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후반, 명나라 말기에 활동한 이지(李贄, 1527~1602, 호는 卓吾)의 사상을 소개하는 탁오서당(卓吾書堂) 연재를 시작한다.
이탁오는 중년에 관직을 그만둔 후 승려와 같은 생활을 하는 등 기행을 일삼다가 76세 나이에 옥중에서 자결한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괴짜' 사상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호한한 학식으로 <분서>(6권), 장서>(68권) 등 방대한 저술을 남긴 '중국 전통 사상의 대변인'의 면모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가 괴짜의 모습을 보인 것은 당시의 학풍이 요구하던 표현 방법에 만족하지 못한 '시대와의 불화'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세계의 학술-사상계를 지배해 온 서양 중심주의의 퇴조와 현대 중국의 굴기에 따라 중국 전통 사상의 재발견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지의 저술은 현대인이 중국 전통을 바라보는 창문으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레시안>은 '탁오서당'이란 이름으로 이 창문을 한국 독자들에게 열어놓는다. <분서(焚書)> 번역 등의 작업을 통해 이지에 관한 넓고 깊은 연구를 수행해 온 김혜경 교수(한밭대학교 중국어과)로부터 그가 최근 번역한 <명등도고록(明燈道古錄)>의 해설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명등도고록> 소개말
이지(李贄, 1527~1602년)의 저작 중에서는 <분서(焚書)>와 <속분서(續焚書)>가 가장 유명하지만 이 책들만 그 사상의 정화인 것은 아니다. 명대 말기 고식적인 사회 분위기에 숨이 막혔던 이지는 사마천의 말처럼 '발분저서(發憤著書)'의 심경으로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갔다. 덕분에 <분서>는 펄펄 끓는 기상과 약동하는 문장으로 읽는 이조차 들썩이게 만들지만, 경세가로서의 이지를 만나기는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경우였다.
이지는 대단히 부지런하면서도 몰입하는 사상가였다. 명나라 만력 8년(1580년) 54세 되던 때 결연히 벼슬(姚安知府)에서 물러난 뒤로 오로지 강학(講學)과 저술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그 저작은 거의 등신(等身)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경전과 제자백가, 역사와 문학 서적을 두루 섭렵한 뒤 이를 분석하고 평설하는 일은 그의 만년에 가장 주요한 일과였고, 덕분에 이지의 글은 대단히 폭넓은 독서와 사색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그런데 유별나게 불교 승려로 출가까지 했지만 이지는 끝까지 경세를 삶의 지향으로 여기는 유가의 신도로 남았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명등도고록(明燈道古錄)>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이지의 경세가적 면모를 일깨워주는 만년의 대표적인 저술인 것이다.
"등불 밝히고 옛일을 논한다"는 뜻의 <명등도고록>이란 제목이 시사하듯, 책의 형식은 벗들과의 대화이고 내용은 고전에 관한 고담준론이다. 하지만 토론 주제는 고대가 아닌 그 시대 지식인들의 당면 문제였으며 또한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간 본질에 관한 사색이었다. 이지는 평생 천착했던 주제들을 <대학>과 <중용>이라는 두 텍스트의 해설을 빌어 <명등도고록>에 펼쳐놓았다. 덕분에 독자는 명대 유가 철학의 진수를 맛보고 유자로서의 대의와 태도를 저버리지 않는 이지의 진면목을 여실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명등도고록>을 말하는 데 책이 지어진 경위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대화 형식으로 엮어졌다. 등장하는 화자는 이지(李贄)와 그를 산서(山西)의 자기집으로 초청한 친구 유동성(劉東星, 1538~1601년), 그 아들 유용상(劉用相)과 조카 유용건(劉用健), 이지의 불문 제자인 회림(懷林) 등이다.
만력 24년(1596년) 가을, 부친상을 당해 집에서 거상하던 유동성은 문득 이지를 떠올렸고, 그래서 아들을 호북성 마성(麻城)의 용호(龍湖)로 파견해 산서성 심수현(沁水縣)의 평상촌(坪上村) 집으로 모셔오게 하였다. 이지는 산서에서 지내는 동안 낮에는 문을 닫아건 채 책을 읽고 밤에는 유동성과 마주 앉아 고전과 철학적 명제에 관해 담론하곤 했는데, 그중 <대학>과 <중용>에 관한 내용이 나중에 <명등도고록>으로 간행된 것이다.
