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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촛불 때 죽었어봐…'글로벌 코리아' 못 외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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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 "촛불 때 죽었어봐…'글로벌 코리아' 못 외쳤지"

[MB의 시간과 비용] <3> 정의당 박원석 의원 "억하심정으로 쓴 책"

"기록물 자체로 가치는 있다. 그러나 읽는데 곤혹스럽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시간>을 읽으며 내놓은 총평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화제다. 퇴임한 지 2년 만에 이런 회고록을 냈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그 내용이 황당해서 그렇다. 누군가는 이를 '공상과학소설'로, 또 누군가는 이를 '공소장에 앞선 피의자 조서'로 표현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이 회고록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 어디까지 우리가 믿을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조금 더 세밀하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대통령 회고록이 갖는 무게 때문이다. 이 회고록과 무관하게 <프레시안>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와 함께 지난해부터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자체적인 검증 작업을 벌여왔다. 그 작업을 묶어서 낸 책이 <MB의 비용>이다.

'MB의 시간과 비용'이라는 기획은 철저하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 평가를 위한 기획이다. 회고록 중 크게 논란이 된 한미 쇠고기 협상, 대북 관계, 외교 안보 문제, 4대강 사업 평가 등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조목조목 따져봤다. 많은 독자들을 대신해 <대통령의 시간>을 낱낱이 해체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MB의 시간과 비용' 3편에서는 정의당 박원석 의원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박 의원은 2008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 처장으로 광우병국민대책위원회 공동상황실장을 지냈으며, 그해 11월 촛불집회 주도 혐의로 구속돼 5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편집자

MB의 시간과 비용

박원석 정의당 의원 "대통령의 시간? 자화자찬의 시간!"

프레시안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어떻게 봤나.

박원석 :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말하지 못했던 내용을 회고록을 통해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회고록이라면, 재임 당시에 공과(功過)에 대해서 돌아보고 평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MB의 회고록은 초지일관 자화자찬이다. 제목을 왜 <대통령의 시간>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자아도취의 시간'이나 '자화자찬의 시간'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회고록에도 나오지만, 이 대통령은 2008년 촛불 정국 이후 "국정지지율이 20퍼센트 초반으로 떨어지며 국정 운영의 동력이 급격히 상실됐다"(126페이지). 그로 인해 5년 임기 내내 제대로 된 통치 행위를 못한 데 대한 억하심정이 있는 것 같다.

▲ 정의당 박원석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김 본부장이 대답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와 통화하면서 이면 합의를 했습니다. 그걸로 담화 발표까지 했습니다. 2007년 9월 APEC을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또 한 번 구두로 합의했습니다. 그 내용과 문서가 유출됐답니다. 특정위험부위(SRM)를 제외하고는 월령 제한 없이 전부 수입하겠다는 내용이라 합니다. 보커스는 한국 정부가 그 합의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입니다."(<대통령의 시간> 229페이지)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의 주장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되면서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습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 직을 수행한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해서 국민들께서 모르는 이면합의는 그때도 지금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런 약속도 없었나? 있었습니다.


그 약속이 국민들께서 모르는 숨어있는 약속이었나? 아닙니다. 국민들께서 모두 아시는 약속, 바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께서 2007.4.2.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혔던 내용입니다. 지금 불거진 오해는 한미 정상 간의 동일한 통화 내용을 두고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이면합의'라는 시각상의 차이 때문으로 보입니다.(김종훈 의원이 낸 2월 2일 자 보도자료)


프레시안 : 2008년 촛불 정국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다. 논란이 있을 만한 부분을 꼽자면?

