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 제3위원회가 18일(현지시각) 북한 인권 결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핵심적인 내용은 북한 내 인권 침해를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한반도 특유의 갈등 양상이 증폭되고 있다. 남남갈등-남북갈등-국제갈등이 중첩되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고조될 우려가 커진 것이다.
유엔 결의안 통과 직후 새누리당은 연내 북한인권법 통과를 공언하고 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대북 삐라살포 단체들을 지원하는 법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며 남북한의 화해 협력을 통해 개선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유엔 결의안 통과를 계기로 북한인권법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재연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북한의 분개, 핵실험으로 이어질까?
북한의 반발도 심상치 않다. 북한은 20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번 결의를 "전면 배격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목할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북한이 최근 표명해온 인권 대화 및 협력을 거부할 의사를 내비쳤다는 것이다. 북한 스스로 성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연합 및 일본 등 "추종국들"이 "문을 스스로 닫아버렸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이번 유엔 결의안에도 북한의 변화된 입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목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이 최근 국제사회와 인권대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와 기술협력,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방북 초청 검토 의사를 표명한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ICC 회부' 조항을 빼기 위해 외교적인 총력을 기울여왔고 유엔 결의안에서도 인정한 몇 가지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CC 회부' 조항이 포함됨에 따라 인권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또 하나는 이번 결의를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적대시정책의 "최고표현"으로 간주하고 "새로운 핵시험을 더는 자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북한은 최근까지 "조건없는 6자회담"을 촉구하면서 핵실험에 대해서도 자제할 뜻을 내비쳤었다. 그러나 미국이 6자회담에는 응하지 않고 인권 결의안 채택을 주도한 것으로 간주하고는 다시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난처해진 중국의 선택은?
인권과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중간의 갈등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시진핑(習近平)주석까지 나서 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요구해왔다. 중국은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시에도 반대표를 던졌고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에도 유엔 안보리 회부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중국이 동의하길 기대한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의 향후 예상되는 행보는 다차원적이다. 우선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해 유엔 안보리에서 '나홀로 반대'하는 상황을 예방하려고 할 것이다. 러시아 역시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고, 최근 중국 및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안보리에서 '중·러 협력관계'는 강화될 전망이다.
중국은 또한 북한에게 자제를 요구하면서 6자회담 재개에 더더욱 박차를 가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최악은 북한의 4차 핵실험 강행과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조우하는 상황이다. 시기적으로 보더라도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 유력한 시점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예정된 내년 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또 다시 북한 인권 문제를 강도 높게 다루는 시기와 중첩된다. 중국으로서는 6자회담 재개만이 북핵과 북한 인권이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자신에게 딜레마를 가중시키는 상황을 예방해줄 것이라고 간주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우선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북한 스스로 퇴행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최근 밝혔던 인권 대화와 협력 입장을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핵실험도 마땅히 자제해야 한다.
국제사회 역시 압박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협력적인 관점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실효성이 없는 'ICC 회부'에 비중을 둘 것이 아니라 북한이 조금이나마 내민 손을 잡고 보다 좋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 인권 결의안에도 "남북한 대화가 북한의 인권 및 인도적 상황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는 내용이 담긴 만큼, 박근혜 정부는 남북대화의 최대 걸림돌인 대북 삐라 살포에 대한 규제에 나서야 한다. 삐라 살포 규제는 남한이 북한을 적대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삐라 규제는 향후 남북대화에서 인권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회의 역할이다. 북한인권법보다는 '남북한 인권 및 인도주의 협력법' 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권 문제를 타도나 비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북한도 호응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또한 국내적으로도 여야 갈등을 비롯한 남남갈등의 오랜 소재였던 북한 인권 문제를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협력을 통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