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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게 가장 부족한 것? 미안하다 할 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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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진보에게 가장 부족한 것? 미안하다 할 줄 몰라"

[진보정치 성찰과 모색 연속 인터뷰] <5> 여영국 경남도의원

장기간 끌어온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여야 보수정당의 안일한 협상으로 심히 왜곡되었다. 철도-의료 민영화도 일방적으로 강행되고 있다. 식량주권의 보루인 쌀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있다. 대선 시기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도 규제 완화란 이름의 신자유주의 처방으로 사정없이 녹아나고 있다.

종편 양산과 방송 장악, '일베'에 이어 카톡 사찰,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까지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정체성의 혼란, 계파의 갈등을 거듭하는 제1야당의 모습은 국민들의 낙담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당연히 유사 파시즘에 대한 우려가 퍼지고 있다.

‘통일대박’론, 통일준비위 구성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북 최고위급의 방문으로 어렵게 돌파구를 마련했으나 북 핵-미사일을 들먹이고 인권문제를 정치도구화하는 미국의 간섭, 서해와 휴전선 근방의 총격전, 대북 삐라 살포로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치세력의 형편은 어떠한가? 존재감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과거 상처로 인한 상호 불신으로 통합은커녕 연대 연합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조직적으로 지지 지원했던 민주노총, 전농, 전여농 등의 조직 대중에게도 실망과 좌절을 안긴 채 새로운 믿음과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당, 정의당, 노동당이 혁신 단결이나 재편 통합을 논의하고, 11~12월 민주노총 직선제 공간에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이 공론화될 전망이다. 이런 시점에 혁신노동 혁신자주, 노동중심 진보통합을 주창하는 전국정치단체 <새로하나>가 진보정치를 아끼는 각계 인사들, 진보정치에 몸담아온 정치인들과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진보정치, 성찰과 모색]에 대한 고견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그 다섯 번째로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의 유일한 지역구 광역의원이자 경남에서 유일한 야권 지역구 도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노동당 소속 여영국 경남도의원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10월 29일 서면과 전화로 정성희 새로하나 집행위원(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진행했다. '편집자'

▲ 여영국 경남도의원. ⓒ여영국

정성희 소장 : 노동자 밀집 지역이자 진보정치 1번가라는 경남 창원에서 다른 진보정당 후보들은 모두 낙선했는데 혼자 당선된 요인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간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여영국 의원 : 정말 곤란한 질문이군요. 자칫 제 자랑처럼 들려 팔불출 소리 듣기 딱 알맞고, 진보정당운동의 현주소를 제대로 짚어보자는 질문이라 숙연하고 조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이석기 사건'의 유탄으로 통합진보당 도의원들 낙선

지난 9대 경남도의회에서 저와 함께 활동했던 통합진보당 소속 도의원들이 계셨습니다. 사실 그분들은 활동이나 능력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딱히 제가 어떤 활동을 잘해서 당선되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석영철 전 도의원은 지역의 언론계, 시민사회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실제 기획력이나 추진력, 대중 친화력에서 매우 훌륭한 의원, 유능한 활동가였어요. 그런데 이른바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의 유탄을 맞았죠. 이종엽 전 도의원도 능력 있는 분일 뿐 아니라 그야말로 노동자판의 선거구여서 이석기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아무도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통합진보당의 부정적 이미지가 아니었으면 가장 압도적인 표차로 이겼을 겁니다. 이분들은 이석기 사건으로 조성된 불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일찍이 출퇴근 인사도 하고 선거 준비를 했는데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어요.

이 대목에서 이석기 사건이 진짜 내란 음모, 내란 선동이냐 아니냐고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형법이 규정하는 내란 음모나 내란 선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왜 남들 자는 야심한 밤에 그렇게 많은 수가 모여 그런 말도 되지 않는 대화를 나누었는가에 의문을 가집니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지요. 대다수 국민들의 이 같은 의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 더 큰 문제였어요.

