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오늘 도보순례는 영암에서 나주 시내를 가로질러 가는 코스였다. 어젯밤 잠깐 내렸던 비가 가을 전령사였던가 보다. 바람 속에 찬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약 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우습제'는 도보순례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홍련 이파리들이 습지가 된 저수지를 가득 메웠고 물 위는 철 지난 개구리밥이 가득했다. 한반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우습제를 바라보며 기나긴 세월 동안 이곳을 이용한 소의 발자국과 소똥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도 스며들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개발로 파괴되어 가는 고대부터 이어오던 힘없는 자연 생태계처럼 우리 사회도 힘없는 사람들의 삶이 경제 개발 앞에 희생되는 일이 많아 미래가 암울하다.
최근에 만났던 한 사람이 생각난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하는 시민들과 성공회 가족들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회원인 한혜경 씨와 어머니를 초대한 것이었다. 한혜경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삼성반도체에 입사하였다. 뇌종양 발생에 따른 제거 수술로 목숨은 건졌으나 시력, 언어, 보행 장애로 홀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지금도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싸우고 있다. 한혜경 씨 어머니는 세월호 사건이나 삼성반도체 사건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안전은 무시하고 사람의 목숨도 보상해주면 그만이라고 보는 점과 이를 정부가 옹호한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궁금했던 것을 묻는 시간이 되었다.
"10억이라는 보상금이 적은 금액이 아닌데 왜 거부하셨나요? 그리고 어떻게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어요?"
삼성이 한혜경 씨 어머니에게 주겠다고 했다는 10억, 실제론 5억이었을지도 모를 그 돈을 혹시라도 엄마가 받을까봐 혜경 씨는 집 문턱 화장실에서 엄마를 지켜봤다고 한다. 혜경 씨 어머님은 그 돈의 10분의 1도 실은, 평생에 만지기가 어려운 돈인지라 혜경 씨를 달래도 보고 뺨을 때려가면서까지 그 돈을 받자고 했다. 하지만 혜경 씨는 끝내 제안을 거부했고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처..음.. 느...낌... 그...대...로.. 반..올..림을 믿...었..어...요."
삼성이 약속했다는 10억. 우리는 그 돈의 100분의 1도, 혜경 씨 가족에게 드릴 수는 없다. 하지만, 덩그러니 남은 혜경 씨의 삶에 한 명의 친구로 남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보상금 문제로 얼마를 받느냐는 것에 초미의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유가족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 목숨 값을 흥정하는 못난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
이미 생업을 포기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부모의 심정을 보상금 얼마로 흥정하려는 정부와 언론의 장삿속을 보기 좋게 유가족들이 깨뜨려 주길 부탁드리고 싶다.
전라도의 인심이 좋은 건지, 우리 도보순례가 하는 일이 좋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파이팅~' 하며 외치기도 하고 음료와 간식을 사다주는 분들도 있었다. 이런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믿어주면 좋겠다. 한혜경 씨가 처음 느낌 그대로 반올림을 믿었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들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실종자와 실종자 가족들이 외롭지 않도록 끈질기면서도 지속가능한 관계 맺기가 필요한 시점이라 여겨진다. 그러면 진실을 밝힐 기회는 꼭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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