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미리 여행자의 몸을 만들고, 언어를 배우고, 사람을 공부하고 세상을 탐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짐을 꾸린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그곳과 이곳을 연결하는 작업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그냥 여행이 아니라 여행학교 '로드스꼴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2009년부터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 안에 문을 연 로드스꼴라 김현아 대표교사를 만나 여행과 배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는 <민들레> 장희숙 편집장이 진행했으며, 최혜빈 인턴기자가 정리했다.
여행의 출발은 '신발 가지런히 놓기' 연습에서부터
'로드스꼴라'는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는 학교예요. 15세에서 22세까지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모여서 여행을 통해 배움이라는 게 뭔지, 산다는 건 뭔지, 또 더불어 산다는 건 뭔지 질문하는 과정을 경험해요. 로드스꼴라'가 '여행' 중심의 학교를 꾸리는 이유는 낯선 곳에서 낯선 만남을 통해서 일상을 낯설게 보는 힘이 길러지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일상이란 마치 공기 같은 거잖아요. 냉장고를 열면 음식이 있고, 학교 끝나면 돌아갈 집이 있고, 옷장을 열면 옷이 수두룩하고. 하지만 여행은 내가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요. 여행자는 낯선 곳에 가면 오늘 밤 어디서 잘지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내가 뭘 먹고 있지? 이런 걸 질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죠.
첫 학기에 '여행자의 몸만들기'라는 걸 하는데 예를 들어 '신발 가지런히 놓기'부터 배워요. 집에선 엄마가 챙겨주지만, 여행지에서는 내가 신발을 막 벗어놨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지는구나, 혹은 신발을 잃어버릴 수 있구나 자각하고,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거죠.
그리고 여행을 가면 지역이 보여요. 아이들과 미국 하와이에 갔는데, 현지인들이 "제주도 강정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요?" 하고 물어서 애들이 깜짝 놀랐어요. 한국에서 강정 이야기를 접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하와이에서 그런 질문을 받으니 본인도 관심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로드스꼴라는 네트워크가 굉장히 중요한 학교죠. 하와이에서 강정에 대한 질문을 받은 건 그곳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로드스꼴라가 일반적인 여행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학교로 운영될 수 있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가 각 지역마다 있는 네트워크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요즘 여행은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잖아요. 청소년 여행 프로그램도 수없이 많고, 웬만한 대안학교들도 다 여행을 가요. 로드스꼴라는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거기서 들었던 이야기를 여기에 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다른 프로그램들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로망을 버리고 떠나라!
'여행학교'라고 하면 사람들이 갖는 로망이 있어요. '아, 정말 좋을 거 같아'라고 하는데, 사실 여행을 그리 많이 하는 학교는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청소년기에 너무 많은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 학기에 한 번, 한 달 정도 여행을 가요. 나머지 시간은 여행을 준비하거나, 돌아와서 정리하는 시간이고요.
기본 학제는 2년이에요. 입학하면 첫 학기에는 '마을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국내에 있는 지역에 들어가 살아보는 경험을 해요. 해마다 장소는 바뀌는데 전라남도 구례를 예로 들면, 조선 시대에는 이곳이 왜군이 전라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라 많은 전투가 있었고, 그 속에서 영웅이 탄생했다는 역사적인 맥락을 짚어가면서 현재 구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꿈과 욕망까지도 살펴보는 거예요. '우리밀운동본부'에서 최초로 공장을 설립한 지역이라서 농업에 대한 가치관이 선명하다는 특색도 있어요. 농부를 만나서 '농사란 무엇인가', '왜 우리 쌀을 먹어야 하는가'를 질문하며 식량 주권 문제도 나누고, 논에서 모내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요. 자연스럽게 옆집 할아버지를 찾아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역사적인 '여순사건'(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국군 제14연대가 봉기를 일으켜 정부 진압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양민 등 2500여 명이 숨진 사건)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기도 해요. 마을 지도도 만들고, 그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죠.
