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실이 독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해당 지방 정부 수장들이 거세게 항의하였고 주독 미군은 데게하르트 시장에게 직접 문제의 연구소를 공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고 한다.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송된 국가는 독일 이외에도 일본,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가 더 있지만 정식적인 항의가 공개 보도된 것은 독일이 처음이다.
미국과 독일의 SOFA 제 54조 4항은 한국과는 달리 독일법이 금지하는 수입물을 반입하기 위해서는 독일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의 SOFA에도 이러한 사전 승인 조항을 포함하는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벌어진 일은 SOFA 개정사항 정도로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 독일처럼 사전 승인 과정을 통한 탄저균 반입이었다고 하더라도 국내에서 벌어진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 한국에 반입된 탄저균은 그 과정에서 이미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앞서 글에 밝힌 바대로 한국은 '죽은 줄 알았던 탄저균'을 가지고 이미 실제 실험과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실험과 훈련은 미국에서는 거대한 격리 실험실인 ABT 시설(Ambient Breeze Tunnel : 에어로졸 생물 무기 공격 시뮬레이션 실험실)에서나 가능한 훈련이었다.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격리되지도 않은 공간에서 사용된 균이 생화학 무기나 다름없는 '살아있는 탄저균'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출된 22명이 예방적 항생제 치료를 받고 있다시피 이미 사고는 발생한 것이다. 또 야외 실험까지 계획되었다는 점도 확인된 사실이 아닌가.
미군이 주한 미군 실험실에서 했던 훈련은 이미 한국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들이었다. SOFA 개정 논란 이상의 심각한 외교적 마찰을 초래할 만한 문제라는 것이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 국방부가 운영하는 미국 국내외 여러 생화학 무기 관련 '실험실의 안전성' 문제다. 지난 6월 29일 미국의 한 언론은 미국 회계감사원이 25일 낸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미 국방부는 탄저균 스캔들이 터질 정도로 고위험체 실험 시설에 대한 감시 관리에 실패하였으며, 위험천만한 화생방 프로그램 인프라 시설에 대한 개선책도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또 펜타곤 임원의 말을 빌려 "국방부는 문제가 된 지난 10년 동안 국내, 해외로 실험용 탄저균을 보낸 사업과 관련하여 얼마나 예산을 사용했는가를 아직 보고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의 부록에는 화생방 프로그램과 관련된 인프라(시설 장비) 문제가 미 국방부의 감시 관리에 있어서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미 1999년과 2000년 감사원 지적 사항에서 "화생방 프로그램에 대한 미 국방부의 비효율성 문제가 발견되었고 이로 인한 잠재적인 상호 비협조나 연구의 중복이 우려된다"고 하였다. 보고서는 또 2009년 9월에도 감사원이 "고위험체 연구 시설에 대한 책임 있는 감시와 조사가 이뤄질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앞으로 국가가 요구하는 과업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이 실험 시설에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도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미 감사원의 우려는 현실로도 드러난 바 있다. 2014년에는 제대로 잠기지 않은 냉장실에 탄저균을 보관하고, 살아있는 탄저균 샘플을 일반 비닐포장지에 담아 운송하여 75명 연구원이 탄저균에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한 바도 있다. 이 연구실이 바로 미국질병관리예방센터(CDC)이다. 이번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송한 미 국방부 실험실들을 조사한 바로 그 기관이 이미 작년에 '살아있는 탄저균'을 노출시킨 장본인인 것이다.
미국의 생물 화학 무기 방어 연구의 인프라 시설들은 이미 15년 전부터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관리로 인하여 예산 집행에 대한 의혹, 관리 부실 사고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감사원의 지적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하물며 미국 메릴랜드와 더그웨이 본토에 있는 연구 기관들의 실상이 이러할진대, 먼 타국에 있는 주한 미군 내 실험실은 어떤 수준이겠는가?
주피터 프로그램이 본격화된 지난 2013년 여름, 주한미군 내 실험실을 생물 안전 등급 2등급으로 승인을 받도록 도와준 기관은 미 회계감사원이 문제 기관으로 지목한 화생방 프로그램 연구소인 '에지우드화생방연구소(ECBC)'와 '미육군화생방합동관리국(JPEO-CBD)'이다.
특히 용산 개리슨 부대 실험실은 원래 식품안전실험실(106th Food Safety Laboratory)이었던 곳으로 2급 시설로 승인을 받게 됨에 따라 세계의 실제 생물 오염 샘플들을 받아서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이용되고 있는 주피터 실험실이 현재 용산 외에 평택 오산 미 공군 기지, 평택 험프리 미군 기지, 군산 미군 기지에 있다. 결국 안전성을 신뢰하기 어려운 실험실 개조 승인 과정을 거친 실험실이 국내 최소 세 군데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내 화생방 프로그램 연구 시설들의 문제가 수년째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주한 미군 내 실험실은 당연히 주둔국 대한민국 정부의 감시와 관리를 받아야할 의무가 발생한다. 한국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 노출 사고가 발생했으며, 노출 사고가 발생한 실험실이 2등급 실험실이지만, 그 실험실 승인 과정 자체가 미국 내에서 실험실 관리 감독의 허술함을 지적받고 있는 기관이 관여했다면 이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것이다. 정상적인 주권 국가라면 이미 커다란 외교적 비화로 전개되었어야 마땅할 일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묻히고 있는 현 상황으로 볼 때 한국은 주권 국가가 아닌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독일과 같은 SOFA 조항을 신설, 개정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주한 미군은 이미 '권고 사항' 수준의 합의를 마친 것 같다. 대한민국이 주권 국가로 권리를 버림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역사적 무게감은 박근혜 정부의 인식 수준으로 정리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상적인 미국-한국의 군사적 외교적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관례를 중시한다"는 미국의 태도로 보아 앞으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고 심지어 피해자가 생긴다고 해도 미국에 대해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전례로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제도와 정치를 넘어 역사 앞에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주피터 프로그램이란?
JUPITR-ATD(Joint U.S.F.K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 Advanced Technology Demonstration). 풀어쓰면 '주한 미군 합동 포털 통합 위협 인식 첨단 기술 시연 프로그램'으로 미 육군 화생방합동관리국이 이끌고 에지우드 화학생물학센터가 지원하는 생물 무기 방어 시스템 구축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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