박원석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해 MB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 부시 대통령과 이면 합의를 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이 지난 2일 "국민들께서 모르는 이면 합의는 그때도 지금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 말이 맞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했던 기자회견도 행간을 가지고 이면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를 말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에 국민적 반발이 컸다. 특히 쇠고기 수입은 의약품, 자동차, 스크린 쿼터 등과 함께 미국이 제시한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였다. 2006년 3월 한국과 미국의 1차 사전준비 협의 당시 FTA보다 선결조건을 진행하는데 더 큰 후폭풍이 예상됐었다.(2006년 1월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하고 생후 30개월 미만인 쇠고기 중 뼈를 제외한 부분에 한해 수입을 재개했다. 또 한국영화의 의무 상영일수인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했다. 이를 기점으로 참여 정부가 한·미 FTA 개시를 위해 미국에 '퍼주기'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편집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PD수첩>이 방영되자 중고생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광우병 괴담이 퍼져 나갔다. 주로 연예인 팬클럽 등을 중심으로 유포된 내용은 "광우병은 공기로도 감염된다", "화장품이나 젤라틴 성분이 들어간 생리대, 기저귀로도 전염된다", "쇠고기를 다룬 칼과 도마로 수돗물까지 오염된다" 등으로 그야말로 괴담이었다.(<대통령의 시간> 115~116페이지)


(☞ "아이들 먼저 든 촛불, 어른들이 이어 받다")

(☞ 한미FTA-美쇠고기 관계가 애매? 가카의 '인증샷' 보라)


MB 회고록 중 촛불집회와 관련한 부분을 보면, 이 전 대통령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 미국이 2008년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획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MB는 광우병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괴담'이라고 치부했다. 사실 광우병(BSE)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 다음으로 광우병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 미국이다.(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6월까지 "미국인이 인간광우병(vCJD)으로 사망한 사례는 지금까지 4명"이다. 영국은 1995년 최초로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177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 편집자)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제기된 주장이다. 미국이 자국 내에서 판매하는 쇠고기는 30개월 이하 어린 송아지 고기다. 한·미FTA 협상 당시 일본은 뼈를 포함한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대만은 뼈를 제외한 살코기만으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했다.(일본은 2013년 2월 생후 30개월 미만 쇠고기로 제한 월령을 확대했다. 편집자) 그러나 중국은 지금까지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 2008년 '100만 촛불집회'의 시작은 10대 소녀들이었다. ⓒ프레시안

두 번째는 추가 협상 부분이다. 국민의 요구에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였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구국의 결단을 한 것처럼 기술한 것도 어이없는 대목 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

고민 끝에 추가 협상에 관한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국민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6월 19일 나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광우병 사태에 대한 입장을 다시 밝혔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한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정부의 확고한 보장도 확실히 받아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미국과의 재협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가 이익을 지키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후유증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대통령의 시간> 124페이지)
'재협상 약속'은 국 끓여 먹었나!

프레시안 :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통치 위기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인양 말하고 있다. 촛불집회 당시 나온 '한반도 대운하 반대', '공공부분 민영화 반대'와 같은 국민의 목소리를 전 정권을 비롯한 정치 세력의 개입으로 보고 있다.

박원석 : 그렇다. 또 당시에는 '소통 부족'과 국민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뿐 아니라, 대선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2008년 12월 '4대강 사업'이라고 말을 바꿈. 편집자)를 일방 추진하고, 일제고사 및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 공공부분 민영화(MB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라는 말을 사용. 편집자) 등을 밀어붙였다.

이런 것이 복합돼서 통치 초반부터 국민들의 반발과 반대가 있었던 것인데, 마치 전 정권이 부추겨서 벌어진 것처럼 말했다. 참여연대만 해도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그 어떤 후원도 받지 않는 단체였다. 당시 촛불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단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정말 잘못된 시각이다.