저희가 '여행자의 몸'을 만들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또 하나가 '듣기 연습'이에요. 저는 아이들에게 일부러라도 "이야기가 정말 재밌어요!" 하는 표정을 지으라고 해요. 그 지역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가진 분들을 초대하면, 아이들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얘기를 들으러 들어가요. 그럼 대부분의 어른들은 "요새도 이런 청소년이 있네"라고 하시죠. 애들이 눈을 빛내며 들으니까 말씀하시는 분도 신이 나셔서 네댓 시간을 이어가기도 하고, 나중에 쌀이며 음식을 보내주기도 하세요. 첫 학기 때 그렇게 여행에 필요한 '듣는 몸'을 만들고 나면 외국의 어느 마을에 가서도 잘 들는 힘이 생기죠.
그 외에도 여행자의 몸을 만들기 위해서 욕실에서 머리카락을 깨끗하게 훔쳐서 버리는 것, 바닥에 물기를 닦는 것처럼 아주 기본적인 일들도 연습해요. 기본이 안 지켜지면 그 숙소는 다시 못 간다고 설명하죠. 처음 1기 때는 이런 교육을 안 했는데, 도보여행 중에 밥상 앞에서 아무 말 없이 각자 밥 먹는 걸 보고 탄식을 했어요. '밥상머리 문화'가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저는 아이들이 음식을 앞에 놓고 함께 먹자고 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다른 사람에게 밥 한 끼 차려주며 나눠 먹을 줄 아는 정신을 아이들이 몸속 깊이 익히면 좋겠어요.
2학기 때는 역사를 주제로 여행해요. 한 발은 나와 걸치고 다른 한 발은 다른 나라에 걸치고 있는 '디아스포라(Diaspora)'나 한인 이민사와 고려족에 대해서 공부하죠. 이번에 6기들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블라디보스토크를 관통하며 여행했어요. 이러면 이야기가 굉장히 방대해지죠. 구한 말로 시작해 러시아 혁명사까지 들어오는 거예요. 소련이 해체되면서 생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죠. 그래서 2학기는 '죽음의 학기'라고도 해요. 굉장히 많은 공부를 해야 해요. 방학 필독서가 15권정도 돼요. 필독서 읽고, 강의 듣고, 독후감 쓰고, 그렇게 여행을 떠나면 비로소 거기서 겪어야 했던 국외자로서의 우즈베키스탄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번엔 '나의 이야기'를 들어요. 그게 바로 '생애사(生涯史) 프로젝트'예요.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소녀 시절의 예쁜 웃음을 찾아내고 할아버지에게 야망을 품었던 청년 시절을 찾아내는 것. 그걸로 책을 만들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선물하는 것이 2학기 때 하는 주요한 작업이죠.
그러고 나면 3학기는 '동시대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21세기를 같이 사는 사람들 속에 나는 어디쯤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공정무역이나 복지를 들여다봐요. 나라가 어떤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 모두가 적절하게 행복할 수 있는가를 보러 영국이나, 핀란드 쪽으로 가요. 로드스꼴라 등록금은 다른 대안학교들과 비슷한데, 여행 경비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다른 점이죠. 여행 경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능한 한 알뜰한 여행을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4학기 땐 여행을 가지 않고, 지금까지의 여행을 정리해서 자기 작업을 하는 시간이에요. 책으로 결과를 만드는 사람은 출판까지 경험해보기도 하고, 음반도 내고, 콘서트도 하고, 연극이나 뮤지컬도 해요. 가능한 한 자기가 가진 최고치의 능력을 끌어내는 거예요.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절절하니까 이곳에 와서 난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양쪽의 이야기가 만나는 거죠. 그래서 교사들은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데?"를 끝까지 질문해요. 지난한 과정에 꽃을 피우는 즐거움이 있음을 경험하는 학기이기도 하죠.
그렇게 4학기가 끝나면 인턴이라는 선택 과정 1년이 있어요. 처음에 '트래블러스맵'이라는 공정여행회사와 같이 출발했어요. 친구들이 노동하는 어른들을 가까이서 봤으면 좋겠다, 일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재미를 같이 느껴봤으면 좋겠다 싶어서, 인턴을 시작했는데 아이들에게 엄청난 성장의 계기가 되더라고요. 인턴이 되면 지각도 안 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굉장히 달라져요.
