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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오는 길목, 제비 불러오는 길잡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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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봄 오는 길목, 제비 불러오는 길잡이가 되었다"

[상지대 민주화 일기 ①] 상지대 대법원 판결의 의미

상지대학교를 향한 김문기 씨의 '애정'은 식을 줄 모르는 듯했다. 시작은 1993년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이 공금 횡령과 부정 입학에 연루돼 구속되면서부터였다. 이 사건으로 김 씨는 학교 경영에서 물러났고 상지대는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다. 그러다 2003년 12월, 정식 이사를 선출했다. 상지대와 김문기 씨와의 관계는 여기서 사실상 끝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김 씨 측은 새로 선출된 이사들에 대해 선임 무효 소송을 냈고, 대법원이 2007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김 씨 측 손을 들어주면서 다시 임시이사가 파견됐다. 이후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2008년 5월 상지대 정상화 방안을 심의한 끝에 2010년 8월 정이사 7명과 임시이사 1명을, 2011년 1월에도 정이사 1명을 선임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선임한 이사 9명 중 4명은 김 씨가 추천한 인물로 구성되면서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을 샀다. 교수회와 총학생회 등은 이사 선임을 취소하는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학교법인 운영에 직접 관여할 지위에 있지 않아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며 각하했지만 지난 7월 27일 대법원은 사립학교법 등에서 학생과 교수협의회의 학교 운영 참여권을 보호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학생과 교수들이 이사 선임 처분을 다툴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고 직접 관여했던 정대화 상지대학교 교수가 <프레시안>에 '상지대 민주화 일지'를 연재한다. 그간 상지대 구성원이 어떻게 민주화를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그리고 김문기 씨가 어떻게 상지대를 집어삼키려 했는지 등을 하나하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상지대 사태는 한국 교육계의 복합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필연과 우연의 의도하지 않는 조합의 산물이라고 한다. 역사에서는 때때로 자기가 하는 행위의 의미를 모르고 한 행동이 역사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역사에서 우연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들여다보면 역사에서 필연성과 우연성의 차이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일 것이다. 우리의 인식과 시각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연성은 필연성의 뒷면이거나 확장된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고목에 새순이 돋아나는 것처럼, 혹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처럼 전혀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희대의 사학 비리 전과자인 김문기 씨가 상지대 총장으로 선임되었다가 위장 해임되어 해임의 진실성 여부가 커다란 사회적 쟁점이 되어 있어 우리의 관심이 온통 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던 7월 23일, 대법원의 '느닷없는' 판결이 오랜 투쟁에 지친 우리를 한껏 놀라게 했다. 우리는 많이 놀랐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 판결의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3년 끌어온 대법원 심리, 결과는…

3년을 끌어온 대법원 심리지만 이날의 대법원 판결은 얼마 전에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1심에서 구성원 원고적격 문제로 각하되고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된 처지여서 소망하는 바 있되 기대는 크지 않은 불감청이되 고소원의 상황이었다. 원고 적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인데,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는 상황이었기에 더욱이 판결을 크게 기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왕왕 그렇듯이 우리의 판단이 틀렸다. 대법원이 예상을 깨고 엄청난 판결을 내려버린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원고 적격 문제와 관련해서 대법원은 상지대학교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의 원고 자격을 인정했다. 재단 소송에서 구성원의 원고 자격을 인정한 것은 우리나라 사학 역사상 처음 있는 획기적인 판결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판결이 사학에 미칠 파장의 크기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력이 큰 엄청난 판결이다. 대법원은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이 원고 적격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점을 적시하면서 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하나는 개방이사와 관련된 것으로서, 사립학교법에 규정된 개방이사 선임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며, 특히 임시이사에서 정이사로 정상화되는 경우에도 이 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사실 개방이사 문제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정상화 과정에서 누차 위법성 논란이 야기되었던 논점이다. 상지대 정상화 과정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제기하자 사분위는 정상화 과정에서는 개방이사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자의적인 판단을 내렸다. 상지대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과 초·중등 학교의 정상화 과정에서도 개방이사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 문제는 소송의 본안에 해당하는 문제이고 파기 환송심에서 본격적으로 심리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대법원에서 개방이사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을 제시한 만큼 사분위의 정상화 과정 자체가 통째로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분위나 사학의 정상화라는 문제는 일반 국민에게 생소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2010년 여름 사분위에서 상지대 문제를 다룰 때, 즉 상지대 정상화 과정에서 상지대 구성원들이 전개했던 한여름의 치열한 투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미 5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큰 사건이다. 그러나 그 뜨거웠던 여름의 치열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무소불위의 사분위는 상지대 정상화라는 미명하에 김문기 구재단이 상지대에 복귀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더구나 사학 비리로 단죄되어 쫓겨났던 김문기 씨에게 이사회 과반수의 지분을 보장해주는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렸다. 사분위에서 이 결정을 주도한 인물은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강민구 현 부산지방법원장인데, 지난번에 대법관 후보로 추천되었다가 낙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다시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한 소송의 시작