오히려 당시 야당은 촛불집회 초반에 참여하지 못했다. 사실은 끝까지 무기력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촛불집회에 나왔다가 오히려 국민에게 욕먹고 항의받는 상황이었다. 집회 후반에 가서나 개별적으로 조금씩 개입했다. 특히 전임 정부를 꾸렸던 노무현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개입했다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통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얘길 늘어놓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집회가 정권 퇴진 주장 양상으로 변하자 일각에서는 17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대선 불복 세력'이 집회를 주도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선 불복 세력이 건강을 염려하는 순수한 국민들의 뜻에 편승해 대통령과 정권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 세력들이 집회에 개입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117페이지)

그런데 시민단체의 지지를 기반으로 탄생한 전임 정부는 시민단체와 가까운 관계를 지속했다. 정권 교체로 이 두 주체가 다시 분리돼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광우병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우병 사태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보조금으로 운영됐다는 사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대통령의 시간> 129페이지)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논란의 정점에서 약속한 게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정운천 농림수산부 장관 등이 2008년 5월 "주변국과 미국이 한국과 동일 조건으로 쇠고기 수입 협상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재협상한다"고 밝힌 것이다.(그해 8월 한나라당은 "일본, 대만 등 우리 주변국 간 쇠고기 협상 결과가 한·미 협상 결과에 비해 개방의 폭이 축소될 경우 (그 조건과 동일하게) 재협상하도록 한다"고 야당과 합의했다. 편집자)

2009년 11월 대만은 월령과 부위 제한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다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에 부딪혔다. 이듬해 1월 대만 의회는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 중 광우병 위험이 높은 6개 부위(내장, 분쇄육, 뇌, 척수, 눈, 머리뼈 등)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식품위생관리법을 수정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현재까지도 30개월 미만 소의 뇌, 눈, 머리뼈, 척수, 등배신경절, 척주, 회장원위부(소장 끝 50cm 부위)를 제외한 내장을 수입하고 있다.


▲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타결을 풍자하는 패러디들. ⓒ디시인사이드

프레시안 : 2008년 7월 10일 이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 오찬에서 예정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가 갑자기 굴비로 교체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들도 내심 불안했던 것 아닐까?

박원석 : 당시 청와대의 미국산 쇠고기 사용 여부가 화제가 됐다. MB가 청와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겠다던 약속을 지켰는지 모르겠다.(웃음) 2008년 11월 광우병 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돼 6개월 정도 교도소 생활을 했다. 그때 쇠고기 국이 나오면 먹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안내 방송이 나오더라.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는다"며 "쇠고기는 호주산이고 돼지고기는 덴마크 산"이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조차도 못 미더워서 안 먹었다. 지금도 미국산 쇠고기를 파는 식당에 안 간다.

오바마? 내 동생 아이가!

프레시안 : 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오바마와 형제의 정을 나누었다"(216페이지)며 둘 사이 우정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 한·미 FTA에 반대했"(217페이지)던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날(2009년 11월 19일) 회담을 계기로 한·미 FTA에 대한 오바마의 입장은 큰 진전을 보였다"(221페이지)고 주장했다.

박원석 :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미국 정부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조차 모른 채 무식한 얘길 한 것이다. 부시 전 대통령 시절부터 양자 간 무역협상을 확대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부합된 일괄된 정책이다. 약간의 기조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오바마는 자동차 공업이 발달한 동부와 북부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FTA 협상에서 '무엇을 더 강조할 것인가' 차이는 있었겠지만, 오바마가 한미 FTA에 회의적이었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미국은 회의적이었는데 우리가 서둘러서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말밖에 안 된다. 스스로가 '천하의 매국노'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밖에 안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무엇보다 한·미 FTA 발효 후 대미 무역흑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협상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한다. 2011년 107억 달러였던 대미 무역흑자는, FTA 발효 첫해인 2012년에는 152억 달러, 2013년에는 206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미 의회에서 "한·미 FTA가 미국에 불리한 조건으로 타결됐다"는 불만 섞인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도 한국에 대한 서비스 흑자가 2011년 54억 달러에서 2012년 65억 달러로 늘었다. 양국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를 낸 것이다.(<대통령의 시간> 234페이지)
프레시안 : 이 전 대통령은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 발효 후 대미 무역흑자가 크게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의 서비스 흑자가 1년 새 10억 달러가 늘었다며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사실인가?

