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어린 딸의 영정 사진을 하루라도 빨리 분향소에 놓고 싶은 엄마가 있다. 딸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라는 엄마가 있다. 그것이 남은 소원이자 숙제라고 말하며, 엄마는 그 말이 기막히고 서러워 또 무너진다.
다른 아이들은 이제 열아홉살이 돼 갓 주민등록증을 받았는데, 영원히 열여덟일 수밖에 없는 딸은 아직 차가운 맹골수도 바다 밑에 있다. 그래서 여전히, 진도 팽목항은 '기다림의 장소'다.
"우리 딸 빨리 나와…엄마랑 집에 가야지"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희생자 가족들의 도보 행진이 14일 진도 팽목항에서 마무리 됐다. 꼬박 19박20일, 500킬로미터를 걸어 이곳까지 왔다.
먼저 보낸 아이를 그리는 아버지가, "엄마가 해줄 게 이것 밖에 없다"는 엄마가, 단원고 '2학년11반'이 기꺼이 되어주기로 한 시민들이, 자신들이 받았던 따뜻한 손길을 돌려주고 싶다는 쌍용차 해고자들이 긴 여정에 함께했다. 지난달 26일 안산 합동분향소를 출발한 행진단은 이날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 수백 명으로 규모가 크게 늘었다.
도보행진단이 마침내 팽목항에 들어서고, 곧이어 '온전한 세월호 인양을 위한 팽목항 문화제'가 시작됐다. 전국 각지에서 서른대가 넘는 '기다림의 버스'가 모여들었다. 단원고 생존 학생 27명도 함께 팽목항을 찾았다.
'눈물의 문화제'였다. 자식을 삼킨 잔인한 바다 앞에 다시 선 희생자 유족들은 아파서 울고, 실종자 가족들은 그리움에 울고, 전국에서 모여든 3000여 명의 시민들은 그 모습이 안타까워 울었다.
"이영숙님, 권재근님, 어린 혁규야, 영인아, 다윤아, 현철아, 은화야,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바다를 향해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이름을 부르며 문화제가 시작됐다. 이날 오전, 실종자 가족들과 유족들은 어선을 빌려 세월호 침몰 현장에 다녀왔다. 바지선도, 구조 장비도 모두 철수한 망망한 바다에서, 세월호 침몰 현장임을 알리는 노란 부표만이 가족들을 맞았다.
"오늘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이 305일째입니다. 제 딸이, 아직 50미터 아래 바다에 있어요. 저도 그 물 안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 물이 너무 추울 것 같아서, 우리 딸 꺼내줘야 할 것 같아서…그런데 저만 왔습니다. 딸하고 같이 못 오고 저만 돌아왔습니다. 아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엉엉 울다가만 돌아왔습니다."
단원고 실종자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발언 도중 몇 번이나 통곡하고, 무너졌다. "4월16일 전원 구조했다는 말만 믿고, 우리 딸 살아 있는 줄 알고 젖은 옷 갈아입히려고 내려왔다"고 했다. 제주도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는 딸은 305일째 오지 않고 있다.
이 씨는 "대통령이 마지막 한 명까지 구하겠다고 국민을 상대로 약속했으니, 이젠 선체를 온전히 인양해 남은 실종자를 찾아 달라"며 "제가 은화를 집으로 데려가야, 참사 이후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은화 오빠, 지금도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그 아이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나라다,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는 나라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 계신 분들이 우리 은화를 장례식장으로 보내 달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선체 인양이 곧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인양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예은이 아빠' 유경근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문화제 참가자들을 향해 "세월호 선체 인양 비용이 얼마인지 아는가"라고 질문한 뒤 몇몇 답변이 나오자 "숫자를 말씀하시는 분들은 틀렸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이웃이라면 얼마가 들어가든 무조건 해야하는 것이 선체 인양"이라고 강조했다.
전명선 가족협의회 대표도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주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라며 "정부와 여당은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고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종자 허다윤 학생의 어머니 박은미 씨는 16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할 예정이다.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1인 시위 및 장기간 노숙농성을 이어갔지만, 실종자 가족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것은 처음이다. 하루빨리 딸을 찾아, "딸의 뼛조각이라도 껴안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도보행진과 함께 시작된 선체 인양 촉구 서명운동도 이미 행진 종료 이틀 전 당초 목표치였던 5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엄마가 끝까지 기다릴게"…떠나지 못한 사람들
지난달 14일 팽목항에 문을 연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는 296명의 영정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해맑은 아이들의 사진들 가운데, 사진이 없는 9개의 빈 자리가 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다. 실종자 이름 옆엔 사진 대신 그리움에 사무친 글귀가 있다.
"내 사랑 다윤아, 엄마는 너를 끝까지 기다릴게".
"여보, 배 좀 들어올려요."
"은화야, 너랑 나랑 바꿀 수 있다면…."
실종자들이 긴 수학여행을 마치고 뭍으로 돌아온 날, 이 글귀들은 그 때서야 사진으로 바뀔 것이다.
짙은 어둠이 깔린 팽목항. 문화제의 마지막 순서로 희생자들을 넋을 위로하기 위한 3000개의 노란 풍선이 일제히 하늘로 올랐다. 컨테이너 가건물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숙소에도 다시 불이 켜졌다. '기다림의 장소' 팽목항에 306번째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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