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어제(25일) 전국 지방청 17곳에 설치한 '불법폭력시위 수사본부'의 본부장 화상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조계사 경내 진입 여부를 논의했다고 합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검거를 위해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겁니다.
결론은 못 냈다고 합니다. 경찰청 관계자가 "결론을 낸 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수사에 들어가고 주변 사람들이 다 체포되면 (한상균 위원장) 본인이 부담을 느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네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경찰병력을 조계사에 투입했는데도 한상균 위원장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면 뒷감당을 하기가 어렵겠죠. 게다가 검거 여부와는 별개로 신자들의 반발도 거셀 거고요.
하지만 이런 접근과 분석은 극히 부분적이고 파편적이어서 아주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경찰병력 조계사 투입이 과연 경찰청에서 단독 판단할 사안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경찰병력의 조계사 투입은 경찰의 자율적이고 전문적인 작전영역이기 이전에 지극히 민감한 정치문제입니다. 정권이 종교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문제이니까요. 따라서 경찰병력의 조계사 투입은 청와대의 최종판단 또는 청와대의 묵인이 없이는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따라서 주어를 경찰에서 청와대로 바꿔 되살펴보죠. 지금 청와대는 뭘 저울질 하고 있는 걸까요? 박 대통령의 엊그제 국무회의 발언을 보면 초고강도 공안 드라이브를 거는 게 자명한데 왜 뜸을 들이는 걸까요? 청와대조차 경찰병력의 조계사 투입에 대해서만큼은 부담을 느끼는 걸까요? 그렇다면 굳이 경찰로 하여금 조계사 진입 시나리오를 검토하게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이유는 다른 데 있는지 모릅니다. 투입 여부를 저울질 하는 게 아니라 투입 시점을 저울질 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조계사 진입 검토 소식과 함께 경찰에서 흘러나온 얘기가 있습니다. 다음 주초부터 본격적으로 한상균 위원장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들과 민중총궐기 대회를 주도한 사람들에 대한 검거에 들어간다는 얘기였는데요. 경찰은 왜 굳이 다음 주초를 특정했을까요?
경찰이 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들에 대해 이미 출석요구를 했고, 그 기한이 다음 주초에 끝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 하나가 추가돼야 할지도 모릅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출국입니다. 박 대통령은 '파리 기후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29일 출국합니다. 이번 주 일요일로, 경찰이 D데이로 설정한 다음 주초의 전날입니다.
이런 시나리오를 써보죠. 경찰이 전격적으로 조계사에 진입하는데 이때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은 외국에 있다면? 그럼 어떻게 되는 것이죠?
경찰이 민주노총 간부 등에 대한 전면적인 검거작전에 들어가 한상균 위원장을 옥죄고, 그 결과 한상균 위원장이 거처를 옮기거나 자진 출두한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법폭력시위에 대해 단호히 대응' 하면서도 박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 하는 방법이 이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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