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부가 북한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발단은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합참의장)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그는 1월 30일 "북한, 베트남, 쿠바, 브라질 군부와 예비적인 협상에 돌입하고 있다"며 "우리는 육군뿐만 아니라 해공군 합동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북·러 간 당장 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실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러시아 합참의장의 발언은 러시아의 각 군 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이 참여한 고위급 군사회의에서 나온 것이다. 사전 정지 작업 없이 즉흥적으로 나온 발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과 러시아의 최근 접촉 양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년 11월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로광철 조선인민군 부총참모장이 수행했다. 그는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작전총국장을 만났다. 북한 특사단 귀국 직후 <노동신문>은 2015년에 정치적, 경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군사 분야에서도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합동군사훈련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합동군사훈련 실시가 북한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 세계에서 고립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여러 나라들과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나는 고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과시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특히 러시아 군부가 거론한 북한, 베트남, 쿠바, 브라질은 하나같이 미국의 신경을 건드릴 수 있는 상대들이다.
북·러 합동군사훈련은 미국의 '북한 고립시키기'에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베트남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선포한 미국이 가장 공들이고 있는 나라이다. 쿠바와 브라질은 미국의 뒷마당에 해당된다. 이들 나라가 러시아의 군사 훈련 제의를 수용해 실제 훈련에 나설지는 미지수이지만,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수는 있다.
북한 역시 러시아와의 합동군사훈련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 군사훈련을 통해 북한군의 훈련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고, 미·소 냉전 종식 및 소련 붕괴 이후 유명무실해진 북·러 군사동맹의 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북·러 군사훈련 추진은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대응의 성격을 지닌다. 북한이 이걸 카드화하면서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러시아와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과 러시아가 합동훈련을 강행했을 때 떠안게 될 부담도 만만치 않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외세와 야합한' 것이라고 맹비난해왔다. 이에 따라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훈련을 하게 되면, 제 발등을 찍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미, 혹은 한미일 군사훈련을 비난해온 가장 중요한 근거 하나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 참가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 역시 북한의 군사 모험주의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이에 따라 북한과의 군사훈련은 '북한 두둔하기'로 비춰질 수 있고,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이미지는 추가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올해 북·러 관계는 동북아 정세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5월 9일 러시아의 70주년 전승 기념일에 참석할 것인가의 여부와 함께 북·러 군사훈련 문제까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방러 문제는 양국 간의 외교적 사안인 만큼 한국이 관여할 사안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군사훈련은 다르다. 러시아가 소련을 승계한 이후 북·러 간의 군사훈련은 없었다. 그만큼 군사훈련이 실시되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냉전 시대로 뒷걸음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군사훈련으로 물꼬가 트이면 러시아의 무기 수출 등 북·러 군사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북·러 군사훈련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다각도로 노력해야 한다. 러시아에 우려 사항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한편, 솔선수범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한미군사훈련 중지가 어렵다면, 그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로우키'(언론 비공개)를 유지함으로써 대북, 대러 발언권을 강화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남북대화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70년 전 한반도는 미국이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할하자는 제안을 소련이 수용하고, 미군이 남쪽을, 소련군이 북쪽을 점령하면서 분단되고 말았다. 70년이 지난 오늘날 한반도의 남쪽에선 한미연합군이, 북쪽에선 북·러 양국군이 훈련을 실시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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