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고 제목과 표지를 본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저항 주식회사 –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동녘, 2015년 3월 펴냄). 빨간 자판기에서 탈핵과 야생동물 보호 운동, 인권 운동 등을 돈만 넣으면 구매할 수 있는 것처럼 디자인했는데, 주제를 함축한 표지 자체로는 훌륭하다. 그러나 환경 운동을 했고, 사회 운동의 연장으로 녹색당 활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책의 문제의식은 수긍이 가지만 완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너무 운동을 단순하게 보고 일부를 전체인 양 일반화하는 거 아냐?", "그렇지 않은 운동도 얼마나 많은데?"라며 반박거리를 찾고 있었다. <저항 주식회사>는 최근 10여 년간 운동가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활동하면서 대기업과 소비주의, 자본주의 영향력 속에 빠져들었다는 내용이다. 그 결과 운동의 전략은 순화되고, 운동의 방식은 대기업과 제휴하는 시장 해법에 매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빗대어 한때의 '저항'이 '저항 주식회사'로 화려하게 변신했다고 표현한다. "아! 저항 주식회사라니! 이 표현은 너무했어!"
"저항 주식회사라니!"
운동의 세계화로 그린피스, 옥스팜, WWF(야생동물보호기금), 유엔난민기구와 같은 국제 NGO들의 한국 진출이 가시화되기도 했다. 거리에서는 마케팅 업체들이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모습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국제 NGO들이 펀딩을 하는 데 있어서 한국이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이 회원 모집을 위해 마케팅에 쏟아 붓는 비용은 상상을 넘을 정도이고, 실제 효과를 얻고 있다는 이야기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지나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단체에 대해 설명하고, 후원회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이 다수일 테고, 하루 종일 후원회원을 늘리지 못했을 때는 많은 압박을 받을 것 같다. 국제 NGO만이 아니라 국내 시민 단체도 길거리 모금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또 단체 활동을 위한 재정 마련이 그만큼 취약해서이기도 하다. 정부와 기업 후원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후원회원을 모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마케팅이나 모금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저항 주식회사가 등장했을까?
저자들도 '운동이 변했어'라는 이야기보다는 그렇게 된 원인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안보와 안전을 내세워 운동을 탄압하는 국가, 개인화된 삶을 조장함으로써 운동의 토양을 무너뜨리는 자본주의가 운동을 시장화했다는 것이다. 격하게 동감하는 부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안보와 안전에 국익 논리까지 등장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른바 '촛불 단체'라고 해서 광우병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사회는 별도로 관리했다. 저항과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조직적인 국가의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제는 무상 급식 폐지에 항의하는 학부모들마저도 '종북'이라는 빨간딱지를 붙일 정도이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과 노동 운동가, 활동가들에 대한 감시 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해외에서 비싼 시위 허가료를 물리고 시위 진압에 '음향 대포'를 사용한다면 국내에서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강화해 소음 규제를 만들고, '명박산성'과 같이 경찰차로 '차벽'을 만들어 시위대의 이동 자체를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다.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그리고 언제부턴가 정부는 저항하는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의 벌금을 물려 운동가들의 삶과 정신마저도 파괴하고 있다. 돈으로 운동을 억압하는 가장 치사한 방법을 국가가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항을 억압하는 것은 국가만이 아니다. 기업은 소송을 한다. 몇 해 전 신문 칼럼에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에 대해 '노동자들의 생명의 무게'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직후 검찰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타이어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조사를 받으면서 심적 압박을 안 받을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이 국가와 기업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하기 전에 스스로 검열하게 만드는 장치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은 또 민주주의의 문제인가? 국가의 운동에 대한 탄압 때문에 '저항 주식회사'가 바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항'에 타격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운동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자유로운 비판과 칭찬, 감시와 격려에 열려 있어야 한다.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대안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검열' 없이, '두려움' 없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또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자본주의에서 풀뿌리 연대는?
저자들은 자본주의가 운동의 기반을 튼튼하게 만들던 하부구조를 무너뜨렸다고 이야기한다. 동료들과 함께 노동조합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연대를 다지던 기반이 무너지고 사회적인 삶은 개인의 삶으로 변화되었다. 노동조합 교육과 조합원들의 유대 활동보다 텔레비전과 자동차, 등산과 같은 취미 생활이 더 달콤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경제적 세계화는 공동체적 삶을 해체했고, 그 속도는 더 빨라졌다.
