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뉴타운 및 재개발 조합의 해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의견 수렴 기한이 내년 1월 31일까지 1년 연장됐다. 이 기간 내에 주민 반대가 50%를 넘긴 조합은 해산할 수있다. 2012년 시행된 뉴타운 출구전략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이 출구전략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재개발 지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짚어본다. 편집자
1972년이었다. 김영순(77) 씨는 지금의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광진구 군자동 판자촌에서 살고 있었다. 4남매를 키우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의 어린이대공원은 한국 내 가장 좋은 골프장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마지막 황제 순종의 부인 순명황후의 능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해방 뒤 이 골프장에 세도가들이 몰렸다. 서울 안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골프장이 하루아침에 어린이대공원이 됐다.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차로 이동하다 군자동 골프장을 보고 크게 노했다고 한다. '조국 재건의 기치 아래 모두가 뼈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평일 낮에 저렇게 한가하게 골프 치는 인간들은 도대체 무슨 작자들이냐'는 것. '당장 저놈의 골프장 없애버리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불똥은 애매한 곳으로 튀었다. 김영순 씨처럼 골프장 인근에서 판잣집을 짓고 살던 주민들이었다. 골프장이 사라지고 어린이대공원이 만들어지면서 미관을 해치는 판잣집은 철거됐다. 그래도 정부가 '호의'는 베풀었다. 서울 외곽인 현재 양천구 신정네거리에 철거민의 터전을 만들어줬다. '입주권' 딱지 하나를 받고 이곳으로 쫓겨나다시피 이사 왔다. 1972년 8월의 일이다. 김 씨 막내가 채 백일도 안됐을 때였다. 포대기에 막내를 싸고 이곳으로 왔다.
그렇게 온 이주지는 가관이었다. 공동묘지가 바로 집터 바로 앞에 있었다. 정부에서 일괄 지급한 땅은 27평. 김 씨와 비슷한 처지의 철거민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군자동에서만이 아니라 뚝섬, 성남시 등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었다. 자신의 땅 영역표시를 위해 말뚝을 받고 새끼줄을 쳤다. 땅에는 포대를 깔고 하늘에는 천막을 쳐서 밤이슬을 피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돌 정도로 푹푹 발이 빠지는 진흙 산이 김 씨의 보금자리였다.
"악착같이 일해 내 집 마련했더니…"
급한 대로 판잣집을 짓고 1년 정도 생활했다. 돈을 조금 모았다. 구멍이 세 개 뚫린 블록 벽돌로 단층 임시 건물을 지었다. 돈이 없어 시멘트도 바르지 못했다. 벽돌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이쳤다.
악착같이 일했다. 가사도우미부터 시작해 호떡 장사, 부업으로 가발 정리 일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1970년대에는 커다란 채소시장이 지금의 용산전자상가 부지에 있었다. 거기서 '다라이'로(대야) 물건을 떼다 신정네거리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팔았다. 용산에서부터 신정까지는 발품을 팔았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자식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렇게 돈을 모아 판잣집에서 탈출하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 김 씨가 사는 3층 벽돌집이다. 은행 빚은 물론 전세까지 끼고 집을 지었다. 그 빚을 갚는데 또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내 집 하나 가진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돈을 갚아나갔다.
내 집이 '온전히' 내 집이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김 씨가 살던 신정네거리 지역은 2003년 서울시 뉴타운 지역 지정에 따라 2005년 뉴타운 추진위원회가 결성됐고 2009년 2월에 조합이 설립됐다. 김 씨가 사는 27평 건물을 내주면 33평 새 아파트를 준다고 했다. 분담금은 없다고 했다. 그 말에 넘어가 인감증명서를 조합에 넘겼다.
하지만 2010년 사업시행인가 때 1인당 평균 분담금은 약 1억 원이 되더니, 2011년 사업시행인가 변경 때는 약 1억8000만 원을 내야 했다. 매번 총회 때마다 천문학적으로 분담금이 상승했다. 알고보니 조합에서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분담금 규모를 속였던 것. 국공유지 매입비가 실제로는 409억 원이었으나 20억 원으로 축소해서 발표했다. 그렇게 늘어난 사업비가 약 923억 원이었다. 분담금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늙은 몸으로 더는 일할 기력도 없었다.
그나마 전세금을 다 갚고 월세로 돌려 노후를 사는 김 씨였다. 아파트로 지어질 경우, 노후 생계수단마저도 사라질 판이었다.
뒤늦게 문제를 알게 된 김 씨는 법원, 경찰서, 국회의원 사무실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영하 16도에 법원 앞에서 두 달 동안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읍소한 것.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대뿐이었다. 1인 시위를 하느라 척추협착증만 앓게 됐다.
김 씨는 "이렇게까지 내 집을 도둑질해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그래도 박정희는 우리에게 땅이라도 줬지만 지금은 그것도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 씨는 "노후를 생각해서 죽으라고 빚을 갚아 이제 좀 살 만하니 이 지경이 됐다"며 "결국, 자식 돈 받아 살아야 하는데 밥 먹는 게 가시 먹는 거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면철거 방식 바꾸겠다던 서울시, 그 결과는?
전면철거 방식을 바꾸겠다며 서울시가 지난 2012년 1월 30일 발표한 뉴타운 출구전략. 주민이 원하지 않으면 지구 지정을 해제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뉴타운을 포함한 서울 재개발구역 총 606곳 중에서 187곳(2015년 1월 기준)이 해제됐다. 토지 등 소유자 50% 이상이 동의할 경우 추진주체 해산과 구역해제가 가능하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성북구가 19곳으로 해제된 곳이 가장 많고 종로구 18곳, 중랑구 15곳 순이다. 반면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는 해제된 곳이 각각 1곳에 불과했다. 상대적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한 강북지역에 해제구역이 몰려있다. 부동산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재개발 사업이 더는 황금알을 낳지 못한다는 판단에 하나둘씩 재개발구역을 해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주민 간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지역도 상당하다. 김 씨 집이 위치한 신정 2-1 뉴타운 지역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조합 해산 동의서는 전체 조합원의 40% 밖에 모으지 못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뉴타운 사업을 찬성하는 주민이 절반 이상이라는 의미도 된다.
이계원 신정2-1 뉴타운 지역 '내재산수호정화위원회' 대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외지 투자 지분이 50%가 넘는 곳이 많아 출구정책 3년이 지난 지금도 해산된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며 "추진위도 구성이 안 된 초기 단계의 정비구역을 제외하고는 정비구역에서 해제되는 곳이 드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신정2-1 뉴타운 지역도 실거주자는 49%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뉴타운 및 재개발 조합의 해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의견 수렴 기한이 내년 1월31일까지 1년 연장됐다. 이 기간 내에 주민 반대가 50%를 넘긴 조합은 해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김 씨와 같은 상황에서는 기한이 연장된다 해도 재개발 지역 해산이 쉽지 않다. 생계를 책임지는 주민들이 스스로 힘으로 50% 이상의 반대동의서를 모으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추진주체가 있는 340곳 중 해제된 곳은 26곳(2014년 2월 기준)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재개발행정개혁포럼과 서울시뉴타운재개발비상대책위원회연합 등은 정비구역 구역해제를 위한 주민동의율 기준을 낮추고 '과도한 부담'으로만 명시돼 모호한 지자체장의 직권해제 기준도 구체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조치 없이 무턱대고 뉴타운 및 재개발 조합의 해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의견 수렴 기한만 연장한다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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