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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한반도? 남북도 중국-대만처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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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한반도? 남북도 중국-대만처럼 할 수 있을까?

[강준영의 차이나 브리핑] '92 컨센서스', 모호성이 만든 기회와 위기

분단 66년 만에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중국과 대만(타이완)의 최고 지도자 간의 만남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대만 마잉주 총통의 정상 회담은 '양안 최초의 정상 회담'으로 그 내용에 상관없이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이번 정상 회담은 2016년 1월 16일 실시될 예정인 대만 대선의 판세가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에게 기울어진 상황에서, 전세를 만회하려는 대만의 국민당 정권과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중의 갈등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대만을 끌어안겠다는 중국의 입장이 맞아떨어지면서 성사된 회담이다.

양안은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 '정상 회담'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기로 했다. 대만은 이 회담의 성사가 중국이 대만을 인정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만을 또 하나의 정부로 인정하는 모양새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안 최고 지도자 회담'으로 지칭된 이 만남은 공동 선언이나 공동 기자 회견 등 어떠한 공식적 발표도 없었다.

이번 만남의 가장 큰 성과는 아무래도 양안 교류의 기본 정신인 '92 컨센서스'(九二共識)를 재확인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92 컨센서스는 양안이 실질적인 정부 간 교류를 추동하기 위해 설립한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海峽交流基金會)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係協會)를 설립해 실질적인 정부 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본다.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적십자 회담을 통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튼 것과 같은 방식이다. 92 컨센서스는 이 두 기구가 1992년 11월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동의하되 "중국"에 대한 표기는 각자 "구두(口頭)상으로 한다"는 것에 합의한 것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확인한 양안 정상의 만남을 보고 남북 정상 회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양안 교류의 폭과 규모는 남북 교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규모다. 국력의 격차가 계속 벌어져 대만의 상대적 왜소성이 지속되고 있고 경제도 종속도가 심화되고 있다.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 진영은 이러한 지나친 경제의 종속이 결국은 정치적 독립성도 제약할 것이라며 대중 교류를 최소한의 범위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에 국민당 진영은 안정적 양안 관계의 유지를 위한 교류 심화는 불가피하며 이를 통해 안정적인 양안 간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양안 간에는 '하나의 중국'을 둘러싸고, 대만 내부에서는 '현상 유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는 선거 때마다 대만 사회를 끝없는 말싸움의 소용돌이로 이끌어 왔다. 그렇다면 대만은 왜 20여 년 전에 이뤄진 합의를 두고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서로가 이해하는 '하나의 중국'과 '현상 유지'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호한 개념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혼돈 속으로 이끄는지도 모른다.

우선, 이번 회담에서 재확인됐다는 '하나의 중국'에 대해 양측은 사실 전혀 다른 인식을 갖고 있다. 중국 측은 '하나의 중국'이 지칭하는 바가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대만은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수립된 '중화민국'이 '중국'을 지칭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대만 측에서는 중화민국이 대만에 현존하고 있는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 측에서는 중화민국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국가이며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한 중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통일 방식인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도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중앙 정부 하에 다른 체제를 수용하는 개념이다. 대만의 독립 성향을 지지하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은 하나의 중국을 '미래의 통일 중국'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 후 독립을 지향하는 천수이볜(陳水扁)의 민진당(民進黨) 정권은 중국과 대만이 별개의 국가라는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을 주창하며 하나의 중국 자체를 부정해 정부 간 교류가 중단되기도 했다. 만일 민진당 후보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하나의 중국'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이번 시진핑-마잉주 회담에서 재확인된 92 컨센서스와 배치되는 논쟁이 나올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현상 유지(중국어로는 維持現狀, status quo)'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대만 내부의 논쟁이다. 누가 뭐래도 양안 관계에서 대만이 추구하는 최대 덕목은 현상 유지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매번 70% 이상이 '현상 유지'를 지지한다. 문제는 국민당 진영 내부의 주류적 입장이 미래 '중국과의 통일'을 염두에 둔 '현상 유지'라는 점이다. 이는 중국과 보조를 맞춰야만 대만의 안전이 담보되고 이를 기반으로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독립 성향을 갖고 있는 민진당 진영의 '현상 유지'는 미래에도 현 상태로 지속되는 현상 유지다. 즉 통일을 추구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하는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한다. 민진당의 이런 입장은 대만 의식(臺灣意識)으로 지칭되는 대만의 '주권 의식'이 이미 주류 여론으로 자리 잡고 있고 정치 사회적으로 활발한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200만 명에 달하는 대만의 유권자 중 '자주적'인 성향을 가진 500만 명의 유권자가 민진당의 고정지지 세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만인들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이미 두 번의 정권 교체를 경험했다. 또한 민의의 표현이나 민족주의적 정서에 있어서 과거와는 다른 주체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 양안 경제 교류의 확대 추세 등과 관계없이 본토주의적 정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 시진핑과 마잉주의 회담을 단순히 '국민당 구하기'로 볼 수 없음은 이 때문이다. 양안은 두 개의 정부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각자가 분치(分治)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대만은 이미 독립된 국가 상태라는 것이 민진당의 주장이다. 따라서 통일과 독립을 둘러싼 극심한 대만 내부의 국론 분열 역시 향후 양안 관계의 방향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양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논쟁 속에서 우리는 향후 남북 관계가 나아갈 길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이른바 '창조적 모호성'을 발휘하여 억지로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쌍방의 교류 협력에 근거를 마련해 주고 규범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크다. 그러나 역으로, 모호한 개념의 공감대가 정권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우되면서 미래 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정권을 초월한 민족 대의적 차원의 실천적 통일 과정 로드맵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현상 유지'와 관련하여 국내적 여론의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퍼주기 논란'이나 '전략적 인내'라는 상반된 인식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더 이상 지속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양안 최고 지도자 간의 회담은, 1986년 민간 교류로 물꼬를 튼 양안 교류가 1992년 이후 반관반민 중심의 교류로 발전한 후 2014년에 양안의 정부 기구인 중국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과 대만행정원 대륙위원회 간의 정부 차원 교류로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국식 '실용주의'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모호한 개념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92년 당시 양안의 필요에 의해 설계된 92 컨센서스는 분명히 양안의 교류를 규범화하는 작용을 했다. '현상 유지'도 표면적으로는 극단으로 치닫지 말자는 실용주의의 한 단면이다.

북한의 일방적 태도 때문에 남북 관계의 진전이 어렵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도 북한의 이러한 태도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제안과 시도를 수반했었는지에 대해서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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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이며,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및 중국 문제 시사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중화민국 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에서 현대 중국정치경제학을 전공해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에 관한 100여 편의 연구 논문과 <한 권으로 이해하는 중국>, <중국의 정체성>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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