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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보다 근본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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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보다 근본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

[프레시안 books] 데이비드 하비 <자본의 17가지 모순>

끊임없는 위기 속에서도 축적을 지속하는 자본주의의 현란한 기술의 실체는 무엇인가? 미국 사람들이 제때 갚지 못하는 주택 대출금이 왜 한국 경제를 위기에 몰아넣고, 멀쩡한 한국인이 왜 직장을 잃어야 하며 왜 압류를 당해야 하는지, 대자본의 쇼핑센터를 짓기 위해 멀쩡한 내 집을 강제로 허무는 일이 왜 공공 이익이 되어야 하는지를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외에도 대기업 젊은 여성 부사장의 '패악질', 가계 부채 급증, 일자리 없는 성장, 비정규직 급증, 숨 쉴 틈조차 없는 학생, 밀양 주민의 송전탑 저항, 해고 노동자의 고공 농성, 자유로운 여가 시간 없는 빠듯한 일상, 하루 평균 40명꼴의 자살 등과 같은 좋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자본주의 한국에서 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깊숙이 알기란 쉽지 않다.

자본주의의 현란한 기술은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이를 둘러싼 전체의 모습과 그 근본적 관계를 알 수 없도록 작동하는 발전 양식 자체에 내재해 있다. 하비(D. Harvey)의 <자본의 17가지 모순 : 이 시대 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동녘, 2014년 11월 펴냄)이라는 책은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일들을 사례로 들면서 이러한 현란함의 뒷면을 파헤쳐 새로운 정치적 실천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학계나 실천 운동에서 세세한 분석과 미시적 담론이 주류를 이루고 거시적 분석은 철지난 거대 담론이라고 일축당하는 요즘 시대에 현대 자본주의의 모습을 거시적 관점에서 생동감 있게 분석한 최근의 책을 꼽으라면 단연 둘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록 스타 경제학자 대접을 받으면서 좌우파로부터 많은 비판과 논쟁을 낳고 있는 피케티(T. Piketty)의 <21세기 자본>(글항아리, 2014년 9월 펴냄)이고, 또 하나는 바로 하비의 이 책이다.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비록 얼빠진 맹목적 보수주의자들에게는 피케티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보이겠지만 피케티와 달리 하비는 철저한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로서 마르크스의 방법론을 따라서 자본의 모순을 해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비는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이자 사상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한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도 그의 책 대부분을 번역할 정도로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다. 하비의 학문적 이력과 학술적 성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의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김용창, 2012, "왜 시공간 통합적 사고가 필요한가? : 데이비드 하비, 「자본의 한계」," <사회과학 명저 재발견 3>,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53∼385쪽. / 최병두, 1996, "데이비드 하비의 역사지리유물론 : 공간의 정치경제학과 포스트모더니티", <경제와 사회> 제31호, 204∼239쪽.) 하비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상과 같은 수많은 사건들을 겉에 드러난 대로의 피상적 관계가 아니라 자본이 갖는 내재적인 본질의 발로라는 곳으로 이끈다. 즉 만물이 액면 그대로와 같다면 과학은 필요 없을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입장을 따라서 표면에 드러난 모습의 이면을 파고들어 물신주의의 이면을 파헤치고, 자본주의의 경제적 엔진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모순적인 힘을 밝히려고 한다(33, 37쪽).

현대 자본주의를 거시적 관점에서 생동감 있게 분석한 역작

ⓒ동녘
이 책에서 나타나는 하비의 입장은 그의 다른 저서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지만 기본적으로 양면적인 비판 관점을 채택하는 것이다. 하나는 자본의 내부적 모순에 따른 자동 붕괴론적 자본주의 종말론을 거부하고, 자본주의의 위기(또는 공황)를 자본주의 '재생산' 메커니즘의 하나로 간주한다는 점이다(33, 321쪽). 연장선상에서 알튀세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416쪽)에서 알 수 있듯이 종래의 노동 중심의 대안 전략과 창백한 과학적 마르크스주의 또는 마르크스의 경제학적 독해 중심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말하는 후쿠야마와 같은 '역사의 종말론' 입장은 당연히 거부하고, 각종 '포스트주의'에 입각한 대안에도 역시 비판적이다. 위기를 통한 재생산은 일회성의 기현상이 아니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강제적 조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조정은 그동안 쌓아놓은 부와 성과들을 일거에 파괴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파괴적이라는 것이며, 위기를 통한 재생산은 더 많은 권력과 자본, 그리고 부의 독점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바로 자본주의가 철폐되어야 하는 정당화 논리를 찾는다.

