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청 노동자만 2명이 죽어야 했는지 억울해요. 안전 관리를 해야 할 LG 직원들은 없는 거예요. 밤낮으로 시도 때도 없이 불려가서 일하던 우리 아들만 죽은 거예요." (고(故) 문모 씨의 어머니)
지난 12일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에서 유지 보수 업무를 하던 30대 협력업체 노동자 2명이 질소 가스에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족들은 "원청업체인 LG 측이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지만, 작업자 과실인 것처럼 여론이 호도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고 당시 원청 안전 감독관 없어…규정 위반"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LG디스플레이의 협력업체인 '아바코(제1 하청)' 소속 문모(34) 씨와 이모(32) 씨, 아바코의 협력업체인 '코아백(제2 하청)' 소속 오모(31) 씨는 지난 12일 오후 12시 29분 장비를 정기 점검하러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의 OLED TV 유리패널을 만드는 작업장 챔버에 들어갔다.
이 챔버는 높이 0.9미터, 직경 0.8미터, 폭 4~4.5미터가량의 밀폐된 공간으로, 평상시 챔버 안은 유리패널에 이물질이 묻지 않도록 질소로 채워져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질소는 산소 농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에 위험하다. 게다가 챔버 입구가 높은 곳에 있기에, 안을 들여다보려면 누군가가 위에서 내려다 봐야 한다.
원청업체인 LG디스플레이의 작업 매뉴얼대로라면, 설비를 점검하기 전에 설비 안의 질소 가스를 완전히 배출하고, 산소 농도를 측정한 뒤 작업자들을 들여보내야 한다. 또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2~3명당 1명의 감독관이 설비 밖에서 대기하고,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전 감독을 해야 한다.
문 씨 등 협력업체 노동자 3명이 이날 유지 보수 작업에 나섰을 때는 LG디스플레이의 감독관이 없는 상태였다.
이에 대해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일과 건강'은 "LG디스플레이는 협력업체에 밀폐 공간 내 작업을 지시할 때 산소 농도 측정, 환기시설 가동, 보호구 착용 등을 점검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산소 농도를 사전에 측정하지 않고, 감독관을 배치하지 않은 것은 LG디스플레이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감독관이 배석하지 않은 탓에, 사고를 가장 먼저 인지한 사람은 안전 감독과는 무관하게 장비 순찰을 돌던 LG디스플레이 정규직 황모 씨였다. 황 씨는 이들이 들어간 지 9분 뒤인 12시 38분경 챔버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세 사람을 발견했다.
황 씨는 의식불명인 세 사람을 발견하고 주변에 소리를 쳐 도움을 구했으나, 아무도 달려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황 씨는 안전장비 없이 사람들을 구하려고 혼자 챔버에 들어갔다가 본인도 실신했다.
이후 12시 43분께 또 다른 LG디스플레이 정규직 직원들이 쓰러진 4명을 발견하고 전체 작업 상황을 관리하는 중앙통제실에 신고했다. 챔버 입구에서 쓰러진 황 씨가 1시 5분께 제일 먼저 구조됐고, 이어 오 씨가 1시 15분에, 숨진 문 씨와 이 씨는 1시 21분에 마지막으로 꺼내졌다.
하지만 문 씨와 이 씨는 끝내 숨을 거뒀으며, 오 씨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생명이 위중한 상태다. 이들을 구하러 들어간 LG디스플레이 정규직 직원까지 포함하면 사상자는 총 6명이다.
"원청이 안전 규정 지켰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
문 씨의 유족들은 LG디스플레이가 ① 작업 전에 챔버에 질소를 충분히 제거했거나, ② 산소 농도를 제대로 측정했거나, ③ 작업 중에 안전 감독관을 배치했거나, ④ 산소 호흡기 등 안전장비를 구비하는 등 안전 관리를 제대로 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문 씨의 아내 장미정(가명·34) 씨는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LG 측이 작업 전에 질소를 빼고 산소 농도를 측정해야 하고, 이후 LG가 작업 지시를 내리면 협력업체는 들어가서 작업만 할 뿐"이라며 "LG 측이 산소 농도만 제대로 확인했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장 씨는 "현장에 LG 정규직 지휘감독관을 배치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라며 "감독관이 밖에서 위험 유무를 지켜보다가, 초반에 산소 부족으로 의식을 잃어갈 때 꺼내서 구했다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도 14일 논평을 통해 "안전 작업 매뉴얼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설비 내의 질소 가스를 완전히 배출한 뒤에 작업했더라면,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매뉴얼대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유지 보수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에 대해 반올림은 "원청 사업주는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빨리 작업을 끝내도록 요청한다"며 "생산 품질에 차질을 빚을 정도가 아니라면, 잔류 가스가 남아 있더라도 유지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과 문화가 있다. 2013년 초에 발생한 삼성 반도체 불산 사망 사고도 이러한 원인 때문에 사망에까지 이르렀다"고 꼬집었다.
LG디스플레이 "작업자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인 듯"…유족 반발
이번 사고에 대해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13일 유가족과 한 면담에서 "LG 작업자와 협력업체 작업자 3인 이상이 되면, 관리인 1명은 밖에서 모니터링해야 하는 게 맞다. LG 사람하고 그렇게 구성되는 게 맞는데, 이번 상황은 LG 직원이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저희 쪽 인력을 불러서 작업 지시를 받았어야 했는데,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왜 (현장에 LG 관리자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정확한 조사가 돼야 알 것 같다"고 말해 유족들이 반발했다.
LG디스플레이 홍보실 관계자는 "경찰과 고용노동부, 국과수 등에서 조사하고 있으며,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유가족과 원만한 협의를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장 씨는 "우리 아이가 21개월이다. 아침에 출근한 그 모습 그대로 (남편이) 집에 오는 것밖에 바라는 게 없는데, 그건 못 바라니까. 진상 규명만 똑바로 됐으면 한다. 작업자 실수가 아니라는 걸 밝혀줘야 가는 길 억울하게 보내진 않을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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