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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 중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

[용산, 다시 진실③] 결정적 증거물은 사라진 재판

1월 20일, 어느덧 날짜도 희미해졌다. 그러나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을 남긴 용산참사를 우리의 기억에서 지울 수는 없다. 국가의 폭력으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죽었으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6년이 흘렀다. 억울하게 책임을 떠안아야 했던 구속 철거민들이 감옥에서 보낸 서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책임을 묻기 위한 싸움을 다시 시작한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그래서 밝혀야 할 진실의 과제가 무엇인지 5회에 걸쳐 짚어줄 것이다. 편집자

2013년 1월 5명의 철거민들이 특별사면으로 출소하였다. 과연 용산 남일당 건물 위 망루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 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출소한 철거민들을 만나서 그 날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철거민들의 기억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시간이 꽤나 지나서 잊힌 것도 있고 혹은 사고의 충격으로 인해서 불완전하게 기억되는 것도 있었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같은 경험을 하고도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5명의 철거민들의 느꼈던 감정 역시 너무나 달랐다. 그 가운데 김창수 씨의 기억은 용산참사 출소자들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였다.

2009년 1월 20일 오전 7시 30분. 아직 겨울해가 오르기 전, 푸르스름한 새벽의 용산

김창수 씨는 자신에게 닥친 일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형님, 잘 끝나면 술이나 한 잔합시다"하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죽고, 자신은 범죄자가 되어, 심문을 받고 있었다. 젖은 외투에서는 최루액 냄새가 역겹게 올라왔고, 지옥불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는 죽은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이 앞섰고, 추위와 공포로 지친 자신의 몸보다는 암투병을 하고 있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걱정되어 눈물만 하염없이 나왔다. 이틀 동안 이어지는 검찰조서과정에서 무어라 답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조서를 마치며, 검사가 한 말은 또렷이 기억이 났다. "산 사람 중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 검사는 이 말을 끝으로 이틀간의 조서를 마쳤다.

김창수 씨는 검사의 말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이미 검사는 방을 나가버린 후였다. 그 후로 담당검사가 바뀌었고, 또 다시 몇 차례의 검찰 심문이 이어졌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김창수 씨는 어쩐 일인지 검사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이 자꾸 생각했다. '과연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결국 우리들에게 이 모든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거구나.'

▲용산참사 이후 농성자들 중 5명이 구속되었다. 김창수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연합뉴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불길했던 예감은 사라졌다.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들은 망루 안에서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고, 화재전문가들은 화재의 원인이 너무 다양해서 '원인불상', 즉 알 수 없다고 증언했다. 경찰들의 진압작전이 얼마나 부적절했는지도 낱낱이 드러났다. 심지어 변호인단은 철거민들의 무죄를 자신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창수 씨 본인 역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용산 철거민들과 연대하기 위해서 다른 지역에서 왔을 뿐인데, 설마 중형이 떨어지기야 하겠냐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김창수 씨는 최후진술문을 준비할 때, 문뜩 그 때 그 검사의 말에 뒤늦은 답을 하고 싶어졌다. "용산참사 이후 철거민들을 테러집단, 폭력집단, 반정부단체라고 낙인찍은 경찰과 정치인들에 의해서 저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돕고 연대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저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동지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을 욕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면서 이 용산참사가 철거민에게 책임이 없음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렇게라도 검사의 말에 답을 한 것 같아서, 가슴 속이 조금 후련해졌다.

그러나 김창수 씨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검찰의 기소내용처럼, 용산 남일당 화재의 원인이나 경찰들이 다치거나 죽은 것 역시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 때문이라며, 이 모든 것의 책임을 모두 철거민 탓으로 돌렸다. 터무니없는 결과였다. 그렇게 해서 김창수 씨는 4년형을 선고받았다. 처음에 입감되었을 때, 김창수 씨는 도무지 자신의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덧없는 후회와 원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잘못된 시점을 찾아 하루에도 수없이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보았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13년 1월 특별사면으로 출소하였다. 김창수 씨는 출소한 이후로는, 놓쳐버린 시간들을 되찾으려는 듯, 용산참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 애썼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아보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문득 그 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 사람 중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던, 그 검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신을 힐책하게 되었다. '왜 철거민인 우리가 책임져야 하냐고 반박하지 못했을까. 왜 국가의 책임이라고 반박하지 못했을까. 그 때 내가 답을 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철거민인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김창수 씨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던, 그 때만 생각하면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울화가 치민다. 왜 김창수 씨는 검사가 마지막으로 건넨 그 말에 속절없는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일까. 김창수 씨는 그 말이 큰 상처로 남은 이유에 대해, "힘없는 철거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국가는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을 했다. 아니, 어쩌면 김창수 씨가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철거민들을 희생양 삼아 교묘히 빠져나가는 국가권력의 민낯을 마주한 절망감과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5시간의 채증, 왜 망루안 채증만 존재하지 않을까?

