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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나쁜' 흑자 13조, 박근혜는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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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건강보험 '나쁜' 흑자 13조, 박근혜는 답하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13조, 1년간 무상의료 가능

지난해 누적 건강보험 재정 흑자가 12조 8000억 원에 이르렀다. 역사상 유례 없는 흑자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걱정하던 게 엊그제 같던데, 흑자 규모가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흑자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점차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 흑자를 당장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적립하겠다고 한다. 단지 박근혜 정부의 일부 공약을 이행하는 데만 사용할 계획이란다.

지금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충분하지 않다. 서민에게 큰 부담이 가는 본인부담금을 줄여야 한다. 이는 건강보험 흑자 분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사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을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우선 흑자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 흑자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해 질 듯하다.

흑자의 원인은 국민들의 의료 이용 감소

건강보험의 흑자 경향은 2011년부터 뚜렷해지기 시작하였다. 2011년 이후에는 재정 수입보다 지출이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이 분명해진다. 그러다 보니 흑자 폭이 점차 커졌다. 2011년에는 6000억 원, 2012년엔 3조 원, 2013년엔 3조6000억 원, 지난해에는 무려 4조6000억 원이 흑자였다.

▲ 자료 : 보건복지부. ⓒ프레시안
▲ 자료 : 보건복지부.

흑자의 원인이야 너무도 분명하다. 국민이 의료 이용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년 차기 연도의 재정 지출을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게 건강보험 지출 예산을 짠다. 그 지출 예산에 맞게 재정 수입 규모를 예상하고 건강보험료율을 조정한다. 그런데 애초 예상보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줄었다. 국민이 의료 이용량을 줄였기에 그렇다.

그간 정부는 건강보험료율을 매년 조금씩 인상해왔다. 지난해에는 건강보험료율이 5.99%이었고 올해에는 6.03%로 올랐다. 그런데도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변화가 거의 없다. 보장성 확대 없이 건강보험료율은 계속 인상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는 우리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가 있다. 의료비 지출이 높은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그로 인한 의료 이용량의 증가를 따라가기 위해선 건강보험료율이 조금씩 인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노인인구 비율은 12%이지만, 이들은 건강보험 재정의 35%정도를 사용한다. 조만간 노인인구 비중이 20%를 넘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의 절반 이상을 이들이 지출할 것이다.

국민의 의료이용량이 줄어든 이유는?

정부는 이렇게 건강보험 재정 지출 증가를 상쇄하기 위해 조금씩 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 수입을 늘려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갑자기 재정 지출이 예상보다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국민의 의료이용량 증가폭이 최근 급격히 둔화된 것이다. 13조 원에 이르는 누적 흑자가 발생하는 이유다. 그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의료 이용량 증가폭이 둔화된 것은 긍정적인 요인 때문일까, 부정적 요인 때문일까? 13조 원의 흑자는 좋은 흑자인가, 나쁜 흑자인가?

정부는 최근 의료 이용량의 증가폭이 줄어든 이유를 주로 긍정적인 요인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건강행태의 변화, 의료기술발전, 환경요인 개선, 건강한 고령화 등을 주목한 이유다. 물론 최근 국민의 건강 수준은 점차 향상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는 없다. 20년 전 70세의 건강 수준과 현재의 70세 건강 수준은 다르다. 향상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이런 긍정적 요인만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까? 특히 몇 년간 급격히 의료 이용량의 증가율이 둔화된 것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국민의 의료 이용량이 줄어든 다른 요인, 즉 부정적 요인도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최근의 의료이용량 증가율의 감소에는 이런 부정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현재 국민의료비 수준을 보면 보건의료비 지출은 외국보다 높지 않다. 국민의료비 지출 수준이 GDP 7.4%정도로 OECD 평균인 9.8%에 못 미친다. 그런데도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의료비 부담은 매우 크다. 왜냐면 국민의료비 지출의 상당을 개인이 직접 지출하고 있기에 그렇다. 건강보험과 같은 공적 방식의 의료비 지출이 적다는 것은 개인(환자)의 직접 부담과 같은 사적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62%라는 것은 나머지 38%를 국민(환자)이 직접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민간의료보험과 같은 사보험 지출이다. 현재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규모는 대략 연간 40조 원으로 GDP 3%에 이른다. 국민의료비 지출에 민간의료보험 지출을 합친다면, 우리 사회의 의료 관련 지출은 적은 편은 아니다. 더욱이 국민의료비에서 사적 지출 비중이 큰 데다, 사보험 지출은 전액 가계가 직접 부담해야 하니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의료비/사보험료 부담은 매우 크다.

과중한 사적 지출과 가계 소득 한계로 의료비 지출 여력 없어

그러다보니 가계 지출에서 보건의료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최근 가계소비 지출에서 보건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6%로 매우 높다. 이는 의료가 영리화되고 가계 파탄의 62%가 의료비 때문이라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만큼 가계가 갖고 있는 의료비 부담이 크다. 가족의 누군가 아프기라도 하면 먼저 병원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 자료 : 통계청. ⓒ프레시안

반면, 공적 의료보장제도가 탄탄한 국가들은 대부분의 의료비를 국가나 사회보험과 같은 공적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어, 가계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 부담은 매우 적다. 무상의료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은 우리 5분의 1수준도 되지 않는다.

