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 한반도 평화를 열어가는 길]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잘못되고 있습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남북관계를 이렇게 방치하면 큰일 날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고 미국의 대(對)중국 경계심이 날로 증대하면서 동북아에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바닷가에서 조개나 줍고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2009년 10월 1일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선포 60주년이 되는 날에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를 부흥시키는 것이 외교의 목표라고 선포합니다. 미국은 2011년 12월에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는 외교정책을 세웁니다. 아시아의 회귀 혹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입니다.
2013년 3월 국가주석이 되는 시진핑(習近平)이 더 놀라운 말을 합니다. 6월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미-중 신형대국관계를 수립하자. 우리는 책임대국이다. 우리나라를 우습게 보지 마라. 맞먹자'. 또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이 나눠 써도 충분할 만큼 넓다'는 말을 합니다.
이는 미국 보고 태평양 동쪽으로 가라는 이야기입니다. 태평양도 중국의 바다로 쓸 테니 인정하고 해군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2차 대전 이후 태평양은 미국의 것이었습니다. 미군이 한국과 일본에 있습니다. 미군 배가 도처에 떠 있어 레이더로 탐지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가 몰래 군사작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의 급부상, 미국의 이이제이 전략
중국의 급부상으로 미국이 겁을 내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미국은 2013년부터 매년 500억 달러씩 국방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이 압박해 들어오니까 일 년에 400억 달러씩 국방비를 증액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동맹국 일본과 손잡습니다. 일본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는 여우 같은 입장입니다. 미국입장에서는 일본이라는 '오랑캐'를 빌려 중국이라는 오랑캐를 견제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일본을 '반(反)중' 전선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여기에 한국까지 집어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과 과거사 문제로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그러자 미국이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난해 말, 한미일 간에 정보공유약정을 맺었는데 이는 행동을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에게 한미일군사정보 약정까지 체결했는데 왜 일본과 불편하게 지내느냐고 합니다.
지난 4월 미국의 웬디 셔먼 정무차관은 '과거사 문제가지고 국내 정치의 지지를 받을 수는 있지만 미래로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중일 간에 과거사 문제 가지고 싸우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한-일 관계를 언급한 것입니다. 반중통일전선을 만드는데 차질이 생기니 과거사 따위 덮고 가라는 것입니다. 6월 22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한테 갑자기 화해의 제스쳐를 취한 것은 미국의 지시가 있었다고 봅니다.
사드 배치도 마찬가지 입니다. 북한 핑계를 대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드는 미사일 뿐만 아니라 레이더도 함께 들어옵니다. X-밴드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2000~3000km입니다. 이것 가지고 북한을 감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사드를 평택에 배치한다고 가정해봅시다. 평택에서 나진 선봉까지가 520km 정도입니다. 사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핑계로 중국 전체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망입니다. X-밴드 레이더는 일본 홋카이도, 괌, 도쿄 쪽에 있는데 한국에 갖다 놓으면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손바닥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자국을 겨냥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경제보복을 강력하게 할 것입니다. 또 극동러시아까지 탐지 범위 안에 들어가므로 러시아도 반발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것을 한국에 갖다 놓으려고 하는데 돈도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20억 달러(한화 약 2조 2700억 원)짜리인데 매년 국방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처지이니 한 푼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걸 들여오면 구매는 한국이 하고 사용은 미국이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중국 외교의 지침이었습니다. 아직은 힘이 없으니 칼집에서 칼을 빼지 말고 힘을 기를 때까지 조용히 지내라는 것입니다. 아편전쟁 이후 서양 앞에 무릎을 꿇었던 중국은 힘이 생길 때까지 경거망동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자는 겁니다.
후진타오가 들어서고 '중화몽'(中華夢)을 선언했습니다. 중국이 역할을 해야 할 곳이 있으면 행동하겠다는 것입니다. '화평굴기'(和平崛起)를 기조로 조용히 일어서겠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 미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미·중 간의 갈등이 격화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해양세력과 대양세력이 부딪칠 때 아시아 지역에서는 반드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청일전쟁 당시에는 조선에서만 싸웠기 때문에 청나라나 일본의 양민들이 죽지 않았습니다. 러일전쟁, 한국전쟁도 마친가지입니다. 한국전쟁은 미국이 개입하고 밀고 올라가니 위협을 느낀 중국이 개입하는 미·중 간의 전쟁의 성격도 가집니다.
그래서 두 세력이 부딪치면 국지전이 벌어지고 그것이 에스컬레이터 되면서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지 않겠냐라는 걱정이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 보복이 두렵지 않은가?
