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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옆 '십상시'? 진짜는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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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옆 '십상시'? 진짜는 여기 있다

[프레시안 books] 미타무라 다이스케 <환관 이야기>

1.

미타무라 다이스케(三田村泰助)의 <환관 이야기>(아이필드, 2015년 1월 펴냄)는 은·주 때의 고대부터 명·청대의 근세에 이르기까지의 중국 역사에 대한 책이다. 21세기에는 환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2014년 늦가을 한국에서 <세계일보>의 보도가 이른바 '십상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래서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미타무라가 이 책을 지은 것은 반세기 전인 1963년의 일이지 않은가.

2.

ⓒ아이필드
저자는 고대 중국의 정복 왕조에서 피정복민을 거세해 궁중의 노예로 부린 환관 제도의 기원부터, 북경의 자금성에 앉아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던 최고 권력자의 '그림자 내각'이었던 최후의 환관들의 모습까지를 일별한다. 장구한 역사 속에서 환관은 '군주의 그림자'로 존재했다. 저자는 형영(形影)이라는 말로 이를 묘사해 낸다. 중국에서 환관이 없는 왕조는 없었고, 그래서 환관은 중국사의 도처에서 얼굴을 드러낸다.

불후의 역사서 <사기>를 지은 사마천이 전한(前漢) 때의 환관이었다. 종이를 발명해 인류의 정신문화 발전에 기여한 채륜은 후한(後漢)의 환관이었다. 중국 4대 기서로 꼽히는 <수호지> 속의 악당 동관도 송조(宋朝)의 환관이었다. 중국의 대항해시대를 연 명나라 때의 탐험가 정화 역시 환관이었다.

정화는 환관도 그냥 환관이 아니라, 아직도 무협지 속에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고 실제로도 존재했던 황제의 비밀경찰 '동창'의 책임자였던 거물 환관이다. 조선의 수양대군처럼 어린 조카를 죽이고 제위에 오른 영락제가 정화의 주인이었다. 영락제는 명조의 건국자 주원장의 4남이다. 명 태조 주원장은 현대의 총리 격인 재상 제도를 폐지하고 일종의 황제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강력한 독재자인 황제의 권력은 공식 비서 조직인 관료와 비공식 비서 조직인 환관에 의해 유지됐다. 동창을 창설한 것도 명 태조였다. (총리는 '얼굴 마담'으로 불리고, 살벌한 정보기관을 앞세운 공포정치로 독재 권력을 유지했던 다른 나라의 현대사와 헷갈려서는 안 된다.)

송나라 때를 배경으로 한 시내암의 소설 <수호지> 속에서 황제의 군대를 이끌고 양산박의 송강을 토벌하려던 장군 중 하나가 동관이었다. 송강도 동관도 역사상의 실존 인물이다. 군대를 지휘하는 용맹한 장군과 남성성을 잃은 환관은 현대인들의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연결되지 않지만, 사실 당나라 때부터 황제의 근위병을 지휘한 것은 환관들이었다. 특히 동관은 환관이 된 후에도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셌다고 한다. 동관의 직책은 소설 속에서도 정사 속에서도 추밀사다. 지방 군벌의 반란을 진압하고 통일 왕조를 세운 송 태조 조광윤은 역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구축하는 데 골몰해 지방 군벌을 억누를 강대한 중앙군을 육성했다. <수호지>의 주인공 중 하나인 임충은 '80만 금군의 무술 사범'으로 설정돼 있는데, '금군'이 바로 황제의 친위군인 중앙군이었다. 이 막강한 중앙군을 통솔한 것이 추밀원이다. 명목상의 총사령관은 황제지만, 추밀원의 장관인 추밀사는 군부 최고의 실권자였다. 그 자리에 앉았던 것이 환관인 동관이었다.

동아시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서 <사기>의 저자이자 이 책에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인 사마천은(심지어 그는 책 속에서 자신을 '태사공'으로 칭하고 있다. 에고가 얼마나 강한 인물이었을까?) 단순한 역사가가 아니라 황제의 그림자이자 실세였다. 미타무라는 이렇게 적고 있다.

(전한의) 무제는 환관 제도 위에다 매우 나쁜 선례를 얹혀놓았다. 궁형을 받은 사마천을 중서령에 임명한 것이다. 중서령은 내정의 비서실장이었다. (…)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중서령이 제도화되어 장차 큰 폐해를 가져오게 된다. 비서가 측근 세력이 되면 권세를 앞세우고 위엄으로 내리누르는 것은 어느 시대, 어떤 사회나 똑같다. 중서 제도로 환관이 자연스레 정무에 관여하게 되고 내정에서 상시 근무했으므로 측근 중 측근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대신이 황제에게 직접 명령을 받지 않고 그 사이에서 환관에게 전달받게 되면 일은 심각해진다. (136∼137쪽)

사족이지만, 현대인들로서는 한 무제가 사마천을 중서령에 임명한 것이 다른 측면에서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거세시킨 사내를 옆에 두고 비서실장으로 부렸다니, 자신에게 원한을 품으리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을까?


