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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범죄, 오늘날 일본인은 책임 없다? 궤변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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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범죄, 오늘날 일본인은 책임 없다? 궤변인 이유

[프레시안 books : 역자, 책을 말하다] 야스퍼스 <죄의 문제>를 옮긴 이재승 교수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야스퍼스는 생전에 국가 범죄 문제 및 과거사 정리 작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저작을 펴냈다. 2차 대전에 패해 연합국에 점령된 독일에서 1946년에 펴낸 <죄의 문제>(앨피, 2014년 11월 펴냄)가 바로 그것이다. 7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읽어도 여전히 울림이 있는, 이 분야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이재승 건국대 법대 교수가 <죄의 문제>를 우리말로 옮겼다. 이 교수는 한국 현대사를 어둡게 만든 국가 범죄 문제를 추적한 역작 <국가 범죄>를 펴냈고, 노무현 정부 때는 국방부 과거사 진상 규명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국가 범죄> 서평 바로 가기)

3월 하순 이 교수를 만나 <죄의 문제>에 담긴 의미, 시민의 정치적 책임(이는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문제, 그리고 독일·일본·한국의 과거사와 국가 범죄 문제 등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이 교수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인터뷰 내용을 전하기에 앞서, 아직 이 책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이야기할 것이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가 쓴 책, 그것도 '죄의 문제'라는 무시무시해 보이는 제목을 붙인 책인 만큼 난해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는 부담감부터 느끼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묵직한 주제를 다룬 책인 건 틀림없지만, 해독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접근성이 낮은 책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 전공자가 아닌 기자도 읽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물론 책의 의미를 한 번에 모두 파악했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사 정리와 국가 범죄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야스퍼스가 제시한 네 가지 죄…"출발점은 법적 죄"

ⓒ앨피
프레시안 : 법을 전공한 교수가 외국 철학자의 책을 번역한 것이 이례적이라고 느낄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이재승 : 국가 범죄 문제를 15년 넘게 다루면서 국가 범죄에 관한 총론을 생각해봤다. 어떻게 하면 국가 범죄를 극복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뒀을 때 결국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책임 의식을 느끼고 자신을 바꿔갈 것인가, 이것이 총론의 핵심 주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중대한 인권 침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잡아서 처벌하고 유족에게 배상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엔 좁은 의미의 피해자와 가해자 그 바깥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자기 정치 체제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와 관련된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그걸 가장 잘 환기시키는 책이라고 여겼다. 최소한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나온 것들 중에선 그렇다고 본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보다 더 수준 높은 책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을 철학자가 (좁은 의미의) 철학적 주제를 다룬 책으로 보기보다는 야스퍼스가 나치 체제와 유대인 학살 같은 것을 겪으면서 스스로 정치철학적, 법철학적 고민을 전개한 것에 주목했다. 그런 점에서 내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책으로 보였다.

프레시안 : 이 책에서 야스퍼스는 죄를 네 가지(법적 죄, 정치적 죄, 도덕적 죄, 형이상학적 죄)로 구분하고 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야스퍼스의 의도와 달리, 정화를 강조한 것이 중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중범죄자들이 '난 마음속으로 이미 다 참회했다'는 식으로 슬쩍 넘어갈 여지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다. 이와 관련해 네 가지 죄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이재승 : 그렇게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개념을 야스퍼스가 제시한 건 아니다. 법적 죄가 가장 중요한 죄다. 학살을 자행하고 전쟁 범죄를 저지른 자가 지는 책임이 법적 책임이다. 그러니까 법적 죄가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네 가지 죄를 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법적 죄는 여기서 죄를 논하기 위한 전제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것 아니냐', 이건 이야기가 안 된다.

2차 대전 후 중요한 범죄자들은 뉘른베르크 법정이나 도쿄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머지 사람들이 지은 죄가 뭐냐 하는 문제를 논한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제일 많이 나왔던 게 '독일 사람들은 모두 나치이고 다 나쁜 사람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였다. 모두 죄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와 달리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만 죄가 있고 나머지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큰 틀에서) 이런 두 가지 이야기가 형성됐다. 난 독일 사람 모두 앞에서 말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과 똑같은 중죄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이야기도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야스퍼스도 그 사이에서 논의를 전개했다. 야스퍼스는 모두 죄인이라는 주장도 거부하고, 몇 사람만 죄인이고 나머지는 무죄라는 주장도 거부했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굉장히 복잡해졌다.

