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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없는 죽음…"남편은 자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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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없는 죽음…"남편은 자살하지 않았다"

[죽음을 감추는 조선소]<1> '사고'가 '자살'로?…어느 샌딩공의 죽음

죽음에도 계급이 있다면, 대한민국 조선소 내에서 특히 그럴 것이다.

올 한해, 현대중공업과 그 계열사 조선소에서 총 11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죽었다. 지난달 28일 추락사고로 사망한 하청업체 노동자까지, 한 달에 한 명 꼴이다. 이들은 모두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위험'마저 외주화 하는 시대다. 언제부터인가 노동 현장에서 위험한 일은 대부분 사내하청 비정규직에게 쏠린다. "다섯 명이 죽어야 배 한 대가 나간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조선업계 노동자들의 옛말도 있지만, 기본적인 안전 장치만 있었다면 대부분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연이은 사망 사고의 이면엔 뿌리 깊은 산재 은폐가 있었다. "사고를 없앨 수 없다면, 숨겨라". 고용 안정의 사각지대에 몰린 하청 노동자들에게 조선소의 생존 법칙은 이렇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 값이 유달리 낮은 우리 사회에, 곧잘 은폐되곤 하는 '계급형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죽음을 감추는 조선소' 1회에 소개될 고(故) 정범식 씨의 이야기는 '무재해 사업장'에 대한 자본의 욕망이 어떻게 사고와 죽음을 은폐하는지 드러내는 한 단면이 될 것이다. 편집자.

남편이 죽었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했다.

지난 4월26일 오전 11시35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선행도장부 13번 셀장 2626호선. 작업용 에어호스에 목이 감긴 채 난간에 매달린 노동자가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 부검의는 부검 감정서에 '스스로 목맴 사(死)', 즉 자살이라고 적었다. 경찰도 한 달여의 수사 끝에 지난 6월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죽은 이는 말이 없었다. 현대중공업 물량팀 노동자 고(故) 정범식(사망 당시 45세) 씨 얘기다.

▲한 조선소 노동자의 작업 현장 모습. (사진은 사건과 무관합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사고 발생 하루 전,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다는 남편에게 "피곤할 테니 그만 쉬어라"라고 한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정 씨의 아내 김희정(45) 씨는 남편이 자살했다는 경찰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남편은 샌딩(블라스팅)공이었다. 블라스팅은 건조 중인 선박 표면에 고압의 쇳가루를 분사해 선체 표면을 갈아 매끄럽게 만드는 작업이다. 도장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최근엔 벽면흡착식 로봇을 개발해 기계가 이 작업을 대신하기도 한다.

전국의 조선소를 떠돌아다니는 '물량팀'이었다. '하청의 하청'으로 일하는 일당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이른바 물량팀이라고 한다. 보통 적게는 10명, 많게는 30명 씩 팀을 꾸려 움직인다. 전국의 조선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조선업계는 물량팀의 존재를 부인해 왔다. 불법 다단계 도급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남편도 그런 물량팀 노동자였다.

남편은 울산으로 오기 전 목포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했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다단계 하청 비정규직이었지만, 조선소 밥을 12년 가까이 먹은 베테랑이었다. 조카 2명과 같은 작업장에서 일했는데, 자신의 일을 빨리 끝내고 작업 속도가 느린 조카의 일을 도와줄 정도로 '짬밥'이 된 숙련공이었다.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보름째 되던 날, 사고가 터졌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친조카가 다음 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떨어져 사는 남편을 결혼식장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오 무렵, 전화기가 울렸다. "정범식 씨가 사고를 당했어요."

고장 난 리모컨, 매듭 없는 에어호스

"샌딩기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정 씨와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던 동료 여러 명이 쉬는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위치를 통째로 바꾸라"는 동료의 제안에 "다시 해보겠다"라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간 뒤, 점심시간을 30분 남기고 그는 목이 감긴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정 씨는 지상 3.5m 높이의 작업대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서 50cm 가량 허공에 뜬 상태였다. 목에는 산소공급용 에어호스가 감겨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작업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두꺼운 작업복과 방진 마스크를 착용했고, 이중으로 된 작업용 장갑에 손목 부위에는 쇳가루가 들어가지 않도록 테이프도 칭칭 감은 그 상태였다.