이처럼 하비는 이 책의 서술 방식과 자본 분석에서 모순론에 입각한 마르크스주의 변증법 방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33쪽).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좋고 나쁨을 떠나 자본이 해소할 수 없는 모순들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화폐에 기초한 재현, 사유재산과 자본주의 국가, 사적 전유와 공동의 부(富, wealth), 자본과 노동, 과정과 사물로서 자본, 생산과 실현, 기술과 노동, 분업, 독점과 경쟁, 불균등 지리적 발전과 공간 생산, 소득과 부의 격차, 사회적 재생산, 자유와 지배, 무한한 복률 성장, 자본과 자연, 보편적 소외 등 17가지로 설정하여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 분석을 토대로 새로운 환경의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추구할 수 있는 포괄적인 정치적 실천 전략을 17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427∼431쪽).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최근 좌파 학계의 지배적인 흐름과는 달리 자본의 모순을 중점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이다. 하비는 이러한 입장을 자본 중심적 분석 또는 자본 논리 환원론이라고 경멸하는 최근의 경향을 근시안이라고 비판하고, 자본 분석을 중시한다(41쪽). 이러저러한 포스트구조주의 깃발 아래 포스트모던의 단편들을 다시 주워 모아 짜 맞추려는 지적 흐름들은 계급 분석을 도외시하고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라고 비판한다(23쪽). 이는 반자본주의적 사유에 기초하여 '모순의 통일로서 자본(의 운동)'과 자본주의를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는 좌파의 일탈과 근본성 상실이 자본가 계급과 그 동맹군들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가져다준다는 상황 인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 중심의 분석이 여전히 중요하고 밑바탕(근본적)이 되어야 한다는 하비의 주장을 잘 보여주는 것이 자본의 첫 번째 기본모순으로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분열을 설정한 것이다. 여기에 기초하여 자본의 17가지 모순을 오밀조밀하게 엮어가면서 분석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상품이 갖는 양면성인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대립과 모순이 위기로 이어지며, 교환가치 중심의 경제생활이 확대될수록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는 것을 주택 상품을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의 주택 금융 위기에서 보듯이 경제 호황기에는 너무 비싸서 집을 살 수 없고, 불황기에는 자본주의 신용 시스템에 의거하여 빚내서(담보 대출) 산 집이 압류당해 길거리에 나앉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56쪽).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공간이라는 주택에서 그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가 중심을 이루고, 주택의 교환가치를 무모하게 추종한 결과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불러오는 현상은 바로 이러한 모순에 근거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분열을 바탕으로 경제 위기 때마다 자본이 끊임없이 새로운 이윤 추구 대상을 찾으면서 현대의 일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대상들이 점점 더 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하비의 생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 교육, 주택, 가사 영역, 좋은 자연경관, 교통, 통신, 에너지, 물, 기타 공공 하부구조 분야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교환가치 중심의 상품화, 사유화, 화폐화, 자본화를 추진하고 있다(107, 109, 286, 363쪽). 하비는 이에 대한 대안적인 전략으로서 교환가치 논리 중심의 상업적 시장에 기반을 두고 "이윤에 굶주린 기업가들의 야성적인 충동을 풀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59쪽) 모든 이를 위한 적절한 사용가치를 생산하여 민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자원 배분 기구의 재창설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9, 109, 427쪽).

정체성의 정치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자본의 모순에 초점을 맞춘 이유

하비가 현대 자본주의를 해부하면서 특히 강조하는 것이 두 번째 모순의 지위를 부여한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이를 현상에서 표현해주는 화폐 사이에 벌어지는 해괴한 일이다. 화폐는 무엇보다도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잘 표현해야 하지만 자본주의와 신용화폐의 발달로 이 둘 사이의 관계가 멀어지고, 급기야 표면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서로 간의 견제 기능 없이 각자 따로 움직이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는 상관없이 화폐 자체가 수익을 낳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가공의 자본(의제자본)이 발달한다(70∼71, 142, 349∼352쪽). 이러한 자본 모순이 17가지 모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자본주의의 특징이라는 게 하비의 주장이다. 이러한 현상은 주택 담보 대출로 집을 사서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막대한 차익을 올리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대출 채권들은 돈을 빌린 사람들이 미래에 갚게 될 원리금을 담보로 또 다른 증권으로 묶여서 판매되고, 여기에 투자하여 수익을 거두려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러한 가공의 허구적 자본들에 대해 세계의 신용 평가 기관들은 안전하다고 평가하지만 투기적 의제자본은 큰 사고를 치고 막을 내린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집단에게 사고의 피해가 가장 크게 돌아가는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하비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화폐의 이러한 발전 경로는 신용 시스템에 내재하는 약탈적 관행과 더불어 의제자본의 과잉을 만들고, 이것이 "광범위한 인간 악행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결과로서 일과 노동은 화폐 수익을 산출하는 상품의 교환가치만을 중심으로 조직되며, 이러한 화폐 수익이 자본가 계급 지배의 권력을 쌓아올린다(71, 115, 163, 347쪽). 하비는 이러한 발전 체제가 합법을 가장한 강탈 또는 탈취(dispossession)에 근거한 축적 체제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발전 체제는 1930년대 케인스가 낙관적으로 기대한 '불로소득 계급(rentier class)의 안락사'가 아니라, 불로소득 증가 및 불로소득 계급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를 낳고 그들의 권력만을 확장시킨다. 이 때문에 인류 공동의 부를 사적으로 몰아 갖는 체제가 아니라 집합적으로 관리하는 실천과 제도의 모색이 필요하다고 본다(70, 96, 131, 267, 344, 354, 377쪽).