프레시안 : 다른 세 가지 죄는 어떤 뜻을 담고 있나.

이재승 : 정치적 죄는 정치적 책임으로도 옮길 수 있다. 난 야스퍼스가 이 개념을 통해 똑바로 된 정치적 공동체를 유지해야 할 책임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야스퍼스가 이 개념에 대해 독일 시민권을 가진 사람 전체가 지는 책임이라고 항상 말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해 그런 전쟁을 일으키는 동안, 정치가 그렇게 돌아가는 동안 국민들은 왜 방관했는가, 이것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 책임이다. 앞에서 말한 형사 범죄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 책임을 이행한다는 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독일이라는 국가를 새롭게 재형성해야 하는 책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도덕적 죄는 아주 개인적으로 지는 책임이다. 중대한 의미의 학살 같은 것에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일을 추진한 히틀러를 찬양하거나 히틀러의 그런 행위를 지지한 것에 대한 책임이다. 또한 나치의 정책들이 일상적으로 관철될 때, 예컨대 교수로서 나치가 뭔가 나쁜 것을 요구했을 때 그것에 항의하지도, 그것을 거부하지도 않고 침묵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양다리를 걸치고 겉으로 태연하게 동조한 행태에 대한 책임이다. 독일의 보통 사람들이 그와 같은 아주 소극적인 묵인부터 낮은 수준의 협력 행위들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다 도덕적 죄를 저질렀다고 한 것이다.

형이상학적 죄 개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기독교적인 원죄를 연상시킨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원죄하고 다른 점은, 기독교적 관념에서 원죄라는 것은 특정한 이유 없이 물려받은 죄이지만 형이상학적 죄의 경우 학살과 야만적 행동이라는 죄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원죄와는 논리적으로 분명히 다르다.

아울러 나는 과거 청산에서 추가 학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형이상학적 죄를 그것과 연관해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추가 학습 없는 일본의 위험한 질주

프레시안 : 추가 학습이란 어떤 의미인가.

이재승 : 일본을 예로 들면,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 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러면서 (일본 우익은)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면서도 자신들이 해야 할 배상 책임은 옛날에 다 이행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렇지만 '배상 책임을 이행했다'는 말하고 '우리에겐 잘못이 없다'는 말은 모순된다. '옛날에 잘못을 했었다. 그리고 배상 책임을 이행했다', (저들의 논리대로 말하려면)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건데, 모순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난 배상 책임을 이행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일본은 과거에 잘못을 했고 지금도 인권 침해 행위이자 잘못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달리 책임을 계속 인정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한테 지속적으로 추가 학습을 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 자라나는 세대들이 '아 그런 인권 침해 행위는 잘못된 것이구나', 그걸 인식하게 된다. 이것을 수치로 여기는 건 곤란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 있는 시민을 키우는 방법이다. 일본의 경우 그런 추가 학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다른 점이 있다. 예전엔 한국에서도 민간인 학살, 조작 간첩 사건 같은 것들이 반공 같은 것을 이유로 다 정당화됐다. 그러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과거사 정리 작업을 통해 '그런 것들은 다 범법 행위이자 인권 침해였다', 이렇게 바로잡았다. 물론 그 후 사회가 우경화되긴 했지만, 민간인 학살 같은 것들이 굉장한 인권 침해였고 이데올로기에 편승해 살아가는 삶은 문제가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한 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우리가 반성하고 규범적으로 올바르게 되는 것, 난 이게 추가 학습이라고 본다.

사실 모든 나라는 이런 추가 학습을 통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독일도 2차 대전 후 연합국이 나치 청산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모든 게 나아졌던 것은 아니다. 1949년 이후에는 나치들이 제자리에 돌아왔고, 주요 공직을 차지했다. 보수 성향인 기민당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청산을 거의 수포로 돌리는 듯한 자세도 취했다. 나중에는 나치당원이었던 키징거라는 사람이 수상도 되고 그런다(재임 1966∼1969년). 그런데 1960년대 후반 우리가 68세대로 알고 있는 젊은 층이 각성하고 정권이 사민당으로 옮겨가면서 변화가 이뤄진다. (1969년 빌리 브란트가 사민당 소속으로는 전후 최초로 서독 수상이 된다. 1974년까지 수상으로서 서독을 이끈 빌리 브란트는 동방 정책 등을 추진했다. 빌리 브란트와 관련해서는 <평화 정치='악당' 퍼주기? 바보들, 브란트-바에게 배워라> 참조.)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이 그때 이뤄진다. 이런 게 추가 학습 과정이다. 그것이 2000년에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세우는 데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우리가 단 하루 만에 규범적으로 완전히 깨달아서 정의로워지면 참 좋겠지만, 역사는 그렇게 잘 안되는 것 같다. 계속 보완하고 더 나아지려는 시도를 이어가야만 그게 쌓여 나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 이재승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형이상학적 죄와 연대의 문제

