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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실손보험은 '노인 우롱'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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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후실손보험은 '노인 우롱' 보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후실손보험, 건강한 노인만 골라 가입시켜

지난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년유니온,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그리고 정의당이 함께 벌였던 노후실손보험 실태조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직접 가입을 신청한 노인 중 무려 71%가 가입을 거부당했다. 보험사는 고혈압, 당뇨병, 암 병력, 과거 수술병력 등이 있을 경우 모두 가입을 거부하였으며, 오직 건강한 노인들만 골라 가입시켰다.

신청 노인 중 71% 가입 거부 당해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사보험이 갖고 있는 근본적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보험사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가입하기조차 어려운 보험을 출시하고, 정부는 이를 '국민 노후 보장 정책'으로 포장했다. 노후 보장은커녕 노인을 우롱하는 정책이다. 이와 같은 조사결과를 내오기까지 과정과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자.

아직 '노후실손의료보험'이 생소할 수 있다. 현재 많이 알려진 상품은 아니다. 상품이 처음 출시된 것이 지난해 8월이다. 아직 많이 팔리고 있지는 않다.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가입할 수 있는 노인들이 제한되어 있기에 그렇다.

노후실손의료보험은 기존 실손의료보험과 비슷한 상품이다. 기존 실손보험은 6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판매하지 않고 있었다. 60세 이상 노인에게 판매하면, 보험료가 매우 비쌀 뿐 아니라 위험률 산정도 쉽지 않았던 탓이다.

반면 노후실손의료보험은 50세부터 최대 75세까지 가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1년마다 갱신되는 상품이고 3년이 지나면 재가입해야 한다. 보험료는 기존 실손의료보험보다 저렴하게 설계되었다. 자기 부담률을 대폭 높였기에 그렇다. 60세의 월 보험료는 2만~3만 원, 70세는 3만~4만원 수준이다. 기존 실손보험상품보다는 확실히 저렴하다.

창조경제로 포장된 노후실손보험

노후실손의료보험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라는 국정기조에 따라 태어난 신금융상품이다. 금융위원회는 2013년 11월 '창조경제 구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인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계획을 담았다. 9대 목표 중 하나로 100세 시대 신금융 수요 창출이 제시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100세 시대 노후 건강보장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고령층에 특화된 상품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신금융상품 출시를 예고한 것이다.

연이어 12월에 금융위원회는 '100세 시대를 대비한 금융의 역할 강화방안'을 발표했는데 국민노후 건강보장 강화라는 이름으로 노후실손의료보험 출시 방안을 담았다. 기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고령층까지 가입이 가능한 상품을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노후실손의료보험은 2014년 금융위원회의 업무보고 자료에 좀 더 구체화되었고, 지난해 8월에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추정컨대, 8월에 출시된 배경에는 7월에 오른 20만 원의 기초연금도 있어 보인다. 아마도 인상된 기초연금이 노후실손의료보험의 수요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는지 모르겠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노후실손의료보험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노인들이 얼마나 가입할는지 예측은 어려웠지만, 가입이 가능한 대상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손의료보험은 민간의료보험 중 가입이 가장 까다로운 보험이다. 보험사는 실비 보상을 해주는 보험이기에 기왕력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를 보험용어로 '언더라이팅'이라고 한다. 보험가입자의 과거 질병병력과 현재 병력을 철저하게 조사한 후에 보험가입을 거부할지 허용할지를 결정한다. 만성질환이 있거나 장기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면 대체로 가입이 거부된다. 기왕력이 있어 가입이 가능한 경우라도 철저히 부담보 조치를 취한다. 해당 질환이나 신체 부위는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건강한 노인만 골라 가입시키는 보험

노인의 경우에는 만성질환의 유병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노후실손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노인들은 소수일 것이라 추정했다. 특히 기존 실손의료보험의 엄격한 언더라이팅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는 예측대로였다.

이 조사를 함께 준비한 단체들이 노후실손의료보험 가입 대상에 해당하는 총 106명의 노인을 선정했다. 노년유니온 회원들과 세 단체 회원의 부모님을 대상으로 하였다. 106명이 보험사에 노후실손의료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결과 31명 만이 가입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75명의 노인은 가입이 거부되었다. 놀라웠다. 가입이 거부된 사유는 고혈압(43명), 당뇨병(27명), 암 질환(7명) 등이 있다는 이유(중복집계)에서였다. 연령대별로 보면 50대는 13명 중 3명만이 거부되었다. 하지만, 60대는 40명중 32명(80%), 70대는 53명중 41명(77%)이 거부당했다.

물론 106명의 노인이 대표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는 없지만, 이번 조사는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노인들의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데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고혈압, 당뇨병, 암 질환이 있을 경우 가입이 가능하다고 답변한 보험사는 하나도 없었다.

