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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맞이 대청소는 하늘의 뜻 거스른 국회부터!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37> 세계의 설날에 담긴 인간의 삶과 우주의 흐름

새해의 시작이 법제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양력 1월 1일로 고정된 서유럽, 아메리카와 달리 아시아는 1년 내내 곳곳에서 서로 다른 새해가 시작된다.

대개 2월에 찾아오는 설날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몽골, 베트남 등에서 '춘제', '차강사르', '테트' 등으로 불리며 성대한 축제로 치러진다. 3월 21일은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가 '노루즈', '나브로즈' 등으로 불리는 그들의 설 축제를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4월 중순에는 타이, 미얀마,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불교국들이 '송크란', '팅잔' 등으로 불리는 물 축제와 더불어 새해를 맞이한다. 가을에는 인도네시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국가들에서 '무하람'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새해 첫 달이 열린다.

이처럼 문화권별로 새해 첫날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아시아 대륙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곳인지 알 수 있다. 근대 이래 세계를 자기중심으로 통합해 나간 서유럽의 영향으로 이 모든 나라들이 양력(그레고리력)을 채용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시아 각국에서 양력 1월 1일은 의례적인 새해 첫날일 뿐 실제로는 고유한 '설날'을 참다운 새해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이고 몇 날 며칠에 걸쳐 떠들썩한 축제를 벌이곤 한다.

문화권별로 다양한 아시아 대륙의 설날, 공통점은 귀향과 새 출발

양력 1월 1일이 산업화를 무기로 세계를 석권한 서구의 패권을 상징하는 날이라면, 아시아 각국의 '설날'은 산업화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전통 문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날이다. 그래서 지역과 민족을 막론하고 '설날'의 공통 키워드는 '귀향'이다. 산업화의 대세에 밀려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면서 새 출발을 다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설날의 의미는 없다.

이러한 귀향을 위해 우리나라는 올해 주말 끼고 5일의 연휴를 국민에게 선물하고 있지만, 이것도 중국과 베트남에 비하면 짧다. 중국의 공식 휴일은 2월 18일부터 7일간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일요일인 2월 15일과 토요일인 28일을 대체 근무일로 지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기관에 국한된 것이고 민간 사업장은 한 달씩 휴가를 주는 곳도 적지 않다. 베트남은 노동법에 5일의 유급 휴일을 주도록 명문화해 놓고 올해에는 2월 15일부터 23일까지 무려 9일의 연휴를 노동자들에게 선사했다.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연인원 37억 명이 움직인다는 중국의 춘제 대이동과 베트남 전역을 수놓는 장엄한 오토바이 행렬은 이미 지구촌의 진풍경으로 손꼽힌 지 오래다. 그 옛날 수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백만 대군의 행렬이 경부고속도로를 꽉 메울 만큼 길었다는데, 요즘 설날의 '민족 대이동'은 마치 그 행군을 재현하는 듯하다. 이런 장관은 시기와 모양을 달리하여 3월, 4월, 10월에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잇달아 펼쳐질 예정이다.

이처럼 풍부한 의미와 빛깔을 지닌 '설날'에 비해 양력 1월 1일은 때만 되면 울려대는 자명종 소리처럼 무미건조한 시간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래서 해마다 그날이 오면 각종 매체에 '별 의미 없는 숫자 놀음일 뿐'이라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 주로 나이 한 살 더 먹기 싫은 중장년 필자들이 늘어놓는 푸념으로, 이유인즉슨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날인데 인위적으로 경계를 지어 놓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푸념이 통하는 것은 신정이 전통 속에 체화된 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력 1월 1일이 한 해의 첫날이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와 중국, 베트남의 설날은 태음력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이날은 달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1년 열두 차례의 날 가운데 하나이다. 그 열두 번의 초하루 가운데 '설날'이 한 해의 시작일로 점지 받은 까닭은 이날이 봄의 첫 번째 초하루이기 때문일 것이다. 설날은 절기상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 무렵에 오며, 올해는 얼음이 녹아내린다는 우수와 겹친다. 그래서 예로부터 설날을 '신춘(新春)'이라고 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설날은 기준도 분명한 데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온다는 점에서 엄동설한을 끼고 있는 양력 1월 1일에 비하면 새 출발의 느낌을 더 주는 것이 사실이다.