▲ 자료 : 국제기구 자료를 토대로 필자 재구성(영국, 일본, 미국 2011년 기준, EU는 2010년, 스웨덴은 2008년 기준). ⓒ프레시안

이렇듯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 지출은 한계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60% 수준에 불과한 상태가 지속된 결과, 국민들은 이미 과중한 의료비 부담을 안고 있고, 이로 인해 더 의료비 지출을 늘릴 여력이 부족한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가계소득의 증가율도 대폭 둔화되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살림살이가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줄어들다보니, 가계에서 의료비 지출을 늘릴 형편이 되지 못한다. 건강보험의 지출이 12~13% 내외로 유지되던 와중에도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로 급격히 건강보험 지출이 줄어든 예가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의료 이용량 증가의 둔화는 가계 소득의 상황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이렇게 해서 생긴 대규모 흑자는 오히려 나쁜 흑자라 할 수 있다.

의료 이용량 증가율의 둔화가 집단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소득 수준별 양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서 소득 수준에 따른 의료 이용의 양극화가 매우 극심한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경제 불황은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연령에 따라서 본다면, 대체로 노인 연령층에서 의료 이용률 증가의 감소폭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의 건강보험 흑자가 의료 이용량 증가폭의 둔화로 나타난 결과임은 분명하다. 단, 의료 이용량이 둔화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겹쳐진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적어도 의료 이용량 둔화가 긍정적 요인 때문임을 확신하려면 병원비 부담으로 아파도 참는 국민은 없는 조건이 충족된 후에라야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다고 향후 매년 10%이상씩 건강보험 지출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급격한 고령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건강보험 재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긴 하지만, 증가율 자체는 점차 둔화될 수밖에 없다. 국민 소득, 특히 가계 소득증가율이 높지 않은 조건에서 건강보험 지출이 정률로 끝도 없이 증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흑자 12.8조 원, 1년간 무상의료가 가능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 흑자는 과중한 의료비 부담과 가계소득 정체로 인한 미래소득의 불확실성이 어우러져 의료 이용이 감소한 결과이다. 국민들이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아파도 참은 셈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하여 의료비 부담으로 의료 이용을 제때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 적립금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현재의 흑자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기껏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보장성 확대 정책에만 일부 사용하려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보장성 정책에 필요한 재원은 기껏 1년에 1.5조 원 수준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개선에 효과는 없다. 최근 3년 동안 연간 3조~4조 원의 흑자가 발생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여전히 흑자 재정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법적 적립금 필요성을 언급하는 정부의 주장은 핑계일 뿐이다. 실제로는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에 그런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지지기반과 정치적 입장을 살펴 보건데, 실제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예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로 의료비의 대부분을 건강보험 하나만으로 해결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더 이상 시민들이 실손의료보험, 암보험과 같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상당 부분 사라진다. 사보험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매출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재벌들이 이를 가만둘 리 만무하다. 친재벌 입장에 서 있는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대폭적인 확대 정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한편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건강보험의 재정은 대략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가 55%, 사업주 부담금이 30%, 국고지원이 15% 정도로 배분되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자면, 사업주 부담금과 국고지원액도 추가로 늘어난다. 그간 건강보험의 국고지원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써왔던 정부가 이를 달가워할 것 같진 않다.

따라서 정부의 의지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적 의지를 모으는 것으로 현재의 상태를 돌파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원회부터 4대 중증질환 공약에서 3대 비급여를 제외한 바 있다. 이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 시민사회단체가 공약 사기라며 강력히 비판하였고, 국민들의 비판적 여론에 밀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3대 비급여에 대한 개선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비록, 상급병실료와 간병료의 경우 큰 개선 내용은 내오지 못하였으나, 선택진료제(특진료)의 경우에는 실질적인 폐지로 가닥을 잡은 성과를 가져왔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적지 많다. 2005년 암부터 무상의료운동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건강보험재정 흑자가 1조 5000억 원이 발생한 바 있는데 이 재원을 대표적인 중증질환인 암질환부터 무상의료를 하자는 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그 결과 2004년 암질환의 보장률이 49.6%였던 것이 2006년엔 71%로 향상된 적이 있었다. 시민사회와 국민이 힘을 모은 결과였다.
현재의 12.8조 원의 재원이라면 역대 사례가 없을 정도로 대규모 흑자이다. 최소 1년 동안은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평균 80%까지 높일 수 있는 재원이다. 비급여를 전부 급여로 전환하고, 입원진료 보장률을 90%까지 높이고 연간 100만 원 상한제를 시행할 수 있다(외래진료 및 약값의 보장률은 현행 보장률 70%를 유지해도 충분하다).

2014년 건강보험 급여 지출이 42.6조 원이었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62%로 가정하면 총 진료비는 68.7조 원이며 그중 건강보험이 42.6조 원을, 국민이 본인부담금으로 26.1조 원을 부담했다. 만일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80%로 높이자면, 68.7조 원의 총 진료비 중 건강보험이 55조 원을, 국민이 13.7조 원가량을 추가로 부담하면 된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62%에서 80%로 높이는데 12.4조 원이면 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흑자 보장성에 전액 사용' 국민 운동 시작하자

12.8조 원의 흑자 재정은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하는 데 호조건을 마련해준다. 이 흑자 재원을 모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사용하자는 운동을 펴자. 당장 1년간 준 무상의료를 시행할 수 있다. 그 정도라면 월 7만~10만 원씩이나 지출하는 실손의료보험에 더 이상 가입할 필요조차 없다.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어, 의료불안이 해소될 뿐 아니라,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므로, 사보험료 지출도 대폭 줄어든다. 물론 단 1년간이다. 하지만, 단 1년 동안 무상의료를 경험한다면 이후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국민들은 지금보다 건강보험료를 더 부담하더라도 건강보험 하나만으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보험료 지출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오히려 가계실질소득이 향상될 것이다.

재정 흑자 12.8조 원! 건강보험 확대에 사용하자는 국민운동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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