3.

이처럼 정화, 동관, 사마천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환관 뒤에는 독재자이며 강력한 권력자인 황제의 존재가 있었다. 전형적인 정복자이며 전사-왕(warrior-king)이었던 한 고조 유방도 말년에는 시름에 잠길 때 환관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책의 한 대목을 보자.

군주는 처음에 신의 대변자로서 발족됐다. 신, 그리고 군주의 정체도 절대로 인민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 신비한 불가사의로 둘러싸여 있을 때만 비로소 외경받는다. 그렇다면 인민을 대신해서 저 깊은 궁정에서 일할 자격이 있는 자는 누구일까? 외계와는 무연한 채 지하에서 묵고 있는 자, 가축적 인간인 환관 말고 적당한 자가 있을 리 없다. (38쪽)

좀 더 보자.

일단 군주가 되면 주변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고, 육친 대부분을 살해하거나 추방한다. 군주가 되기 위해선 비정함과 고독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들은 이미 보통의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이들과 본질적으로 죽이 맞는 자는 비인간적인 환관일 것이다.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보면 충성무비한 관료들이 기록돼 있지 않느냐고.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10세기 광둥성의 환관 왕국 남한의 군주는 "모든 신하들은 예외 없이 가정이 있으니 당연히 그들 자손의 일을 고려한다. 따라서 모든 것을 내던지고 군주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할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오로지 밤낮을 함께해 주는 환관만이 일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자"라고 했다. (45쪽)

역사서에서 악의 근원처럼 묘사되는 환관은 사실 제왕의 필요가 창조해낸 존재였다는 것이다. '환관의 악덕'이 아니라 사실은 전제군주제의 악덕이었던 셈이다.

권력자인 황제에게 환관은 "인간 가축"이자 통치의 도구였다. 저자는 명 태조 주원장이 황제 독재 체제를 구축한 이후의 상황에 대해 "재상 정치를 폐지하자 황제는 재상이 행하고 있던 사무를 인수하고 일체의 정무를 볼 의무를 짊어지게 됐다"면서 "결재는 황제가 내리는 게 원칙이어서 하루도 태만할 수 없었다. 서류를 보는 것만도 대단한 중노동이었는데 만일 게으름을 피우면 정무는 금세 지체되기 십상이었다. (…) 군주에게는 글재주가 있는 비서가 필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제의 공식 비서가 과거에 급제한 관료들이었고, 환관은 비공식 비서였다.

명나라에서 공식적인 환관의 역할은 관료들이 초벌 결재까지 해놓은 문서를 황제에게 운반하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다시 내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보를 다루는 동창에서 수집한 비밀 정보를 토대로 관료들의 의견과는 다른 결론을 끌어내고 황제에게 이를 충고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결과 "못된 환관이 나타나 동창을 좌지우지하며 정보를 날조하면 정권의 농단쯤은 아무 일도 아니"게 됐다. 이 같은 명나라의 상황에 대해 미타무라는 "측근 정치에서는 군주와의 공간적 거리가 그대로 권력 차이가 되어 나타난다"고 묘사했다. 명나라의 상황에 대한 기술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중국 환관제의 종말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온다. 이와 동시에 중국의 전제군주제도 종말을 맞았다. 역대 모든 중국 왕조의 몰락은 환관의 죽음을 동반했다. 이전 왕조의 왕족들이 생물학적으로 살해될 때 환관들이 함께 살해됐을 뿐 아니라, 공화정의 수립으로 수천 년을 이어온 '황제 통치'가 상징적 죽음을 맞이했을 때(청의 마지막 황제는 폐위됐을 뿐 생명은 부지했다) 환관 제도도 역사적 영면을 맞았다. 그 임종의 순간을 지킨 하시카와 도키오(橋川時雄)의 장송곡은 다음과 같았다. "그날 오후 자금성 북쪽 현무문에서 많은 환관들이 궤짝이나 자루를 등에 지거나 막대기에 꿰어 함께 들고서, 여자들이 우는 것처럼 가느다란 소리로 울면서 나가는 것을 보았다." 최후의 환관은 478명이었다고 한다.

4.

그러나 신적 권력자의 '인간 가축'으로 창조된 환관이 그 주인을 몰아내고 전권을 휘두르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후한 말 십상시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당나라에서도 환관이 고관대작이 되는 것이 제도적으로 가능했다. '양귀비의 남자'로 유명한 당 6대 황제 현종은 환관 고력사를 재상보다 높은 직책인 표기대장군에 임명했고, 당 숙종과 대종 때의 환관 이보국은 병부상서(국방부 장관)에 이어 재상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14대 황제인 문종은 환관 세력을 제거하려 친위 쿠데타 '감로의 변'을 일으켰으나 오히려 환관 세력에 의해 제압된다. 그 이후인 당 말기에는 "무종에서 소종까지 5명의 황제를 모두 환관이 옹립하게 되는 환관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1백 년 동안 9명의 황제가 즉위하는데, 7명은 환관이 양육했으며 그렇지 않은 다른 2명은 환관에게 살해됐다"고 미타무라는 적고 있다.

