년간 공화당의 텃밭이었다. 남북 전쟁 이전부터 2000년 선거까지, 공화당이 주요 선거를 모두 휩쓸었다.

버몬트 주는 인구 60만여 명의 아주 작은 지역이다. 최대 도시인 벌링턴 시의 인구도 4만여 명에 불과하다.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며, 퇴역 군인이 많이 사는 전원 도시다. 주민 절대다수가 백인이다. 백인에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곳. 여기서 주민 70%의 지지를 받는 진보 정치가의 존재가 기적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버니 샌더스와의 싸움에서 승산이 없음을 깨달은 민주당은 이제 이곳에 후보를 내지도 않는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이 책에는 어떤 화려한 정치 기교도, 선전술도, '정치'라는 말로 포장되는 협잡도 없다. 버니 샌더스는 '주권자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이행한다'는 정치 본연의 자세로 일관했다. 이게 바로 정답이다. 이 책이 진정 위대한 이유는, 버니 샌더스의 삶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진정 나아가야 할 길을 현실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은 버니 샌더스의 과거와 현재(1996년 선거)를 교차하며 편집된다. 현재로 돌아올 때마다 그는 상대방 진영 후보가 기업으로부터 압도적인 선거 자금을 받고, 이를 TV 선전에 활용해 중상모략을 일삼는 모습에 괴로워한다. 그런데도 버니 샌더스는 결코 흑색선전을 동원하거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대신 그는 미국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사실 이들이 미국 국민의 대다수다)이 한푼 두푼을 모아준 선거 자금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으고, 이들과 함께 직접 유권자의 집을 찾아다닌다. 그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듣고, 그들이 진정 바라는 바를 '꾸준히' 의회에 알린다. 왜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지, 왜 차별을 하면 안 되는지, 왜 감세 정책이 나쁜지를 설명하기 위해 매번 공청회를 열고, 수많은 사람을 모은다. 버니 샌더스는 책 전반에 걸쳐 정치인이 해야 할 중요한 일로 '시민 교육'을 꼽는다. 유권자가 깨달아야 투표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 평생에 걸친 정공법이 그를 보수의 아성을 진보의 텃밭으로 바꾼 정치인이 되도록 만들었다. 정치 공학에 매달리고, 자신을 구름 위의 존재로 착각하며 순수했던 시절 간직했던 꿈을 잃어버린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가 외신 보도를 통해 알게 된 그의 입장 중 예외적인 것, 즉 '총기 소유에 대한 부분 규제'와 같은 생각을 그가 왜 갖게 되었는지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버몬트 주는 자연 도시이고, 이곳에서 사냥은 지역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생활 습관이다. 한겨울 엄동설한을 이겨낸 후, 사람들은 총을 들고 너른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새 생명을 몸으로 체감한다. 이 환경이 그를 총기에 관한 한 예외적으로 보수적인 태도(자동화기만 규제하자는 게 버니 샌더스의 입장이다. 이는 전면 금지를 강조하는 힐러리 클린턴과 대비된다)를 취하게 하였을 것이다.

▲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버니 샌더스 지음, 홍지수 옮김, 원더박스 펴냄). ⓒ원더박스
그가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의 합작품인 상속세 면세 정책안에 반대하기 위해 8시간 35분에 걸쳐 필리버스터(의사 진행 방해)를 행하는 대목에 이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사건으로 진보 정치인을 아예 상상의 영역에서 지워버린 미국인도 버니 샌더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대목을 포함해 책에 여러 차례 인용되는 그의 말을 읽으면서, 솔직히 말해 사람들이 왜 정치인이 되려 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신념, 가진 자가 부당하게 못 가진 자의 돈을 가로채는 비극을 바꾸지 않는 한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의지를 평생에 걸쳐 실제 정책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못 찾는 게 더 어렵다.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을 뚫고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되리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설사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막강한 후보를 이긴다손 치더라도, 그가 정말 대통령이 되리라 여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미국이라는 극보수 국가에서 워낙 특이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이 초로의 노인을 지지하는 사람이 트위터에만 230만 명이 넘고, 민주당 경선을 치르라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낸 성금은 오바마의 실적을 뛰어넘는다. 그가 지금 당장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등장은 100년 후 다른 미국을 상상해볼 계기를 만들어준다. 물론, 가능하다면 그가 이번 선거판에서 최대한 멀리 나아가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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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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