프레시안 : 추가 학습 문제를 형이상학적 죄와 관련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

이재승 : 형이상학적 죄는 추가 학습에 대한 일종의 포석으로 보인다. 뉘른베르크 법정에서는 평화에 관한 범죄, 요즘 말로 하면 침략 범죄가 있었고 그다음에 전쟁 범죄, 그다음에 인도에 관한 범죄라는 것이 등장했다. 원래 전쟁 범죄는 전쟁 중에 교전 법규를 위반해 적군이나 적국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포로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 또는 민간 시설을 폭격하는 것 등을 말한다. 그런데 인도에 관한 범죄는 주로 유대인 문제 등과 연관돼 있다. 이걸 범죄로 설명하려고 할 때 만들어진 개념이 인도에 관한 범죄다. 인류에 대한 범죄, 인간성에 반한 범죄, 반인륜 범죄로도 이야기하는 그것이다. 이 범죄에 해당하는 논리 틀이 필요했고 그것에 상응하는 틀이 형이상학적 죄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 대해 동지적으로 가져야 할 유대라는 개념이 이 형이상학적 죄하고 대칭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형이상학적 죄가 꼭 그런 맥락으로만 쓰인 건 아니다. 살아남은 죄라는 형태로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 심리학자들이 서바이버스 길트(survivor's guilt)라고 부르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같은 이야기로 많이 이해되고 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현상, 세월호에서 승객들을 열심히 구했던 화물 트럭 운전사가 유리창만 봐도 아이들 생각이 나서인지 자살을 시도한 것 같은 것들이 어떻게 보면 살아남은 자의 죄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한 것처럼 다가온다.

형이상학적 죄를 통해 야스퍼스가 말하고자 했던 건 연대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어떤 것에서 잘못한 기원이 뭐냐 하는 것에 대해 연대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 같다. 연대가 깨졌기 때문에 인간은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연대가 깨진 모습이 '굉장한 위험 상황에서 그는 죽고 나는 살아 있다', 이렇게 나타났다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형이상학적 죄는 발전의 여지가 많은 개념이다. 그걸 꼭 죄라고 표현해 죄의식을 더 주입하기보다는 인간이 어떻게 연대해 좋은 관계, 좋은 사회를 만들까 하는 측면에서 이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도덕적 죄, 정치적 책임, 형이상학적 죄를 따로따로 떼어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용광로처럼 사회를 건강하게 재구성하는 논리로 사용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프레시안 : 이 책이 나왔을 때 독일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책에는 당시 야스퍼스가 이 내용을 강의했을 때 분위기에 대해서도 기억이 엇갈린다는 내용이 나온다.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엄숙한 분위기였다고 전한 사람도 있고, 학생들이 야스퍼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고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고 돼 있다. 아울러 야스퍼스의 주장이 그 후 독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하다.

이재승 : 길게 보면 야스퍼스의 이야기가 상당한 호소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큰 영향력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연합국은 1945년 독일을 점령하고 강제로 나치 청산을 했다. 그것에 대해 독일 사람 상당수는 굉장한 불만을 표했다. '우리가 전쟁에 졌으면 진 거지, 졌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느냐', 이런 불만이었다. 그때 야스퍼스는 '연합국이 정화 조치를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연합국이 뉘른베르크 재판 같은 걸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 질서이고, 그건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열망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동조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연합국의 조치를 받아들이고, 주권에 관한 조치나 범죄자 처벌 같은 외적인 문제 말고도 독일 사람들의 내면에서 뭔가 완전한 변화를 하는 것이 그것에 상응하는 올바른 태도라는 취지로 이걸 주장한 것이다.