"회사 직원이라는 사람한테 전화를 받고, 애들을 데리고 울산가는 택시를 탔어요. 몇 번 더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숨을 쉬지 않는다고…내가 울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심폐소생술을) 그만두지 말라고 했어요.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우리 아저씨는, 이렇게 갈 사람이 아니니까."

성남에서 울산까지 택시로 향하는 길, 김 씨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에 형부가 자살했다고 나온다"는 얘기였다. 지역언론 몇 군데서 경찰 관계자의 말을 토대로 '자살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자살 추정 첫 보도가 나온 것은 오후 2시26분. 아직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유족들이 "경찰이 사고 직후 미리 '자살'로 단정하고 수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의구심을 갖는 이유다.

울산대병원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하청업체 사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김 씨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함께 울산에 내려온 중학교 1학년 둘째 딸을 가리키며 "나도 저만한 딸이 있으니 뒷 일은 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사죄했다. 그래서 믿었다. 한 달 뒤, 경찰이 자살로 내사 종결하기 전까진 말이다.

자살의 '증거' 아닌 '정황'들

사건을 담당한 울산 동부경찰서의 수사기록엔 "산업재해 가능성은 전혀 없고", "현장에서 타살이나 사고사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자살 정황이 뚜렷하다"는 결론이 담겨 있었다.

경찰이 말한 '자살 정황'은 다음과 같다. 소액의 카드 연체, 정신과 진료 내역, 사망 4개월 전 아내 김 씨와의 부부싸움이 담긴 문자메시지.

"경찰이 자살로 종결했다고 통보가 와서, 수사 기록을 보여 달라고 했어요. 이대로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어서…500쪽 가량의 수사 기록 중 30쪽 정도만 보내왔는데, 사건 현장에 대한 수사 내용은 전혀 없고 정신과 병원진료 기록, 카드값이 미납됐다는 문자메시지, 저와의 카카오톡 대화만 담겨 있었어요. 마치 '이렇게 부부 싸움을 했으니, 가정 불화로 남편이 죽었다'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유족들에 따르면, 연체된 카드값은 사고 발생 16일 전에 모두 상환했고 신용에도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경찰이 제시한 부부싸움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도 4개월 전인 지난해 12월에 주고받은 것이었다.

"내가 자길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 우리 새끼들 위해 열심히 살아보자." (2월2일)
"오늘 하루도 힘내자. 화이팅 점심도 맛나게 먹어요. 항상 조심히 일해. 우리 가족이 옆에 있다는 것 잊지 말고. 사랑해." (4월16일)

사망 전까지 부부가 주고받은 다정한 카카오톡 메시지는 수사에서 배제됐다. 김 씨는 "작년 12월에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해서 정신과 상담을 좀 받아보라고 했는데, 한두 차례의 상담 기록이 '망상장애'로 자살 원인으로 지목됐다"고 했다.

▲사망 전 정 씨가 아내 김희정 씨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 경찰은 부부싸움으로 인한 '가정 불화'를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사망 불과 며칠 전까지 주고받은 아내와의 다정한 대화는 수사에서 배제됐다.ⓒ진선미 의원실

목격자 없는 죽음, 사체는 말하고 있었다

남편의 사인을 납득할 수 없었던 김 씨는 전체 수사기록을 다시 요구했다. 재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난 9월29일에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500쪽 전체의 수사기록과 부검 감정서를 받을 수 있었다. 차마 보기 힘든 기록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김 씨는 "남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사고"였음이 더 분명해졌다고 했다.

'죽음의 조선소'라 불리는 현대중공업에서 올해 발생한 8건의 사망 사건 중, 유일하게 목격자가 없는 죽음이었다. 유서 한 장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남편의 시신이 죽음의 원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유족이 동행한 한 차례의 현장 조사와 뒤늦게 받아본 부검 감정서를 통해, 기기의 결함과 사체의 손상이 드러났다.

