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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보다 중국 섬기는 게 낫다? 위험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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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보다 중국 섬기는 게 낫다? 위험한 착각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31> 중국 국경절을 맞아 생각해 보는 한중 관계

'강절에 풍년이 들면 천하가 풍족하다[蘇湖熟天下足]'는 중국 옛말이 있다. 강절은 현대 중국 제일의 도시인 상하이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는 강소성(장쑤성)과 절강성(저장성)을 가리킨다. 장쑤성을 '소(蘇)'라고 한 것은 그곳에 '중국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물의 도시 소주(쑤저우)가 있고, 저장성을 '호(湖)'로 표현한 것은 그곳에 천하 절경으로 꼽히는(사실은 별로다!) 서호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로부터 중원을 족히 먹여 살릴 만큼 산물이 풍부하던 저장성은 그 중심 도시 항저우가 대운하의 종점이 되면서 상업적으로도 엄청나게 발달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릴 만큼 장사의 귀재들로 알려져 있다. 지난여름 칭다오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항저우 사람이 스무 살이 되어서도 고향에 남아 있으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일찍부터 외지에 나가 장사의 기술을 배우는 게 '제대로 된' 항저우 사람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지도에서 저장성을 찾아봤더니 면적이 딱 남한만 했다. 오늘날 중국에서 한국인은 꽤 똑똑하고 세련되고 돈도 잘 버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물론 한류가 큰 역할을 했다. 칭다오만 해도 미용실이니 문방구니 하는 곳까지 '한국식'이란 말을 붙여야 손님이 더 꾀고, <별에서 온 그대>의 인기 때문에 한 블록에도 두세 개의 '치맥점'이 있었다. 중산공원이라는 곳에서는 한국에서 포맷을 수입한 중국판 <아빠 어디 가>의 촬영 현장이 자랑스럽게 공개되고 있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8월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모습들을 지도에 오버랩 시키며 나는 중국 사람들이 한국을 볼 때 저장성을 연상할지도 모르겠다는 싱거운 생각을 했다. 딱 그만큼의 크기, 딱 그만큼의 인구, 딱 그만큼의 똘똘하고 돈 잘 버는 사람들…. 더욱이 항저우는 여진족(금나라)의 침략을 받아 남쪽으로 밀려난 송나라가 임시 도읍으로 삼았던 곳으로, 역시 여진족(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임금의 항복이라는 치욕을 당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시공을 초월해 절절한 동질감을 표하던 곳이 아닌가?

혹자는 아무리 면적과 인구가 같다 해도 일개 성에 불과한 저장성을 주권국가인 대한민국과 비교하는 데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그것만도 호사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뉴스가 있었다. 중국의 전자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일거에 페이스북을 제치고 주요 IT 기업 가운데 4위의 시가총액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IT 업체 하면 야후, 이베이 따위 미국 기업이나 떠올리던 대다수 한국인에게 그것은 '알리바바'라는 이름만큼이나 신기루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나 버린 이 신화의 주인공,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아니나 다를까 바로 항저우 출신이다.

중국을 우습게 여기던 '20년'은 끝났다

마윈의 신화를 보면서 저장성을 한국에 비교하는 게 더 이상 저장성에 과분한 일이 아니겠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마윈의 뒤에는 5000만 저장성 사람들뿐 아니라 13억 중국인이 있다. 곳곳에서 유사 이래 한국이 처음으로 중국을 우습게 보았던 '20년'이 끝났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들을 수 있다. 20년이란 물론 1992년 한중수교 이래의 시간을 말한다. 값싼 노동력을 고용해 돈 벌 수 있는 곳, 싼 물가 덕분에 마음껏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곳이던 중국이 사라지고 있다. 중국에서 누리던 한국인 프리미엄이 언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한국의 중소기업 제품을 알리바바에서 판매하는 문제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챙길 만큼 중국은 한국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미국,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높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눈앞에 다가온 한중FTA가 체결되면 한국 농업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을 게 뻔하지만 정부와 주요 언론은 농민의 애절한 목소리에 애써 눈을 감는다. 6.25전쟁 때 우리와 맞서 싸운 그 공산당이 여전히 집권하고 있는 나라건만, 사납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땅의 보수 우익조차 중국에 대해 모진 소리 하는 꼴을 보기 어렵다.

