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 공공운수노조 등이 주최하고 <프레시안>이 후원한 '신자유주의의 안전위협과 운수노동자의 대안'이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관련 기사 ☞ : 반복되는 '세월호 참사', 그 주범은…) 이와 관련 심포지엄을 통해 논의된 각종 과제와 대안에 대해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① 안전의 경제학 ② 민주적 거버넌스, 안전문화와 노동조합의 역할 ③ 풀무원 파업과 세계 안전운임 투쟁>이라는 주제로 3번에 걸쳐 글을 연재합니다.
성장지상주의가 낳은 안전불감증
"한국사회는 지난 수십 년 간 사회적 형평성이나 정의, 안전보다는 경제 성장과 개발을 우선적으로 앞세우는 성장지상주의를 기치로 한 사회적 총동원체제를 확립해 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부나 기업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그러한 성장지상주의 가치를 부지불식간에 내면화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정의나 안전의 문제는 우선 순위에서 항상 뒷전으로 밀리곤 했다. 하지만 작년 봄에 발생한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영희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신자유주의의 안전위협과 운수노동자의 대안 국제심포지엄 자료집 중
열차가 움직이는 철길 위에는 사고가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고들은 그 중 언론에 보도된 일부에 불과하다. 2015년 8월 29일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 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외주업체 직원이 사망했다. 지난 13일에는 경부선에서 선로를 점검하던 2명의 정규직 철도노동자가 TX에 접촉하여 사망하기도 했다. 자살 사고도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고장 사고도 발생한다. 이러한 사고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은 지극히 무덤덤하다. 조금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는 누가 책임자이고, 누구를 처벌해야 하는가에 머무른다. 그리고 위험과 사고는 계속된다.
사고는 어떻게 방지되며, 안전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비용이 들더라도 더 안전한 시스템과 기계 장치를 도입하는 것이 사고의 방지에 확실한 도움이 될 것이다. 관리의 측면에서 본다면 비용이 들더라도 노동자들에 대한 직무안전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자들과 승객들에게 현대적인 안전문화를 확립하는 일도 필요하다. 더 나은 매뉴얼과 규정, 지시가 필요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면 궤도 산업을 관리하는 국가 차원의 행정 및 법령을 개정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즉각적인 대안을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안전에는 기술 수준, 일선 현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의 작업 행위, 개별 작업장의 규정 및 문화, 국가 정책 등 미시적 수준에서 거시적 수준까지 매 사회적 관계가 모두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부적 진단만으로 제출되는 대안으로는 안전이 확보될 수 없다. 심층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시스템에 대한 대안이 제출되어야 한다.
반복되는 공공안전의 상품화
공공부문의 안전을 위협하는 첫 번째 요소로 이윤추구를 위해 공공안전이 상품화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신자유주의의 탈규제화로 공공안전이 시장으로 넘어가 자본의 돈벌이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승우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 맞선 민주적 안전거버넌스 구축'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이를 '안전의 상품화'로 정의했다. 한국 정부는 궤도분야에서 민영화, 인력감축, 1인 승무, 역사 무인화, 외주와 등의 형태로 '안전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이 취해왔고, 우리 사회는 더 위험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철도안전법을 개악하여 이전 25년으로 제한되던 철도차량의 내구연한을 최대 40년까지 연장하였다.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철도안전법에서 차량 내구연한에 대한 조항을 아예 삭제함으로써 차량 수명을 무한정으로 연장할 수 있게 하였다. 차량 교체 비용문제에서 기인한 정부의 내구연한 관리정책은, 궤도공기업에 대한 수익적 운영을 목적으로 탈규제를 진행하고, 그 결과 궤도교통의 안전이 저해된 대표적 사례이다.
공공안전을 위협하는 두 번째 요소로는 '안전의 관료화' 문제가 제기되었다. 탈규제만이 공공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안전에 대한 철학이 없는 정부의 잘못된 규제의 증가로 인해 위험이 증가하기도 하는데 이승우 연구원은 이를 '안전의 관료화'로 정의했다. 안전 시스템에 있어서 숙련된 현장 인력의 확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궤도산업에서는 안전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현장의 요구는 무시되고, 관료적 규제 정책이 강력하게 시행되어 오고 있다.
안전인력 감축을 강제하는 대표적인 규제로 중앙 및 지방공기업 경영평가를 들 수 있다. 경영평가 지표에는 인건비에 대한 각종 계량 지표가 존재하는데, 이 지표들은 인력 규모가 작을수록, 그리고 인건비 비중이 낮을수록 높은 성과로 계측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안전인력 규모를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인력 감축을 지속적으로 불러온다.