정 씨가 일하던 작업장은 선박 몸체에 해당하는 블록들에 블라스팅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사방이 가로막힌 밀폐된 구조이다 보니, 손전등을 사용하지 않으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작업자들 사이에선 '미로'라고 불린다.

고압의 쇳가루를 분사해 선체 표면을 갈아내는 일인 만큼, 한여름에도 두터운 작업복과 이중의 마스크를 쓰고 일해야 했다. 작업 공간에 들어가면 수시로 쇳가루가 날려 특수 제작된 마스크를 쓰고, 마스크와 연결된 에어호스를 통해서만 숨 쉬는 게 가능하다. 전반적으로 자살보다는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인 셈이다.

▲정범식 씨가 일하던 선행도장부 내 작업 공간의 모습. ⓒ진선미 의원실

사고 발생 16일 만에 이뤄진 유족들과의 현장 조사에서, 정 씨가 사용했던 에어호스와 랜턴 스위치 연결선의 결함이 발견됐다. 정 씨가 사망 당일 "샌딩기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이었다.

뒤늦게 받아본 부검 감정서엔, 머리에 5×8cm의 크기의 두피하 출혈이 확인됐다. 샌딩기 노즐 부위의 쇠뭉치와 거의 일치하는 크기의 상처였다.

이밖에도 옷이 찢어지고 목과 가슴 등에 마치 불에 탄 것처럼 새까맣게 쇳가루들이 박혀 있었다. 부검 감정서에도 "진피손상 및 건조, 이물질의 부착"이 기록됐다. 정 씨의 시신 사진을 본 20년 경력의 동료 샌딩공은 "쇳가루에 직격으로 맞은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작업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샌딩기 호스에서 분사되는 쇳가루는 매우 강한 압력으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보통의 힘으로는 10초를 들고 서 있기도 힘들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리모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샌딩기 호스가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다칠 가능성도 크다. 유족과 동료들이 정 씨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사고사'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리모컨 오작동 등의 이유로 쇳가루와 샌딩기 노즐의 쇠뭉치 등에 가격을 당한 정 씨가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작업장을 빠져나오다 실족해, 작업장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에어호스에 목이 감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부검 결과 정 씨의 눈에도 다량의 쇳가루가 박혀 있었다.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란 유추가 가능한 대목이다.

또 발견 당시 정 씨는 매듭이 없는 에어호스에 목이 감긴 채로 매달려 있었다. 매듭 없는 에어호스. 자살을 하기 위해서였다면, "당연히 호스에 매듭을 묶어 목을 매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처음부터 자살로 결론을 내놓고, 모든 상황을 자살로 끼워 맞추는 수사를 한 거예요. 우리가 재수사를 요구하지 않았으면 분명 모르고 지나갔을 거예요."

▲정 씨가 사고 당일 사용했던 에어호스. 지난 5월12일 유족들과의 현장 조사에서, 이 기기의 파손이 발견됐다. ⓒ진선미 의원실

이상한 부검 감정서

시신은 죽음의 원인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만, 부검 감정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머리 및 피부의 손상이 모두 기록됐지만, 부검의는 어느 것 하나 주목하지 않았다.

부검서의 대부분은 사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결론에 가선 '현장에 대한 조사 및 재연성 여부, 변사자의 사회경제적 상황 등이 기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는 소견과 함께 "사인은 스스로 목맴(의사)에 더욱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함"이라고 적시됐다.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 출신의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는 "한 마디로 앞뒤가 맞지 않는 부검서"라고 지적했다.

