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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화를 보겠다고…영화로 읽는 '미생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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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화를 보겠다고…영화로 읽는 '미생 생존법'

[프레시안 books] 오시이 마모루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나>

"과거 제임스 본드는 냉전의 전사로서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고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다. 그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좋은 아들이고 싶은 바람만 남아 버렸다." (204쪽)

책의 저자에 따르면,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계약직 사원"이다. '살인 면허'가 주어지지만 그 역시 죽음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면서 놀다가도 다른 일이 생기면 또다시 사지로 불려 간다. 하지만 그만둘 자유, 다른 첩보 조직으로 이적할 자유는 없다.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수명만 줄어든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불합리한 취급을 받는 계약직 사원'이 제임스 본드라는 것이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제임스 본드는 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저런 곳에서 일하나. 저자는 007 시리즈 중 한 편인 <스카이폴>의 한 장면에서 답을 찾는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제임스 본드가 상사 M 앞에 돌아온다. "늦었군. 살아 있었다면 전화라도 했어야지. 이 어리석은 아들아." 이미 한 차례 본드를 버린 적 있는 M의 반응은 이런 식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전직 첩보원 실바는 또 어떤가. M의 부하였지만 그에게 버림받은 뒤 원한을 품은 실바는 영화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동반 자살을 하고 싶은 아들(196쪽)"로 그려진다. 결국 상사 M을 둘러싼 전·현직 첩보원의 관계는 부당한 계약도 끊지 못하는 '모자 관계'와 흡사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더 나아가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응과 공감 역시, 자신의 직장 내에서 부모-자식 관계와 같은 밀접한 인간관계를 원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고 질문한다.

"자신의 말도 들어주고 일도 맡기며 게다가 모든 책임을 져주는 상사", "요컨대 자신의 자부심에 근거를 부여해 주는 존재." (204쪽) 드라마 <미생>을 통해 '가장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의 전형으로 예찬 받았던 오 차장이 이런 모습 아닐까?

그리고 이어지는, 누구나 알지만 입으로 뱉지 않은 '충고' 한마디.

"'상사를 평생 따르겠다'는 것은 버림받는 첫걸음이다."

ⓒ현암사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회사에 다니나>(현암사, 2015년 2월 펴냄)는 이런 책이다. 1940년대 냉전 영화부터 가깝게는 2012년도 개봉작까지. 영화감독인 저자의 시각으로 9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이 영화를 통해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소개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속으로 했을 말을 그대로 옮긴 책 제목에 이 시대 '미생들'을 위로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막상 펼쳐보니 일종의 처세술인 셈이다.

<공각기동대>, <패트레이버>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책의 저자 오시이 마모루는 "영화는 직장인이 봐야 할 가장 좋은 교과서"라고 말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과 조직과의 관계를 통해, 조직 생활의 논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은 성공법이 아니라 이기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며 "어떤 조직이건 인간관계와 승패론을 이해한다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군대건 기업이건 혹은 영화 제작 현장이건, 조직은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와 '승패론'이다." (277쪽)

승패에 대한 그의 지론을 토대로 9편의 영화에서 '정글 같은 직장에서 현명하게 살아남는 법'을 뽑아냈다. 올드리치 감독의 1965년 작 <피닉스>에 등장하는 독일인 비행기 설계사(알고 보면 '모형 비행기' 설계사)를 통해 "묻지 않는 말에는 답하지 마라"는 충고를 던진다거나, 전쟁 영화 <정오의 출격>을 통해 '부하를 죽이거나, 자신이 무너지거나'의 선택지에 놓인 중간관리직의 줄타기를 보여주는 식이다. 저자 자신의 영화 <패트레이버2>에선 '무능한 부하를 움직이는 비결'로 아주 과감하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책은 온전히 처세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주관이 뚜렷한 저자의 영화평론과 그 안에서 끄집어낸 나름의 조직론이 뒤섞여 있다. 재치 있지만 고집 센 저자 나름의 '사회 생활 생존법'이지만, '영화로 읽는 직장 생활 바이블'이란 거창한 부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을 터. 그렇지 않은가. 영화 9편으로, 직장에서 무슨 영화(榮華)를 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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