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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당신 곁에 지금 누가 있습니까"

[현장] 성소수자들이 서울시청 농성에 나선 까닭은?

"당신 옆에 누가 있습니까?"

지난 지방선거 때 박원순 캠프의 슬로건이었다.

"박원순 시장, 지금 당신 곁에는 누가 있습니까?"

8일로 사흘째 서울시청 신청사 로비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 및 무지개 농성단(무지개행동)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박 시장을 재선에 성공하게 해줬던 핵심 세력으로 볼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들의 농성 이틀차였던 7일 기자회견을 열어 같은 질문을 했다.

"박 시장의 재선 후 고작 6개월, 우리는 성소수자 옆에 박원순 시장이 없음을 똑똑히 확인하는 지독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 기자회견에는 박 시장이 인권변호사 시절 몸 담았던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을 비롯해, 민주노총, 한국여성단체연합, 새사회연대, 환경운동연합, 정의당, 노동당, 통합진보당, 녹색당 등이 총출동했다.

이들의 기자회견 이틀 전, 무지개행동의 농성 하루 전인 지난 5일 박 시장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곳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였다. 이들은 "동성애를 용인하는 내용으로 인해 논란이 되었던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채택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박원순 시장의 결단을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관련 기사 보기 : 박원순, 성소수자 혐오세력에 굴복하나?)

▲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지난 6일부터 서울시청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여정민)


"왜 농성을 시작했냐고요? '동성애 지지하지 않는다'는 박 시장의 말이 컸다"

시작은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그러나 8일 농성장에서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농성을 시작하게 된 중요한 계기로 지난 1일 있었던 박 시장의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꼽았다. (☞관련 기사 보기 : 박원순, 목사들 앞에서 "동성애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의 면담 요구는 들어주지도 않더니, 그 시간에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들을 만나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아닌가. '인권 변호사 박원순'은 이제 없고, 표를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 박원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위원회의 시민위원이기도 했던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말했다. 이종걸 사무국장은 "박 시장의 판단에 나름의 여러 근거가 있겠지만, 자신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하는 게 제일 큰 것 같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서울시가 성소수자 차별 금지 내용이 만장일치가 안 됐다고 인권헌장 선포를 못 한다고 했을때도,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싶었다. 그런데 목사들 앞에서 '사회적 갈등'을 일으켜 죄송하다 했다잖나. 그 갈등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자신이 칭찬 받았던 교회와의 갈등을 말하는 것 아닌가."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장병권 씨의 말이다. 장 씨는 "'대선주자' 박원순은 '이쪽'은 나를 비난해도 결국 내 편이 될 것이고, '저쪽'을 돌려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의 윤가브리엘 대표도 "우리는 지금 권력에 눈이 먼 박원순 시장의 민낯을 낱낱이 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시장이 인권헌장은 내팽겨치고 우리가 아니라 '혐오세력'에게 가서 사과했다. 그 이유가 뭘까. 우리 성소수자보다 표밭이 더 두터운 보수 기독교를 노리는 것이다."

지금의 갈등은 인권헌장을 둘러싼 논란과 서울시의 선포 거부 입장에서 촉발된 것이지만, <기독신문> 보도로 처음 알려진 박 시장의 지난 1일 발언이 이들에게는 가장 큰 '충격'이었던 셈이다.