나 역시 용산참사 다큐인 <두 개의 문>을 제작할 당시, 국가권력에 대한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꼈었다. 특히 검찰에서 증거로 제출한 채증영상을 볼 때 더욱 그랬다. 2009년 1월 20일 당시, 경찰은 용산 망루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채증반을 운영했다. 진압과정은 동영상과 사진으로 채증 되어 있다. 경찰들의 채증은 철거민의 시위의 전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여, 진압 이후 사법적 처리의 근거로 삼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채증은 참사 전날 망루를 짓시 시작한 2009년 1월 19일 오전부터 시작되어, 2009년 1월 20일 8시경 화재에 이르기까지 약 25시간이 넘는 시간의 전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참사가 일어났던 당일에는 중부서, 금천서, 혜화서, 서대문서, 관악서 등의 경찰서에서 차출된 19명의 경찰들은 9조개로 나뉘어, 남일당 건물 진입구, 신용산 빌딩 옥상, 현대자동차 앞 등에서 당시의 상황을 채증하였다. 그러나 애초에 컨테이너에 탑승하여 망루 안으로 진입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경찰은 경찰특공대의 반대에 부딪혀 탑승하지 못하였다. 대신 경찰특공대 채증조가 직접 채증을 하겠다며 컨테이너에 탑승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인터넷 방송 <칼라TV>가 촬영한 영상에도 분명하게 찍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1심 재판당시, 변호인단 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경찰특공대가 채증한 영상이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심지어는 제출 증거자료에서는 결정적인 장면이 삭제된 것으로 추측된다. 2009년 1월 20일 당시, 컨테이너 진압조와 남일당 건물 진입조로 나뉘어 작전이 이루어졌다. 컨테이너 진압조가 준비를 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남일당 건물 입구를 통해 망루로 진입하는 작전이 먼저 시작되었다. 이때 경찰특공대와 함께 채증조가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칼라TV>, <사자후TV> 등에 포착되었다.

2009년 용산참사 1심 재판 당시, 경찰 측에서 제출한 증거 제63호가 바로 남일당 건물을 통해서 진입하는 과정이 담겨있는 영상이었다. 그러나 증거 제63호의 경우, 경찰특공대들이 망루 앞까지 진입하기 전까지만 촬영되어 있다. 즉 경찰특공대가 망루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뚝' 끊겼다가, 망루 건너편 옥상에서 화재를 촬영한 영상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망루 화재를 전후한, 망루 안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들이 없다. 변호인단은 이점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면서 경찰 채증영상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경찰 측은 망루 안에서 촬영한 영상이 없다거나 혹은 화재 앞뒤로는 촬영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일관하였다.

하지만 경찰채증의 목적이 시위대의 위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기록되는 것이고, 또한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에 타고 망루로 진입하는 영상이나 혹은 남일당 건물로 진입하여 망루에 접근하는 영상으로 보아, 망루 안에서 촬영된 채증영상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을 검찰에서 증거로서 제시하지 않은 연유에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경찰에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것이 담겨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검찰이 망루화재의 원인을 철거민들에게 전가하려 했었던 만큼, 분명히 증거자료로서 제시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감춰진 경찰채증 영상과 그 내용이 드러남으로써, 용산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용산재판과정에서 검찰은 망루의 화재가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주장하였다. 그 증거로서 망루 3층에 보이는 불빛이 발화점이라며 영상들을 제시하였다. 검찰의 주장이 타당한지, 증거로서 제시된 영상들을 한 프레임씩 돌려보았다. 그러나 아무 보아도 그들의 주장이 터무니 없어보였다. 불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화염병이라고 볼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 설령 그 불빛이 화염병이었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화재의 원인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망루 농성 중에 있던 철거민들 가운데 한 명이 화염병에 불을 붙여서 던졌고, 그 화염병으로 인해서 화재가 나서 경찰관 1명이 죽고 많은 경찰들이 부상을 당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재판 당시, 경찰특공대들은 망루 안에서는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였다. 각 층의 가로세로 6미터, 높이 2미터 밖에 되지 않은 좁은 망루 안에서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화염병이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서 화재전문가들은 다양한 화재원인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특히 유증기가 가득 찬 망루 안에서는 자그마한 불꽃으로도 폭발성 화재가 날 수 있었다. 만약 유증기가 가득 찬 망루 안에서 발전기가 돌고 있었다면 발전기가 돌면서 일으키는 스파크는 발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 스파크에는 겨울철 정전기도 지적되었다. 겨울처럼 건조한 날씨에, 주유소처럼 유증기가 가득찬 곳에서는 정전기와 같은 불꽃에도 화재가 날 수 있다고 했다.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불이 났다는 경찰특공대나 철거민들의 진술은 폭발성 화재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발전기의 과열, 전기누전이나 합선 등도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검찰의 기소 내용대로 농성 중인 철거민들의 화염병이 화재의 원인이라고 추정하고 판단하였고, 그 외에는 다른 화재의 원인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화염병이 높은 확률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률로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여기서 더욱 어처무니 없는 것은 사건의 현장에서 수거해간 발전기의 스위치(온-오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스위치)는 분실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고의로 발전의 스위치를 발전기 본체에서 떼어냈거나 파괴한 것은 아닌가? 이렇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단서들이 재판에서 증거로서 제출되지 않았다.

김창수 씨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는 신문에서 '용산'이라는 글씨만 보아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했다. 남일당 근처로는 지나가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또한 자신이 용산참사로 인해서 억울하게 감옥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속 깊은 친구에게만 털어놓았다고 했다. 아직도 가끔 망루 안에 있었던 일을 꿈을 꾸기도 하고 검사가 마지막에 남긴 말인 "산 사람 중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에 속절없이 대답을 해본다고 했다. 김창수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검사가 나에게도 말을 건넨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산 사람 중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

* 이 글은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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