박원석 : 검증해야 하는 사안이다. 설사 대미 무역흑자가 상승했더라도, 한·미 FTA의 효과라고 단정하긴 쉽지 않다. 그리고 한·미 FTA처럼 이른바 개방의 폭이 높은 '고강도 FTA'의 영향이라는 것은 장기간을 두고 평가해야 한다. 농업과 자동차, 서비스 분야 등 꼼꼼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쓴 것 같다. 한·미 FTA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 전문가들도 평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신중론이 많다. 그런데 한·미 FTA 이후 대미 무역 흑자가 크게 늘어 한국 경제가 어떤 계기를 맞은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MB 말대로라면, 지금 한국 경제가 왜 이런가.

* '한·미 FTA 반대 전도사'라고 불린 정태인 칼폴라니연구소 창립 준비위원은 2013년 3월 <프레시안> 칼럼에서 한·미 FTA 발효 2년의 성과를 "성공적"이라고 자평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2012년과 2013년 대미수출 증가율이 대세계수출 증가율보다 높다는 점을 한·미 FTA의 성과로 꼽고 있다며, "발효 이전 2008년과 2009년의 대미 수출증가율이 각각 32.3%와 12.8%로, 지난 2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부처럼 단순 수치만 놓고 얘기한다면, 한미 FTA 때문에 수출증가율이 형편없이 낮아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비난했다. 편집자


국민을 '사랑으로' 보우하사? 어디서 약을!
김두우 전 홍보수석이 전한 에피소드

대통령 : 이젠 내 의견을 좀 이야기하려 해요. () 다섯째는 좀 멜랑콜리해. <모든 정책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 여기에는 친서민정책, 복지, 신고졸시대까지 넣자 이거지. 일반 회고록에 쓰지 않는 용어로 말이야. (대통령은 칠판에 계속 써나갔다.)

강만수 : 좋은 것 같습니다. (강 전 장관의 말에 참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통령 : () '모든 정책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 이것도 이유가 있어요.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을 때 왜 강하게 밀고 나가기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힘이 있다고 때려잡는 건 군사독재 방식이지. 시위대를 전부 연행하고 구속하고, 그러다가 한두 명이라도 죽었다고 생각해봐요. 그랬으면 나는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코리아를 외칠 수 없게 됐을 거야.

- <대통령의 시간> 부록 <오늘 대통령에게 깨졌다>(김두우 지음) 63~64페이지
프레시안 : 김두우 전 홍보수석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 회고록 제목이 <모든 정책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가 될 뻔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를 과잉진압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사람이 죽었더라면 '글로벌 코리아'를 외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박원석 : 이른바 '글로벌 코리아'를 외치려고 강하게 진압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사실 초반에는 MB 정부가 대응을 못했다. 더군다나 시위 주체가 시민사회단체나 재야단체가 아니라, 청소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파악도 못했다. '재협상만은 끝내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니까 '사실상 재협상'이라며 물러났다.


ⓒ프레시안

하지만 2008년 5월 말, 6월 초부터 사실상 폭력 진압을 했다. 경찰은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살수차와 사복 체포조를 동원해 200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연행했다. 경찰은 도로에 누운 집회 참가자를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당시 이학영 YMCA 사무총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경우 어깨와 갈비뼈가 골절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부상을 입었다.(5월 31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참가자들과 경찰이 밤샘 대치를 했고, 6.10 민주항쟁 21주년이었던 6월 10일은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다. 그해 7월 31일 기준으로 1045명이 연행됐으며, 이 중 900여 명이 집시법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편집자)


이런 게 폭력 진압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폭력 진압이라는 말인가. '죽은 사람'이 있어야 폭력 진압을 인정할 것인지, 거꾸로 묻고 싶다. 이듬해 1월 용산 철거민에 대해 공권력이 폭력 진압을 해, 민간인 5명과 경찰 1명 등 아까운 생명이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회고록에 이 같은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른바 '공안 통치'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사실 '공안 통치'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촛불집회를 겪은 후 통치 기조를 '공안 통치'로 바꿨고 임기 끝까지 계속됐다.