소송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분위의 결정에 따라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김문기 구재단 인사들을 이사로 선임하는 행정 처분을 하자 그해 11월 24일 우리는 서울행정법원에 이사 선임 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2010구합44085). 소송은 상지대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노동조합, 총동문회, 개방이사추천위원회, 유재천 총장의 공동 명의로 제기했고 법무법인 원의 이태운, 유선영, 채영호 변호사가 소송을 대리했다. 이 재판은 사분위의 정상화 결정에 불복하여 대학 구성원이 제기한 첫 번째 소송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이목을 끌었고 2011년 한 해 동안 일곱 차례의 변론을 통해 쟁점이 뜨겁게 표출되었다. 그러나 정상화 과정을 주도한 교육부는 우리 측에서 요구하는 사분위 관련 자료의 제출에 일체 불응하는 등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결국 2011년 10월 21일 재판부는 원고 적격 문제로 소송을 각하했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2011년 11월 23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고(2011누40402) 구성원의 원고 자격을 거부하는 것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위헌 심판을 받아보기로 했다. 이 문제는 사분위원을 역임한 김형태 변호사와 계속 상의해오던 사안인 데다 송상교 변호사가 사분위의 위헌성에 대해서 이미 논문으로 정리하여 국회에서 발표한 바 있어서 법무법인 덕수의 이석태, 김형태, 유선호, 송상교 변호사를 항소심의 변호인으로 추가 선임하여 재판부에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요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기각했고 2012년 5월 23일 딱 한 차례의 변론으로 종결한 후 7월 11일 우리의 항소를 기각했다. 역시 원고 적격 문제에서 걸렸다. 재판도 위헌 심판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분위를 상대로 한 다른 재판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재판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질 때 지더라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보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2012년 7월 31일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했다(2012두19496). 상고와 동시에 8월 14일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2012헌바300). 위헌 소송의 실무는 송상교 변호사가 맡았다. 유재천 총장이 이사 선임 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의 원고로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정상화 직후부터 구재단 이사들이 계속 거칠게 항의하여 총장 업무 수행에 지장이 많았기 때문에 원고 측에서 협의하여 항소심부터 원고에서 제외했다. 상지대학교 비상대책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던 총동문회는 상고 다음 해인 2013년 7월 24일에 우리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대법원에 상고 취하서를 제출했다. 구재단이 이사회에 참여한 상황에서 총동문회가 생각을 바꾼 것이다. 이 시기를 즈음해서 총동문회는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탈퇴하는 등 김문기 복귀 반대 노선에서 이탈했다.

결국, 소송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상고 3년 만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길고 긴 법정 싸움을 전개한 셈인데, 그 사이에 김문기 씨가 총장으로 선임되었다가 해임되고 나를 비롯한 교수 4명이 파면되고 학생 대표 4명이 무기 정학에 처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 소송 외에도 수많은 법정 싸움이 진행되었다. 참으로 극단적인 상황이었고 역동적인 변화였다. 작은 대학 하나를 둘러싼 싸움이 이렇게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상지대가 사학 문제의 가장 중심에 놓여 있고 상지대 사태가 상지대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학 전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지대 대법원 판결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렇게 말했다.