중국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눈치나 살살 보는 건 소위 진보 쪽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모든 분야에서 공룡처럼 성장하는 중국의 모습에 싫든 좋든 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중국과 맺었던 사대 관계가 형식적 불평등을 안고 있었을지 모르나 오늘날 미국이 세계를 대하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관계는 아니었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이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사학계에서만 '식민사관의 잔재'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내놓던 얘기이다. 그런데 국사학자들은 그것을 어디까지나 역사적 현상으로 평가하는 반면, 최근 나오는 얘기는 중국을 큰 나라로 '모시고' 새로운 중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짙게 풍기고 있다.

보수 쪽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중국이 아닌 잠재되어 있는 중국, 덩샤오핑 이전의 중국에 대해 애써 눈감고 싶어 하는 것은 안쓰럽긴 해도 이해가 간다. '제발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던 그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말고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은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으로 남아 주소서.' 이렇게 빌고 또 빌고 있을 그들은 본래 물불 안 가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족속이 아닌가? 그런데 이(利)보다는 의(義)를 추구하는 것이 본령인 진보가 만약 현재의 강한 중국에 취해 과거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중국은 한국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사진은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2012년 11월)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패권보다 새로운 중화 체제가 낫다? 잘못된 문제 설정

13억 중국을 이끌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은 1953년생이다. 그는 스탈린 비판의 여파로 몰아닥친 백화제방·백가쟁명운동, 거대한 주관주의적 생산력 증대 실험인 대약진운동, 대중의 힘으로 모든 전통과 권위를 일거에 쓸어버리려 했던 문화대혁명 등을 겪으며 성장했다. 특히 당 간부였던 아버지 시중쉰이 1962년 실각하는 바람에 매우 불우한 처지에서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을 맞았다.

그는 바로 이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구(舊) 당 간부의 아들로는 홍위병이 휩쓸던 베이징에서 살아남기 힘들었기에 그는 당시 들불처럼 일던 상산하향(上山下鄕)운동에 몸을 맡겨 대장정의 종착점인 옌안의 시골구석으로 들어간다. 도시에서 유복하게 자라나 개 짖는 소리조차 무서웠던 시진핑은 탈출을 시도할 정도로 황토 고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마침내 시련을 이겨내고 구릿빛 인민의 아들로 성장한 시진핑은 숱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자기 마을 몫의 공산당원 자리를 꿰차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오늘에 이르는 도약의 계기였다. 평전을 보면 그는 입당 이후에도 출세가 보장된 베이징 생활을 마다하고 저장성, 푸젠성 등 지방에서 어려운 과업에 도전하며 기반을 닦았다. 밑바닥부터 다지고 올라가는 상산하향의 경험이 그를 안주하지 않는 도전자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과연 시진핑을 문화대혁명의 피해자라고만 볼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야말로 문화대혁명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오늘날 중국인은 문화대혁명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1980년대 이래 중국이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개혁 개방의 길을 걸어온 데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저주가 큰 몫을 했다. 마윈은 "35세가 되어서도 가난하다면 당신 자신 책임"이라는 반사회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인물이 중국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라선 것은 바로 그처럼 문화대혁명을 딛고 전개된 개혁 개방의 한 귀결인 셈이다.

문화대혁명은 중국공산당의 결정처럼 변명의 여지가 없는 '10년 동란'이자 '마오쩌둥의 오류'였다. 그것은 중국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끌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의 중국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오류였다고 해서 개혁 개방 이후의 중국이 정당화되지도, 과거 중국이 표방한 사회주의 노선이 부정되지도 않는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중국 인민은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오도되었던 그들의 열망은 개혁 개방 이후 성취되기는커녕 한국 사회를 머쓱하게 할 정도의 빈부 격차와 사회적 갈등 속에 내연하고 있다.