한국이 미국의 요청으로 일본과 함께 미국의 한 쪽 날개가 되어 중국을 포위해 들어갈 때, 특히 사드를 여기에 배치할 때 중국이 가만 있겠습니까. 중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자기들한테 무역흑자 내고, 그 돈으로 사드를 구입하겠다는 뜻으로 비춰질 겁니다. 우리나라의 무역흑자 474억 달러 중 대부분이 중국과 무역에서 나옵니다. 그렇게 무역 흑자 내서 그 돈으로 20억 달러짜리 X-밴드 레이더를 사서 중국을 위협하는데 쓴다고요?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한중 FTA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겠느냐는 말도 있던데, 군사적으로 위협을 받는데 한중 FTA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약속은 파이 껍질처럼 깨지기 마련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약을 맺는다고 지켜진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히틀러는 2차대전을 일으키고 소련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1937년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지만 그로부터 며칠 있다가 소련을 공격합니다. 소련이 당했죠. 외교에서 조약은 그런 것입니다. 상대방이 성실하게 지킬 의지가 있을 때에만 효력이 있는 것이지, 해놓고 뒤통수 때리는 경우는 많습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초기에 있던 일인데요.전년도에 마늘농사가 안 되어 1998년 가을 김장철을 앞두고 중국에서 마늘을 사다가 시장에 내놓으려고 합니다. 마늘 값 안정화를 위해서요. 그런데 마늘 농가가 서울로 올라와요. 지방에서 올라왔으니 신경 써줘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중국의 마늘 수입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했더니 중국이 바로 한국산 휴대전화 수입 중지조치를 합니다. 마늘 값과 휴대전화 가격은 비교가 안 돼요. 이 일로 당시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이 들어오면 이 경제는 휘청거립니다. 무역적자 나 보세요. 정권이 흔들립니다.
도랑 속의 소, 등거리 외교가 필요하다
한국은 일본의 우경화, 군사대국화와 이에 대한 미국의 방조와 지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70년 동안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 살아왔습니다. 미국 무기를 사들이기 때문에 무기체계가 미국 것이 돼 버렸습니다. 미국 무기 쓰면서 군사작전은 다른 방식으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기 체계 때문에 일개 사단의 규모가 정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경제는 절대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우리가 G13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경제 역량이 커지는 것은 전적으로 중국 덕분입니다. 결국 안보라는 팔은 미국한테 잡혀있고 경제라는 팔은 중국에 잡혀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외교를 잘 못하면 미국이 팔을 비틀고, 중국에 섭섭하게 하면 경제라는 팔이 아파질 겁니다.
양쪽 팔을 양쪽에 잡혀있는 처지인데, 이들의 갈등 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인데 새우가 어떻게 고래를 길들입니까. 등거리 외교를 잘해야 합니다. 미국도, 중국도 섭섭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중국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음을 미국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설명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대통령의 외교입니다. 최종 결정권자끼리 이야기 하는 구도가 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상대국의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의 식견과 화술이 없으면 상대방에게 끌려갈 수 밖에 없음을 현장에서 체험을 했습니다. 관료들끼리 만나면 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대통령끼리 만나면 말의 힘으로 결정됩니다. 대통령이 식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탁월한 논리와 이론이 있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기 때문에 '도랑 속의 소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중국이라는 둑의 풀도 뜯어 먹고 미국이라는 둑의 풀도 뜯어 먹으면 얼마든지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등거리외교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아파트 사이에서의 가게 같은 거죠. 이쪽에도 배달하고 저쪽에도 배달하는 것입니다.
사드 문제 현명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미국의 수요를 받아들이면 중국의 보복이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수요를 받아들이면 미국의 보복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과 격론을 벌여 해결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선택, 남북관계 개선
고래싸움의 새우가 되지 않는,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등거리 외교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 핑계 대고 중국 때리는 것을 못하게 해야 합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자위력 차원에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핵과 미사일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도록 만들었던 시절이 김대중 정부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됩니다. 제가 통일부 장관 재임하던 때는 진짜 분위기 좋았습니다. 가장 많은 남북회담을 하고 가장 많은 쌀과 비료를 줘서 북한이 우리말을 듣도록 했습니다.
의존성이 무섭습니다. 쌀을 30만 톤에서 40만 톤으로 올려주었습니다. 제공자를 '대한민국'이라고 표시하는 대신, 이것을 받아준다면 작년에는 태국산 쌀을 보내줬는데 국내산 쌀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포대에 박았어요. 40만 톤이면 쌀 포대가 천만 개가 들어갑니다. 그것을 제가 2년 반 일하면서 120만 톤을 주고 왔습니다.
