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불려온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입증하는 문건이 폭로됐다. 특히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이 정 씨와 정기적인 접촉을 가져온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예상된다.
<세계일보>가 입수해 28일 보도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란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정 씨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을 포함한 청와대 내·외부 인사들과 월 2회 가량 만나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정부 동향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해왔다.
이 문건은 올 1월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당시 여의도 정치권에서 떠돌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중병설', '교체설' 등의 진원지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내부 보고서로 알려졌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정 씨는 지난해 말 이 비서관 등과의 송년 모임에서 "(김 실장의 사퇴 시점을)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다"며 참석자들에게 정보지 관계자들을 만나 사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포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정 씨와 비선 세력들은 자신들 의도가 탄로나지 않기 위해 속칭 '찌라시'로 불리는 정보지를 이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씨는 당시 "(김 실장은 친박 7인회 멤버 중 한 명인) 최병렬이 VIP(박근혜 대통령 지칭)께 추천해 비서실장이 됐다. (하지만) 7인회 원로인 김용환도 최근 김기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씨는 송년 모임에서 "(김 실장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는 새로 취임한 김진태 검찰총장이 검찰 내부 인사를 단행하며 채동욱 전 검찰총장 계열 검사들을 한꺼번에 지방으로 좌천인사하던 때다.
이처럼 정 씨는 이들과 매달 두 차례 정도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현 정부 동향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감찰 보고서에는 정씨와 이들 10인은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강남 모처에서 만나 VIP의 국정 운영과 BH(청와대 지칭) 내부 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적혀 있다.
모임 장소와 시간에 대한 연락과 준비는 이 모임의 막내인 K 청와대 행정관이 맡았다. 날짜가 정해지면 강원도 홍천 인근에 머물던 정씨는 모임 날짜에 맞춰 상경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정 씨와 핵심 비서관 3인, K 행정관 등 10명을 '십상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문고리 3인방' 등은 박 대통령을 보좌하며 비선 실세인 정 씨를 물밑에서 도운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 내부 문서를 외부로 빼돌렸을 가능성도 있다.
민간인 정 씨가 이들과 나눈 논의 내용도 정부 고위 공직자의 기용이나 퇴진, 향후 국정운영 방향 등이어서 파문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와 정 씨가 "비선 라인은 없다"고 일축한 것도 거짓 해명이 된다.
이 보고서는 경찰 출신 A경정이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지시로 작성했고, 김기춘 비서실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감찰 보고서가 제출된 지 한 달 만에 A경정은 원대복귀했고, 조 비서관은 그로부터 두달 뒤 사표를 제출했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통해 "보도에 나오는 내용은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에 근거한 것으로 판단하고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청와대는 오늘 안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건 유출이 의심되는 전직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고소장을 제출할 방침이다.
민 대변인은 그러나 보고서의 존재 여부에 대해선 "(세계일보에) 문건이 사진으로 나왔더라"고 존재를 인정했다. 민 대변인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 문건을 바탕으로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보도의 내용을 보면 그렇게(찌라시 수준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찌라시라고 이야기하는 풍문들을 모은 글로 알고 있다"고 했다.
민 대변인은 이어 보고서에 등장하는 청와대 비서관 등의 입장과 관련해 "근거가 없다고 이야기했고 그 장소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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