올해엔 주말 여행학교를…
그런데 2015년엔 신입생을 안 뽑을 예정이에요. 이 고민은 사실, 교사들로부터 시작되었어요. 여행학교 교사라는 건 정말 만만치 않은 직업이거든요. 물론 일반학교나 대안학교 교사들도 힘들지만 로드스꼴라 교사들은 학기를 진행하는 중에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틈을 내어 필독서 읽고, 답사 다녀오고, 인프라를 만들어 프로그램 연결하고, 다음 기수를 준비하느라 정말 힘이 들어요. 해야 할 일이 태산이라 방학 때도 온전히 충전할 시간이 없어요. 저도 지금 6년 차인데 체력이 바닥이 났어요. 분명 아이들은 재밌어하고, 이 과정에서 많이 성장해요. 다만 교사가 너무 힘든 시스템인데 그럼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대표교사로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올해는 정기 신입생은 받지 않고 '주말 로드스꼴라'를 해보려고 해요. 일반학교를 다니면서도 이런 공부를 해보고 싶은 친구들과 모여서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번의 여행을 가고,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으로 진행하려고요. 이번 학기 아이들과 이 프로젝트를 해봤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문학동네 펴냄)를 읽고 여수에 간 거예요. 임진왜란을 공부하는 것이 지금의 한중일 관계를 들여다보는 일과 이어지잖아요. 아이들과 여수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황홀했어요. '아, 다른 친구들하고도 이 여행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강원도 춘천 '김유정 문학촌'을 찾아간 것도 참 좋았어요. 저도 이제야 소설가 김유정의 단편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는데, 정말 놀랐어요. 이런 작가가 스물아홉 살에 죽었다니, 인간의 삶이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렇게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올해엔 이렇게 일반학교를 다니느라 심신이 지친 친구들과 같이 책도 읽고, 맛있는 것도 먹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지금 얘기를 많이 나누고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로드스꼴라 교사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을까'라는 답도 겨울방학 전엔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교사로 살게 하는 힘
청소년기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게 정말 중요해요. 어깨가 쫙 펴지는 그런 곳을 많이 다니면 좋겠어요. 남미의 이과수,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베트남 메콩델타, 그런 데 가면 사람들은 종종 울기도 해요. 그냥 자신도 모르게 안에 있던 독소 같은 게 빠져나오는 경험을 하는 거예요. 자연의 웅대한 기상은 여행이 주는 큰 선물이죠. 어찌할 수 없는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맞닥뜨려보는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행학교를 하면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어요. 1기 아이들하고 히말라야에 갔을 때 해발 4103킬로미터(km)까지 올라갔는데 4~5일쯤 지나 마지막 고지 200미터(m)가 남았어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곳이었어요. 잘 걷는 애들이 선발대로 먼저 올라가고, 저는 맨 뒤에서 천천히 걷는 아이들과 같이 갔어요. 거긴 공기가 부족해서, 절대로 뛰면 안 돼요. 그런데 저 멀리서 선발대 아이 한 명이 뛰어 내려오고 있는 거예요. 큰일 났다 싶었지만, 호흡이 가빠서 소리도 못 지르고 있는데, 그 아이가 제 앞에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어요. 너무 놀라서 "뛰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하니까, 수줍어하며 "어딘(김현아 대표교사의 별칭)이 짐을 메고 온다고 해서요"라고 하는 거예요. 제 짐을 받아주려고 그렇게 뛰어온 거예요. 괜찮다는데도 제 짐을 뺏어서 메고 막 달려 올라가는데,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멀쩡하더라고요. 나중에 그 아이는 여행사 인턴을 하면서 청소년 등반대를 조직해 안나푸르나에 다녀왔어요. 청소년들을 인솔해서 열기모임과 닫기모임까지 훌륭한 역할을 해냈죠.
수줍어하면서도 짐을 받아주려고 뛰어 내려온 그 아이, 제가 청소년들과 같이 있는 이유는 그런 에너지의 순환 때문이에요. 지난한 과정은 있지만 그 친구들이 제게 돌려주는 굉장한 에너지가 있어요. 교사직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건 그 에너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문화작업을 같이 했던 친구들은 지금도 제가 몸살이 나서 못 나가면 "죽 끓여갈까요?" 하고 전화를 해요. 그런 말들이, 살아가는 데 참 중요한 에너지를 만들어준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좀 어려운 말이지만, 저는 길 위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이 나를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사람으로 살기를 희망해요. 다만 희망할 뿐이죠. "정의롭게 살라"고 말하지만, 그래서 고민도 되거든요. 정의롭게 사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 말 속에 어마어마한 갈등과 긴장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로드스꼴라 친구들이 나를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게 로드스꼴라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에요.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