화폐 없는 대안적 사회질서 또는 대안적 화폐 정치를 추구하고, 화폐적 기반의 사회 보장이 아니라 사용가치 중심의 사회 보장 수단을 확보하는 전략, 우선적으로는 기초 생활 수단의 탈상품화 전략을 짜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환가치가 주인이고, 사용가치는 노예"가 되는 발전 방식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사용가치에 적절하게 다가갈 수 없는 민중 대다수의 봉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75, 108, 144쪽). 이러한 모순의 연장선상에서 교환가치와 화폐의 전제가 되면서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과 부르주아적 자유 개념의 토대인 사유재산 제도 역시 근본적인 개혁의 대상이다. 재산권 제도를 관장하는 국가는 점차 자애로운 역할을 포기하면서 국가와 금융의 결합체를 통해 작동 방식이 점점 미스터리에 싸이기 때문에, 사유재산권을 공유재의 집합적 관리로 전환하고 독재적인 국가 권력을 민주적인 집단 관리 구조로 해체하는 장기적 목표를 제시한다. 특히 공유재의 한 형태로서 화폐와 신용을 재정비하는 것이 핵심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95, 133, 205, 302쪽).

▲ 하비는 노동의 사회적 가치와 화폐 사이에 벌어지는 해괴한 일에 주목한다. 그러한 자본 모순이 17가지 모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2007년 금융 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품에서 잘 드러났다. 사진은 2007년 9월 15일,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이 발생한 영국 버밍엄의 노던락 지점 모습. 예금을 찾으려는 이들이 지점 바깥까지 늘어서 있다. 모기지 대출 은행인 노던락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터지면서 뱅크런을 맞았다. ⓒ위키미디어커먼스


마르크스의 방법에 입각한 자본 중심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리학자로서 하비는 여타 마르크주의자와 달리 자본이 자유롭게 순환하고자 한다면 공간 속에서 고정된 물리적 축적 환경(built environment)을 반드시 만들어야 하고, 그것이 종국에는 구속(교통 혼잡, 지가 상승, 임대료 상승, 생활비 증가 등)이 되어 자본의 순환에 장애가 되면 주기적으로 깨뜨려야 하는 것이 자본의 모순적 숙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에게 지리적 불균등 발전은 본질적인 것이며, 특히 공황 국면에서는 한 도시 전체에서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고, 압류당한 주택이 난무하면서 많은 사람을 길거리로 내몰아 쑥대밭으로 만드는 자본의 야수적 파괴가 본능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열한 번째 모순으로 언급한 불균등한 지리적 발전과 공간 생산의 모습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지역 균등론은 성취할 수 없는 것이기에 폐기하고, 불균등한 지리적 발전 메커니즘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은 해방적인 차이의 공간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245쪽).

이러한 점들 때문에 하비는 현대 자본주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분석하는 데 여전히 마르크스의 방법에 입각한 자본 중심의 분석이 유효하다고 본다. 이러한 자본 모순 분석을 통해서 정치적 실천 전략 또한 재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전통 좌파 세력들이 자본 권력에 대항하는 견고한 저항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23∼24쪽)을 밝히면서 동시에 최근의 좌파적 대안들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노동시장과 작업장을 계급투쟁의 쌍두마차로 특권화하는 전략,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중앙 집권적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 전략 등과 같은 전통적인 좌파의 전략은 투쟁과 해방의 총체성을 획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하비의 말로는 "자본주의 대안을 찾으려는 열렬한 혁명 추구"에 제한을 가한다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가 한층 복잡해진 현대 자본주의는 작업장 이외의 영역에서 탈취에 근거한 축적 전략을 펴기 때문에 중요한 투쟁의 영역들이 모순의 발전 과정에 따라 재정 긴축, 도시 재개발, 조세, 대출, 부동산 동맹 등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118∼121, 390쪽). 아울러 녹색 시늉을 하는 환경 운동, 지역 자급주의, 세계 경제와 단절론, 지역 균등, 가사노동 임금 지불, 소액 신용 운동 등도 실천 대안으로서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194, 221, 245, 284, 286, 361, 366쪽). 자본과 노동 사이의 기본모순으로부터 발전하는 과정에 근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모순을 이해하고 있으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데 유익하며, 이 책의 저술 목적이기도 하다고 밝힌다(385쪽).