많은 유권자들은 저 역시 통합진보당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심지어 저를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많았어요. "여 의원, 이석기·이정희와 손 끊어라. 전에는 사람 좋아 찍어줬지만 이번엔 그렇게 못한데이"라는데, 참 설명하기 난감했지요. 어떤 분은 인사를 하자 "이 빨갱이"라며 맥주를 뿌려 얼굴을 적시는 수모를 당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차라리 제가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다면 적극 대응이라도 할 텐데 말이죠. 그렇다고 "나는 그 쪽과 다른 사람이오"라고 할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저를 특별히 아끼는 어떤 분은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게 어떠냐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럴 생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동지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는 그런 말씀 마시라고 딱 잘라 말했죠. 그러자 그분이 "그래, 정치 하는 사람은 의리를 중시해야지"라며 격려를 해주시더군요. 선거 기간 내내 노동당명이 크게 적힌 잠바를 입고 다녔습니다. 이왕 맞을 매 피하지 말자는 생각이었죠. 별것 아닌 거 같지만, 지지층을 모으고 확장하는 데 나름대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지역구 자영업자들의 삶 조명, 재선 성공의 밑거름

물론 새누리당 후보와 1대1 대결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구도만으로 선거를 치르기에는 환경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밑바닥 민심 훑기에 총력을 기울였지요. 지난 4년 의정 활동 기간에도 해오던 일이었는데, 새벽부터 시장, 거리, 아파트 입구에서 "아이고, 여전히 고생 많구나"라는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당의 이미지나 정책, 세월호 책임론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 구도의 선거가 아니었어요. 밤늦게까지 민심 현장을 발로 뛰며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는 등 철저하게 인물 중심의 선거 전략을 펼쳤습니다.

또 2012년부터 약 1년에 걸쳐 지역구 자영업자들의 삶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였습니다. 약 1500개 점포를 직접 방문하여 그중 약 1000개로부터 설문지를 받을 수 있었어요. 이를 토대로 200여 쪽의 <창원지역 자영업 실태조사 보고서>라는 책을 냈고 사단법인 경남고용포럼과 함께 경남도의회에서 '사장님, 먹고살 만하십니까?'라는, 다분히 도발적인 주제로 정책토론회도 열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민병두 의원과 공동으로 상가권리금, 임대료 상한제 등을 주제로 지역구내 상남시장 상인회 강당에서 토론회도 열고 <상남동 사람들>이란 책도 냈습니다. 소설 형식을 빌린 다큐멘터리였는데, 꽤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선거용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억울한 책"이라고 평했으니까요.

처음 도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영업자들의 고단한 삶을 꼭 조명해봐야겠다, 그들을 위한 정책도 개발하고 그들과 함께할 조직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첫 번째 사업이었죠. 어쨌든 그 사업이 결과적으로 지역 상인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선거대책본부장을 맡는 등 많은 상인 분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셨어요. 앞으로 후속 작업을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선거 때도 느꼈지만, 평수 넓은 아파트 단지의 낮은 지지율에서 부자들의 계급투표 성향을 보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 빈곤층인 영세 자영업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상당히 보수화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들도 노동자계급의 범주에 있다는 판단으로 직접 만나고 함께해보자고 작심하고 자영업자 사업에 집중한 게 재선에 성공한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진보 분열로 경남 제2당 자리 내줘, 야권 후보 단일화 없이는 다 떨어져

정성희 소장 : 진보정당이 분열, 약화되면서 경남의 제1야당 자리를 새정치민주연합에 내주고 있는 형국인데, 지역의 정치세력 관계는 어떠하며 주민들의 평가는 어떠합니까?

여영국 의원 :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저와 같은 지역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의원(창원시의원) 후보가 당선되었는데요. 선거일을 20여 일 앞두고 지역구로 왔어요. 같은 창원이긴 하지만 농촌 지역에서 무소속 예비후보로 활동하다가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을 받고 우리 지역구로 온 거죠. 자고 나니 당선되어 있더라는 본인 말처럼 사실 아무도 당선을 점치지 못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중년 여성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거 때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들에게 누구 좀 찍어라 얘기하면 무조건 2번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가 경남의 정치지형을 바꾸어 놓은 게 아닐까 짐작합니다.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과 통합진보당이 선거연대로 성과를 얻었지만, 이번 6.4 지방선거에서는 일부 선거구를 제외하고 서로 독자적인 길을 간 거잖아요. 1인 선출 단위에서 새누리당 후보와 맞대결 구도 없이는 경남 지역에서 당선은 사실 어렵습니다. 통합진보당 현역 도의원 선거구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출마해 표가 더 많이 나왔지만, 당선은 안 되는 거죠. 향후 진보정당의 성장에 독약이면서 보약이기도 한 야권 후보 단일화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지요. 새정치민주연합이 경남에서 제2당이란 지위에 올랐지만 그에 걸맞은 정치활동은 없는 것 같아요.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도 선거 전이나 후의 일상 활동 방식이나 의제에 변화가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활동이 많이 위축되어 있기도 하고요.