삶의 개인화는 해법도 개인적인 도덕적 실천에서 찾게 만들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같은 캠페인이 등장한 것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불편하기에 찾아낸 출구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만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아무리 전기를 줄여도 정부가 핵발전소를 세우는 정책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체제에 맞서 싸우지 않고서는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가 그렇게 '부드러운' 운동을 요구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시민 단체들도 회원들에게 "쉽게 이야기해야 해", "대중적이어야 해", "재미있어야 해"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회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동가가 되어 오락가가 되고, 공연 기획자가 되고 있다. 필자도 시민 단체 활동가였을 때 회원이 전화를 하면 더 친절해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내가 운동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와 회원은 운동의 동지인데 왜 이럴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한 운동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운동 공동체 간에 신뢰가 쌓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최근에 시민 단체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들의 상황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 낮은 임금에 사회적 시선도 1990년대 한창 시민사회 운동이 확산되던 때와는 다르다. 게다가 지금 운동을 시작하는 세대들은 막대한 학자금 대출까지 갚아야 한다. 부자가 되겠다고 운동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운동가들의 삶의 지탱해줄 안전장치는 필요하다. 운동과 운동가들에 대한 방관이 운동을 저항 주식회사로 만든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짐을 나눠야 한다. 한국 사회는 운동을 위한 토양은 척박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시민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넘어 해법까지 요구하고 있다. 비판을 하려면 대안까지 내놓으라고 압박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도, 학자들이 나서서 싸워야 할 일도 시민사회가 해야 한다고 당연히 요구하는 태도, 그렇게 시민사회에 짐을 지우는 일이 우리 운동을 망가뜨리고 있다.
일말의 변명을 하자면 나는 시민사회의 기업화보다 지식인들과 학자들의 기업화가 더 치명적이고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권을 위해 연구 보고서를 조작하고, 정부와 기업 입맛에 맞는 정책 보고서를 만들고 거대 개발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기안해낸다. 그렇게 사회를 망가뜨리는 사람들이 '시민단체가 제대로 활동을 안 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누군가 온갖 이권에 복무하는 한국의 학자들을 다룬 '지식인 주식회사' 이런 책도 한번 써줬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자
이 책의 저자들은 집요하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일관되게 운동의 기업화가 문제이며, 현재 상황으로는 사회적 불안과 대항 운동을 억누르고 포섭하는 기업과 시장의 역량이 강화되는 것을 멈출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로지 운동의 기업화에 대해 경고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짓는다. 저자들의 메시지가 하도 일관되기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 이쯤이면 한국 사회에서도 이 주제를 가지고 한번 논쟁을 해볼 때가 되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운동하는 우리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모순이다.
마음속 깊이 불편했던 이야기들. 지난해 '그린 플래닛 어워드'로 삼성전자와 코오롱이 수상을 했던 일,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소비자 조직의 입장 등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해 논쟁을 해볼 만한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운동의 기업화'를 주제로 본격적으로 논의해본 적이 없다. 운동을 위기로 몰아넣는 현실을 직시하고, 운동의 토양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이 번역서라서 그렇지 만약에 한국의 운동을 대상으로 같은 주제의 책이 나온다면 논쟁은 촉발될 것이다. 단 그것이 운동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악의적 목적을 갖고 접근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기업의 영향력은 커가고 끊임없이 자본으로 운동을 포섭하는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깨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동가들도 '성장'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운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너희들은 우리랑 함께할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할 때, "우리는 너희들이 없어도 살 수 있어"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화되는 세계에서 운동의 급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운동부터 소비주의와 효율 추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장 이데올로기와 타협하는 순간 운동의 기업화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길바닥을 뜨겁게! 부활하는 거리 정치
저자들의 뜨거운 경고를 받아들이면서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 운동은 살아 있고, 탄압하는 국가와 유혹하는 자본에 맞서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운동과 운동이 만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국가 폭력의 최전선에서 뜨겁게 싸웠던 밀양과 청도의 할머니들은 쌍용자동차와 스타케미컬 집회에, 세월호 진상 규명에, 강정 해군기지 반대에 함께하고 있다. 765kV 초고압 송전탑을 따라가 보았더니 그 끝에 핵발전이 있었다며 송전탑과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도 나서고 있다. 그 움직임에 변화된 시민들이 많다.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던 시민들이 '밀양의 친구'가 되어 저항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2012년 그 추웠던 겨울, 쌍용차의 'S', 강정의 'K', 용산의 'Y'를 따 만들어진 "함께 살자" 'SKYAct'(스카이공동행동)를 통해 '국가'와 '자본'에 맞서는 '함께의 힘'을 경험했다. 운동이 고립되지 않기 위해, 기업화되지 않기 위해,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게 위해 연대가 필요하고, 그런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운동의 지평도 확장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엄청난 참사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목격한 청년들이 움직이고 있다. 개인의 삶에서 사회적 삶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회는 무지막지한 국가의 폭력과 탄압에 맞서는 운동이 더 시급해서 '운동의 기업화'가 그렇게 심각한 주제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 주식회사>는 단순히 운동의 기업화를 경고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운동이 어떤 세력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일독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법도 고민하게 만든다.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책이다.
내가 찾은 답은, 현재 운동이 처한 상황은 어렵고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지만 이 암흑한 시기에 서로 신뢰하고 함께할 수 있는 운동 공동체를 만든다면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765kV 송전탑이 밀양에 다 들어섰지만 밀양 할머니들은 "우리의 마음은 아직 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뜨거운 연대는 운동을 깨어 있게 만든다. 길바닥에서 자주 만나서 함께 행동하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