비료도 지원량을 올려주고 나왔습니다. 20만 톤 주는 것을 올려달라고 합니다. 그전에는 적십자 마크만 찍어 보냈습니다. 주는 사람만 자존심 있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주는 사람이 너무 생색을 내면 자존심이 상하니 달밤에 그냥 슬그머니 갖다 놓는 식으로 달라 해서 그렇게 해줬습니다. 그런데 더 달라고 하니 시간을 맞추려면 있는 포대에 담아서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포대에는 사용법이 우리 글로 되어 있으니 알아보기 좋다고 합니다. 라면도 우리말로 되어 있으니 좋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 사람들이 내년에도 이렇게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당신들이 사고를 안 치면 줄 수 있겠지만 군사적으로 사고를 치면 국민 여론상 줄 수가 없다. 왜 알려고 하냐고 물어 보니 계획경제이니 알면 계획을 세울 때 도움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의존성입니다.
6자회담에서 남북이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북한한테 혼자서 독학하지 말고 미국 사람들의 말속에 숨어 있는 뜻이 무엇인지 우리한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수석대표가 미국 사람들과 관계가 깊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의 말속의 포석을 해석 해 줄테니 회담 때마다 우리와 긴밀히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움직입니다.
뿐만 아니라 6자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반드시 동아태 차관보나 주한 미 대사를 통일부 장관실로 보내서 다음번 회담 때 북쪽을 어떤 방향으로 오리엔테이션 시켜 달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남한 말을 듣는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든 힘은 쌀과 비료,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입니다. 이런 식으로 북한이 6자회담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 기록이 다 남아있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빙자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데 이 명분을 제거해야 합니다. 양국이 남중국해에가서 충돌을 하든 손을 잡든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더군다나 필리핀은 중국에게 경제적 보복을 당할 구조가 아닙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중국을 압박하는데 우리를 전초기지로 쓰지 않도록 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합니다.
자주 외교 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미국은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하에 6자회담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안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중국과 협력하고 남북관계 개선하고 북한을 설득하여 6자회담 나오게 하고 미국과 협조해야 합니다. 미국한테 북한을 너무 압박하지 말고 좀 잘하라고 요구하고 중국한테는 6자회담 빨리 열어서 결론을 내리자고 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한 적도 있습니다. 쌀과 비료의 힘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우리가 자주적 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 남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자주 외교를 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꾀라도 있어야 합니다.
보수나 우파는 민족주의적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우파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미국주의'입니다. 좌파는 터무니없이 민족주의적이라 종북으로 몰립니다.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이 나쁜 말이 아닌데 민족주의가 되고 용공이 되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이제는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민족주의 외교를 할 수 이는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동맹이라는 것도 각 나라들의 이익이 일치할 때나 있는 것입니다. 한미 간, 북·중 간 미·일 간에도 모두 적용되는 겁니다. 국가 이익이 잘 맞을 때는 동맹이 되지만 충돌하면 결국 남이 됩니다. 미국의 국가이익이 우리의 국가이익이고 우리의 국가이익이 미국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국제 외교 무대에서는 나 아니면 전부 남입니다. 하물며 형제지간에도 재산 싸움을 하는데 국가 간에는 오죽하겠습니까?
적과 동지의 관계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동맹국은 결국은 남이다, 사이가 좋을 때 이용할 생각을 해야지, 끌려다니거나 이용당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과 우리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미국이 우리가 될 수 없듯이 우리가 미국이 될 수 없습니다. 북한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을 카드로 써야 합니다. '용북'(用北)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용미'(用美), '용일'(用日)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줏대가 확고해야 합니다. 여기 있는 젊은 사람들은 자주적이고 민족적이고 줏대 있는 자세를 가지길 부탁합니다.
[청중과의 대화]
참석자 1 : 미국에서 발표하는 북한 정보가 한국에서 나온 것이 많다고 하셨는데 박근혜, 이명박 정부 때 그런 식으로 발표된 정보 중에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사례가 있습니까?
정세현 : 제가 '북핵 정보의 진실,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미국은 무기를 팔기 위해 북핵 정보를 과장합니다. 봄에는 엄청나게 무섭고 가을에는 그런 일이 없는 듯이 조용합니다. 미국 의회가 7월 하원에서 예산 심의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봄이 되면 북한의 핵 능력이 강화되고 미사일의 거리가 늘어납니다. 얼마 전 북한이 5년 후에 핵폭탄 100개를 가질 수 있다는 보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합니다. 펜타곤(미국 국방부) 주변 여론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그것을 토대로 예산서 작성하고 국회에 넘기고 로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핵실험을 3번이나 실시하긴 했지만 첫 번째는 실패했습니다. 4000톤의 폭발력을 가진 실험이라 했는데 실제로는 400톤이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는 목표량대로 된 듯하지만, 이거 갖고 소형화경량화 못합니다. 두 번 실험했는데 그런 식의 전망을 하는 것이 웃기는 것 아닙니까.
