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범죄와 과거사 문제 전문가인 이재승 건국대 법대 교수가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앨피, 2014년 11월 펴냄)를 우리말로 옮겼다. 3월 하순, 이 책에 담긴 의미를 이 교수에게 들었다.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이 글은 인터뷰 뒷부분이다.
프레시안 : 과거에 벌어진 중대한 인권 침해의 법적 책임 문제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그 당시 실정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문제, 어떻게 보나.
이재승 : 법원에는 국제 인권법 같은 것의 의미를 최소화하고 실정법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심 국면에서 과거의 법이 위헌 판결을 받기도 하지 않았나. 이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게 그만큼 드러난 것이다. 내 전공이 법철학인데, 대한민국이 1948년에 처음으로 갖게 된 헌법의 기본은 민주주의와 자유 입헌주의, 시민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 헌법이 많은 파행을 겪었고 독재자들이 임의로 특별법을 만들어 인권 침해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법이 그 당시 있었다고 해서 인권 침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인도에 관한 범죄, 전쟁 범죄, 침략 범죄 같은 것들은 2차 대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도쿄 재판을 통해 이미 국제 사회가 근절해야 할 것으로 상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그와 유사한 인권 침해가 있다고 하면 항상 그 원칙으로 돌아가서 단죄하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을 계속 기피하려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법에 입각해 과거의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뉘른베르크 법정은 국내법을 가지고 국제법상의 책임을 면할 수 없고, 정부 수반 등의 명령이나 실정법에 따라 인권 침해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면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건 뉘른베르크 법정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일반적으로 적용돼야 할 원칙이다. 한국에도 인권을 더 존중하는 정부가 들어서면, 이런 부분에서 더 원칙적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재승 교수 인터뷰
60년간 멈춘 시효, 6개월 만에 완성? 법원의 무리수
이재승 : 명백한 퇴행이라고 봐야 한다. 추가 작업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지 않나. 하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서 했던 진실 규명 결정에 입각해 피해자들이 재심을 청구하거나 국가 배상 소송을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한 2∼3년 전까지는 법원이 과거 청산 작업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
최근 놀라운 건 진상 규명 결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소멸 시효가 지났다는 '6월 소멸 시효설'을 법원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건 법에 반하는 것이다. 6개월에 시효가 소멸된다는 건 우리 법에 없는 내용이다. 법에도 없는 하나의 판결을 만들어낸 다음에 그것을 판례라고 계속 가져가는 것이다. 이게 퇴행의 단적인 사례다.
다른 한편 난 우리가 국가 폭력 또는 민간인 학살 같은 문제를 다뤄온 태도가 정치적으로 온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당사자 운동 비슷하게 돼왔다. 예를 들면 특정 지역의 학살 피해 유족회가 민주화 국면에서 그 지역의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해서 법을 만들어 그 법이 국지적인 경우가 많았다. 종합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나온 것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진실화해법)인데, 문제는 그 법이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출구 전략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뭐냐 하면, 과거의 인권 침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다음 단계의 이행 전략이 있어야 하고, 진실이 규명되면 피해자에게 어느 정도 보상할 것인가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정해야 하는 국면이었다. 그런데 그 국면에서 이명박 정부가 그걸 정지시켰다. 입법적·정치적 역량이 발휘돼야 할 국면에 그것이 발휘되지 못하고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걸 입법적·총괄적으로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이 억지로 권리 구제를 하게 되니까 이게 띄엄띄엄 이뤄지게 된 것이다. 현재 법원의 최대 맹점은 사건마다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소송을 언제 제기했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식 아닌가. 그리고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기는커녕 많은 피해자들이 숨죽이고 지내야 했던) 60년 동안 시효가 멈췄다가 (진상 규명 결정일로부터) 6개월 만에 시효가 완성됐다고 하는 게 법원이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 이것부터 심각한 문제다. 사법부의 정당성에 스스로 심각한 타격을 입힌 것이다.
진실화해위가 활동을 마감할 때 (국가 차원에서) 정치적 역량을 최대로 발휘해 입법적 대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런 역량이 발휘돼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건데, 앞으로 그럴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굉장히 의문스럽다.
