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닭 우는 소리에 깨어보니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첫새벽이다.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이니 천근만근이고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 농촌의 시원한 바람이 생기를 불어넣어 주지만 무거운 다리는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는다. 스트레칭을 하고 순서대로 아침 식사와 기도 그리고 서로 인사를 하고는 신발 끈을 묶는다. 그런데 평상시와는 다르게 꽉 쪼이는 느낌이다. 애써 밝은 마음으로 새 길을 출발했지만 아무래도 발이 불편하다. 너무 조인 것 같아서 옆길로 잠깐 나와 신발 끈을 느슨하게 다시 묶었다. 아무래도 부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하게 잘도 가는데…. 아무래도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것 같다. 이럴 수가…. 산길을 하루 종일 다녀도 다음 날에 이러지 않았는데 몸이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아스팔트가 원인인 것 같다. 물 한 모금 머금을 줄 모르는 인색한 아스팔트가 내 몸무게를 조금도 받아 주질 않고 고스란히 발목과 무릎에 반사해 주니 발과 다리가 반란을 일으킨다. 쉴 때마다 미안하다고 어루만지고 주물러 주고 달래 준다. 그리고 겸손하게 걷는다. 씩씩하고 힘차게 걸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겸손하게 걷는 것을 배우는 것 역시 중요한 깨달음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몇 km를 걸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걸었다는 훈장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 길을 걷는 그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니까….
노선이 바뀌었다. 영산강변을 따라 광주까지 올라가는 애초의 코스를 바꾸어 나주를 관통하는 코스를 택한 것이다. 만발한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영산강변을 걷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매연도, 몸에 닿을 듯 섬뜩하게 과속하는 자동차도 없이 아름다운 강변 꽃길을 걷는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낭만적이고 흐뭇한 일인가? 그러나 그 길을 바꾼 것이다. 매연과 과속 차량들이 우글거리는 길로 바꾸었다. 사람들 속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자기 수행만을 위해 걷는 순례 길은 한적한 흙길, 하늘의 섭리가 고스란히 보전된 자연의 길을 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조용히 홀로 떠나면 그만이다. 혼자 득도하면 된다. 허나, 세월호의 비극과 억울한 학살의 원혼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진상 규명과 생명 평화의 새 세상은? 개별 수행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사람들 마음속에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비극과 고통이 마음의 길에 막혀서 생긴 것이 아닌가?
우리가 내건 구호(?)는 생뚱맞다. '미안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변하겠습니다.' 이것이다. 가슴과 등에 달고 다닌다. 무슨무슨 요구 사항을 내건 치열한 투쟁의 구호가 아니다. 다분히 감상적이고 유약하다고까지 보일 수 있는 자기 결단식 구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환대한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목사님들이 잠자리를 제공하고 먹거리를 푸짐하게 차려준다. 주유소에서, 약국에서, 장보러 길을 가는 젊은 아줌마가, 농사짓는 분이 물과 우유와 빵과 약품, 즉석에서 딴 감… 등을 챙겨 주신다. 이 지역 인심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더더욱 고맙고 감사했다. 그것은 공감의 표현이요 '민심'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민심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미안해하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 사회와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역사에서 멀리는 동학혁명에서 가까이는 세월호 참사까지 국가가 피해자들,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숨죽여 살아야 하고 드러날까 봐 조심스러워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진상이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에 가해자들이 오히려 더 활개를 치고 사실을 왜곡해 왔던 것이다. 한마디로 염치가 없고, 수치심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본의 침략과 지배가 하느님의 뜻이라고 버젓이 말하는 사람이 총리 후보까지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4.16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 변화는 우리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으로, 행동으로 기억할 줄 알았다면 세월호 특별법을 이렇게 기만적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민심의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조용히 우리의 수치심과 염치를 회복하면서 올바로 기억하려고 한다. 길 위에서 벌어지는 '기억투쟁'이다.
길이란 원래 없었다. 그런데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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