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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무성, 노동개혁은 흥정 대상 아냐" 속뜻은?

[정치 기사 뒤집어 보기] 정쟁만 일삼는 '갈등 유발자들'

정쟁과 갈등은 나쁜 것일까

"노동개혁은 정쟁이나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노동개혁 법안의 국회 제출을 앞두고 야당이 법안 통과를 반대할 것을 우려해서다. 여기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한 개혁이고, 이에 반대하는 야당과 노조는 정쟁과 갈등을 일으키는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다수의 언론 또한 김무성 대표의 시각과 다르지 않게 정치를 바라본다.

△ '野, 노동 개혁도 '다른 이슈 끼워넣기'로 훼방 놓으려 하나'(<조선일보> 8월 1일 자)
''노동 개혁' 받아들인 한국노총, 이제 국회가 和答해야'(<조선일보> 9월 15일 자)
'한국노총, 노사정 대타협 진통 끝 최종 승인…금속노련 위원장 분신 시도로 한때 파행'(<조선일보> 9월 14일 자)

제목들만 살펴봐도 대타협과 통합의 주체인 정부 여당과 '갈등 유발자' 야당, 노조의 대립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노동개혁뿐 아니라 국회의 통상적인 업무를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정쟁·본회의 파행' 반복…안 변하는 국회-임시국회 마지막날까지 여야 특수활동비 '공방''(<문화일보> 9월 1일 자)
'총선 의식한 국회…(국감)첫날부터 민생 제쳐두고 정쟁만 벌였다'(<매일경제> 9월 10일 자)

특수활동비를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야당의 요구를 정쟁과 파행을 일으키는 잡음으로 치부한다. 갈등의 대립점에는 민생이 있다. 민생법안의 통과보다 정치적 이익을 앞세워 갈등을 불러온다는 식이다. 이러한 시각은 이슈에 관계없이 정부와 언론이 한결같이 보여준 프레임이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제기하는 문제가 무엇이든 민생과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갈등으로 바라본다. 멀게 보지 않고,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에 대한 대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 더 이상 민생정국 걸림돌 안 되도록'(<한국일보> 2014년 8월 19일 자)
'공무원연금법 처리 합의 불발…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에 발목'(<한국경제> 5월 27일 자)
'메르스 앞에서도…政爭 몰두한 與野'(<조선일보> 6월 29일 자)

▲ 한국노총이 참여한 노사정 합의에 반발해 삭발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연합뉴스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의 '정쟁(政爭)'은 '전쟁(戰爭)'에 비유될 만큼 심각한 문제일까? 의회의 역할은 국회 안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갈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시각은 정당과 의회,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훼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다양한 사적 이익들의 갈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그의 저서 <정당의 발견>(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정당(party)의 어원은 부분을 뜻하는 'part'에서 왔다고 말한다. 국가의 전체 이익만을 말하던 근대 이전의 시대에서 시민들의 다양성과 부분적 이익을 인정하면서 정당과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사적 이익을 위해 무리를 짓는 일에 대해 '붕당, 파당' 등의 이름을 붙여 불온하고 나쁜 것으로 취급했다.


시민이 스스로의 이익을 당당히 요구하고 조직화된 정당을 통해 경쟁하는 제도가 현대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사익이 정치제도 안에서 경쟁하여 궁극적으로는 공익에 가닿을 수 있다는 믿음, 다원주의에 대한 믿음이 정당정치를 만들었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저서 <절반의 인민주권>(박수형·현재호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에서 갈등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치의 관건은 갈등의 제거가 아니라, 갈등의 완화와 조절이라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의 책은 '정당론'의 고전이지만, 한국의 언론에 대입해도 잘 맞는다.

가장 중요한 갈등을 다뤄야

각자가 발을 딛고 선 환경과 이익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샤츠슈나이더는 정당의 역할이 여러 가지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서 가장 중요한 갈등을 가지고 싸우는 일이라고 보았다. 언론의 역할 또한 가장 중요한 갈등을 선택하고 공론장으로 가져와서 시민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도록 돕는 데 있다. 언론은 갈등을 불필요한 것으로 보지 않고 어떤 갈등이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언론 내부에서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만든 정치전문 매체 은 기존의 정치기사들과는 달리 국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인정하고 어떤 갈등인지 자세히 다룬다. 개별 국회의원의 특징에 대한 소개와 상임위에서 논의되는 정책과 법안을 설명하는 보도가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 독자에게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키기보다 정치의 역할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다만 쏟아지는 법안과 정책을 모두 커버하려고 하다 보니, 독자입장에서는 피로감을 느낄 수 있고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갈등인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부작용도 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은 대중의 권력을 사소한 문제들에 사용함으로써 이를 낭비하는 일'이라는 샤츠슈나이더가 말이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생계가 바빠서 모든 사안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 없는 시민들에게 어떤 이슈가 꼭 알아야 하는지 짚어주는 언론의 역할도 더 녹여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존의 언론은 그날 일어난 이슈를 종합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했다. 방송 뉴스 또한 1분 30초의 짧은 리포트를 통해 다양한 사건을 담았다. JTBC <뉴스룸>은 이러한 통념을 깨고 한 리포트에 3~4분의 긴 시간을 투입하고, 하나의 주제에 여러 개의 리포트로 다루기 시작했다. JTBC 뉴스의 이같은 실험은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해 시민에게 중요한 정보를 차등적으로 제공하는 언론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절반의 인민주권>에 따르면, 중요한 갈등을 중심으로 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져야 서로 이익이 다른 세력도 타협의 여지가 있고, 오히려 사회적 적대감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갈등에 대한 부정은 정치에 대한 부정

