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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깨끗한 '협동조합' 이미지를 악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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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연세대, 깨끗한 '협동조합' 이미지를 악용하다

[작은책] 멘붕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연세대학교 건학 이념이다. 그런 좋은 말을 건학 이념으로 삼으면 당연히 자신들이 그걸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연세대 재단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연세대 재단은 연세세브란스빌딩 시설노동자들에게 집회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대학 캠퍼스 안 백주년기념관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집회를 못 하게 하기 위해서다. 연세대 시설노동자들은 벌써 200일을 넘게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인데 이들이 집회 한 번 할 때마다 500만 원 벌금을 내게 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다.

▲ 연세재단은 관리자급 노동자 6명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자를 해고하는 교묘한 수법을 썼다. ⓒ작은책(안건모)


용역 회사 소속이었던 연세대 시설노동자 7명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지난 2015년 3월 1일이었다. 기존 건물 관리업체와 맺은 계약은 지난 2월 28일 자로 끝이었는데 연세재단은 경쟁 입찰을 통해 새로운 업체를 선정했어야 한다. 그런데 연세재단은 기존 관리자를 사주해 각 실 계장들과 시설 관리 노동자 34명 가운데 관리자급 노동자 6명으로 '한국자산관리협동조합(KPMC)'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교묘한 수법을 썼다. '협동조합'이라는 깨끗하고, 공익 이미지를 가진 이름을 걸고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신종 수법을 창조해 낸 것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 협동조합이 신종 용역업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신종 용역업체는 2015년 2월 13일 연세재단과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2월 26일 시설노동자들 34명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이나 바른말 하는 노동자들 7명을 찍어 월급 30%를 삭감하겠다고 하면서, 그렇게라도 일하겠다고 이력서를 내면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자기들이 결정하겠다고 했다. 고용승계를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이들 시설노동자들은 빌딩 관리하는 데 전문가였다. 엘리베이터, 영선(기계), 건축 관련 하자 등 연세대 재단에 근무한 기간은 평균 12년이다. 가장 오래 근무한 임성국 씨는 1993년부터 21년 동안 근무했다. 해고자 중 한 사람인 임성국 씨는 소화 설비, 소방 방송, 자동화재방지 설비 같은 업무를 맡고 있다.

"저는 오래 근무하다 보니까 도면을 안 봐도 어디 선이 꼬였는지 알 수 있어요."

임성국 씨는 동우공영 용역회사를 통해 연세대에서 일한 뒤로 2년, 또는 3년 계약 연장으로 지금까지 일해 왔다. 연세대에서 청춘을 바쳐 온 셈이다. 임성국 씨는 일하는 데 별 불만이 없었다. 월급도 그리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본급이 230만 원이에요."

아르바이트나 다른 비정규직 월급에 견주면 많다고 생각할 만하지만, 20년 근무하고 기본급이 230만 원이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 그걸 많다고 밝히기 꺼리는 소박한 분들이다.


민주노총 서경지부 하해성 조직부장이 말한다.


"임성국 조합원 같은 경우는 다른 데서 데려가려고 했는데 건물을 잘 아는 분인데 빼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연세재단에서) 못 가게 막았던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안 가고 평생 직장이구나 하고 일했는데, 임금이 좀 높아지니까…."


이들 가운데 엘리베이터 업무는 다른 외주업체에 넘겨 김영동, 홍성원 씨 두 사람은 아예 일자리가 없어졌다. 그 가운데 정상훈 씨는 사례가 특이하다. 그이는 경력이 8년밖에(?) 되지 않아 기본급이 16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이가 다른 곳에서 일했던 전체 경력으로 보면 그런 월급으로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일꾼이다. 협동조합에서는 정상훈 씨에게는 임금 100%를 보장해 준다고 해서 그이는 마음만 먹으면 일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이는 다른 사람과 같이 채용을 한다면 지원하겠다고 했다. 결국 해고자 신분이 됐다.

"이분들 가장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죠. 최중욱 씨나 홍성원 씨는 원칙주의자예요. 맡은 일이 있으면 어디 가지도 않고 열중하는 분들이죠. 저 정상영 씨는 일하는 속도가 엄청 빨라요.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만 해고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거죠."


연세대는 눈에 드러날 정도로 사용자성을 드러내 법을 위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주노총 서경지부 하해성 씨는, 근로계약을 한 용역회사와 연세재단은 최소한의 공동 사용자로서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본질은 사용자인 거잖아요. 연세대가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건물을 지으면서 한 천억 원을 썼어요. 정갑영 총장 임기 동안에 정규직이 450명이었는데 현재 300명으로 줄어들었어요. 그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건비를 줄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최소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지난 8월 14일 교섭을 한 적이 있었다. 교섭에 들어간 지 10시간 만에 "연세대학교는 조합원 일곱 명 중 여섯 명을 신촌캠퍼스 내 시설처 한시계약직으로 직고용하고, 2년 후 객관적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상근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각 조합원의 연봉은 종전 업체에서 받은 평균임금에 물가 인상률을 반영한 금액 이상의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연세재단은 그 뒤로 어떤 설명도 없이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서경지부는 그 뒤 시설처장에게 합의안에 대해서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시설처장에게서 답 문자가 왔다. 뭐라고 왔을까? 서경지부 하해성 조직부장이 문자를 보라고 핸드폰을 보여 줬다. "멘붕입니다"라는 문자만 달랑 있었다. 헐!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 뒤로 학교 측은 '재단이 관여할 문제'라며 발뺌하고, 법인은 '시설처장에게 따지라'고 하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 뒤 연세재단은 지난 9월 30일 교무위원회 이름으로 '대부분 근로자들이 주축이 되어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응찰'했다는 호소문을 발표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 호소문이 거짓으로 일관한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은 그 협동조합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호소문에서 재단은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해성 씨는, 사용자 권한인 인사권을 사실상 행사했던 재단이 법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발뺌하는 것은 바지사장을 이용해 법망을 피해 다니는 파렴치범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한다.

▲ 연세대 경제학과 양동민 학생이 "나도 고발하라"고 외치고 있다. ⓒ작은책(안건모)

지난 10월 6일 다른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연세대에서 집중집회를 하는 장소에서 연세대 경제학과 양동민 학생이 발언을 한다. "연세는 품위 있는 얼굴의 살인자였습니까?" 하고 발언을 시작했다. 양동민은 그 연설에서 자신의 꿈은 "가난을 해결하는 경제학자"였다고 했다. "수많은 고통과 아픔을 해결하고 싶었고, 경제학 공부를 통해 가난이 왜 발생하는지, 어떻게 하면 가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를 배우고 싶었"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연세의 건학 정신은 저에겐 '열심히 공부하여 세상을 가난으로부터 자유케 하자'는 이야기로 들렸"다고 했다. 그리고 "왜 보도블록을 뒤집고 주차장을 새로 짓고 금호아트홀, 신경영관, 그 외에 수많은 것들을 짓는 데 쓰는 돈은 있는데, 연세세브란스빌딩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을 위한 돈은 없"냐고 묻고 있었다. 양동민 학생은 또 "노동자들을 고발하려거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저도 함께 고발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마지막 말에 거기에 있던 5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연설을 듣고 있는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저는 기꺼이 죄인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들이 죄를 범했다고 온 사회가 비난하는 그날까지, 당신들의 고발을 명예로 생각하며 사회를 바꿔 나가겠습니다."

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바로 가기 :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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