프레시안 : '공안 통치' 기조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신형철 전 대법관은 '촛불집회'와 관련한 재판 배당 방식을 바꾸는 등 재판에 개입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던 '미네르바'는 전기통신기본법으로, 'G20 포스터 쥐 그림 사건'의 대학 강사는 형법 제141조 공용물손괴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사실상 잠자고 있던 법을 부활시켰다.

박원석 : 촛불집회 후, 정상적인 통치가 불가능해 지면서 위와 같은 양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책 제목으로 고려했다든 '사랑이 있었다'라는 것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

9월 위기설이란 그해 5~6월의 광우병 파문이 진정되면서 곧바로 등장했다. 2008년 9월 14일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이 67억 달러인데, 외국인들이 이 채권을 모두 처분하면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미네르바'라는 네티즌이 중심이 되어 야당과 일부 언론, 심지어는 일부 학자들까지 이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당시 외환보유고가 2,400억 달러에 이르는 상황에서 67억 달러의 단기 채권으로 외환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9월 위기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광우병 사태를 주도하던 세력 중 일부가 9월 위기설을 매개로 인터넷을 이용해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강만수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부를 비난했다.(<대통령의 시간> 134~135페이지)


'미네르바' 박대성 씨는 2009년 1월 허위 사실 유포죄로 검찰에 구속됐지만,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박 씨에 대한 구속 수사가 '정부의 심기가 불편해서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MB는 회고록에서도 박 씨가 주장한 '9월 위기설'을 괴담으로 치부하고 있다. '미네르바 같은 비전문가에게 나라 경제가 휘둘렸다'는 식이다. MB가 국민을 우매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법률을 적용해 입에 재갈 물리는 식으로 구속한 것 자체가 '공안 통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부에 대한 정상적이고 건전한 비판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속 좁은 통치 행태를 보였다.


(☞ 미네르바 구속, 국제적 논란거리로 확산 일로)

(☞ '공권력의 역습'…경찰, '천안함 미네르바' 무차별 조사)


▲ 정의당 박원석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정부 정책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촛불을 드는 시민을 국가 전복을 꾀하는 '위협 세력'으로 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시민들의 저항은 당연한데…. 반면, MB는 젊은 시절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것은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인식이 아닌가.

박원석 : '국민주권'을 모르는 사람이다. 촛불집회 때 가장 많이 나왔던 구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였다. 현대 사회에서 '통치'는 거버넌스(governance), 즉 '협치(協治)'다. 이 전 대통령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 권력자로 가져야 할 태도가 없는 사람이다. 기업가 출신 출신으로, 국회의원 생활도 얼마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비즈니스로, 딜(deal)로, 장사하겠다는 습관이 강하다. 그래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나 '자원외교'와 같은 발상이 나온 거다. 특히 자원외교와 관련해서는 국가를 사유화하는 거대한 부정부패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MB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 이지영 씨가 운영했던 금융회사가 각종 이권에 개입을 많이 했다는 의혹도 나왔지 않느냐.

사실, 2008년 촛불 정국 마지막에 고민이 많았다. '이 세력을 어디로 귀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촛불집회의 성과는 2010년 지방선거 승리로 나타났다고 본다. 당시 무상급식 논쟁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MB 정부를 거치며 '우리가 이대로 물질적 가치에 연연하며 경쟁적으로 사는 게 행복한 삶이 아니구나. 함께 사는 삶이 더 나은 것이구나'라는 의식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자 되자'라는 뉴타운 광풍에서 '더불어 함께 살자'로 넘어온 것이다. 이런 변화가 박근혜 정부를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좌 클릭할 수 있게 견인한 것이다. 지금 보면 지키지도 않을 공약(空約)으로, 겉모습만 화장한 거였지만….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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