최근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진보 3당의 관계자들이 함께 산행도 하고 단결의 기운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라는 연락은 받는데, 솔직히 말해 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깁니다.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한 그분들이 참패 이후 다시 모여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존중합니다만, 개인적으로 그런 움직임에 희망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미 실패한 똑같은 밭에 똑같은 농부가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씨를 뿌린다고 다른 새싹이 돋는다고 누군들 쉽게 희망을 갖겠어요?

진보정당에 노조 강화 전략, 사회 재편 토론, 구동존이 문화, 참신한 이미지 없어

정성희 소장 : 진보정치 분열, 약화의 핵심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대중적 진보정치를 하는 데 어떤 한계와 약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여영국 의원 :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나온다지만, 답하기가 두렵고 부담스럽습니다. 더구나 저는 현실 정치를 하고 정당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위치입니다.

진보정당의 튼튼한 토대가 되는 노동조합 등 대중 조직이 취약한 조건에서 진보정당이 대중 조직의 확대 강화와 이를 통한 성장 발전 전략이 없었다고 봅니다. 대중 조직 지도부 장악을 통한 정파적 이익에 급급해 대중 조직의 갈등을 야기하고 이것이 진보정당의 분열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한국 사회의 진보적 재편을 위한 전략 과제와 당면 실천 과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합의하지 못한 것도 진보세력 분열과 약화의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합의된 것이 없으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함께하려는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더 큰 문제였지요.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열,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의 배경과 과정은 다름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홀시하는 진보정치의 현주소입니다.

보수 언론, 정보기관에 의해 과장 왜곡된 측면도 있지만 참신성, 개혁 의지, 깨끗함 등 대중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진보정치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역사회에서도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등 타 정치세력에게 진보정당의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고 판단됩니다. "정치 하는 놈들은 모두 도둑놈"이라는 일반 대중의 인상에 진보정치세력이 제외되어 있지 않음을 시민들과의 대화에서 많이 느낍니다. "너도 별수 없네. 힘도 없는 것들이 너희들끼리라도 좀 뭉쳐라"라는 조롱 섞인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합니다.

"정치 하는 놈들"이란 국민의 부정적 인식에 진보정치세력도 포함돼

최근 제가 소속된 노동당에서도 당의 진로를 둘러싼 논쟁이 있습니다. 지난 2011년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논의할 때 우리 지역 다수 당원들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저는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는데, 이후 저를 대하는 일부 당원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 느껴지더군요. 민감한 문제는 사실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만, 진보정치세력들끼리 함께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당이 독자적 길을 모색하기보다는 진보정치세력 재편 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 발표에 연서를 부탁 받고 이름을 올린 것도 그런 뜻이었습니다.

정성희 소장 : 진보정치가 보수 정치, 자유주의 정치와 다르게 일상 활동과 선거운동, 대중운동과 의정활동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합니까?

여영국 의원 : 가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진보적 가치에 맞는 건가? 의원을 왜 하지?' 등등. 스스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정체성에 걸맞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자기 점검인 셈이죠. 이런 고민으로 시작한 일이 지역 자영업자 실태조사인데요. 비정규 노동 시장이 확대되면서 노동자가 영세 상인으로, 몰락한 영세 상인이 다시 비정규 노동자로, 자영업 시장과 노동 시장이 서로 겹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소득, 고용 불안 등 노동 시장의 어두운 그림자가 자영업 시장의 문제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영세 자영업자 문제 해결의 출발도 결국 노동 시장의 민주화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은 관심도 갖지 않을 뿐 아니라 필요성도 거의 느끼지 않았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사 사업을 하게 된 건데 재정 지원도 없어 직접 해결하면서 추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관련 행정부서에 실태조사 보고서를 줬는데도 신경을 안 쓰더라고요. 몇 차례의 토론회가 있었지만 공무원들은 아무도 안 오더군요. 협조 요청까지 했는데도 말이죠.

2011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때, 창원 지역에서 정리해고나 폐업으로 강제 퇴직한 노동자들의 생활과 의식을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른 상담,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 노동단체에서 계획서를 제출하고 예산까지 반영되었는데, 막판에 사업자 공개 입찰에서 노동자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연구기관이 선정되어 일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었던 경험도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철저한 계급정당진보정치, 정체성에 맞는 사업 기획하고 대중 조직화해야

