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원시에서 공공미술관 명칭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그 중심인 화성행궁 앞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이 미술관은 수원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현대산업개발(대표이사 정몽규)이 건축해 수원시에 '기부채납'하는 미술관이다. 올해 6월 완공해 10월에 개관할 예정이다.
이 공공미술관의 명칭이 현재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잠정 결론이 난 상태다. 이에 수원지역의 문화예술인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문화와 공공성을 헤치는 명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네 차례에 걸쳐 관련 기고를 싣는다. 두 번째 기고는 배봉균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장이 보내왔다. 편집자.
공공미술관을 시민의 품으로 연속 기고
공립박물관(미술관 포함)은 시·도·군 등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하여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1995년에 출범한 지방정부는 해당 시군의 정체성 부각, 지방문화 활성화 및 문화 콘텐츠 구축, 문화 사업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 고취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건립하는 데 적극적이다.
다른 시군과 비교해 박물관과 미술관 불모지였던 수원시도 때늦은 감은 있지만, 2000년대 후반에 수원역사박물관과 화성박물관 건립을 통해 공립박물관을 보유하게 됐다. 수원시는 도서관 건립에도 적극적이어서 지금은 OECD 기준에 걸맞은 도서관 수를 확보했다. 여기에 공립미술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을 때는 드디어 문화기반 시설의 3대 요소를 갖춘다는 면에서 시민사회의 기대가 컸다.
그런데 요즘 수원의 문화예술계가 시끄럽다. 화성행궁 광장 옆에 건립되는 미술관 명칭 때문이다. 논란이 되는 미술관은 현대산업개발이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에 아이파크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얻은 개발이익 환수금을 바탕으로 하는, 소위 기부 채납 형식으로 건립되고 있다. 즉, 순수한 기부가 아니라 특정 기업이 택지를 아파트로 개발하면서 얻는 이익금 중의 일부를 공공적인 면에서 환원하는 것이다.
수원시와 현대산업개발은 개발이익 환수금 용도로 미술관을 건립하기로 합의하면서, 수원시는 부지를 제공하고 건축물은 현대산업개발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미술관을 짓고 있다. 향후 운영은 전적으로 수원시가 전담한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박물관 분류 조항을 보면,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미술관은 공립박물관(미술관 포함)으로 칭한다. 이러한 공립미술관의 명칭을 수원시는 특정 기업의 아파트 브랜드가 표기된 '수원 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명명하기로 했다고 한다.
특정 기업 이름 딴 공립박물관·미술관, 국내 179관 중 전무…국제 망신
공립미술관의 이름은 보통 미술관의 정체성이나 지역성 등을 고려하여 공공성을 띠게 정한다. 우리나라에는 박물관·미술관이 1000관이 넘는다. 이중 공립박물관·미술관은 179관(한국박물관협회, 2015년)으로, 해당 기관의 명칭을 특정 기업이나 브랜드를 사용한 경우는 한 군데도 없다.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기 어렵다. 혹자는 기업명이나 기업의 브랜드로 명칭을 하고 있는 미술관이 있다고 얘기한다. 금호미술관(금호그룹 운영)이나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태평양) 등이 이에 해당되나, 이들 미술관은 해당 기업에서 운영하는 사립미술관이다. 건립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업에서 부담하므로,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공립미술관과는 거리가 있다.
수원시의 경우 특정기업이 기부 채납하는 곳은 미술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기도시공사가 광교지구를 개발하면서 '광교박물관'을, SK건설은 정자지구 내 '수원SK 아트리움'을 기부 채납하였다. 도서관의 경우도 아이파크 아파트 내에 건립된 '한림도서관' 등이 있다. 명칭 선정이 제각각으로 일관성이 없다.
수원시가 건립하고자 하는 미술관은 공립미술관이다. 따라서 공공성을 담보로 한 미술관 명칭에 특정 기업 브랜드가 들어가는 것은 문화행정의 부재를 뜻한다. 더 나아가 이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조롱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남은 과제 산적했는데, 이름 갖고 싸우지 말자
그동안 공립박물관(미술관 포함) 건립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우려했던 대표적인 문제점은 해당 기관의 정체성 확립, 전문 인력 채용, 재정 자립도, 유물 구입 등이었다. 기관의 명칭은 당연히 공공성을 기본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명칭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적은 거의 없다. 수원시만 유독 명칭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또한 미술관이 올해 10월경에 개관한다는 정보 말고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시민사회는 미술관의 정확한 정체성, 작품 구입 계획, 전문 인력 채용 계획 등의 정보를 수원시청에 요구했지만, 수원시는 정확한 답변을 피하고 있다. 열린 행정을 지향하는 수원시가 문화행정에서만큼은 불투명성을 보이고 있다.
미술관의 공공성을 확보하자고 지적하는 수원 문화예술계와 시민의 요구가 정당하고 상식적인 행동임을 이제 수원시도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 미술관 건립 과정에서 풀어가야 할 과제가 많다. 더 이상 논란거리조차 되지 않았던 미술관의 명칭은 공공성을 담보로 한 선에서 일단락하고, 수원시는 남은 과제를 해결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 '수원시민미술관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화성행궁 앞 공공미술관 명칭, 아파트 브랜드 사용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 온라인 서명운동 바로가기 http://goo.gl/KpKX4d)
* 이 글은 수원 지역 신문인 <대안미디어 너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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