독일의 보수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보수파 중에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연합국 앞잡이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나치 닮은 소리를 한다'는 비판도 했다. 모호하게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정파마다 반응이 달랐는데, 연합국이 4년 동안 강제적인 청산을 하는 상황에서 야스퍼스의 이야기 자체가 큰 영향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야스퍼스는 1948년 독일을 떠난다. 주된 이유는 유대인인 부인이 독일에 사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떠난 것이다. 나치 시절인 1937년 해직됐을 때 스위스 바젤대학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때는 가지 못하고, 1948년에야 그 대학으로 가게 됐다. 그 후 독일 정치는 나치 복귀 등 야스퍼스가 정말 싫어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야스퍼스는 그런 정치 상황을 다루며 독일은 어디로 가는가를 다룬 <독일의 미래>라는 책을 쓰기도 한다.

▲ 야스퍼스 반신상. ⓒ위키미디어커먼스
이처럼 전반적으로 독일에서 야스퍼스 정치철학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헌법 애국주의와 관련해 더 짚어볼 부분은 있다. 헌법 애국주의는 하버마스를 그 대표자로 해서 국내에 소개됐는데, 하버마스 이전에 슈테른베르거라는 정치학자가 있었다. 2차 대전 직후 슈테른베르거는 독일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독일은 전범 국가였기 때문에 민족이나 국가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자기 정치 질서를 정당화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마치 일본에 평화 헌법이 있고 민족을 내세우는 것을 혐오하는 사상적 흐름도 많이 있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국가를 빼놓고 뭔가를 논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게 모호하게 헌법 애국주의라는 형태로 나온 것이다. 원래 애국의 대상은 민족 아니면 국가 아닌가. 헌법 애국주의라는 것은 시민권을 훨씬 중시하는 국가 틀 전체로서 헌법, 이것에 충성하자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 점에서 자유 민주적이고 자유 입헌적인 정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야스퍼스는 슈테른베르거 같은 사람들과 함께 전후의 정치적 공백기에 그런 틀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1970년대 들어 많이 이야기됐다. 야스퍼스 본인의 영향력이 독일 전체의 지적인 지형에서는 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놓은 포석들이 슈테른베르거나 하버마스에게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역사에 대한 한정 상속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프레시안 : 책임의 상속 문제를 짚었으면 한다. 나치의 범죄,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 범죄,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한국의 국가 범죄 등을 살펴보면 그것에 직접 관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그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 일본 같은 데서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우리가 한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사과하라고 하고 우리한테 떠안으라고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고 들었다. 후세대의 상속 책임 문제, 어떻게 보나.

이재승 : 어려운 질문이다.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고, 역사를 집단적으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정체성 형성 과정과 직결된 문제다. '역사가 완전히 딱 확립됐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그 질문에 대해 대중적으로 가장 잘 답변한 사람이 샌델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 문제를 다뤘는데, 기본적인 이야기 틀은 철저한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의 대립이다. 자유주의자라고 하면 '내가 내 의지대로 하고 내가 관여한 것만 책임진다'는 논리를 펼칠 것이다. 공동체주의자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어떤 결합 또는 연결을 통해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즉 공동적인 행위 주체성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동 책임도 생겨난다는 논리를 펴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한 것만 내 책임이고 내가 안 한 건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또는 성인이 되기 전에 일어났던 또는 내가 정치적으로 투표권도 행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가 공적으로 학살 등을 자행했다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 이런 논리가 가능할 것이다. 이와 달리 공동체주의자들은 인간을 역사적이고 서사적인 존재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 경우에도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때 져야 할 책임이 뭐냐 하는 문제가 있다. 그 책임은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잘못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선대가 잘못한 일에 대한 것이다. 후손들은 선대가 남긴 것을 대부분 물려받지 않나. 그런데 선대의 잘못만 빼놓겠다는 것, 그것만 인수를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결국 선대가 잘못한 일들을 교정해야 될 정치적인 책임이다. '네가 잘못했으니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네 선대가 잘못한 것도 있고 잘한 것도 있는데 네가 너무 편의적으로 좋은 것만 취하고 부담은 지려고 하지 않으려는 건 종합적이지 않은 태도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야스퍼스는 이런 문제에 대해 가장 개인주의적인 논리를 잘 전개한 양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집단 책임에 관한 개인적 의식' 부분을 보면 샌델과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역사의 일원으로서, 언어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로서 우리가 함께 관여했기 때문에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야스퍼스가 그것을 1946년에 주장했을 때 후손 이야기는 안 나온다. 그러나 야스퍼스가 이야기한 논리 틀은 오늘날 샌델이 '후손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논리하고 거의 똑같다.