도의원을 해보니까 지방의회도 어떤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지 분명하게 보입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곳이 결코 아니었어요.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는 입법과 활동을 더 치열하게 합니다. 새누리당이야말로 철두철미 계급적입니다. 오히려 진보정치를 하는 분들이 정체성과 가치에 맞는 방식으로 대중정치활동을 해나가지 못하고 있어요. 늘 민원에 시간을 할애하고 엄청나게 바쁘게 활동했음에도 한 해를 뒤돌아보면 손에 잡히는 게 없는 거죠. 우리의 정체성에 맞는 사업을 기획하고 대중을 조직화해 지지 기반을 넓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도의회 안에서 노동자, 서민의 요구와 정서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가 늘 고민입니다. 사업과 예산으로 반영되게 하고 조례 등 입법 활동으로 구체화됩니다. 간담회를 통해 요구를 수렴하지요. 조례 제·개정의 경우, 이해관계 당사자를 중심으로 공청회나 토론회를 통해 공론화, 여론화를 합니다. 보수정당과는 확연하게 다르지요. 하지만 그들도 이제 대중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요. 갈수록 활동 방식의 변별력이 없어지는 거죠. 그런 만큼, 진보정당이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하기까지는 철저히 소수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대중 조직과의 결합이나 다양한 의제로 대중을 조직화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작년 진주의료원 해산 반대 투쟁에서도 강력한 대중 조직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습니다. 매사를 그런 식으로 풀 수는 없겠지만, 의원들의 역할과 대중 조직의 요구를 도민들에게 알리고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 입법 활동이 공유되는 방향으로 활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들이 정치를 생활화하고 적과 아군을 분명히 구분하는 훈련도 될 것입니다.

정성희 소장 : 노동자들이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으로 재조직화되고 지역사회의 민주화, 진보화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여영국 의원 : 얼마 전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주관한 남미 정치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노조운동과 진보정치를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역사적 경험과 문화가 다름을 전제하더라도 우리의 민주노조운동이 부끄러웠습니다. 그쪽 노조운동, 정당운동, 사회운동 지도자들과의 대화에서 넓게는 국제주의적 시각, 좁게는 남미 지역 차원의 넓은 시야를 갖고 운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노동자가 소비 영역, 지역 의제, 지역 협약에 적극 참여해야

가령 아르헨티나의 민주노총인 CTA의 경우, 노조 가입 범위가 공식노동자, 비공식노동자, 사회운동단체까지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자체가 하나의 전선체처럼 폭넓은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어요. 브라질에는 농업노동자도 CUT에 가입해 노동조합과 토지 점거 농민운동 조직 MST가 끈끈한 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직 구조 자체가 지역사회로 나올 수밖에 없는 체제였어요.

ⓒ여영국


한국의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에 많이 알리지만, 노동자들이 지역사회의 과제에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주로 연례적인 통일 행사나 중앙 의제 중심의 정치 집회가 대부분이지요. 노조운동이 지역 의제를 가지고 조직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대단히 목적의식적으로 결합하거나 자신의 이해와 직결되는 지역 의제에 결합하는 경우가 될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 세 가지인데요.

첫째, 소비 영역 개입입니다. 가장 손쉽게 보이지만 실제 쉽지 않은 게 소비 영역 개입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처럼 노동자들을 탄압하면 그 매장에 안 가기 운동을 하고 탄압받는 조직이나 노동자들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지역운동이자 연대운동의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째, 구체적 지역 현안을 의제화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사업장 안에서 임금 등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노동조합으로 뭉치는 것 이외엔 소비, 교육, 주거 등의 문제를 모두 개별적으로 해결하고 있지요. 집단적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이 적극 모색되어야 합니다. 모든 이에게 공통적인 지역 문제를 의제로 만들고 지역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셋째, 지역 협약 추진으로 노조운동을 확장하자는 것입니다. 최근 생활임금 의제가 공론화되고 있는데, 생활임금 액수에 관한 지역 협약, 산업재해나 직업병에 무방비로 노출된 영세 노동자들을 위한 지역 협약 등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그 효력이 미치는 지역 노동협약 체결 운동을 추진해야 합니다. 양대 노총을 포함한 지역 총노동이 주도하여 지방정부, 사용자 단체가 참여하는 지역 협약 형태가 되겠죠. 진보정치운동이 이에 함께하고 상황에 따라 이 운동을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정치, 기존의 사고와 틀에서 벗어나는 용기 필요

정성희 소장 : 성찰과 혁신과 통합을 위한 현재 진보정당들의 입장과 태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여영국 의원 : 죄송합니다만, 제가 다른 당을 평가할 입장도 아니고 정보도 부족합니다. 의정 활동에 치우쳐 신경을 못 쓰기도 했습니다. 반성하고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기본적인 사상과 노선을 간직하되 기존의 사고와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엄연히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실사구시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됩니다. 정신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을 유지시켜줄 신체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정성희 소장 : 새민련 좌측으로 가자, 각개약진 하다가 통합하자, 대중 조직에만 매진하자 등의 편향이 생기고 있는데, 진보정치의 재편 통합이 필요합니까? 또 가능하겠어요?

