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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고달픈 일, 하지만…

[자치와 협동] 세상 모든 사람들과 통하는 번역협동조합

번역은 고달픈 일이다. 외국어휘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국어휘를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번역은 '반역(反逆)'이 될 위험에 놓이기 일쑤다. 게다가 번역은 조연에 머무는 일이다. 아무리 훌륭하게 번역한다 해도 주연인 작가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작가에게는 빛나는 예술의 계관(桂冠)이 주어지지만, 번역가에게는 기껏해야 기술적 충실성이나 직업적 성실함 정도가 인정될 뿐이다.

하지만 번역은 역시 보람과 가치가 주어지는 일이다. 사람들이 오디세우스의 모험 이야기를 알게 된 것도 호메로스 번역가를 통해서이고, 군자(君子)의 도리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공자와 노자의 번역가를 통해서다. 숱한 노고를 무릅쓴 번역가의 고마운 작업이 없었던들, 우리가 어떻게 헤로도토스를 알고 두보(杜甫)와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옙스키를 알게 되었겠는가. 카프카는 말할 것도 없고, 헤밍웨이의 소설이나 카를 마르크스의 저작을 무슨 수로 접할 수 있었겠는가. 문화 발전과 사회 발전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가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이자 칼릴 지브란 번역가이기도 한 강은교 동아대학교 명예교수는 한 에세이에서 "흔히 반역(反逆)이라 말해지는 번역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을 일이다"라고 하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나의 세계를 알게 해주는 것이라면 '마땅히' 할 일이다"라고 번역의 그 복잡함과 모순됨을 말한 적이 있다.

이런 복합적인 일을 비즈니스로 삼는 협동조합이 있다. 지난해 6월 설립된 '번역협동조합'(대표 이수경)이 그곳이다. 이 조합의 최재직 사무국장을 만나 번역 사업과 조합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번역사에게 정당한 대가를 먼저, 번역협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나라 제1호 협동조합이 대리운전협동조합이잖아요? 퀵서비스협동조합도 있고요. 그분들이 협동조합 만드신 주된 이유가 수수료를 부당하게 떼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번역 일 하시는 분들이 대리운전이나 퀵서비스 하시는 분들보다 수수료를 더 많이(보통 50%) 떼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이런 문제를 고쳐보자는 생각에 번역협동조합을 만들게 됐습니다."

최 사무국장은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부인도 영어 번역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주변에 통‧번역 일을 하는 지인이 많았다.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모아나가기 시작했고, 드디어 지난해 6월 협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번역협동조합

품질이 다른 통‧번역

번역협동조합은 통역과 번역, 즉 다른 나라 글이나 말을 우리글이나 말로, 또 우리말과 글을 다른 나라 말과 글로 바꾸는 일의 가치를 알고 그 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협동조합이다. 무엇보다, 비즈니스의 중간유통 과정을 최소화하여 고객들에게는 더 저렴한 통역 및 번역료를 제시하고, 통‧번역사에게는 더 많은 통‧번역료를 지급하는 것을 사업의 미션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다른 번역 업체에 비해 10% 정도 저렴한 비용으로 번역을 수행하고, 번역사에게는 20% 정도를 더 지급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조합의 조합원이 되려면 출자금 10만 원과 월 회비 1만 원씩을 내야 하는데, 그렇게 모인 조합원이 현재 약 90명 정도다.

조합원은 통‧번역 조합원과 일반 조합원으로 나뉜다. 통‧번역 조합원은 현재 영어 30명, 일어 7명, 중국어 5명, 스페인어 4명, 프랑스어와 독일어 각 2명씩이 활동하고 있고, 이 중 외국에 거주하는 조합원이 10명이다. 일반 조합원은 번역 원고에 대한 기술 감수를 맡는다. 펀드매니저‧교사를 비롯해, 기자‧노무사‧변호사‧세무사‧변리사‧디자이너‧약사‧요리사‧감정평가사‧은행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1차 번역원고에 대한 꼼꼼한 기술적 검토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번역협동조합은 다른 번역 업체에서 기대하기 힘든 ‘고품질 통‧번역’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일반 조합원들은 조합에 통‧번역 일감을 소개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 조합은 소개 수수료를 별도로 지급한다.

사회적경제 영역의 전문 번역업체

그렇다면 번역협동조합이 지금까지 수행한 작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무래도 협동조합이니까 일반물 번역보다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의 활동을 소개하자면, 올해 7월 사회적경제 한마당 '사회적경제 영화제'에서 상영된 <로치데일 선구자들> 영화도 우리 조합이 번역했습니다. 아이쿱과 저희, 그리고 '모두를위한극장협동조합'이 함께 한 작업입니다. 그리고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세 마리아 신부 평전>을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와 함께 번역 검토 중입니다. 이 책은 스페인에서 축약본을 발간한다고 해서 그 추이를 보고 있습니다. 발간되면 우리나라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책으로 주목을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노동자협동조합 30년 역사>도 번역하고 감수 중입니다."

번역협동조합은 그 밖에도 지난해 11월 서울시청에서 열렸던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 2013)의 자료 번역과 통역을 맡아 완벽하게 수행해냄으로써, 사회적경제 영역 내에서 그 위치를 분명하게 다지는 기회로 만들었다. 이러한 성공 경험이 계기가 되어 2014년 들어서는 통‧번역 의뢰가 대폭 늘었다.

이런 활동들이 쌓여 지난 8월에는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안의 열린토론장에서 ‘번역협동조합 창립1주년 기념 포럼’을 가질 수 있었다. 컴퓨터 활용의 번역에 대한 토론과 외국어표기법과 같은 번역 실무뿐 아니라, ‘번역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를 주제 삼아 서로 생각을 나누기도 하는 자리였다.

일도 잘하고 살림도 잘하는 협동조합지난해에 번역협동조합은 5개월간 약 4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크고 작은 도서 및 서류 번역, 그리고 11월에 열렸던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 2013) 행사의 자료 번역 및 통역에서 생긴 매출이다. 올해는 그보다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기대했던 브라질월드컵 특수(特需)는 누리지 못했지만, 이미 지난 7월에 세계민주교육한마당(IDEC 2014) 통역을 진행했고, 하반기에 예정된 국제회의의 통‧번역 업무도 많다. 9월 말에는 사회투자지원재단과 중앙자활센터에서 진행하는 '사회적경제와 지역재생'을 주제로 진행하는 ‘2014 자활복지 국제포럼’, 10월에는 공정무역단체협의회의 'WFTO-ASIA 콘퍼런스'와, 함께일하는재단에서 주최하는 '2014 사회적기업월드포럼(SEWF 2014)', 11월에는 서울시가 주최하는 '2014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창립총회(GSEF 2014)', 그리고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연금 국제심포지엄'이 예정돼 있다.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살림도 나아지고 있습니다. 쑥쑥 커나가는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번역협동조합의 앞길은 최 사무국장의 표정만큼이나 밝아 보인다.

* 번역협동조합
홈페이지 : www.transcoop.net
전화 : 02-388-0003

*격월간 '자치와 협동'(발행인 양홍관)은 협동조합인 삶의출판협동조합(이사장 손훈모)이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지역자치와 협동사회경제의 활동들을 널리 취재‧보도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자치와 협동'은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자치와 협동'은 지역자치와 따뜻한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자치와 협동'은 협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웃음과 훌륭한 리더십 이야기를 담습니다. (☞ 자치와 협동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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