노인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매우 높다. 실제로 60대 이상 노인의 절반 이상은 고혈압을 갖고 있다. 20% 정도는 당뇨병을 갖고 있다. 암 병력은 7% 정도로 확인되고 있다. 즉, 노인의 70% 이상은 고혈압, 당뇨병, 암 병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노후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 성별, 연령별 고혈압 유병률. (국민건강영양조사, 2012)


▲ 성별 연령별 당뇨병 유병률 (국민건강영양조사, 2012)


지난주에 국회에서 정의당과 단체들이 노후실손의료보험 실태조사 결과와 사례를 발표했다. 실제로 가입 문의를 해보았지만 가입을 거부당한 한 노인은 '젊었을 때는 먹고사는 데 신경 쓰느라 보험가입을 못했다. 이제 늙어 병원비 걱정 때문에 노후실손보험에 가입하려 했는데, 고혈압과 디스크가 있다고 하니 보험사는 냉정히 가입을 거부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실제로 직접 가입문의를 해본 노인들의 분노는 컸다. 흔히 접하는 광고와 실제는 너무도 달랐기에 그렇다.

결국 노후실손의료보험은 정부가 목표한 '국민 노후 건강보장 강화' 정책을 충족하기는커녕, 오히려 노인을 우롱하는 보험에 가깝다. 이런 사보험으로 노후 의료비를 해결하라는 정책은 황당할 따름이다. 국가는 아무런 책임 없이 노인들이 각자 알아서 능력껏 사보험에 가입해서 해결하라는 것을, 정부는 '보장' 정책이라 한다.

노후 의료비, 사보험으로 해결 못해

이번 노후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되듯이, 민간의료보험과 같은 사보험으로 의료비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험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공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보험 가입에서 고위험군은 배제하고 건강한 사람들만 가려 가입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다보니 노인의 경우 무려 70% 이상이 가입 대상에서 배제되어 버린다.

또한 노후실손의료보험은 1년마다 갱신되는 상품이다. 매년 보험료는 오른다. 기존 실손의료보험의 경우를 보면, 실손보험료는 갱신할 때마다 폭등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40세에는 보험료가 1만 원 수준이지만, 40년 후인 80세에는 60만 원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금융위원회의 설명이다. 의료비의 대부분이 노후에 지출될 뿐만 아니라 실손의료보험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여 불필요한 과잉 진료가 유발되기에 더욱 그렇다.

노후 실손의료보험의 경우는 자기부담률을 높여 보험료가 기존 실손의료보험의 70% 수준으로 저렴하다. 그렇더라도 매년 보험료는 인상될 것이고, 나중에는 감당하기 벅찰 수준으로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후실손의료보험은 가입할 때부터 대부분의 노인들이 배제될 뿐 아니라, 운 좋게 가입이 가능하더라도 나이가 많아질수록 보험료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므로, 노인들이 노후실손보험으로 의료비를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현재 노인은 전체 인구의 12% 정도에 불과하지만, 건강보험 지출의 35%를 차지한다. 향후 고령화가 더 진행되면 전체 건강보험 지출의 절반 이상을 노인들이 지출하게 된다. 생애 의료비를 보면 평생 지출할 의료비의 60% 이상을 60세 이후에 지출한다. 이런 의료비 지출의 특성 때문에 사보험으로 노후 의료비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노후에 의료비 지출이 많은 만큼 보험료도 비쌀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보험료를 소득이 없는 노인이 감당하기란 어렵다. 게다가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보험사들은 보험 가입을 거부하기 일쑤다.

결국 유일한 해결책은 사보험이 아닌 국민건강보험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노후 의료비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민영의료체계를 갖춘 미국조차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서는 메디케어라는 공적 의료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5세 이상의 의료비 해결을 개인에게 맡겨서, 혹은 민간보험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렵기에 그렇다.

현재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2% 수준이다. 의료보장제도라기 보단 의료비 할인제도에 가깝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이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가구당 평균 20만 원이 넘는 민간의료보험을 지출하고 있다. 웬만한 중산층이라면 평균 30만~40만 원을 지출하고 있다. 만일 국민건강보험으로 대부분의 의료비를 해결할 수 있다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이유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최소한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할 이유는 없어진다.

▲ 정부는 노인실손보험 출시를 '국민 노후 보장 정책'으로 포장했지만, 사보험 정책은 노인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기에 부적절하다. ⓒ연합뉴스

건강보험료 더 내고 더 받는 '연대'가 해법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하기 위해 추가 재원을 확충해야 한다. 현재 60%대 초반 수준인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80%까지 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 건강보험의 재원인 국민, 국가, 기업이 각기 30%씩을 더 부담하면 된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지금 월 10만 원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면 3만 원 더 내어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80% 이상으로 올리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입원진료비의 보장률은 90% 이상 보장되고, 환자당 병원비에 연간 100만 원 상한제를 시행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 인상이 부담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의료불안이 해결되고, 실손의료보험과 같은 민간의료보험의 지출도 대폭 줄어들게 된다. 건강보험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건강보험의 재원 구조는 젊어서 능력이 있을 때 건강보험료를 부담하고, 노후에 주로 혜택을 보는 구조다. 건강보험은 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대체로 상이하다. 능력껏 부담하고, 필요껏 혜택받는 구조다. 이게 바로 사회구성원의 '연대'이다. 반면 사보험은 내가 부담하고, 내가 혜택받는 구조다. 보험사와 개인 간의 계약으로 이뤄지지, 사회구성원의 '연대'란 필요치 않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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