샤츠슈나이더의 관점으로 볼 때 언론들이 보이는 갈등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현실적이지도 않으며, 현상 유지에 도움을 주는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 의회 안에서 마땅히 토론하고 때로는 격한 논쟁을 통해 다뤄야 할 사안에 대해 언론이 마치 불필요한 싸움을 하는 식으로 보도한다면, 이득을 보는 쪽은 한 방향으로 정책을 밀고 나가려 하는 정부와 민주적인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기업이다. 피해를 보는 것은 역할이 커진 국가와 기업의 이익에 밀려난 노동자, 서민의 이익일 경우가 많다.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언론의 시각이 정치와 민주주의를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계파' 밥그릇 싸움에…야당, 야단났다'(<국민일보> 9월 14일 자)
'새정연, 국감 팽개치고 '공천권' 싸움에만 매달릴텐가'(<동아일보> 9월 14일 자)
'기업 구조조정·사업재편도 '국회 눈치' 봐야하는 나라'(<한국경제> 9월 9일 자)

이런 기사 속에는 공익을 위해 개혁하는 정부와 국가 경제를 살리는 기업이 등장하고, 그 반대편에는 자기 밥그릇 때문에 싸우면서 긁어 부스럼 만드는 국회와 노조가 있다. 샤츠슈나이더는 '가장 강력한 특수이익은 사적인 해결을 원한다'고 말했다. 기업은 정치권의 통제와 언론의 감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므로,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를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회사 내부의 일로 축소시키려고 한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는 시민을 외부세력으로 몰거나, 국정감사에 기업인을 소환하는 것을 권력남용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에 있다.

'노사합의 됐는데…외부세력 7000명 몰려 시위'(<조선일보> 2011년 7월 10일 자.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관련 기사)
''망신 주고, 팔 비틀고, 민원하고'···국회권력에 신음하는 기업'(<매일경제> 9월 9일 자)

하지만 대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사회적 자원의 투입을 받는다는 점에서 아무런 통제 없이 내버려둘 수는 없다. 기업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는 시민들에게 직접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수의 주요 언론이 기업의 입장에 이입하여 갈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뽑은 의회를 혐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샤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의 결론에서 '갈등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갈등의 사적인 해결을 원하는 강자들에 맞서서 돈이나 권력이 없어 사적 해결이 불가능한 이들을 위해 갈등이 사회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삼성이나 롯데의 경영권 승계 문제의 경우, 언론은 이를 기업가나 주주만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과 여론의 견제를 받을 수 있도록 갈등을 사회화해야 한다. 이 갈등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이상 갈등을 사회적 이슈로 확장시키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자세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다.

좋은 정치 기사가 갈등을 완화시킬 것

이 글의 첫 부분에서 언급했던 노동개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 기사도 있다.

'임금피크제 놓고 충돌하는 까닭'(<시사IN> 411호)

이 기사는 노사와 여야가 왜 갈등해야만 하는지 자세하게 분석한다. 이 기사에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갈등유발자들'은 나오지 않는다. 고령화로 흔들리는 한국의 노동시장과 임금체계 하에서 임금피크제라는 대응책이 나왔고, 그에 따른 기업과 노동자 각각의 입장을 서술한다. 또한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끌어온 과정을 설명하면서 정책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해 독자에게 알려준다.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고 비난하는데 그치는 기사는 독자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분노, 피로감과 무관심을 가져다준다. 반면 갈등이 왜 일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시민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잘 분석한 기사는 독자 스스로 판단하고 더욱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상충되는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게 하고 타협의 여지를 넓힌다. 좋지 않은 정치기사는 갈등이 사라져야 할 것처럼 서술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갈등이 더욱 심화되도록 부추긴다. 좋은 정치기사란 갈등이 현실 속에서 사라질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사회화함으로써 갈등을 관리하고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사일 것이다.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은 정치실험공동체 '정치발전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으로, 소위 '정치 후진국'이라 평가받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 혐오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정치와 시민의 삶을 가깝게 할 수 있는 정치기사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은 '좋은 정치 기사'를 판별하는 팀 나름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 지난 석 달 간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정치 보도가 △반정치주의를 부추기지는 않는지, △정치적 갈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그리지는 않는지, △의회 민주주의의 역할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진 않는지, △정치권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편견을 강화하지는 않는지 등 문제의식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은 지난 세 달 간의 세미나를 통해 얻은 문제의식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기회를 가져 보려 합니다. 총 10회에 걸친 '정치 기사 뒤집어 보기' 연재를 기획한 이유입니다. 정치와 시민의 삶을 가깝게 만드는 정치 기사가 많아지길 기대하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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