세 차례 날아온 "농성장 자진 철거" 서울시 공문에 찍힌 '서울시장'의 직인

▲ 농성 사흘째인 8일 오전, 서울시는 청원경찰 수십 명을 동원해 농성장 주변의 선전물 철거에 나섰다. 대자보가 찢겨나간 자리에 "지금 여기 찢긴 것은 종이가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와 소수자의 외침이다"라는 손팻말이 붙어 있다. ⓒ프레시안(여정민)
이들의 충격은 농성을 시작한 뒤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른바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물리력에 머뭇거리는 듯 보였던 박 시장이, 본인 스스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더니, 이들의 농성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주말이었던 지난 6일 농성을 시작한 이들은 "월요일이 되면 박 시장이 입장을 표명하겠지" 생각했다고 했다. "박 시장이 늘 출근한다는 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박 시장을 기다렸지만" 박 시장은 이날 그 문으로 출근하지 않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인 형태 씨는 "박 시장이 잘못한 게 아니라 생각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우리를 만나 인사라도 할 줄 알고 기다렸는데 지하로 사람들 모르게 출근하셨다더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박 시장은 '서울 공공조명 LED 교체를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식에 참석했다. 체결식에 앞서 "농성자들을 만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박 시장은 "나중에 답변하겠다"는 말만 남겼다.

그리고 불과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박 시장의 직인이 찍힌 세 번째 공문이 농성장에 전달됐다. 세 차례의 공문에 담긴 서울시의 요구는 모두 같았다. '농성장 자진 철거'였다. 서울시는 세 번째 공문 전달 후 청원경찰 수십 명을 동원해 1층 농성장 주변의 선전물을 직접 철거하기 시작했다. 당시 40여 명의 농성자들은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박원순의 '침묵'은 언제까지?

인권운동사랑방의 명숙 활동가는 이 사태를 놓고 "농성 만 이틀만에 폭력적인 박원순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숙 활동가는 "지난 3일 동안 만나주지도 않았고, 입장 표명도 없더니 박 시장이 (선전물 철거라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온 몸으로 보여줬다"며 이같이 말했다.

명숙 활동가는 "성소수자는 그렇게 짓밟아도 되는, 존엄 따위는 없는 존재라고 박원순 시장이 생각하는구나 싶어 눈물이 났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형태 씨는 "박 시장이 공문에 직접 결제한 것이 아닐수도 있지만, 서울시 행정의 책임자라면 이 상황에서 아랫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달라는 정도의 원칙은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공익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소속의 한가람 변호사는 "까마득한 '선배님'인데 법조항을 떠나서 '정말 너무합니다'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 변호사는 "박원순 시장이 인권변호사 시절에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지금의 나와 똑같이 말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 "폭력적 농성장 침탈 지시한 박원순 규탄한다"는 손팻말을 들고 있는 농성 참가자들. ⓒ프레시안(여정민)


박 시장은 더이상의 갈등을 막고자 '침묵'한다지만, 농성중인 이들에게 박 시장의 '침묵'은 이미 벌어진 갈등에 대한 '외면'에 다름 아니었다. 나아가 박 시장의 침묵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박 시장을 뽑았다"는 지지자들의 실망을 분노로 바뀌게 하고, 그 분노의 농도조차 점차 짙어지게 하고 있었다.

이들은 동의하는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들을 모아 이날 중으로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 △지난 1일 발언에 대한 사과,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박 시장의 입장 발표,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의 4가지 요구 사항을 담아 서울시 측에 공식 전달할 예정이다.

당초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하려고 했던 날은 오는 10일이다. 세계인권선언의 날이기도 하다. 10일까지 박 시장은 입을 열까?

한편, 서울시 인권위원회(위원장 문경란)는 이날 임시회의를 열고 "서울시민인권헌장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의결되고 확정됐음을 서울시가 인정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선포할 것을 권고"했다.

서울시 인권위는 이와 함께 "서울시는 지난 11월 20일 일부 난동자의 폭력과 위력으로 인권헌장 공청회가 무산된 것에 대해 엄정한 법적 대응을 강구하고 서울시정 전반에서 '인권헌장'을 충실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하라." 농성장 앞에 놓여 있는 손팻말에 적힌 말이다. ⓒ프레시안(여정민)

▲서울시청 신청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인권을 이야기하는 곳에 혐오와 차별이 설 곳은 없습니다"라고 쓰여진 손팻말이 놓여 있다. ⓒ프레시안(여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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