북한의 군사 관련 정보는 목적론적 해석이 많습니다. 정보의 왜곡과 과장이 많습니다. 미국은 해방 이후 이 땅에 들어와서 군사 질서를 장악하고 휘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경제적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경제 질서를 장악했습니다. 미국이 우리한테 원조를 주면서 디젤기관차 주고 반드시 부품은 자신들 것을 사다 쓰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실제 물건을 들여오는 것보다 갈아 끼우는 것이 더 비싼데 말입니다. 미국은 군사 부문에서도 이런 식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일단 무기를 사면 부품을 계속 살 수 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국의 군사·경제 질서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를 관리하고 정당화시키고 연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보질서입니다. 미국은 정보를 다 입수합니다. 1980년대 중반에 KBS의 용역을 받아 정보 질서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은 절대로 러시아의 <타스> 통신을 보지도 않습니다. 영국의 영향권(영 연방, 식민지)에 있는 나라들은 <로이터> 통신을 기반으로 합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에이에프피> 통신만 베껴요. 그렇게 정보 질서가 잡혀있습니다.
반면 사회주의권에서는 반대의 양상이 나옵니다. 중국의 <인민일보>나 <신화> 통신은 <타스> 통신을 베낍니다. 소련이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키토를 파문시켰을 때도 유고슬라비아 통신은 <타스> 통신을 베끼지 <에이피>나 <에이에프피> 통신을 베끼지 않습니다. 미·소 간의 분쟁을 보도해도 <타스> 통신은 미국 잘못만 이야기하고 미국의 통신들은 미국이 제공한 원인은 빼버리고 결과만 씁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제 질서, 군사 질서, 정보 질서. 모두 미국 중심에 놓여있습니다.
참석자 2 : 2002년 연평해전 당시에 통일부 장관을 하셨는데, 영화 <연평해전> 상영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세현 : 제2연평해전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부터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때는 북쪽의 어선들이 꽃게잡이를 위해 자꾸 NLL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들이 내려오니까 북한 경비정들이 경계를 위해 따라 내려왔습니다. 일주일 동안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어서 대비를 하고 있었어요.
당시 우리 군은 큰 배를 가지고 올라와서 북한 함정을 밀어냈습니다. 전력이 월등한 우리가 북한군을 대파했고 북한군 수십명이 그대로 수장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피해를 입은 쪽이 북한의 8전대 소속 인원입니다. 8전대 입장에서 보면 부대의 치욕이므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3년 뒤인 2002년 6월 29일 결국 일이 터졌습니다. 당시는 한창 월드컵이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우리가 예상 밖의 선전을 하면서 준결승전까지 올라갔죠. 8전대는 아마 이 때가 기회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상황이 터진 이후 청와대에서 핫라인으로 평양에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봅니다. 당시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는 임동원 외교안보특보였습니다. 북한은 "이것은 절대로 평양의 뜻이 아니다. 현지 부대가 일으킨 사고다. 조사하고 책임자 처벌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할테니 이것을 가지고 도발이다, 전쟁이다라는 식으로 대응을 안했으면 좋겠다"라고 합니다. 미국도 이 사건 관련하여 평양에서 지령이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확인해 줍니다.
미국에서도 평양의 지령은 없다고 하고 폐막식에 일본 천황과 수상도 오기로 돼있으니 김대중 대통령은 예정대로 일본에 갔습니다. 참석 약속이 돼있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북한의 공격이 평양의 지령을 받은 것이었다면 당연히 대통령이 지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상황이 번지지는 않았고 합참의장과 외교안보특보가 있으니 일본행을 택한 겁니다.
북한은 사건 발생 이후 통일부 장관 앞으로 남북회담을 다시 시작하자는 내용의 사과 편지를 보냈습니다. 결국 회담을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제2연평해전의 실질적인 원인은 제1연평해전에 대한 보복심, 3년 전의 치욕을 되갚으려는 우발적 행위였고 이를 통제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 오는 11일(토)에는 김진향 전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과 함께하는 평화기행 및 강연회가 마련돼있습니다. 오전 9시 시청앞 대한문 앞에서 출발해 오전에는 경기평화센터에서 '개성공단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회를 합니다. 이후 남북출입사무소-도라산역-도라전망대 등을 견학할 예정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참여 안내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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