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정부의 '쌀 시장 전면 개방' 조치를 비판하는 내용의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인터뷰가 발행됐습니다. (☞관련 기사 : "협상도 안 하고 쌀 개방…'좀비 공화국'인가")
인터뷰가 발행된 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김 전 장관의 주장에 반박하는 반론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프레시안>은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농림부의 반론 기고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님께,
1995년 공직에 첫발을 디딘 후, 그해 겨울 인천항에서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의무수입물량(MMA) 쌀 검사를 시작으로 약 20년을 농식품부에 근무하고 있는 후배공무원입니다. 7급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국제농업국 농업통상과에서 WTO 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장관님에 비할 바는 못 되나 저 또한, 어느 누구 못지않게 농업을 사랑하고 농업과 농촌의 미래를 고민하는 농군의 자식이라 자부합니다. 올해 추석에도 항상 그랬듯이 고향을 방문하자마자 논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제는 고희(古稀)를 네 해나 넘겨 힘이 부치셔서 논을 농지은행에 맡기신 가친(家親)이지만, 그래도 객지에 나가 있는 일곱 자녀와 그 손주들 식량은 직접 먹이신다고 여전히 한 뙈기의 조그만 논에 벼를 재배하고 계십니다. 다른 어떤 논보다 피사리도 잘 해 놓으시고 논두렁에 여전히 서리태 콩을 빼곡히 심어 놓은 아버님의 논을 볼 때마다, “벼농사는 아버님의 인생이다”라고 감히 단정(斷定)해 봅니다. 어릴 적 아버님께서는 삽과 낫을 들고 매일 새벽에 논으로 나가 아침 해를 맞이하셨습니다. 올 2월, 20년 동안 미뤄왔던 쌀 관세화 숙제를 풀어볼 요량으로 자청하여 쌀 관세화 대외업무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며 시골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었습니다. 그때 아버님께서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 한다지만, 농군의 아들로서 잘 못 간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때 아버님께 다짐했습니다. 쌀 관세화 업무를 지혜롭게 잘 해서 수입쌀 염려를 덜어 드리고 일흔 네 해 몸담으셨던 아버님 인생을 지켜 드리겠다고….
지난달 30일 쌀 관세율 513%를 담은 쌀 양허표 수정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였습니다. 장관님께서는 513%의 관세를 지켜내기 어렵고 그래서 수입쌀이 홍수처럼 밀려오면 이 땅에 농부와 농사가 사라진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협상 한 번 없이 관세화를 단행한 후배 공무원들을 질책하시고, 20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관세화 유예를 해야 했다고 걱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장관님의 이상적인 염려와는 달리 현실과 국제규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먼저 내년에도 관세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저희도 국내․외 통상 및 법률전문가의 자문 등을 통해 면밀히 검토했으나,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WTO 농업협정 부속서 5’에서는 관세화 유예(특별대우)가 관세화 원칙에 대한 한시적 예외조치로서 1995년부터 10년간 가능하고 그 연장은 2004년에 1회에 한해 협상을 통해 가능하다고 명백히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대우 기간이 종료되면 관세화로 전환된다고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만일 2015년 이후 관세화 의무가 발생하는데 유예 연장을 시도하는 경우에는 예외를 계속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WTO 회원국들의 동의가 필요하며 추가적인 대가 제공이 불가피합니다. 이는 최근 필리핀의 쌀 관세화 의무면제(웨이버) 사례를 통해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장관님의 지적처럼 필리핀은 이미 많은 쌀을 수입하고 있으므로 의무수입물량을 2.3배 늘리는 것이 부담이 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관님의 또 다른 지적처럼 우리나라는 쌀 자급이 가능한 나라입니다. 매년 의무적으로 일정한 물량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필리핀과 같이 의무수입물량이 2.3배 늘어나면 우리나라 쌀 산업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필리핀의 사례를 통해 관세화 유예가 현실적으로 국제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필리핀은 두 번째 쌀 관세화 유예 종료기한인 2012년 6월 말을 8개월 앞둔 2011년 11월에 WTO 농업위원회에 쌀 관세화 특별대우(관세화유예) 연장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회원국들은 WTO 농업협정에 의한 쌀 관세화 특별대우의 연장은 1회만 가능하며, 농업협정상으로는 추가유예 근거가 없다며 반대하였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은 2012년 3월, 관세화 이행을 3개월 앞두고 이번에는 WTO 농업협정이 아닌, 마라케쉬 협정에 따라, 그리고 WTO 농업위원회가 아닌 상품무역이사회에, 특별대우 연장이 아닌 WTO 농업협정에 규정된 관세화 의무를 일시적으로 면제해 달라는 웨이버(Waiver)를 신청했습니다. 그 결과, 의무수입물량을 2.3배 증량하고 국별 쿼터를 5.5배 증량하였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은 5년간의 한시적 의무면제 이후 2017년 7월 1일부터 관세화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필리핀이 영구적으로 관세화를 유예 받았다면 우리 쌀 산업을 위해서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필리핀 사례는 WTO 농업협정에 따른 관세화 추가 유예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대가 없는 관세화 유예 연장은 없으며, 관세화 의무를 면제받더라도, 한시적이며 결국에는 관세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의무수입물량을 늘리지 않고 관세화유예를 유지할 수 있다(일명 ’현상유지‘)’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에 대해 정부가 협상을 시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장관님께서는 2004년 당시 아무런 전략 없이 쌀 의무수입물량을 덜컥 