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 비선 의혹은 루머이고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하자 (☞관련기사 : 朴대통령,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꼬리자르기') 청와대는 고강도 감찰을 벌여 해당 문건 담당자였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등 7인을 허위문서 작성 및 유출자로 사실상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갖는 힘이 증명된 셈이다.
청와대 "박지만 측근, 조응천 등 '7인 그룹'이 문건 작성·유출 배후"
11일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청와대는 지난 1일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이후 진행한 감찰 결과 조 전 비서관, 박관천 경정과 오모 씨 등 전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2명, 박모 대검 수사관, 전 국정원 간부 고모 씨, 박지만 씨 측근 전모 씨, 언론사 간부 김모 씨 등 '7인 그룹'이 문건 작성·유출 배후에 있다고 결론내렸으며 이같은 자체 감찰 결과를 검찰에 이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지난달 'VIP 측근 동향' 문건(☞관련기사 : "정윤회·십상시, 김기춘 축출 시도")이 보도된 이후 감찰을 벌여, 오 행정관으로부터 "조 전 비서관이 시키는 대로 문건을 작성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청와대는 오 행정관이 지난 6월 정호성 1부속비서관에게 '청와대 문건이 유출됐으니 회수해야 한다'고 제보한 것 역시 이들 그룹 스스로가 유출자이면서 의심을 피하기 위한 자작극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는 '7인 그룹'이 이같은 일을 벌인 배경에 대해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및 핵심 참모그룹을 흔들기 위한 의도를 갖고 문건을 작성한 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외부로 유출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한겨레>가 전했다.
<조선일보> 역시 청와대가 '7인 그룹'에 대해 검찰 수사 의뢰를 했다는 전날의 자사 보도를 정정하면서 "재확인한 결과 청와대가 자체 감찰 결과를 검찰에 이첩한 사실은 있으나 '수사 의뢰'한 사실은 없다"고 전했다. '수사의뢰'가 아닐 뿐, 감찰이 실제로 이뤄졌고 그 결과가 검찰에 전달된 것은 맞다는 얘기다.
검찰 수사, 청와대 감찰 보고서대로 갈까?
따라서 관심은 이같은 청와대 감찰 보고서 내용이 실제 검찰 수사를 통해 증명될지에 모인다. 우선 관련자들은 모두 '7인 그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한겨레>에 "청와대 내부 핵심 몇몇이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려고 조작한 시나리오"라며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도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과거 업무 때문에 연락하던 이들이다. 나를 겨냥해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다"고 반박했다.
오 행정관 역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일 낮 4시 반부터 7시간 반 동안 특별감찰반 조사를 받았는데 '문건 작성과 유출은 모두 조 전 비서관이 주도한 것 아니냐'는 질문만 계속했다"며 "감찰반은 이같은 내용의 진술서에 확인 서명을 강요했지만 끝까지 거부했다"고 했다. 검찰 측도 '7인 그룹' 멤버로 대검 수사관 박모 씨가 지목된 데 대해 '박 씨가 조 전 비서관과 안면은 있지만 따로 모임을 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라며 신빙성이 낮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도 <동아일보>에 "박 씨는 정보력이 뛰어나 공직기강비서관실로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막걸리 한 잔 나눈 게 전부"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이 청와대가 이첩한 보고서 내용을 허무맹랑하다며 웃어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윤회 비선 실세설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고 박 대통령이 한 마디를 한 이후,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도 '해당 문건의 출처는 찌라시'라는 방향으로 모아져 가고 있는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정윤회 씨와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가 곧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7인 그룹'에는 실제로 박 씨의 측근인 전모 씨의 이름이 들어 있다. 이날자 <경향신문>은 "(검찰은) 'VIP 측근 동향' 문건의 작성 경위와 유출 의혹 등을 조사하기 위해 이르면 다음주 초쯤 박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박 씨는 이번 주말 셋째를 임신한 부인과 함께 해외여행을 할 계획이었다가 전날 돌연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정윤회-십상시 통화기록은 사실한 한달치만 확보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찌라시'라고 단정한 정 씨의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기독교방송(CBS) 인터넷판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VIP 측근 동향' 문건의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 해당자들의 2013년 12월부터 1년치의 통신기록을 제공받았으나 이 기간 가운데 문건의 진위와 관계되는 것은 2013년 12월 한 달치밖에 없다.
정 씨가 박근혜 정부의 '실세', '비선'으로 암약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정권 출범 이후 주요 인사가 단행됐을 때 등 중요한 시기에 청와대 비서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를 봐야 하지만,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가 작성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그 직전 한 달 동안의 기록만 확보된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통신영장의 규정상 최근 1년치만 살펴볼 수 있다"며 수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한 달 치만 분석해봐도 이들의 관계를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달치의 통신기록 분석으로는 'VIP 측근 동향' 문건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건이 작성돼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된 이후에는 해당자들이 알아서 조심하고 연락을 피했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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