한평생 노동해도 너무나 삶이 고달픈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길잡이

현 단계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길은 어찌 보면 아주 어렵고 난해한 협곡을 빠져나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혁명적 휴머니즘'으로 이 좁은 협곡을 지나는 대안을 찾고 있다(312쪽). 아쉽다면 아직 혁명적 휴머니즘의 일정한 상을 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수익 개념에서 재산(자산)의 운용 또는 생산 활동에 투입하여 얻는 임대료와 같은 소득이득과 단순한 재산 소유에 따른 가격 상승에서 얻는 자본이득을 구분하지 않고, 이 책 전체에 걸쳐 이 두 개념을 뭉뚱그려 불로소득의 누적적 증가로 파악한 점이다. 물론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수익을 가져다 줄 수만 있다면 수익의 형태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실제로도 자본은 토지 소유의 방법 등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이윤 범주와 통합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즉 개별 자본은 생산 활동에서 얻는 이윤과 토지 등 재산 소유로부터 얻는 수익을 모두 수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을 통해 개별 자본의 입장에서는 토지 등 재산 소유자에게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견 모순이 해소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본 전체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생산 활동을 통해서 벌어들인 수익을 배분해야 하는 범주로서 재산 소유는 있는 것이다. 더구나 단순한 재산 소유에 따른 수익인 자본이득과 같은 불로소득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이며, 이러한 불로소득의 누적적 증가로 비생산적 활동에 투입되는 자원과 수익이 커지기 때문에 자본에게 심각한 위기를 유발하는 모순은 여전히 내재하고 있다. 소득이득과 자본이득을 구분하지 않은 하비의 수익 개념은 피케티에 대한 비판처럼 불로소득을 과잉 추정할 수 있고, 이러한 자본과 재산 소유 사이 모순을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불로소득 증가의 중요 원인을 독점 지대로 설명하는 부분도 용어만 다르지 사실상 주류 경제학의 지대 추구 행위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점은 피케티 논쟁에서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으로서 자본'과 표면적인 수익 청구권으로서 자산 일반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 하비의 피케티 비판이 일정 부분은 자신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위 논쟁에서 마이클 로버츠(M. Roberts)는 하비가 자본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인 이윤율 저하 경향이 아니라 신용 변동에서 찾는다고 비판한다.

미래의 희망과 관련하여 모순 속에 희망이 있다는 브레히트(B. Brecht)의 말을 되새기면서 하비는 이렇게 말한다. "모순은 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헤쳐 나가도록 이끄는 개인적·사회적 변화의 비옥한 바탕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항상 모순 속에서 무릎을 꿇거나 길을 잃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모순을 창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32쪽)

귀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이라면 악다구니처럼 달려들어 빨갱이 사냥(Red-baiting)을 해대는 이 엄혹한 시기에 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싸움을 지속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한평생을 열심히 노동해도 삶이 너무나 고달파서 죽음을 선택하는 뉴스를 매일매일 그저 앉아서 볼 수만은 없다면,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나아가 무엇인가 대안을 꿈꾸고자 한다면 이 책에서 꽤나 소중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비의 주장은 자본주의는 결코 스스로 망하지 않을 것이며, 자본은 투쟁 없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혁명적 휴머니즘의 기치 아래 "잠자는 숲 속 공주의 무책임한 놀이를 중단"(425쪽)해야 한다고 끝을 맺고 있다.

그리고 역설적인 여담이지만 더없이 복잡해진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서 할 줄 아는 처방 권고라고는 무조건적 규제 완화와 시장 자율에 맡기라는 말만 반복하는 앵무새 경제 전문가들도 현대 자본주의의 성격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그리고 선진 자본주의와 달리 기부라는 명목의 양심 세탁(conscience laundering, 311, 415쪽)조차 흔치 않은 한국 자본주의와 자본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비의 이 책은 이 시대 자본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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