4%에서 8%로 두 배 올려줬고 수입량의 30%를 밥쌀용으로 들여오도록 했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지금 생각하면 저희도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2004년 당시, 2001년부터 시작된 관세 추가감축 등 새로운 시장개방을 논의하는 도하개발아젠다(DDA)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단 관세화를 유예해 놓고, DDA 협상 결과를 본 다음에 만일 관세화가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중도에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판단이었고, 농업계 대부분도 공감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의무수입물량을 늘리지 말고 그때 관세화를 했더라면 더 나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 관세화유예를 얻기 위해서는 ‘농업협정 부속서 5’의 제9항에 명시된 ‘추가적이고 수락 가능한 양허(additional and acceptable concessions)’가 불가피했고 그 결과 의무수입물량이 8%까지 늘어났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후배 공무원으로서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매년 늘어나는 의무수입물량이 쌀 수급에 부담으로 작용함에 따라 2009년에 학계, 언론계를 중심으로 조기관세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농어업선진화위원회의 쌀 특별분과위원회에서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공론화되었으나, 농업계 내부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었는데, 그때에라도 관세화가 이루어졌더라면 의무수입물량을 많이 줄일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장관님께서는 정부가 제시한 관세율 513%를 지키기 어려우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와 자유무역협정(FTA)도 넘어야 할 산이라고 애정어린 충고를 주셨습니다. 맞습니다. 513% 관세는 매우 드문 아주 높은 관세입니다. 하지만 관세율은 WTO 농업협정에 명시된 계산방식에 따라 산출하였으므로, 앞으로 WTO 회원국들에게 관세율 계산 근거와 논리를 설명하여 우리가 제시한 관세율이 확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대만, 일본도 쌀 관세화 시 처음 제시한 관세율을 검증 마지막까지 지켜냈듯이, 정부도 고율관세 확보가 최우선임을 목표로 검증에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FTA나 TPP 등 양자 간 혹은 역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더라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쌀은 양허 제외하여 관세율이 낮아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관세화하더라도 중국의 저가 쌀이 수입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최근 현지 조사 결과 중국산 저품질의 쌀도 80kg 도매가격이 5만5000원 수준이므로, 이에 513%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국내 도입가격은 80kg당 34만 원 수준으로 현재 우리 쌀의 약 2배에 달해 정상적으로는 수입되기 어렵습니다.
이제부터는 장관님께서 사실과 다르게 알고 계시는 부분이 있어 외람되지만 정정하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나라 관세율(513%)은 일본(800~1200%)과 대만(560%)보다 낮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가세(從價稅)와 종량세(從良稅)의 차이부터 알아야 할 텐데요. 일본과 대만은 우리나라가 선택한 종가세(일정 비율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수입가격 변동에 따라 관세가 달라짐)가 아닌 종량세(일정액을 관세로 부과하며, 수입가격 변동과 상관없음)로 관세화하였습니다. 수입쌀 1kg마다 일본은 341엔을, 대만은 45대만 달러를 부과합니다. 이는 당시 국제가격이 낮아 이를 종가세로 환산할 경우 일본은 1066%, 대만은 563%로 상당히 높습니다. 하지만 종량세는 국제가격이 높아져도 kg당 부과하는 고정 관세이므로 최근 국제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경우 그 비율은 낮아지게 됩니다. 참고로 2013년 수입가격을 기준으로 일본과 대만의 종량세를 종가세로 환산하면 두 나라 모두 300% 미만이 되어 우리나라가 내년부터 적용하는 513%보다 현저히 적습니다. 하지만 이런 300%미만의 관세율에도 일본과 대만은 매년 의무수입물량 이외 자유롭게 수입하는 쌀은 500톤 미만으로 아주 미미한 양입니다. 이에 견준다면 우리나라가 제시한 513%의 관세는 우리 쌀을 보호하는 역할을 든든히 해 낼 것으로 봅니다.
둘째, 1986∼88년 소비량 기준으로 8%인 의무수입물량 40만8700톤은 현재는 쌀 소비량이 줄어들어 15% 수준이라고 언급하셨는데, 사실은 2014년 의무수입물량 40만8700톤은 2013년 국내 쌀 수요량 449만1000톤의 9.1% 수준입니다.
셋째, 관세화로 개방하려해도 한국은 UR 협상 전에 쌀을 수입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관세율을 매길 근거가 없다고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WTO 농업협정 부속서5’의 가이드라인에는, 관세상당치(TE)는 국내외 가격차이로 계산함을 명시하고, 국제가격으로는 우리나라의 실제 수입가격을 사용하되, 이 가격이 이용가능하지 않거나 부적절할 경우 인접국 수입가격이나 주요수출국의 수출가격을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관세율을 계산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마지막으로 쌀 관세화 및 양허표 수정안 결정은 그동안 지역별 설명회, 간담회, 토론회, 공청회 등에서 제시된 농업인 등 각계의 의견, 전문가와 관계부처의 면밀한 검토, 국회차원의 논의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우리 쌀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많은 검토 끝에 어렵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지금도, 어릴 때 아버님께서 쌀 한 톨을 만들기 위해 여든 여덟 번의 농부의 손길이 들어간다며, 밥알 남기는 것을 경계하셨던 밥상머리의 훈계가 저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장관님과 같이 경륜과 학식이 많으신 분들이 후배 공무원들에게 애정어린 훈수를 주고 또 격려해 주는 가운데, 쌀 관세화 검증이 잘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통상과 농업사무관 이정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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