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보도된 일본 <교도통신>의 백승주 국방부 차관 인터뷰도 문제다. 백 차관은 인터뷰에서 "북한 내에서 이번 지뢰 폭발에 대한 유감 표명을 두고 '체면을 구겼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며 "북한이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적 도발'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계기 도발할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진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그가 말한 전략적 도발은 장거리 로켓 발사나 4차 핵실험을 의미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해 어렵게 만들어낸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더구나 참수 작전이나 작계 5015는 군사 기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백승주 차관 역시 '군사평론가'가 아니라 '정책 결정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체면을 구겼다"거나 "도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식의 논평이 아니라 북한의 전략적 도발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게 본분에 맞는 얘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문제성 발언이 전환점을 맞이한 남북 관계에 훼방을 놓기 위한 '개인적인 일탈'인지, 국방부에 팽배한 '조직적인 분위기'인지,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서 나온 '정권 차원의 강경 기조 재확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부 들어 국방부와 군 고위 관계자의 이른바 '언론 플레이'나 발언 수위가 도를 넘어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군 통수권과 문민통제에 경고음으로 들리는 까닭이다.
불안했지만, 한고비 넘겨
기실 필자는 지난주에 '참수 작전' 발언을 접하고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북한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또 다시 판을 깰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진 기우였다. 평양을 방문한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회장과 만난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이 발언을 문제 삼기는 했다.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남측) 군부에서 '참형'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느냐. 뒤통수를 치면 내가 무슨 힘을 갖고 일을 추진하겠느냐"고 불만을 표한 것이다.
그러나 김양건은 참수 작전을 이유로 판을 깰 생각은 없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약속한 것은 다 하고 어기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남쪽도 합의가 잘 이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실무 접촉을 갖자는 남측 제안에 즉각 호응하기도 했다.
이는 김양건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나온 발언이라고 봐야 한다. '최고 존엄'에 대한 남측의 참수 발언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 개선에 노력하자는 김양건의 발언은 김정은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까지 북한 기관이나 매체가 참수 발언을 비난하지 않는 것 역시 '크게 문제 삼지 말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참수 작전, 실효성은 있는가?
유사시 적의 핵 공격에 대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적의 핵무기고를 직접 타격해 적의 핵 공격과 보복 능력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또 하나는 '지휘 통제'를 파괴하는 것이다. 적의 핵 공격 징후시 최고 결정권자를 제거함으로써 핵 공격을 예방하겠다는 취지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참수 작전은 바로 후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참수 작전이 품고 있는 위험성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적대 관계에 있는 어느 일방이 참수 작전을 공식화하면, 상대방은 이에 맞서는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최고 지도자의 보호 조치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또한 상대방의 공격 징후를 참수 작전의 실행으로 간주해 핵 공격 지휘통제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경고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태세를 갖추려고 할 것이다. 아울러 핵무기고를 대폭 늘려 2차 핵 공격 능력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참수 작전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실제 핵 보복에 직면할 위험이 크다. 참수 실패 시 적은 즉각적이고 대규모 보복에 나서려고 할 것이다. 성공하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적은 최고 지도자가 사살될 가능성에 대비해 '플랜 B'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플랜 B'는 핵 공격 권한을 다른 지휘관으로 사전에 위임하는 것부터 최고 지도자 피살 시 자동 적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성으로 인해 참수 작전을 아예 제외하는 것이 핵 공격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유사 사태가 핵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바로 협상에 있다. 이때 상대방의 최고 지도자가 생존해 있는 것이 협상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일컬어지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리하자면, 참수 작전은 '이판사판'을 야기할 것이다. 한쪽에서 참수 작전을 공식화하면 다른 쪽에서 '그래, 그럼 다 같이 죽자'는 태세를 야기할 것이다. 이래야 상대방의 참수 작전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 미국-소련 간 핵군비 경쟁이 그랬고, 오늘날 인도-파키스탄의 관계도 흡사하게 돌아가고 있다. 모처럼 해빙기를 맞이한 남북 관계가 이렇게 돼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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