이 책은 만력 25년(1597년) 봄 심수에서 판각되었고, 그 후 여러 판본으로 세상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 고 윤남한(尹南漢) 교수가 상권 18장만을 부분 번역해 휘문출판사에서 펴낸 <세계의 대사상> 제30권 끝부분에 수록한 적이 있을 뿐, 제대로 소개된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명등도고록>은 상·하 2권으로 나뉘는데, 상권이 18장, 하권은 24장으로 총 42장이다. 매 장마다 한 가지 문제를 말하는데, 어떤 것은 끝까지 이어지는 한 편의 글이고 어떤 것은 문답체로 구성되었다. 질문자는 유용건과 유용상일 때가 많고 간간이 유동성과 회림의 질문이나 서술도 끼어들지만 대부분은 이지의 설명과 대답으로 채워져 있다.
<명등도고록>은 유가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해 토론한다.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수신(修身), 지명(知命)·지인(知人)·지언(知言)·지례(知禮)의 관계, 부귀(富貴)를 대하는 태도, 의로움(義), 예(禮), 겸손(遜), 믿음(信), 정령과 형벌(政刑), 천명(天命), 중용(中庸), 성의(誠意), 이언(邇言), 귀신(鬼神), 자득(自得), 소위(素位), 진성(盡性), 지성(至誠), 불교의 정심(正心)과 명심(明心) 등과 아울러 <대학>과 <중용>의 주요 의제들, <논어>와 <맹자>의 몇몇 대목에 관해서도 해설한다.
이 연재는 이지의 <명등도고록>을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책의 목차에 따라 주요한 문장을 소개하고 필요하다면 해설도 첨부할 것이다. 아울러 <명등도고록> 외의 저작, 그러니까 <분서>나 <속분서> 등에 실린 글도 간간이 소개하면서 그 삶의 궤적이나 사상적 면모를 부담 없이 살펴보자는 뜻도 갖고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오늘날 왜 이지를 역사에서 불러내야 하는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면 이 연재의 목적도 달성되는 것이다.
"<서경>의 '우서·대우모'(虞書大禹謨)편은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각기 다른 두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어찌 둘로 나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나(이탁오)는 이렇게 생각한다.
마음은 온전히 하나이다. 다만 그 움직임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각 개인에 의해 운용되는 바는 '인심'이라 일컫고, 이런 지각운동을 주재하여 하늘·땅·사람·만물의 크나큰 바탕이 되는 그것은 '도심'이라 부른다. 인심이 저마다 다른 것은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제각각 다른 것과도 같다. 가령 기호와 욕망의 측면에서 예를 들어보자. 남방 사람은 쌀밥을 먹지만 북방인들은 조밥을 먹는다. 그런데 북쪽 사람이라도 쌀밥을 즐기는 이가 있고, 남쪽 사람이지만 또 조밥이 좋다는 자도 있을 것이다. 일곱 가지 감정(七情)의1) 발현에 이르면 그 다름의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그러므로 기쁘면 온갖 초목이 환하게 빛을 내뿜게 되지만, 반대로 화가 나면 뭇 영웅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을 터이다. 즐거운 기분 한 번에 나라를 망치고 성을 무너뜨리기도 하며, 단 한 차례 노여움에 시체가 엎어지고 유혈이 낭자해지는 그런 경우도 있겠다. 그 위험하고 두려운 정도가 사람 마음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어떻게 '오직 위태로울진저'라고 탄식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내 한 몸의 안위와 나라의 흥망이 실로 거기에 매인 것이다.
