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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왜 영국에 '중국물'을 가져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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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왜 영국에 '중국물'을 가져갔나?

[한인희의 중국 역사의 뒤뜰] 중국 지도자의 해외 순방 음식

이 주 월요일(10월 19일)부터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영국 방문 동안 전용으로 마실 '생수'를 준비한 것으로 보도됐다.

영국 언론은 "중국 측이 버킹엄궁의 물을 마시지 않겠다는 거절 의사를 밝혔으며, 이는 중국의 위생 기준을 비난해 온 서방 국가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전했다. 나는 이러한 정치적인 의도뿐만 아니라 중국의 오랜 역사적 관행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본다.

중국 국가 지도자들이 먹는 음식

어느 나라든 국가 지도자들이 먹는 음식은 극비 사항이다. 그래서 현재 중국 국가 지도자들이 즐기는 음식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고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그나마 알려진 바는 '특공(特供)'이라는 표현으로 갈음된다. 당-정-군 고위 간부들에게만 '특별 공급' 된다는 의미다.

현대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먹고 마시는 일은 '권력'이다. 1942년 3월 중국공산당의 연안(延安) 시기 마실미(馬實味)라는 사람의 기록에 따르면 중공 내부적으로 입고 먹는 데도 '입는 것은 3등급, 먹는 것은 9등급'으로 구분했다고 전해진다. 건국 후 권력자에게 각양각색의 '특공' 제품이 제공되었고 담배, 옷 등도 특별하게 제공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의식과 계급 감각은 전통 시대부터 역사 문화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봐야 한다.

중국의 황제들은 어떤 물을 마셨나?

황제들이 마시는 물은 베이징 근교의 옥천산에서 나는 샘물인 옥천수(玉泉水)였다. 옥천수는 건륭(乾隆) 황제 때부터 황실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건륭황제가 당시 베이징 교외에 있는 천수(泉水), 정수(井水) 등 유명하다는 물을 모두 맛보고 결정했다. 옥천산의 물이 가장 달고 가장 무거워 최고의 물이라 평가했다. 이후 황제들이 마시는 물은 모두 옥천산에서 실어오게 되었다.

건륭 황제가 강남 지역 순시 때에 옥천수를 전용 수레에 싣고 다니며 식수로 사용했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傅儀)가 자금성에서 쫓겨날 때까지도 이 물을 마셨다 한다. 황제의 전용 식수를 나르는 물차는 황제의 상징인 황기(黃旗)를 꽂았다. 그리고 물차는 반드시 길의 중앙으로 다녔다. 누구도 감히 부딪쳐서는 안 되었다. 베이징의 서직문(西直門)은 매일 이 물차를 위해서만 열고 닫았다. 당시 황제들의 장수가 곧 정권의 안정이었기 때문이다.

해외 순방길에 음식을 가져간 역사

중국의 권력자들이 해외 순방길에 중국 음식을 가져가는 것은 꽤 역사가 깊다. 청말 최고의 권세가였던 이홍장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도 그 중 하나이다. 당시 <뉴욕 헤럴드 트리뷴(New York Herald Tribune)>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이홍장은 중국의 유명한 주방장을 대동하고 왔으며 중국식 간식을 만드는 전문 요리사도 별도로 있었다. 술과 차는 물론이고, 신강 위구르 지역 천산(天山)에서 가져온 광천수를 진흙으로 빚은 병에 담아가지고 왔다. 이 광천수는 차를 다려 마시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폐를 맑게 하고 얼굴을 윤기 나게 만든다는 청나라 궁정 요리사의 비방인 계화피단(桂花皮蛋)을 가져왔는데 미국에선 보기 드문 진기한 음식들이다."

1896년 8월 31일 토요일, 당시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Stephen Grover Cleveland)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국빈 만찬을 거행했다. 미국 측은 환영 만찬에 미국의 산해진미를 이홍장에게 대접했다. 미국 측에서는 이홍장이 답례 연회를 거행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예상 밖에도 이홍장은 환영만찬에 대한 답례로 감사 연회를 베풀었다.

이홍장이 주최한 만찬은 중국 황궁에서 거행되는 연회의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 중국 전통 음식에 저마다 멋진 이름들이 붙여졌다. 이를 테면 '복이 동해 바다처럼 크게 들어온다(福如東海)'라는 이름이 붙여진 생선요리와 '남산만큼 오래 살라(壽比南山)'는 의미의 곰발바닥 요리, '동한(東漢) 시대 최고의 미녀 초선처럼 모든 일이 잘 되라(貂蟬如意)'는 의미의 죽, '달에 살고 있는 상아(孀娥)'같은 전병 등이 준비되었다.

이러한 메뉴는 모두 청나라 궁정의 비방(祕方)이 담긴 요리들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백 여 종의 귀한 한약재를 사용되었다. 연회에서 음식 맛을 본 사람들은 중국의 요리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이 요리들의 비방은 현재 중국에서는 모두 유실되어 버렸다. 그러나 당시 이홍장이 미국 방문 길에 소개해준 메뉴들은 지금까지 미국의 레스토랑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당시 연회를 취재했던 <뉴욕 헤럴드 트리뷴>은 "미국인 중에 누가 이런 대접을 받아 보았는가!"라는 감탄으로 기사를 맺었다.

묵은지를 영국에 가져간 이홍장

이홍장이 영국을 방문 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홍장은 우리의 김치와 유사한 '시엔차이(鹹菜)'라는 묵은지를 즐겨 먹었다. 폭 삭아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음식이었다. 그는 이 묵은지 두 항아리를 가져갔다. 이홍장의 전용 선박이 영국 항구에 도착하자 영국 세관원들이 배에 올라 검역을 실시했다. 세관원이 선박의 주방에서 묵은지 항아리를 열었을 때 지독한 냄새가 났고, 그것을 세균덩어리라 생각했다.

세관원은 이홍장 일행의 상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영국 외무장관이 이홍장이 타고 온 배에 올라 회담을 거행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이홍장은 영국 외무대신에게 자신이 가져 온 묵은지 얘기를 꺼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그 신맛이 특히 식욕을 돋우어 준다고 자랑했다. 영국 외무대신은 이홍장의 이야기를 듣고 의심을 풀었다. 영국 세관은 화학 실험을 해 보기로 결정했고, 실험을 거쳐 전염성이 없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나중에는 오히려 대량의 푸른곰팡이가 페니실린 성분을 만들어 부종을 낮추고 열을 내리는 '양약'이라고 알려졌다.

예나 지금이나 냄새가 많이 나는 김치류의 음식을 외국에 가져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영국 방문에서 자신이 마실 '생수'를 직접 가져 간 것은 정치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중국 지도자들이 해외 방문 때 종종 벌어졌던 일이다. 음식과 먹거리는 외교의 세계에서는 늘 중요한 화젯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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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희

건국대학교 국제학부에서 가르치며, 한중사회과학학회 회장과 KU 중국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대만 중국문화대에서 중국 근대 정치사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 중국의 영웅들>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와 <중국 외교사> 시리즈 및 <대만 현대 정치사> 등 20여 권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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