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4년이 되어간다. 한때 기후변화의 대안이라며 강력하게 대두되던 '원자력의 신화'는 스스로 무너졌다. 이제 원자력발전이 안전하다는 원자력계의 이야기를 말 그대로 듣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동안 원자력발전을 에너지정책의 중심에 놓던 나라들도 재검토하게 됐고, 아예 탈핵을 기조로 한 방향전환을 하는 나라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할퀴고 간 상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고 당시 방출된 방사성물질은 대기 중으로 퍼져 후쿠시마 인근지역 뿐 아니라, 많은 지역들을 오염시켰다. 특히 많은 양의 방사성물질 오염수가 후쿠시마 앞바다로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지금도 후쿠시마 원전부지 내에는 28만 톤의 방사성오염수가 쌓여 있고, 여기에 매일 350톤의 지하수가 흘러들어 오염수가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쌓여 있는 방사성오염수가 지금도 상당 부분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본다
바다의 오염은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으로 이어졌다. 일본과 바다를 접하고 있고, 수산물 수입을 하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비상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 수입된 일본산 수산물에서도 방사성물질이 검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사성물질 세슘이 검출되어도, 기준치(2013년 9월 이전 세슘 370베크렐/kg, 이후 100베크렐/kg) 이하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 없이 전량 시중에 유통되었다.
이런 이유들로 아무리 미량이지만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수산물의 유통은 전체 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과 소비기피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SNS를 통해 소위 '방사능 괴담'까지 확산됐다. 문제가 계속 증폭되자, 어민들과 수산물상인들까지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2년 6개월 만인 2013년 9월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수산물 수입금지, 방사성물질 미량이라도 검출 시 추가핵종 검사 요구, 기준치 강화(세슘 370→100Bq/kg) 조치를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로 국민들의 불안감은 조금이나마 사그라질 수 있었다.
제한적이지만, 효과를 거둔 조치
정부의 제한적인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등의 조치는 상당부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량의 검출 시 추가 핵종검사를 요구하는 조치는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수산물들의 통관을 어렵게 만들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 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를 계기로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일본산 수산물의 국내반입 물량이 크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도별 일본산 수산물 수입 검사 및 반송현황에 따르면 2011~2013년까지 미량의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건수는 총 130건(3013톤)으로 모두 세관을 통과해 우리나라 시중에 유통됐다. 반송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반면 2013년 9월 조치 이후, 현재까지 일본산 수산물에서 미량의 방사성물질이 검출돼 국내에 유입된 사례는 집계되지 않았으며, 미량이 검출된 5건, 20.33톤은 모두 일본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국민의 안전을 외교적 거래로?
그러나 최근 일본산 방사능오염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이유는 2013년 9월부터 시행된 일본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가 기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를 우려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일단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수입재개 추진을 중단하지는 않고 있다.
농수축산물이나 식품의 안전성을 담당하는 부서가 아닌 외교부 담당자가 이 같은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외교부가 한일복교 50주년을 맞아 경색된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일본산 수산물 수입재개 검토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즉, 일본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까지 운운하며 우리 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압박하자 한일관계 개선용 카드로 일본산 수산물 수입재개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참으로 답답하고 화가 난다. 아무리 양국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달린 문제를 외교적 협상카드로 활용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는 사고 발생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수습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사고수습이 끝난다고 해도, 방사성물질의 오염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 당국자의 발언은 우리 국민의 안전을 무시한 폭언에 가깝다.
국민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
그동안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사고의 상황과 위험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비판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도쿄전력과 정부가 조사하는 방사능오염 조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음을 우려해, 스스로 방사능오염을 측정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많이 생겨났다.
최근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가 바다로 기준치 미만의 오염수를 방출하는 도쿄전력의 계획을 승인했다. 일본은 총리가 나서서 후쿠시마 산 농수산물을 소비해 후쿠시마를 살리자는 운동까지 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오염은 방치하고, 수용하는 것이 현재 일본 정부의 대책인 것이다.
지금 일본의 현실에서 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준을 다른 나라들도 받아들이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가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 외교부가 나서서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일본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려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외교부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 정부가 취한 안전조치를 외교적 논란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 아닌가.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는 합당한 대책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원산지 확인과 이력추적이 쉽지 않은 수산물의 유통과정을 감안하면,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일본산 수산물 국내 반입은 국내산은 물론 전체 수산물에 대한 불신과 기피현상으로 다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일본 정부의 'WTO 제소'를 핑계로 삼고 있으나, 그동안 주변국 어느 나라도 이 문제를 빌미로 수입금지 해제조치를 취한 일이 없다. 오히려 중국은 일본의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 주변 10개 현에 대한 모든 식품과 사료 수입을 중단했다. 대만은 5개 현의 모든 식품 금지와 그 이외 지역에서 수입되는 과일, 채소류, 음료수, 유제품 등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러시아도 후쿠시마 주변 8개현 수산물 및 수산가공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안전 문제를 외교의 거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더구나 아직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그 영향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이 판명될 때까지, 주변의 다른 나라들이 수입금지 등을 해제할 때까지 지금의 제한적인 조치를 섣불리 해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제발, 정부는 일본의 눈치 보지 말고, 국민들의 눈치부터 살펴라.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 바로 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