▲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설을 앞두고 세배 연습을 하고 있다(2015년 2월 16일, 대전 유성구 우리어린이집). ⓒ연합뉴스


춘분을 새해 첫날로 삼은 이란력, 동지를 더 중시한 서양 역법

달력이 인간의 삶을 우주의 흐름에 맞추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이라면, 우리의 설날보다 더 명확한 기준을 가진 시작일은 이란의 '노루즈'인 것 같다. 한때 세계 최고의 천문학을 발달시켰던 이란은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는 날인 춘분을 새해 첫날('노루즈')로 정해 놓았다. 양력에서는 춘분 날짜가 유동적이지만, 이란인은 태양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측해 '노루즈'가 항상 춘분과 일치하도록 달력을 조정하곤 한다.

이처럼 엄격한 '노루즈'는 밤보다 짧았던 낮이 밤을 따라잡기 시작하는 날이라는 점에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는 봄이 선이고 겨울이 악이라는 고대 이란(페르시아) 사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봄을 1년의 시작으로 보는 점에서 우리와도 일맥상통하는 이란력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란력과 이슬람력

이란력을 쓰지 않는 이슬람 국가들은 순태음력인 이슬람력을 사용한다. 이슬람력은 윤달을 넣어 양력과 맞추려는 시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1년이 354∼355일로 짧다. 따라서 30년이 흐르면 이란력과 1년 정도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란력이나 이슬람력이나 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 메카로부터 메디나로 이주한 서기 622년을 1년으로 삼지만, 서기 2015년이 이란력으로는 1393∼1394년이고 이슬람력으로는 1436∼1437년이다. 순태음력인 이슬람력은 계절이 별 의미가 없어 1년 열두 달 중 '금지'를 뜻하는 '무하람' 달을 으뜸 달로 삼고 있다. 이슬람력 1437년 무하람 1일은 서기 2015년 10월 15일이다.
이란력은 매우 정확한 태양력이기 때문에 1년의 길이나 절기 따위에서 양력과 대부분 일치한다. 단지 양력의 3월 20일이나 21일이 이란력에서는 1월 1일일 뿐이다. 그런데 대자연의 순환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춘분을 1월 1일로 정한 이란력과 달리 양력의 1월 1일은 뚜렷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 역법이 만들어진 역사를 봐도 이날을 한 해의 시작일로 삼은 것은 우연과 이른바 '귀차니즘'의 소산처럼 보일 뿐 자연의 운행과 일치시키려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로마력 → 율리우스력 → 그레고리력으로 이어지는 서양 역법의 변천 과정은 다른 어느 역법 못지않은 고뇌와 진통을 수반했다. (<억압과 저항의 '선사 시대' 넘어 '민중기원'은 온다> 참조) 그 과정에서 로마인이나 게르만인 모두 이란인 못지않게 춘분의 날짜를 고정시키기 위해 신경을 썼다. 그들도 이란인처럼 춘분을 봄의 시작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기독교가 정착된 뒤에는 춘분을 부활절 날짜 획정에 결정적인 절기로 여겼기 때문이다(오늘날 부활절은 춘분 후 첫 보름달 뒤에 오는 일요일).

그러나 서양 역법에서 춘분보다 더 중요한 절기는 동지였다.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사람들은 이를 '태양의 죽음'으로 인식했다. 동지가 지나면 서서히 낮이 길어지는데 이 현상은 곧 '태양의 부활'이었다. 그래서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동지를 '작은 설'로 불렀거니와 태양을 숭배하던 고대 로마인은 동지 직후를 태양절로 삼아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6세기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서력기원을 창시할 때 예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비정한 것은 이 같은 고대의 태양절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많은 학자들이 말한다. 동지가 12월 22일에 오는 경우가 많으니 크리스마스는 그때 죽은 태양이 사흘 만에 부활하는 날인 셈이다.

