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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둥이' 할머니는 왜 압록강으로 사람들을 보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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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둥이' 할머니는 왜 압록강으로 사람들을 보내나?

[강주원의 '국경 읽기'] 국경 연구자-가이드의 삶

나는 인류학을 전공한 가이드

10년 전, 나는 국경 무역과 관광을 박사 논문의 핵심 주제로 상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단둥의 가이드 친구(주로 북한 화교)들을 따라다니면서 무보수 보조 가이드 노릇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가이드를 하고 있다. 자칭 '국경 가이드' 연차가 5년 정도 된 것 같다. 사람들은 묻고 한다.

"왜 힘들게 가이드 하세요?" 또는 학계 지인들은 "연구자는 연구자의 길을 걸어 야지!"라는 충고를 나에게 해준다. 그때마다, "논문 쓰고 있어요. 가이드는 연구 대상이자 참여 관찰 방식입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친한 사람들에게는 농담을 덧붙인다.

"논문은 심사위원들만 읽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가이드를 하면, 나의 연구 내용을 버스에 탄 20~30명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4박5일 내내 들을 수밖에 없어요. 여행 마지막 날쯤 되면, 여행을 함께 한 분들이 중조(북중) 국경 지역과 관련된 사례를 듣고 직접 체험하면서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이 무너졌다는 말을 해줄 때, 저는 힘들지만 행복합니다."

나는 가이드를 업으로 하지 않는다. 주변의 지인들과 뜻이 맞아 단둥과 압록강으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는 1년에 2~3번 정도이고, 다른 답사 팀과 비교를 할 때 규모도 작은 편이다. 매년 대규모 답사 팀을 보내는 삼둥이 할머니(김을동 국회의원)가 부러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가이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나 스스로 '국경 가이드'를 해야 된다고 다짐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일개 가이드로서의 한계를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단둥 : 한국의 안보 교육 현장으로 자리매김

남북 만남과 관련된 단둥의 현장들이 한국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이보다 더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모습들을 나는 10년 넘게 지켜보고 있다. 단둥의 압록 강변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른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양한 단체와 학교가 "애국" 혹은 "안보"의 이름으로 기획한 "중조 국경 답사"에 참여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정치가는 단둥이 '통일 안보 현장'이 되기를 희망하기도 한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통일보다는 안보가 더 강조되고 있다.

중국 방문 중인 김문수 경기지사가 단둥 현장 시찰을 마치고 "단둥은 통일 안보의 현장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북한과 중국의 현실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특히 그는 "북한에 항상 말하는 것인데 정말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는 중국만큼만 따라 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중앙일보> 2011년 7월 10일)

특히 여름 방학 때가 되면, 약 800명을 태우는 '단둥 페리(일주일에 세 번 인천과 단둥을 왕복하는 배)'의 표는 구하기 힘들다. 성인 혹은 학생들로 구성된 한국 답사 팀은 압록강에서 중국 단둥과 비교되는 북한 신의주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대부분은 중국 가이드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소비되고 있는 "북한의 이미지" 혹은, "폐쇄된 국경" 등의 이야기만 듣고, 압록강은 무서운 국경으로만 인식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압록강변의 삶의 현장에 더 가까이 가고자 한다면, 중조 국경 지역은 우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다.

▲ 중국 사람들은 압록강에서 발 담그고 북한 맥주를 마신다(2014년). ⓒ강주원


압록강이 통일과 평화 교육의 현장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나는 압록강이 안보 교육의 현장만 되고 있는 현실의 벽을 조금이나마 허물고 싶었다. 몇 년 동안, 남북 만남의 현장인 단둥의 속살을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고 압록강이 사람이 사는 곳임을 보여주고자 노력을 했다. 설명만 하는 가이드가 아닌 '국경 지역'의 삶과 관련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역할에 중점을 두었다. 2014년 여름에는 일명 "압록강에 발 담그고 과일을 먹자"라는 주제에 동참한 35명의 지인들과 더불어 나의 가족도 함께 했다. 그런데 아들의 반응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여행의 첫날, 난생 처음 압록강을 본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북한 무섭지 않아?, 압록강에 들어가도 돼?, TV에서 북한 사람은 무섭다고 했는데!"라는 질문과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5박 6일, 기회가 될 때마다 아들은 나와 함께 압록강에서 발을 담그고 과일 먹었다. 때로는 한바탕 어른들과 같이 물놀이도 하였다. 강 건너 북한 아이들도 자기와 똑같이 물놀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더 이상 "압록강과 북한 사람이 무섭지 않네"라고 웃었다.

▲ 여행 첫날, 압록강과 북한을 무서워했던 아들은 여행 3일째, 강 건너 북한 아이가 물놀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2014년). ⓒ강주원

북한과 압록강을 바라보는 아들의 눈은 한국의 대중매체가 만들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체험을 통해서 바뀌었다. 한편,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존재하였다. 작년에는(2014년) 몇 차례, 중학생과 대학생들의 압록강 답사 기획을 도와주다가 "압록강은 위험하다"라는 학부모들의 편견 때문에 무산된 경험도 하였다. 그때마다 아들의 '한마디'와 변화는 나에게 힘이 되었다. 나는 올해 여름에도 청소년들과 함께 떠나는 압록강 여행을 꿈꾸었고 꿈을 이루었다.

지금부터 2015년 여름, '청소년 통일 공감 프로젝트'라는 취지하에 (사)어린이어깨동무와 함께 준비했던 프로그램의 기획안을 소개하겠다. 청소년들은 4박5일 가운데 단둥에서 2박3일 동안 인류학의 방법론인 '참여 관찰'을 시도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즉 한 지역에 더 머물면서 한 걸음 더 들어가기이다.