그렇다. 지난날 중국 인민대중의 열망은 오도되었다. 그러나 거기에 참여했던 수억 대중의 꿈과 열정이 모두 헛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리영희 선생은 문화대혁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보수 우익의 맹공을 받은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다. 그는 훗날 밝혔듯이 '홍위병의 반문화적 파괴 행위로 말미암은 여러 가지 부정적 사실'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의 전통적 지배계급에 대한 인민대중노선, (…) 인텔리의 개인적·집단적 권위주의에 대한 민중적 생활가치의 존중" 등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를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병든 생활 방식과 존재 양식에 대해서 대조적인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수혜자' 시진핑은 리영희 선생이 정보의 부재로 포착하지 못했던 대혁명의 부정적 측면을 말끔히 극복하고, 선생이 주목했던 대중적 가치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만약 시진핑 지도부가 그렇게 중국의 대중적, 사회주의적 가치를 부활시킨다면 그때에도 대한민국의 보수 우익은 줏대 없이 중국을 향한 구애를 계속할 수 있을까? 또 사회주의적 가치를 회복한 중국이 국내 일부 진보적 지식인의 은밀한 전망처럼 민족 간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중화주의'의 기치를 내걸 수 있을까?

물론 덩샤오핑 노선에 입각해 있는 현 중국 지도부가 지금의 자본주의 지향을 수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보수 세력의 민망한 '중국바라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일부 '진보적' 지식인의 대세 추종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리영희 선생을 비롯한 1970∼1980년대의 건강한 지식인들은 정보의 한계 때문에 왜곡될 수는 있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무엇이 옳은 길이고 대중을 위한 길이냐 하는 '의'의 문제로 중국을 바라봤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엘리트인) 나'에게 이로우냐 하는 '이'에 경도된 지식인이 아니라면 "35세가 되어서도 가난하다면 당신 자신 책임"이라고 말하는 현대 중국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 대중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2>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3>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4> 김구도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 당찮은 소리
<5> 해방 공간의 '전태일'들, 망각의 늪에서 구하라

<6> '단군이 오래전 건국', 그것만 자랑할 건가
<7> 세종은 오로지 존경 대상? 세종을 질투하라
<8> 10월유신 41년…더 무서운 괴물이 솟아나고 있다
<9> 하얼빈역·궁정동…한국 근현대사 관통한 두 번의 10.26
<10> 러시아혁명의 교훈, 대중을 외면하면 진보도 없다
<11> 전태일과 박정희의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2> 미국이 한국 독립 낙점? 유영익의 기묘한 이승만 띄우기
<13> 개화파의 역사적 과오, 안중근이 씻어 내다
<14> 망령 되살린 수구의 '종북' 칼춤…6.29의 저주 풀어야
<15> 억압과 저항의 '선사 시대' 넘어 '민중기원'은 온다

<16> 부활하는 일제 망령…해법은 동학농민군 계승

<17> 박근혜·남재준, '푸에블로호 교훈' 잊었나

<18> 일본인들이여, 러일전쟁의 진실을 기억하라

<19> 166년 전 문서, 현대 한국의 비밀을 말하다

<20> 이것은 3.1운동이 갈구한 나라가 아니다

<21> 여성의 날,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생각한다

<22> FTA 경제 영토 3위? 기황후가 기가 막혀

<23> 추신수 둘러싼 '가증스런 피라미드'에 대한 단상

<24> 대한민국이 한 4.3 사과, 미국은 왜 안 하나

<25> 중국·베트남에 건넬 건 '한류'만이 아니다

<26> 영웅 없는 한국 현대사, 그럼에도 위대한 이유

<27> 표류하는 세월호 진실…'탁 치니 억' 떠오르는 이유

<28> '총기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역사학

<29> 제일 먼저 도망친 '거짓말' 대통령이 구국 영웅?

<30> '명량' 이순신 지도력? 여당도 야당도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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