엑시구스가 예수 탄생일이 속한 해를 서기 1년으로 삼았는지 그다음 해를 서기 1년으로 삼았는지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기왕 인류의 역사를 예수 탄생 이전과 이후로 나눌 작정이었으면, 중세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예 크리스마스를 한 해의 첫날로 정하는 것은 어땠을까? 그랬다면 오늘날 우리가 양력 1월 1일(지금의 12월 25일)을 맞이하면서 춥다고 투덜거릴망정 그날을 단지 '숫자 놀음'이라고만 여기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태양이 죽었다가 부활한 날! 얼마나 멋진가? 그리고 우주의 거대한 순환에 몸을 맡기는 기분이 들어 얼마나 엄숙하고 황홀하겠는가?

자연의 섭리 되새기는 설날 앞두고 국민 뜻 거스른 국회

달력은 천체의 운행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인간의 삶과 연관 지어 주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달력에 기록된 한 해의 첫날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거대한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고 대자연과 함께 순환을 시작한다는 벅찬 감동을 선사해야 한다. 우리의 설날은 그런 역할을 하는 날이다. 춥고 어두운 겨울을 걷어내고 봄기운을 머금은 첫 달이 뜨는 날! 신춘의 기운을 가득 품고 대자연과 함께 순환의 첫발을 내딛는 날!

이런 설날이 그저 그런 '또 하나의 날'일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몸과 마음을 망쳐 왔던 잘못이 있으면 털어 버리고 다시 한 번 우주의 일부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때마침 설을 앞두고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 모여 국민이 거부한 저희 동료를 '대의민주주의'의 미명 아래 국무총리로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곧 하늘(자연)에 역행하는 것임을 그들은 정녕 몰랐을까? 하긴 새해의 순환을 시작하면서 떨쳐 버리고 갈 짐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주었다는 점에서는 그들도 나름의 역할을 한 것이리라.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역사에 비추어 오늘을 살피는 기획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의 의미를 새겨 보았으나 새해부터는 현대 한국 사회의 현안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되새겨 볼 예정이다. 필자는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9>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10> 러시아혁명의 교훈, 대중을 외면하면 진보도 없다
<11>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2> 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13> 개화파의 역사적 과오, 안중근이 씻어 내다
<14> 망령 되살린 수구의 '종북' 칼춤…6.29의 저주 풀어야
<15> 억압과 저항의 '선사 시대' 넘어 '민중기원'은 온다

<16> 부활하는 일제 망령…해법은 동학농민군 계승

<17> 박근혜·남재준, '푸에블로호 교훈' 잊었나

<18> 일본인들이여, 러일전쟁의 진실을 기억하라

<19> 166년 전 문서, 현대 한국의 비밀을 말하다

<20> 이것은 3.1운동이 갈구한 나라가 아니다

<21> 여성의 날,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생각한다

<22> FTA 경제 영토 3위? 기황후가 기가 막혀

<23> 추신수 둘러싼 '가증스런 피라미드'에 대한 단상

<24> 대한민국이 한 4.3 사과, 미국은 왜 안 하나

<25> 중국·베트남에 건넬 건 '한류'만이 아니다

<26> 영웅 없는 한국 현대사, 그럼에도 위대한 이유

<27> 표류하는 세월호 진실…'탁 치니 억' 떠오르는 이유

<28> '총기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역사학

<29> 제일 먼저 도망친 '거짓말' 대통령이 구국 영웅?

<30> '명량' 이순신 지도력? 여당도 야당도 자격 없다

<31> 미국보다 중국 섬기는 게 낫다? 위험한 착각

<32> 근현대사 축소? 아이들 발목 잡자는 '물귀신 작전'

<33> 한국 진보, 스타만 있고 팀은 없다

<34> 공자·석가·예수·마르크스가 공유한 꿈, 포기할 건가

<35> 정력 감퇴 커피? 테러에서 벗어날 길, 커피에 묻다

<36> 문재인의 '전면전', 승산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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