▲ 단둥 거리에 3국의 물건이 공존하고 있다(2015년). ⓒ강주원

▲ 단둥의 호텔에서는 북한과 한국 사람이 함께 조식을 먹는다(2015년). ⓒ강주원

▲ 한국 관광객과 같은 호텔에 투숙했던 북한 여성 무역 일꾼이 벤치에 앉아 있다(2013년). ⓒ강주원

국경 지역의 삶의 단면들 : 참여 관찰 시도하기

주요 일정은 심양공항-통화(1박)-백두산-통화(2박)-집안-단둥(3·4박)-심양공항이다. 만주 벌판을 달려, '백두산 천지와 압록강 상류' 그리고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을 눈으로 확인한 청소년들은 압록강 중류에 위치한 북한의 '만포시'를 뒤로 한 채, 단둥으로 향한다. 버스를 잠시 멈추고 그들은 압록강에서 발 담그고 과일을 먹을 계획이다. 중국과 북한 아이들이 수영을 하는 압록강에서 한국 학생들도 물놀이를 할 수 있다.

단둥에서의 참여 관찰은 중조 국경의 특징과 현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의주와 북한의 섬 사이를 가로지르는 유람선 위에서, 학생들은 '압록강은 공유 한다'는 특징을 이미 알고 있는 자신들과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다른 한국 관광객들의 반응을 비교하고 그 차이를 파악할 것이다. 학생들은 휴전선과 비슷한 철조망도 보겠지만, 철조망이 중간 중간 끊어져 있는 장면도 관찰하게 될 것이다. 단둥에는 북중 무역을 통해서 부를 획득한 북한 화교들이 많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최고급 북한화교 식당(신안동각)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다.

그 다음날은 국경 무역 현장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비즈니스호텔에서 북한의 무역 일꾼과 섞여 조식을 마친 그들은 근처의 조선족거리(일명 조선 거리)를 돌아다닌다. 북한 사람들이 주 고객인 상점들의 다양한 한국 물건들의 목록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선족과 북한 화교가 운영하는 무역 상점에도 들어가서 물건도 사볼 것을 권유한다. 기차역과 세관 주변에서 북한 사람들의 귀국 혹은 입국 행렬을 참여 관찰한 그들은 버스로 이동해 신압록강대교와 북한의 황금평의 의미를 파악한다.

버스 창 너머로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이동, 저녁 때 우연히 간 중국 식당에서도 북한 여종업원들이 근무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압록강공원에 모인 그들은 어두워진 압록 강변에서 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는 글자를 새긴 "풍등"을 신의주로 날려 보낸다. 압록 강변을 한 시간 넘게 산책하면서 학생들은 중국 사람들의 다양한 여가 활동을 간접 체험할 수도 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단둥의 한인회와 한글학교를 방문한 그들은 한국 학생들의 중국 학교 생활도 들어보고 국경 무역에 종사하는 한국 분들과 짧은 인터뷰를 시도해 볼 것이다. 여행의 마무리는 손기정 선수가 신의주에서 단둥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마라톤 연습을 했던 압록강단교에 올라가는 것이다.

단둥은 안보가 아닌 통일의 현장이다

이처럼 준비한 일정의 큰 뼈대 하에서, 청소년들은 약식이지만 참여 관찰을 경험했다. 오히려 그들은 기획의 범위를 뛰어넘어 다양한 국경 지역의 삶의 단면들을 찾아다녔고 그 의미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양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백두산도 좋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압록강과 단둥 시내에서 통일을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접하게 된 사실이 더 좋았다"라는 말을 하면서 각자의 답사 의미를 찾았다. <어깨동무> 가을 소식지에 실린 학생의 글 일부분이다. "압록강은 내 생각과 달리 평화로웠다"로 시작한다.

내가 생각했던 압록강은 거리마다 군인들이 서 있고, 철조망으로 뒤덮여 있는 압록강이었는데 내 생각과 달리 평화로웠다. 너무 평화로워서 잠시 멍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고정관념을 가지고 북한을 생각했던 것 같다. 압록강 건너편에는 북한 주민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우리는 압록강에서 물놀이도 하고 사진도 찍고 재밌게 놀았다. (…) 나는 미션을 했다. '북녁의 ○○○'를 찾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는 진달래 맥주이다. 캔에는 북한에서 만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밥을 먹고 밤에 등을 날렸다. 북한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등에 붙여 날렸다.

그 이외에도 학생들은 "많은 사람들이 집안과 단둥에 와서 오해를 풀고 하루 빨리 통일이 되기"를 기원하기도 하고 "국경을 빼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압록강이 나는 인간적이라고 느꼈다"고 후기에 남겼다. 그들의 반응은 달랐다. 다른 답사 팀이 '주마간산'식 일정과 한국의 고정관념으로 압록강 너머 북한만을 바라보면서 남기는 여행담 속의 압록강의 풍경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압록강을 찾고 그 곳에서 북한과 통일을 고민할 때, 한 가지 사실과 경험만 해도 단둥은 '안보'가 아닌 '통일'을 느낄 수 있는 현장으로 다가온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인천공항에서 헤어질 때, "압록강은∼"라고 묻자, 학생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공유한다"고 화답했다. 하나 더, "압록강에서∼"라고 외치자, 그들은 "발 담그고 과일 먹자"라고 응답한 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 한국 사람도 압록강에 발을 담글 수 있다(2015년).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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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원

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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