무릇 도심 같은 것은 소리가 나지 않고 냄새도 없다. 보이지 않고 들을 수도 없으니, 어찌 지극히 미묘해 엿봄이나 탐색이 불가능한 이치가 아니라 하랴? 때론 위태했다가 또 미묘해지는 낱낱의 움직임에서 인심과 도심은 갈라지게 된다. 하지만 미묘한 것은 미묘한 그대로 내버려두면서 마음을 기울여 궁구할 줄 모르고, 위태한 것은 또 위태한 대로 팽개친 채 근본을 곧추세워 바로잡을 줄을 모르는구나. 이리하여 위태한 마음이 갈수록 더 위태해지니, 비단 지각운동이 바르지 않아 나라를 깨뜨리고 몸을 망치는데 그치지 않고 종당에 가선 썩은 초목과 더불어 잿더미로 화하는 운명이 되어버린다. 설사 지각운동이 똑발라 사람들의 부러움과 호들갑스런 칭송을 받을지라도 온갖 초목이 다함께 봄을 맞는 경우에 불과할 뿐이니, 가을이면 '삶의 의지(生意)'가 또 소진하여 더 이상은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 그 마음이 위태해 사람 애간장을 태우더니 결국은 이런 지경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께서 신중하게 경계하는 모습은 마치 살얼음판을 디디고 깊은 연못을 마주한 듯했으니, 위험 속에서 창졸간에 죽어버려 자신이 더는 생기롭게 살아가지 못할까봐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응당 어찌해야 할까? 인심은 정말 둘로 나눠지는가? 그러나 세상에 어떻게 두 마음 지닌 사람이 존재할 수 있으랴? 그렇다면 인심은 둘로 나뉠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위태함과 미묘함이 다르고 성인과 범인이 절로 구별되는데 또 어떻게 둘로 나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나? 둘이라 해도 맞지 않고 둘이 아니라 해도 역시 불가하니, 이렇게 해서 성인은 정일(精一)하고 은미해지는 공력을 구비하게 되셨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생지자(生知者)는 정일하고 은미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감지해낸다. 하지만 생지자는 절대적으로 소수이니, 그래서 그 다음으로 배워서 아는 학지자(學知者)를 친다. 학지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생지자보다 열 배는 고단하다. 배워도 깨쳐지질 않으니, 그래서 그 다음 차례로 또 어려움을 겪고서야 깨닫는 곤지자(困知者)가 나온다. 곤지자는 생지자에 비해 백배는 노력해야 한다.2) 그래서 죽을 때까지 게으를 수 없고 제대로 알 때까지 그만두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자기 일에 정통해지니, 어떻게 시종일관 매진하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최고경지에 도달하지 못함이 있으랴?
공자님의 한결같은 바람은 원래 배워서 아는 학지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내게 몇 년의 수명을 더 허락하신다면 쉰 살에는 <역경>을 공부하겠다"고3) 하면서, 내가 원래 발분하면 늙음이 곧 들이닥치는 줄도 알아채지 못한다고4) 말씀하셨다. 그 정일함이 이와 같으니, 그래서 한 길로 매진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요순의 도통(道統)을 잇고 만세의 중도(中道)를 꽉 붙들어 추락하지 않게 하실 수가 있었다.5)
해설
<명등도고록>은 첫머리부터 '도'(道)에 관한 해설로 시작한다. 이지는 이를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주제로 변주하고 있는데, '인심도심론'은 원래 <상서>(尙書)의 '우서·대우모'(虞書大禹謨)편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고, 도를 향한 마음은 미약하기만 하다. 오로지 정신을 하나로 모아 성실한 마음으로 중정(中正)의 도리를 지키시라."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위의 16자 심법(心法)을 통해 도와 마음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유가의 오랜 전통이었다. 공영달(孔穎達)은 이 대목을 해설하는 소(疏)에서 "인심은 온갖 근심의 주역이고, 도심은 뭇 도의 근본이 된다"(人心惟萬慮之主, 道心爲衆道之本) 하였고, 주희는 인심은 인욕(人欲)이고 도심은 천리(天理)라고 정의했다. '중용장구 서문'(中庸章句序)에서 주희는 인심이 "형상과 기질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고"(生于形氣之私) 도심은 "성명의 올바름에서 기인한다"(原于性命之正)면서 또 "제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 제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인심과 도심은 사방 한 치의 마음 공간에 뒤섞여 있는데, 그것을 다스릴 줄 모르면 위태한 바는 더욱 위태해지고 은미한 부분은 더욱 은미해져 천리의 공적인 측면이 결국 사사로운 인욕을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虽上智不能无人心 … 虽下愚不能无道心. 二者雜於方寸之間, 而不知所以治之, 則危者愈危, 微者愈微, 而天理之公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고 풀이하였다.