문종이 '감로의 변'을 일으켰을 당시 환관들의 우두머리였던 구자량이 남긴 말을 들어보자. 이른바 마키아벨리적 '제왕학'에 빗대 '환관의 정치학'이라 부를 만하다.

"천자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늘 마음껏 사치를 누리게 해 그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어야 하며, 날마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다른 일을 생각할 여유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뜻을 이룰 수 있었다. 결코 독서를 하게 하거나 유자와 친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군주가 전대의 흥망을 보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면 우리와는 멀어지게 된다." (211∼212쪽)

▲ 명나라 동창의 횡포를 배경으로 한 홍콩 영화 <신용문객잔>(1992년 작)의 한 장면. ⓒFilm Workshop Seasonal Film Corporation


5.

미타무라의 <환관 이야기>는 이처럼 중국사에 대한 책일 뿐이다. (되풀이하지만 '현대 문명국'의 사정과는 무관할 것이다. 아마도.) 중국 이외의 나라에 대한 기술은 짤막하다. 책에 나오는 것은 페르시아나 투르크 등 오리엔트 제국의 궁정 내관에 대한 언급 정도다. 그러면 옥시덴트에는 환관이 없었을까?

에우노코스(eunuchus)의 네트워크는 다른 어떤 네트워크보다도 배타적인 성질이 강했다. 비록 입 밖에는 내지 않더라도, 온전한 사내들에 대한 증오심이 거세된 환관들의 공통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한 귀결이지만, 이런 조직을 지배하는 감정은 증오심과 표리 관계에 있는 질투심이다. 그리고 질투는 쉽게 음모로 발전한다. 배타적 조직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염탐하는 첩보망으로 바뀌기 쉽다. 3세기의 로마 황제들은 병사들의 반발에 신경을 쓰지 않고 긴장을 늦추면 살해당했지만, 4세기의 로마 황제들은 환관들의 질투에 주의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환관이 없으면 계속 오리엔트화(化)하는 황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귀에 대고 소곤거리는 환관들의 말만 믿으면, 제국에 유익한 인재도 처형장으로 보내지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 鹽野七生 <로마인 이야기> 14권)

동양이건 서양이건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같은 작가에 따르면 로마 제정의 3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역시 원로원 의원이나 선출된 공직자들의 네트워크가 아닌, 노예 출신 비서관들을 활용해 제국을 통치했다. 물론 비서관들이라 해도 거세된 남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화정 시대에 2명의 집정관과 8명의 법무관, 300명의 원로원 의원들이 나눠 갖던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로마 황제의 '그림자 내각' 역시 중화 제국의 환관들과 비슷한 존재였다. 미타무라의 표현 중에서 찾자면, 이들은 "환관적 존재"다.

6.

중국 역사에 대해 서술한 책에서 왜 '환관'이라는 직접적 호명만으로는 부족한지, '환관적 존재'라는 비유적인 작명이 어째서 필요한지는 실로 크나큰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그 힌트는 책의 본문이 아닌 에필로그에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그들(환관)이 두 번 다시 자취를 보이지 않는 과거의 악몽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도 좋을까?"라고 독자들에게 물으며 "환관적 인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환관의 망령이 도처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문장도 나온다. 다음은 에필로그의 일부다.

가능한 한 상대의 정보는 손에 넣고 자신의 정보는 감추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국제 문제나 산업 스파이에서부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현상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곳에는 반드시 권력에 직속해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비서 그룹이 존재하게 돼 있다. 또한 권력자에 밀착해 정보를 쥐고 활개치는 패거리가 나타나게 된다. 그들이야말로 환관적 존재일 것이다. (…) 환관이 큰 역할을 한 당나라 때가 중국에서 행정조직을 가장 잘 정비한 시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거대한 조직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비밀 누설을 막고 하부조직 간의 대립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경영측에 직속한 기관의 역할은 점점 커질 것이다.

기업이든 국가든 권력에 직속한 채 권력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할 능력이 없는 측근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가 얼마나 큰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권력에 직속해 정보를 독점하는 측근 그룹에 내포된 환관적 존재는 현대와도 무관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견강부회인지 모르겠지만 독자들 가운데 주변을 둘러보거나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도 있지 않을까 싶다. (267∼269쪽)

이런, 여기까지 읽었으니 부득이 이 서평의 첫 문장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책은 단지 중국의 역사에 대해 쓴 책인 것만은 아니다. 중국의 역사와, 1960년대 일본의 기업 문화에 대한 책이다. 그뿐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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