여영국 의원 : 분열된 진보정치로 결국 손해 보는 것은 노동자, 서민임을 직접 체험하고 있습니다. 또 절대적 소수의 처지에서 한 명의 동료 의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따라서 힘 있는 진보정치 구성을 위한 재편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가끔 "도의회에 통합진보당도 없고 너 혼자 있어 돋보이고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씀 드리죠. "지금 잠깐 돋보이면 뭐하겠습니까? 아무 일도 못하는 걸요." 실제 그렇습니다. 통합진보당이든 정의당이든 뜻을 함께하는 동료의원이 서너 명만 있어도 의회 내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협상도 가능합니다. 9대 의회보다 더 좋은 조건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대중 조직이나 정치 조직은 잘나갈 때가 아니라 위기를 맞이할 때 만들어지거나 변화 발전의 길을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는 말처럼, 진보정치운동이 바닥까지 내려갔기에 살기 위한 몸부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재편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진보정치세력들이 연대 연합을 강화하고 공동 사업을 확대해 노동자, 서민들에게 진보정치의 새로운 희망을 주는 방향으로 논의를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의제를 만들고 함께 실천을 하고 함께 성과를 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 여영국 경남도의원(우). ⓒ여영국


"혼자 돋보이면 뭐합니까? 아무 일도 못하는 걸" 연대 연합 공동 사업 강화해야

정성희 소장 : 진보정당들끼리의 상층 통합 논의로는 감동도 성사도 어려운 상황인데, 노동자 민중의 새 기대를 일으키는 진보정치의 재구성 방안이 무엇일까요?

여영국 의원 : 당장 기존 정당들의 재편 통합은 불가능할뿐더러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하기도 어렵고 대중적 신뢰를 확보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방안을 논의하기 전에 개인이든 정파 조직이든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브라질의 정파 연합, 정파 존중, 독자 활동 보장 등의 규칙과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봐야 합니다. 선거 제도의 개혁 없이 과연 진보정치세력의 집권이 가능한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우리 내부부터 결선투표제나 정파 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해보자는 거죠. 정파연합당이나 지역당 전국연합도 고민할 수 있겠지요.

정성희 소장 : 노동진보정치세력 간의 상처와 불신, 지역 주민들의 외면과 냉소를 극복하고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진보정치 재편 통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영국 의원 : 자기반성과 고백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세력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할 줄 모른다, 용서를 구할 줄 모른다고요. 정치인들, 특히 진보정치인들의 소양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존심이 너무 강해 그걸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이것이 되면 상처와 불신도 해소되고 지역민의 외면과 냉소를 극복하면서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진보정치의 재편과 통합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반성하고 고백하면 진보정치 재편 완성된다

이를 위해 우선 지역 단위의 공동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서로 얼굴도 잘 알고 과거 함께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뭉쳐 지역에서부터 일을 벌여야 합니다. 지역 민생 의제가 중심이 되어야 하겠죠. 주택 실태조사, 자영업자, 비정규 노동자 문제 등 함께할 일은 많습니다. 요구 사항도, 지역 정책도 함께 만들어 공동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그간의 나쁜 관행, 관습, 태도를 일신하는 진보정치 정풍운동이 가미되면 반드시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진보정치를 복원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과거처럼 자기 정파 이익, 상대를 짓밟는 패권주의, 조직 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력적 종파주의에 함몰되면 도루묵이니까요. 지역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얘기해볼 생각입니다.

정성희 소장 : 노동자 밀집 지역이고 전략 지역인 경남과 울산의 진보정치를 부활시키기 위해 노동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영국 의원 : 노조 운동의 제자리 찾기가 진보정치 부활의 출발점이란 점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높다 하더라도 역시 노조 운동 없는 진보정치를 상상할 수는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노조운동의 계급적 대표성 회복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쉽게 결론을 내기보다 지역사회에 노동조합, 노동운동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제안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지역 미조직 노동자 사업, 노조 운동의 소비 영역 개입, 지역의제 결합을 토론할 수 있겠지요. 진보정치가 부활하기 위해선 노동조합이 먼저 일어서야 하고, 노동조합이 일어서기 위해서는 진보정치가 부활해야 합니다. 저도 지역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만나 논의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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