그런데 여기서 야스퍼스의 네 가지 죄 중 법적 죄, 도덕적 죄는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책임 또는 형이상학적 죄, 이것이 후손들이 져야 할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후손의 책임 문제에 앞서, 과거의 범죄에 대한 국가 책임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소멸하지 않는 한 국가가 원래 져야 할 책임은 계속된다는 말이다. 국가는 당연히 과거의 인권 침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고 있으며, 뒤에 태어난 시민은 국가로 하여금 원래의 법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개입하고 운동할 정치적 책임을 진다. 그것이 역사와 책임을 상속하는 자로서 본연의 자세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단순화해서 물어보면 역사 문제에 대한 한정 상속은 불가능하다는 말로 들린다.

이재승 : 역사에 대해 그런 식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 지난해 5월 현기영 선생 소설을 읽고 제주도에 가서 한 강연을 얼마 전 글로 정리했다(이재승, 형이상학적 죄로서 무병(巫病) : 현기영의 <목마른 신들> 읽기, <민주법학> 57호). 할아버지가 서북청년단원이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서북청년단원이면 제주도에서 학살에 책임이 있는 사람 아닌가. 그 손자가 학살당한 사람 귀신에 씌는 설정이다. 소설적 장치로 그렇게 돼 있는데, 제주도에 온 이 손자의 할아버지가 학살 피해자들한테 재산을 갈취해 부를 일구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을 한 나라 전체로 본다면 생각할 대목이 여럿 있다. 예컨대 한국전쟁 무렵 민간인 학살로 그렇게 많은 희생이 있었는데도 '그래도 우리가 반공주의를 견지했기 때문에 나라가 이 정도 발전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지 않나. 난 그런 말이 그들의 죄의식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사람들을 죽이면서 정당화한 논리가 반공주의 같은 것 아니었나.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자기들이 어느 정도 갖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난 본다.

역사에 대한 한정 승인을 주장한다면, 그건 인간으로서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역사에서 있었던 잘못을 시인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자신의 잘못이 되는 건 아니다. 과거에 선조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미래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런 것과 결부되는 것임을 생각하면 한정 상속은 건강하지 않은 논리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화해 시도의 위험성

프레시안 : 역사에 대한 한정 상속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것인데도 현실에서는 억지로 분리해 그중 필요한 부분만 가져가려는 움직임이 많다. 각종 국가 범죄를 비롯한 지난날의 잘못을 은폐하거나, 어쩔 수 없이 이야기하더라도 아주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승 : 학살한 쪽, 그러니까 국가 권력, 가해자 쪽에서 사태를 보고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논리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학살당한 사람들 쪽에서 보면 당해야 할 이유, 근거가 전혀 없었다. 이 경우 우리가 피해자의 권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때만 이야기가 온전해진다. 학살한 쪽은 건너뛰고 싶겠지만 학살당한 쪽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피해자로서 존중받고 고려될 때 그나마 화해의 여지라는 게 생겨난다. 가해자들이 아무리 외적으로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피해자와 관련해 이른바 권리 회복 같은 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화해라는 건 불가능하다.

화해에도 문법이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아무런 대가 없이 용서하는 그림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건 한두 사람의 종교인이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보통 사람의 심리의 법칙은 그렇지 않다. 항상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것이고, 근본 원인에 대한 처방과 변화가 있어야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

폭력이 저질러진 사회에서는 오로지 정치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 정치가 전부라는 뜻은 아니다. 정치가 그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모든 화해 시도는 정말로 아주 값싼 푸닥거리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학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만큼 폭력적 기제를 혁신하고, 피해자를 정당하게 대우하고, 과거의 잘못이 국가의 중대한 인권 침해 행위임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서술하고 가르치고 또 추가 학습을 계속해야 한다. 그것만이 그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레시안 : 옮긴이 해제에서 대량의 인권 침해를 겪은 사회가 구현해야 할 이행기 정의, 변혁적 정의의 원칙과 국가 범죄에 대한 공동체의 두터운 의무를 강조한 것과 맞닿은 이야기로 들린다.

이재승 : 그렇다. 처음부터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지 말았어야지, 국가가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뒤늦게 돈만 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겠나. 앞으로는 그렇게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도록 제도를 구축하고 인권을 충분히 존중하는 것, 그것만이 피해자들과 역사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세대와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이자 약속이라고 본다.

*이재승 교수 인터뷰 두 번째 기사가 4월 24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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