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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추락! 그들은 왜 119를 안 불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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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추락! 그들은 왜 119를 안 불렀나?

[조선소 잔혹사] 현대중공업 참사 현장 독점 공개

3년 전, 경남 지역 조선소 하청 업체에 취업한 적이 있습니다. 조선소 노동자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실력 없는 기자가 택하는 최후의 방법은 '몸빵'입니다. 약 2주간 머물렀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힘들었다'는 말 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풀린 다리로 휘청거리기 일쑤였습니다. 내일도 오늘처럼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힘든 건, '여기서 일하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심이었습니다. 발만 한 번 잘못 헛디디면 곧바로 10미터 아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곳이었습니다. 안전그물막은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공포심이 유발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실제 기자가 작업하던 곳에서 40대 여성이 6미터 아래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족장(발판)을 고정하기 위해 연결해놓은 철사를 풀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족장에 묶인 철사나 나사를 푸는 건 금지사항입니다. 하지만 작업할 때 방해가 될 때는 잠시 철사를 풀어놓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반드시 다시 묶어놓아야 합니다. 앞선 작업자가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풀린 것을 알지 못하고 발판을 밟아 사고가 났습니다. 누가 족장을 풀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6미터 아래로 추락한 여성은 어떻게 됐을까요? 나중에 반신불수가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사실을 듣고 마른 침을 삼켰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작업환경에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지뢰 밟기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 기자가 일했던 조선소 모습. ⓒ프레시안(허환주)

반신불수가 됐는데, 여전히 재해 발생은 '제로'

반면, 내심 그런 커다란 사고가 발생했으니 뭔가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최소한 안전그물막이라도 설치할 줄 알았습니다. 그것만 설치했다면 그런 사고는 없었겠죠.

하지만 현장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작업현장의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쉬쉬했습니다. 심지어 매일 출근할 때마다 보게 되는 전광판 숫자도 그대로였습니다. 공장 정문 앞에는 큰 표시판으로 '오늘도 안전근무'와 함께, '무재해 000일', '무사망자 000일', 이렇게 카운팅 표시판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그에 따라 숫자도 1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40대 여성이 반신불수가 된 다음 날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나면 다시 '무재해 0'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기억으로 무재해 기간은 전날과 다름없이 400일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공포'가 '의문'으로 변했습니다. 무슨 영문인가 싶었습니다. 나중에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뒤에야 알았습니다. 산업재해 처리만 안 되면, 그대로 '무재해'가 유지됐습니다. 40대 여성은 산재처리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반신불수 된 사람이 존재하는데 무재해라고 포장하는 현실에 허탈한 웃음만이 나왔습니다.

의문도 남았습니다. 일하다 다쳤는데 왜 산재인정을 받지 못했을까. 그때 생긴 의문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죽음의 고리, 현대중공업에서는 무슨 일이?

이야기를 돌려 보겠습니다. 여기 한 편의 동영상을 소개하겠습니다. 울산에 있는 조선소 이야기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일하다 죽은 노동자 이야기입니다. 배 위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갑자기 바다로 추락합니다. 어이없게도 발판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은 그 뒤에도 이어집니다. 회사는 제일 먼저 취해야 하는 조치인 119에 신고를 하지 않습니다. 사고 발생 1시간이 지난 뒤에야 노동조합 관계자가 119를 부릅니다. 왜 회사가 119를 부르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부른 잠수부는 추락한 지 1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합니다. 결국, 바다로 추락한 노동자는 주검이 돼서야 가족 품에 안겼습니다.

지난 3월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사고사를 찍은 영상입니다. 이 사고로 1명이 죽고 2명이 다쳤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시 하는 이유는 <프레시안>이 기획한 '조선소 산재‧사고'(조선소 잔혹사)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사고가 발생했지만 현대중공업 관리자들은 119에 왜 신고를 하지 않았던 걸까요? 이번 기획에서 그 이유를 밝혀보려고 합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2014년에만 13명(계열사 포함)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습니다. 모두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올해에도 2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역시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이들은 왜, 어떤 일을 하다가 죽었을까요?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요? 왜 죽음은 반복되는 걸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들 죽음의 이면에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반복되는 죽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 지난해 3월 발생한 사고. 불법으로 발판을 설치해 작업하다 발판이 무너져 1명이 죽고 2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또 한 가지,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일하다 죽은 노동자는 그나마 산업재해를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은 어떨까요? 대부분 노동자에게 산재 신청은 '그림의 떡'입니다. 자기 돈으로 치료하는 노동자가 대부분입니다. 자기가 일하는 회사가 산재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지만 현실은 이렇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40대 여성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왜 그럴까요?

<프레시안>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를 세계 조선업 1위인 '현대중공업'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대기업 까기'가 아닌 대기업에서조차 반복해서 발생하는 산재 문제, 그리고 산재은폐 문제를 짚어보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예전에는 배 한 척을 만들어 바다로 내보낼 때는 한쪽 구석에서 노동자들끼리 제례를 지냈다고 합니다. 배를 만들다 죽은 노동자의 넋을 기리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만큼 배를 만들면서 많은 노동자가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죽음이 지금도 반복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로 치부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일하다 죽는 노동자'를 당연시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그렇게 당연시되어야 하는 걸까요. 그 죽음의 고리를 찾아보고자 이번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이 기획은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과 '노동건강연대'의 협조로 진행됐습니다.

(이 기획 시리즈는 사단법인 ‘다른내일’준비위원회와 <프레시안>의 공동기획으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별도의 책자와 영상제작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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