"헌법 제31조 제4항이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대학에 대한 공권력 등 외부 세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대학 구성원 자신이 대학을 자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학인으로 하여금 연구와 교육을 자유롭게 하여 진리 탐구와 지도적 인격의 도야라는 대학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는 데 있으므로(헌법재판소 2006. 4. 27 선고 2005헌마1047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학문의 자유의 주체인 교원들이 그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공권력 등 외부 세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대학을 자주적으로 운영한다는 측면에서는 교원뿐만 아니라 역시 대학의 구성원인 직원, 학생 등도 원칙적으로 대학 자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고등교육법령은 교육받을 권리의 주체인 학생들이 자치 활동을 위하여 구성한 학생회와 학문의 자유의 주체인 교수들로 구성된 교수회의 성립을 예정하고 있으므로, 학생이나 교원의 법률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령의 규정은 대학 자치나 학문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는 학생회나 교수회의 법률상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도 함께 한다고 보아야 한다."

아울러,

"구 사립학교법령이 개방이사 제도를 통하여 교직원, 학생 등의 학교 운영 참여권을 보장한 취지는 학교법인이 위기 사태에 빠져 임시이사가 선임되었다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도 훼손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대법원 판결, 타락한 사학 정상화의 출발점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이 아닐 수 없으며 학문의 자유와 교육받을 권리 및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대학 자치의 의미에 대한 명료한 판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은 유럽에서 시민혁명 전후한 시기에 대학의 정신으로 자리 잡게 된 대학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사유와 그것을 실천한 칸트와 훔볼트 등 선각자들의 대학이념에 근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판결은 짧은 역사를 가진 우리의 형식화된 고등교육이 그 결과로서 나타난 극단적인 부패와 비교육적인 전횡에서 벗어나 고등 교육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환이라는 의미를 있는 것이다.

이 판결은 2007년의 상지대 대법원 판결(일명 '김황식 판결')에 대한 전면부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의 김황식 판결이 사학을 특정인의 사유 재산으로 간주하는 바탕 위에서 사학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번 판결은 그것과 반대로 사학을 국가 공교육 체제의 일환으로 간주하여 공공성의 관점에서 사학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따라서 사분위가 김황식 판결에 근거하면서도 그 취지를 극단적으로 왜곡하는 방식으로 사학의 정상화를 추진해온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사분위의 사학 정상화 원칙과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김황식 판결과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사학 관련 이해당사자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김황식 판결이 현직 이사로만 제한되었던 소송권을 퇴임한 종전 이사에게도 허용한 것인데, 이번 판결에서는 교수와 학생 등 사학의 구성원에게까지도 소송권을 확대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 만큼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상지대 사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한 판결을 넘어 고등 교육을 바로 세우고 부패하고 타락한 사학을 정상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판결은 좁게는 사분위에 의해 오도된 사이비 정상화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분위의 공과를 심판하는 잣대로 원용될 것이다. 넓게는 사학을 규율하는 사립학교법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면서 사립학교법이 간과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사학의 본질적인 내용을 채워나가는 기준이 될 것이며, 이것이 더욱 확장되어 공사립을 막론하고 교육 전반을 재설계하는 출발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봄이 예견되지 않는 한 결코 제비는 날아오지 않는다. 한 마리의 제비는 수많은 제비를 예고하는 것이자 곧 도래할 봄에 대한 약속이다. 우리 사회가 수십 년 부패족벌사학의 터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이며 지난 30년간 온갖 소모적인 논란 속에 지루하게 전개되었던 사학비리 척결과 사학 정상화 논쟁을 해결할 희미한 빛을 발견한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우리나라 사학 문제의 상징성을 가장 뚜렷하게 담지하고 있는 상지대가 있으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제비를 불러오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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