전두환에게 광주 학살 책임을 철저히 물었다면…
프레시안 : 독재 정권 시절 시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던 국가 기관들 중 국정원, 경찰, 국방부의 경우 노무현 정부 때 일정하게 과거사 정리 작업이 이뤄졌다. 그 의미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 효과에는 의문과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적잖다. 이러한 국가 기관들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보인 모습에서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한 흔적을 찾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과거사 정리 작업조차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등에서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고수하는 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야스퍼스 식으로 말하면,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과거사 정리 작업이 진행되던 무렵 정치 상황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쉬움과 고민이 드는 게 사실이다. 힘센 국가 기관의 인권 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재승 : 어려운 문제다. 얼마 전 국정원장과 관련해 판사가 '국정원 진실위를 통해 그렇게 멋진 보고서까지 내고서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며 책임을 약간 가중하는 형태로 묻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런 위원회가 탄생했을 때 여러 가지 얽혀 있는 것이 있었다. (2월 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항소심에서 김상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2007년에 나온 국정원 진실위 보고서를 인용하며 국정원의 2012년 대선·정치 개입을 질타했다. 김 판사는 "국정원이 솔직한 반성과 깊은 성찰의 결과로 스스로 만든 이러한 거울 앞에 서서 피고인들이 과연 이 사건 사이버 활동의 적법성과 그것이 합리적인 우리 국민에게 어떻게 이해될 것인지를 진지하게 따져봤는지 극히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정보 기관이고 특히 정보 활동과 관련해 많은 죄를 짓거나 정치적 조작을 했기 때문에 만약 그것을 처벌한다는 관점에서 진실 규명 활동을 시작했다면 아마 자료는 다 파기되고 진실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할 건 위원회 구성 문제다. 국방부 과거사위에 1년간 있었는데, 국방부 관련 인사들과 외부 민간 위원들이 각각 절반 정도였다. 내부 위원과 외부 위원이 협력해 진실을 규명하도록 한 것이었다. 민간 위원 비중이 훨씬 높으면 조사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해당 기관에서 자료를 내놓아야만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 자료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조사 활동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전두환 그리고 1980년 5.18 학살에 관여한 사람들을 대충 처벌하고 풀어주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서는 그 후 어느 누구에게도 형사 책임을 온당하게 묻기가 곤란한 면이 있다. 나머지는 용서를 받더라도 전두환 씨는 계속 감옥에 있었다면, 책임론으로는 엉망이지만 그래도 상징적으로는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책임이 가장 큰 사람을 감옥에서 2년 정도만 살게 하고 풀어주지 않았나. 그렇게 됐는데 (독재 정권 시절 인권 침해에 가담한) 나머지 사람들을 엄중하게 처벌하는 게 가능했겠는가. (1995년 12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내란 수괴 혐의 및 재임 중 수천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두 사람은 15대 대선 직후인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 사면에 의해 석방됐다. 구속된 지 2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지 8개월 만이었다.)
아울러 당시 집권 세력이 그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을 정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지 못했다. 난 이 나라의 역량이 진실 규명과 낮은 수준의 배상, 저강도의 과거 청산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처벌하지 않아서 그렇다', 이렇게 보기보다는 저강도의 과거 청산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들의 머릿속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계속 우리가 추가 학습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프레시안 : 과거 청산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력은 '미래로 가야지, 언제까지 과거로 발목 잡을 건가'라는 등의 논리를 펴며 딴죽을 거는 경향이 있다. 피로감을 운운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역사 정의는 더 나은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는 문제가 많고 위험한 논리인데도 이것에 공감하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적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승 : 맞다. 가해자들은 '경제 활성화' 같은 이야기를 하며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만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피해자들 때문에 피로를 느끼는 게 아니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기 때문에 피로감이 생기는 것이다. 중요한 건 좁은 의미에서 가해자도 아니고 피해자라고 보기도 어려운 보통 사람들의 태도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이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과거 청산의 향배가 정해진다고 본다.