일선 노동자들을 통제해야 할 문젯거리로 간주하면서 현장의 안전 요구보다는 관료적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관철되는 상명하달식 안전 관리, 업무 과정의 과도한 표준화, 테일러주의적 노동 통제, 안전 매뉴얼 및 규정 비대화,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경영평가 및 인사관리정책 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안전의 관료화' 역시도 운수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또 다른 안전 관료화 양상으로 사고 은폐를 조장하는 정부 정책이 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이 반복된다면 안전 시스템의 특정부문이 취약해졌다는 신호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오류는 조직에 보고되어야 하고, 보고 사례는 전체 안전 시스템 개선의 효과적 수단이 되기에 사고에 관한 보고는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경영평가의 안전 성과지표는 이러한 사고 보고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전사고 발생건수가 경영평가의 지표가 되므로 현장에서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상당수 사고를 무마하고 은폐하게 된다. 사고를 보고할수록 기관 및 개인, 팀 평가에 마이너스가 되고, 성과급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안전의 관료화는 현장 노동자를 괴롭히는 현장 안전통제 정책으로 나타난다. 지급받은 승무가방에 모두 들어가지도 못할 분량의 규정 및 처치 매뉴얼은 실제 사고가 발생하면 무용지물이다. 사고로 긴박할 때 누가 그 책자들을 모두 찾아볼 수 있겠는가? 소지해야할 책자가 많아지는 유일한 이유는 소지하고 있던 책자의 내용대로 처치하지 못한 경우 책임을 물어 징계하기 위한 것이라고 현장 노동자들은 생각한다. '안전문화'는 사라졌으며, '신뢰조직' 또한 구성되지 못한 것이다.
더 필요한 것은 소통과 교육훈련인데 관료에게 현장 노동자는 소통해야할 대상이 아니며, 교육훈련은 비용이 들어가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런 조건에서 현장 노동자는 사고가 발생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하거나, 해결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뉴얼에 없다면 시도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사고가 나서 징계를 당하면 재수가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참여가 보장되면 달라진다
ITF 철도분과의 외스타인 아슬락센 의장이 발표한 노르웨이 철도안전문화와 노동조합의 안전정책 참여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었다. 인명을 중시하는 사회, 노동조합의 참여가 보장된 안전문화가 위험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노동배제적 '안전의 관료화' 방식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노동배제적인, 테일러주의적 노동통제시스템 하에서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현장 노동자들의 오랜 경험과 학습에서 우러나오는 '현장전문성'이 전혀 인정되지 못함으로써 긴급 상황시 현장에서 일선 노동자들에 의한 유연한 대응의 가능성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세계적으로 많은 산업현장에서는 기존의 포드주의적이고 테일러주의적 작업조직을 바꾸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오랫동안의 경험에 기반하여 현장을 잘 아는 노동자들의 지식과 전문성, 대응력이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전의 관료화'란 일선 작업에 직접 관련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결정할 권력 집단은 증가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관료조직은 비록 불필요하게 만들어졌을지라도 자신들의 존재이유,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오히려 안전에 불필요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들을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권은 국민안전처를 신설하였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의 안전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의 결과로 나온 해결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대한 안전관료조직을 신설하여 사회를 통제함으로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해결책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철도사고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철도사고를 조사하는 기관으로 국토부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검찰·경찰 외에 '철도경찰대'가 추가되었다. '철도경찰대'는 자칭 전문가를 자임하면서 차량고장으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수사를 빌미로 현장에서 각종 소란을 일으키다가 사고 발생 28일 후 기관사에게 약물검사를 요구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위로 현장 노동자들의 온갖 비웃음을 샀다. 결국 근거없는 약물검사는 포기되었다.
탈규제 정책과 관료화가 초래하는 위험의 증가
안전의 상품화를 추동하는 탈규제 정책과 안전의 관료화를 심화시키는 규제 정책이 공공부문 위험산업을 장악하면서 공공안전은 한층 위태로워졌다. '안전의 상품화'와 '안전의 관료화'를 중단시키고, 한국 사회를 안전한 사회로 만들 대안으로 이승우 연구원은 '민주적 안전거버넌스'의 구축을 제안했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위해서는 사회 전체 구성원이 함께 참여해야만 한다. 안전은 기술이나 규정의 문제가 아닌 전체 사회구성원이 함께 참여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관료화된 안전관리체제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작업장 및 산업 정책 결정 단계에서 공기업 경영진과 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 구조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민주적 통제는 공공서비스 이용자인 시민과 생산자인 노동자가 참여하는 민주적 안전거버넌스를 각 위험산업별로 구축하는 것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민주적 안전거버넌스란 "위험과 안전문제에 관련된 각종 사안에 대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위험평가, 위험관리, 위험소통의 전체 과정에서 서로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과정"이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현장 노동자들의 참여와 협력은 안전문화와 민주적 안전거버넌스 구축에 아주 중요하다. 현실의 위험, 안전에 대한 위협은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사회의 제 세력과 소통하고, 연대하여 사회 안전을 위한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 단위 사업장의 교섭과 단체협약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우리 노동조합은 마주하고 있다. 그 문제는 우리 조합원들의 노동 안전의 문제이기도 하고, 교통을 이용하는 우리 시민들의 안전의 문제이기도 하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터져나올 사고의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 내에서 소통하고,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정부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사회 제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안전한 사회를 위한 민주적 안전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활동에 우리 노동조합들이 나서야 한다. 안전한 사회의 시스템을 재정립하고,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전망을 가질 때 우리 공공운수노동자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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