주희의 해설에 따르면, 도심은 근본인 리(理)를 깨닫는 마음이고 인심은 욕구를 깨닫는 마음이다. 그는 성인이 보통사람과 달리 성인일 수 있는 이유가 도심에 있다면서, 성인이 되려면 가치 판단의 기준, 즉 리를 지각하는 도심을 확고히 하여 욕구를 지각하는 인심을 적절히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희의 관점에서 보자면 도심은 인심의 주재자이자 상위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이지는 인심과 도심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느끼는 지각운동의 차이, 즉 위태하거나 미묘한 낱낱의 움직임에서 갈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심은 도심이 되고 도심은 또 인심이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주희는 애당초 성인과 범인을 가르면서 그 차이가 극복될 수 없다고 했지만, 이지는 이를 부인하고 성인이 될지 여부는 상황과 개인의 의지 및 노력 여하에 달렸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성인도 때에 맞춰 변용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성인의 특별함을 따로 인정하진 않았다. 성인이 할 수 있으면 평범한 남자와 여자도 해낼 수 있고 평범한 남녀가 할 수 없다면 성인도 마찬가지니, 제아무리 평범한 사내계집이라도 깔봐선 안 되고 성인의 존재 역시 높여 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성인과 범인이 본질상 서로 다르지 않다면 그 마음의 작용에 따라 이 세계의 양상도 달라지게 된다. 사바세계의 제 문제란 애당초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고 시비를 가르는 마음에서 비롯하니, 만약 모두가 인심 아닌 도심을 지니게 된다면 제아무리 복잡한 문제나 상황이라도 해결의 단초가 열리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지는 누구나 마음을 정일하고 은미하게 만들어 위태함과 미묘함을 가리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체 무슨 방법으로? <논어>에서는 도를 깨치는 사람을 생지자, 학지자, 곤지자의 세 부류로 분류해서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깨치는가에 대해선 구체적 설명이 미비한데, 이지는 <중용> 제20장이 바로 그 해답이라고 제시하였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탁월한 생지자가 아니더라도 다음과 같이 수행하면 누구나 도심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일렀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사리를 판별하고, 돈독하게 행하라. 차라리 배우지 않을지언정 만약 배운다면 능숙해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라. 묻지 않을지언정 묻는다면 확실히 알 때까지 포기하지 말라.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한다면 끝을 볼 때까지 그만두지 말라. 변별하지 않을지언정 만약 변별한다면 분명해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라.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한다면 독실해질 때까지 중단하지 말라. 남들이 한 번에 잘한다면 나는 백 번을 할 것이며, 남들이 열 번 만에 잘하게 되면 자신은 천 번을 하라. 그리하여 이런 도에 정말 익숙해질 수 있다면 어리석은 자라도 반드시 현명해지며 유약한 자라도 반드시 강건해질 것이다." (博學之, 審問之, 慎思之, 明辨之, 篤行之. 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 有弗問, 問之弗知弗措也; 有弗思, 思之弗得弗措也; 有弗辨, 辨之弗明弗措也; 有弗行, 行之弗篤弗措也.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強.)
<명등도고록>의 상권 제1장은 바로 위 <중용> 제20장에 관한 보론(補論)인 것이다.
주석
1) 칠정(七情) :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 <예기> '예운(禮運)' 편에서 이렇게 해설한다. "무엇을 칠정이라 일컫는가? 기쁨·노여움·슬픔·두려움·사랑·미움·욕심의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습득된다." (何謂七情? 喜怒哀懼愛惡欲, 七者不學而能.)
2) 출전은 <논어> '계씨' 편. "공자가 말씀하셨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가장 윗길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며, 곤고하고 나서야 배우는 자는 또 그 아래이다. 곤고하면서도 공부하지 않는 이런 백성이야말로 가장 하수라 하겠다." (孔子曰: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3) 출전은 <논어> '술이' 편. "공자가 말씀하셨다. 하늘이 내게 몇 년의 수명을 연장해주신다면 쉰 살에는 주역을 배워 큰 잘못이 없게 하겠다." (子曰: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4) <논어> '술이' 편. "섭공이 공자가 어떤 분인지 자로에게 물었는데, 자로는 대답하지 못했다. 공자께서 그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너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됨이 발분하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우면 근심을 잊어 늙음이 장차 다가오는 줄도 모른다고 말이다.'" (葉公問孔子于子路, 子路不對. 子曰: 汝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忧, 不知老之將至云尔.)
5) <서경> '요왈'(堯曰) 편의 "그 가운데를 꽉 붙잡는다(允執厥中)"는 대목을 인용했다. 이는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한 말로 성실하게 중정지도(中正之道)를 잘 파악하란 뜻인데, 공자는 여기에 근거해 중용의 도리를 내세우는 학설을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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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한밭대학교 교수
대전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와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대전의 한밭대학교 중국어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저기 다니며 하는 세상 구경을 좋아하다 보니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와 영국 런던 대학교(SOAS)에서 견문 넓힐 기회를 가졌고 중국 무한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싶어 여러 번 읽다가 포송령의 <요재지이>와 이탁오의 <분서>, <속분서> 같은 중국 고전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지행합일을 지향하는 자칭 개인주의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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