과거를 청산하는 것과 미래를 형성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가 아니다. 학살만 해도, 학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미래를 향한 책임 있는 자세 아닌가? 학살을 가능케 한 의식, 기억, 이데올로기, 제도, 관행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아무것도 극복한 게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제도를 바꾸는 게 아주 중요한데, 실제로 제도가 개혁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역사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중 잣대
프레시안 : 역사 문제에 대해 적잖은 한국인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컨대 '독일은 과거 청산을 잘했는데 일본은 저 모양이다', 이런 주장엔 대다수가 공감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일본이 엉망인 건 분명하지만 한국도 학살을 비롯한 숱한 과거의 인권 침해 문제와 관련해 후속 조치를 제대로 못한 부분이 많다. 인권은 국적과 상관없이 보편적인 것이고, 한국도 그런 대목에서 성찰하고 개선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엔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재승 : 완전히 맞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독일은 잘하고 있는데 일본은 못하고 있다', 이렇게만 보는 건 단편적인 판단이다. 1945년에 과거 청산을 시작한 독일의 경우 중간에 보수 정권이 그걸 유야무야하려 했지만, 1960년대 후반 정치적 세대와 정권이 교체되면서 다시 진전되고 앞으로 나아갔다. 독일 내부의 정치적 동력만이 아니라, 독일이 인접 국가들과 맺은 관계에서 비롯된 대외적인 동력 같은 것이 함께 작용해 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와 달리 일본은 어떻게 보면 아시아에서 그런 좋은 자극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일본인들이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건설적인 관계를 새롭게 맺자고 접근한 것 같지도 않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독일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이룬 성과는 원리적으로는 매우 제약돼 있었지만 우리한테 좋은 학습 기회였다. 그것이 또 어떤 면에서는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선순환한다면 평화와 인권을 지향하는 관계가 아시아에서 확산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책에서 죄와 책임을 여러 가지로 구분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인간으로서 근원적 공감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런 공감 능력 자체를 상실하거나 봉인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예컨대 '일베' 문제가 상징하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그러한 근원적 공감을 훼손하는 모습이 현실에서 심심찮게 나타난다. 야스퍼스가 말한 네 가지 죄의 문제와 연관해 표현의 자유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지점이 있지 않을까.
이재승 : 사회의 약자나 피해자를 모욕하고 공격하는 것이 요즘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정당화되고 옹호를 받는 것 같다. 학문적으로 그런 입장을 수정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많이 나타나는 건 학문적 이론 체계로서 수정주의라기보다는 아주 저열한 욕설 수준의 이야기들이다.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한데, 야스퍼스가 말한 '도덕적으로 감응하는 능력'과 연관해 짚어볼 부분이 있다. 일반적으로 자유권 규약을 보면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법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자유권 규약이면 자유만 옹호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전쟁을 선동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를 고취하는 것은 규제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런저런 차별적 발언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도 차별적이고 증오적인 표현이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을 표현의 자유로 완전히 옹호할 수는 없다. 증오와 폭력적인 행동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인간은 자신이 통치당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책임진다
프레시안 :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인간은 자신이 통치당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책임진다'는 부분이었다. 책에서는 정치적 죄와 관련해 주로 언급되지만, 과거의 국가 범죄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형 문제에 대해서도 무거운 의미를 지닌 규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오늘날에도 여러 형태로 이뤄지는 인권 침해, 그리고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부당하게 고통을 강제하는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논리로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재승 : 야스퍼스가 이야기한 것 중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도덕적 죄와 정치적 죄를 연관시킨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보통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과, 우리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연계한 대목이다.
도덕적 죄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도덕적으로 개인이 각성하는 것, 즉 '나치 지도부가 나한테 잘못된 것을 지시했을 때 거부하지 못했고 남한테 나쁜 짓을 시켰다', 이런 것을 하나씩 깨닫는 게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런 나쁜 지시들을 극복하는 것을 집단적이고 정치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치 체제가 망했으니 문제가 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후 어떤 정치 체제를 갖추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책임과 관련해 난 야스퍼스가 막스 베버의 책임 윤리를 나름대로 소화해서 전개했다고 생각한다. 야스퍼스는 베버를 굉장히 좋아했고, 베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베버에 대한 작은 단행본을 낼 정도였다. 도덕 이론가, 윤리 철학자로 주로 이해됐던 야스퍼스가 실제로 그보다는 더 정치적인 안목을 갖춘 철학자였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내 나름대로 <죄의 문제> 해제에 재미나게 붙인 부분이 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인인 카토 이야기다. 시저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공화정이 무너져가던 시기에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 인물이다. 그러나 시저를 끝내 이길 수 없다고 본 카토는 마지막에 자진한다. 그런데 (중세 말) 단테가 쓴 <신곡>에 카토가 등장한다. 단테는 피렌체의 유명한 정치인이었는데, 고향을 떠난 후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런 단테가 쓴 <신곡>은 정치인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로 꽉 차 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 지옥, 연옥 중 한 곳으로 간다고 상정했는데, 연옥은 인간이 하기에 따라서 (향후 행로가 달라지는, 즉) 스스로 정화하면서 서서히 좋아지면 천국으로 갈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설정됐다. <신곡>에서 그 연옥의 수문장을 맡은 것이 바로 카토다. 정신적 정화를 담당하는 자리에 앉힌 것이다. 다시 말해, 살아서 정치적으로 치열했던 사람이 죽어서는 정신적 정화를 담당하는 설정이다.