지역 방송사의 의뢰로 이 사건의 부검서를 분석한 배 교수는 16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부검의는 부검 결과만 가지고 분석을 해야 하는데, 자신의 영역도 아닌 '변사자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면서 "결국 수사기관이 원하는 대로 결론을 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검서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듯, 부검의가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결론은 당연히 '원인 불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국과수 소속 부검의가 아닌 외부의 촉탁직 부검의가 이 사건을 담당했는데, 분명한 결론을 내지 않는 소견서는 수사기관이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수사기관 입장에선 사인을 특정하지 않을 경우 '미제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인을 적시한 부검서를 선호하기 마련이고, 촉탁 부검의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무리하게 결론을 낸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부검서를 수사기관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준다는 겁니다. 오히려 선호를 하지요.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사건을 빨리 종결해, 골치 아픈 미제 사건이 되길 바라지 않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에서, 자살은 '타살이 아닌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게 우리 과학수사의 현실입니다. 과연 이 말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요?"

섣부른 '자살' 결론…경찰은 왜?

사건의 최초 목격자인 동료는 유족들에게 현장에서 '자살'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정 씨를 내린 후 정확히 1분만이었다고 증언했다. 여러가지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는데도, 현대중공업의 안전관리자가 정 씨를 내리자마자 "이건 자살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신 검안이 이뤄지기도 전, 경찰은 언론에 "자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흘렸다.

올해 현대중공업과 그 계열사 조선소에서 11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듯,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특히 3~4월은 추락사, 질식사 등 사망사고가 집중되던 시기였다.

정 씨가 목숨을 잃기 불과 닷새 전, 2명의 하청노동자가 LPG 화재사고로 질식해 숨졌고, 한 달여 전엔 역시 하청노동자 김모 씨가 족장 플랫폼이 무너지며 바다로 추락해 숨졌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당시 현대중공업은 중대 재해가 많이 발생해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한 건이라도 사망 사고를 줄이고 싶어 했을 것"이라며 "정범식 씨의 죽음은 이들 중 유일하게 목격자가 없는 죽음이었다. 현대중공업의 입장에 경찰이 너무 쉽게 동조해 부실 수사가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계절 바뀌도록 계속되는 1인 시위…경찰 재수사 결론은?
한 해에도 수백 건 씩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는 열악한 작업 현장, 사망자가 죽기 전 언급한 기기의 오작동, 실제 발견된 기기의 결함, '죽음의 원인'을 말하고 있던 시신…. 이 모든 증거들을 뒤로하고, '변사자 정범식'의 사인은 '자살'이 됐다.

경찰의 결론 뒤, 고등학교 1학년인 큰 아들은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학교에 등교했다가도 선생님에게 "엄마가 혼자 있어서 안 되겠어요"라며 집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눈에 띄게 말수도 줄었다.

▲정범식 씨의 아내 김희정(사진 왼쪽) 씨는 매주 이틀씩 울산지방검찰청 앞에서 공정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프레시안(선명수)

김희정 씨는 부산에 사는 이모 강애숙(54) 씨와 매주 울산지방검찰청 앞에서 상복을 입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 씨는 두 부부를 소개시켜준 장본인이다. "누구보다 성실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점포 위층에서 장사를 하던 정 씨를 딸 같은 조카의 남편으로 점찍었다.

"아무리 울산이 '현대 왕국'이라지만…이건, 경찰이 현대중공업을 비호한 것 밖에 되지 않아요. 상식적으로 죽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조카들이 둘 씩이나 함께 일하는 작업장에서, 장갑조차 벗지 않고 죽었을까요? 경찰은 마치 현대중공업 직원처럼 굴었어요. 남편 죽은 것만 해도 속이 끊어지는데, 그 이유가 부부 싸움이라니요. 우리 조카까지 평생 죄인으로 살라는 건가요."

"조카 희정이라도 살리기 위해" 시작한 1인 시위는 계절이 바뀌도록 이어지고 있다.

현재 경찰은 정범식 씨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진행 중이다. 유족들의 재수사 요청을 외면했던 경찰은 지난 10월 울산지방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진선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이 사건을 집중 추궁하자, 곧바로 재수사에 착수했다. 내사 종결 사건을 재수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지난 수사에 문제가 있었음을 경찰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남편 납골당 가서 약속하겠어요. 억울함 꼭 풀어주겠다고.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모르지만…이번 수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면, 끝까지 갈 겁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일하다 죽은 사람을 '자살'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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