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국제암연구소가 지난 3월 주목할 만한 내용을 발표했다. 1996년부터 급속하게 사용량이 늘어난 농약을 발암물질로 새롭게 등록한 것인데,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농약이 '인체에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Group 2A'에 포함시켰다. 2A 그룹 발암물질은 동물실험 등에서 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된 물질이다. 튀김음식에서 검출되는 아크릴아마이드, 원유정제 작업의 직업적 노출, 납 화합물 등이 2A그룹 발암물질이다. 국제암연구소의 발표 이후,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생명공학기업 몬샌토(Monsanto)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글리포세이트는 안전성이 높고 암을 일으킨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몬샌토의 주장이다. 그러나 공신력을 가진 국제암연구소의 발암목록 발표 대신 몬샌토의 일방적인 주장을 믿는 사람은 없다.
GMO가 농약 사용 부추겨
농약과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녹색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땅이 황폐해졌다. 작물에 남아 있는 농약과 화학비료 때문에 건강 문제도 심각했다. 레이첼 카슨 여사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은 이런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더구나 기존에 사용하는 농약에 잘 죽지 않는 일명 '슈퍼잡초'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글리포세이트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글리포세이트는 기존 농약의 문제점을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사람에게 독성이 높지 않고 잡초제거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이 몬샌토의 설명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1996년부터 미국에서 글리포세이트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지구의벗(Friends of the Earth)은 이 문제에 주목했다. 글리포세이트가 기존 농약들을 대체해서 16배나 사용량이 늘어나게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으로, 유전자조작작물(GMO)을 진짜 원인으로 지목했다. 일부 다국적 생명공학 기업들이 GMO 종자와 농약을 세트로 팔고 있다. 지구의벗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글리포세이트 농약이 집중적으로 사용이 늘어난 시점과 GMO의 상업적인 재배가 시작된 시점이 같다는 것에 주목한다.
생명공학 기업 로비단체들은 GMO 재배면적이 1996년 상업적인 재배가 시작된 이래 크게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지구의벗과 시민단체들은 GMO는 일부 국가에 한정해서 재배가 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네이처(Nature)>지는 GMO 특집에서 전 세계 농업면적 중에 약 10퍼센트(%)가 GMO이며, 전체 GMO 생산의 90%가 상위 5개국(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이들 국가는 생명공학의 안전성을 지키기 위한 국제협약(바이오안전성의정서) 체결 당시에 GMO 생산을 옹호하던 농업수출국 그룹이다. <네이처>는 GMO를 재배하는 것이 '슈퍼잡초'(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풀)가 늘어나는 원인이라고 결론 냈다. 지구의벗 역시 미국에서 글리포세이트 사용량과 슈퍼잡초가 함께 늘고 있음을 지적했다. 몬샌토 같은 다국적 생명공학 기업들이 GMO를 재배하면 농약사용량이 줄고 생산량은 늘 것이라고 홍보했지만 그런 효과를 봤다는 농민은 없다.
농약과 GMO 끼워 파는 몬샌토
GMO 재배와 발암 농약 글리포세이트, 그리고 슈퍼잡초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비단 국제학술지나 시민단체의 주장을 통해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공학 기업 스스로 그런 문제점을 드러내놓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고엽제 GMO' 승인과 관련한 논란이 있다. 글리포세이트와 GMO를 팔아오던 생명공학 회사들은 글리포세이트 농약을 뿌려도 죽지 않는 '슈퍼잡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들은 더 독한 제초제와 그 제초제를 견디는 GMO를 만드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자연림을 파괴하고 참전군인과 지역주민을 괴롭혔던 고엽제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몬샌토가 제초제 농약 상품 '라운드업'과 이 농약에 내성이 있는 GMO 종자 '라운드업 레디'를 함께 팔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고엽제 농약과 이 농약을 견디는 GMO를 같이 팔겠다는 계획이다. 2014년 미국 정부가 고엽제 농약과 그것을 견디는 GMO의 등록을 허가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미국 환경단체와 소비자, 농민단체들은 반발했다. 생명공학 기업들이 제시한 슈퍼잡초 해결책은 임시방편일 뿐이며, 농약과 GMO의 안전성을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미국 환경보호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고엽제 농약과 GMO가 승인되면서 '제주왕나비' 같은 생물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단체들은 개별 주를 상대로 고엽제 농약과 GMO를 승인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소비자가 나섰다!
시민들은 지금의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5월 23일 '몬샌토 반대 행동의 날'(March Against Monsanto)이 전 세계 38개국 428개 도시에 열렸다. 이날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몬샌토가 팔고 있는 GMO와 글리포세이트 농약이 세계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외쳤다. GMO와 글리포세이트 농약이 자연생태계를 오염시킨다고 항의했다.
한국에서도 생협, 소비자단체, 슬로푸드운동단체와 일반 시민들이 함께 모였다. 미국 소비자단체 어머니들은 발암농약 글리포세이트를 즉각 리콜해달라고 미국 환경보호청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있다. 승인된 농약을 리콜해달라고 소비자가 요구하는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다. 이런 소비자들의 요구는 세계보건기구가 글리포세이트를 발암물질로 등록한 이후 더 거세졌다. 중국 소비자들도 글리포세이트 농약의 승인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디언(Guardian)>지는 전 세계적인 항의시위의 영향으로 몬샌토의 지난 분기 수익이 34%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거리로 나선 시민의 목소리가 실제 기업의 이윤과 존폐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멈추지 않을 소비자들의 직접행동이 생명공학 기업의 독선과 탐욕의 질주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승리하고 있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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