난 야스퍼스가 '정신적 정화와 정치적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것은 일치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맥락을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 접했다. 정화하지 않으면 독일은 건전한 나라로 새롭게 출발하기가 어렵다, 독일 사람들이 잘못을 진정으로 깨닫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으면 나아질 수 없다고 야스퍼스는 생각한 것 같다.
1962년에 나온 이 책 후기에 야스퍼스는 2차 대전 직후 새로운 시대의 열망을 담아 많은 이야기를 썼지만 그 후 독일(의 과거 청산 노력)이 (나치 복귀 등으로) 퇴색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전후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말하며 내세웠던 것)도 퇴색해 자신이 엄청난 낙담을 했다고 썼다. 야스퍼스가 맹목적으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한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전후에 잘못한 게 많지 않나. 일본에서 천황과 731부대를 면책해주고, 연합국이 행한 전쟁 범죄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책임을 묻지 않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전후 국제 질서가 하자를 많이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향한 이상을 그다음 세대에서 올바르게 학습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점점 나아지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프레시안 : 추가 학습과 정화가 중요한 건 독일만이 아니라 일본, 한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이재승 : 의식과 제도를 바꾼다는 것이 어떤 혁명적인 방식으로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불행한 일을 겪을 때마다 제도적인 처방을 끊임없이 하고, 그렇게 학습한 것을 다른 영역에 옮겨 더 좋은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인접 국가들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어 그런 경험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나아지는 방식이자 정치라고 생각한다.
과거 청산을 계속 올바르게 해간다면, 일본과 관련해 우리 발언권도 훨씬 세지게 된다. 학습을 통해 우리가 규범적으로 더 올바르게 되면, '쟤들은 자기들 과거사 문제는 형편없이 해놓고 다른 나라한테 이래라저래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간 과거사 정리와 관련해 우리가 한 일들 중에서 잘한 것도 많다. 그런 좋은 것을 계속 만들어가고 그걸 지켜간다면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도 소란과 학살, 폭력적 변화를 많이 겪은 나라 아닌가. 우리가 좋은 경험을 쌓아간다면, 그것이 중국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하는 데 다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회(懺悔)'라는 말이 있다. 보통 자신의 잘못에 대해 뼈를 깎는 후회와 뉘우침을 의미한다. 참회는 불교 용어이기도 하다. 불교 용어로서 참회에서 '참(懺)'은 범어의 크샤마(Ksama, 懺摩)를 음역한 것으로 과거의 잘못을 통렬하게 뉘우친다는 의미에서 회고적이라면, '회(悔)'는 앞으로 다시는 그러한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미래 지향적이다. 참회는 바로 과거 청산의 목표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참회는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개인의 인격적이고 내면적인 수행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본다.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가 몇몇 악인들의 소행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연루된 보통 사람들의 공업(共業, 공동 책임에 관한 불교 용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개인적·인격적 참회를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발성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정치적 참회를 추구해야 한다. 사실 그것만이 가능한 것이고, 현실적인 목표라고 본다. 사회적이고 정치적 차원의 참회는 마음의 그늘 속에서 한없이 움츠러드는 인간의 왜소화 과정이 아니라, 정치철학자 아렌트가 말하는 용서와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적·정치적 참회를 통해서 과거와 단절을 이루게 되리라고 본다. 그것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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