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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 내려가며 느낀 흐린 날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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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 내려가며 느낀 흐린 날의 여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1>]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30일 팽목항을 떠나 다음 달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첫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창세기1:2)"

어둠이 깊다. 비 내리는 팽목항에 도착한 오늘, 이곳도 깊은 정적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 많던 카메라와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 많던 관심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마치 원래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다는 고요하게 출렁이고 있다.

어둠이 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어둠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곳곳에서 죽음의 소식이 들리고, 그 죽음을 양산하는 구조가 드러나고 있지만, 진실은 은폐되고, 오히려 죽은 이들과 그 가족이 조롱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참으로 악마적 어둠이 피어나고 있다. 자포자기와 탄식과 한숨이 넘쳐나고, 못 살겠다는 그들을 향해 또다시 ‘조용히 하라’는 폭력이 넘쳐나고 있다. 삶의 목소리가 생생히 넘쳐나는 살아 있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이념과 사상이라는 허위의식으로 재단되고 있다.

삶의 모든 순간은 경쟁과 물적 가치로 재단되고, 그 경쟁에서 실패한 이들은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을 감싸안고 위로하기보다는 그들을 오히려 공격하고 짓밟는 참으로 전례 없었던 가치관의 패륜적 붕괴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말하고 싶다. 이러한 진단을 다시 이념적 잣대로 평가하지 말아 달라. 이것은 좌도 우도 남도 북도, 아닌 우리가 처한 민낯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생명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는 생명경시의 어둠이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다.

저들에 핀 들꽃을 보라. 당신은 그 들꽃을 보며 사람들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니면 꽃 한 다발이 얼마며, 그것을 통해 어떻게 이윤을 취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생명을 아무런 편견없이 피워내길 원하는가. 경쟁에서 이긴 위너(winner)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대한성공회 사제단과 신자들은 오늘부터 팽목항에 모여 기도를 드린 후 광화문까지 총 550킬로미터 20일의 도보 순례를 시작했다. 이 순례는 표면적으로는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결의에서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불길처럼 일어났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요구와 지난날 우리 모습에 대한 반성, 잊지 않겠다던 다짐은 어느새 망각되고, 다시 한번 이 사회는 유가족과 그것을 기억하는 이들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는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대한성공회 사제단은 종교인으로서, 이러한 사태에 대해 준엄히 경고하며, 우리의 기도와 몸으로 생명과 평화의 불꽃을 피우려 한다. 그리고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힘에 힘으로 맞서는 평화가 아니다. 우리는 진정 평화로운 평화, 우리가 온전히 변화함으로써 생기는 평화를 추구한다. 걷고 기도함으로써, 지금의 어둠이 걷히리라 믿는다. 불은 불로 끌 수 없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사제단은 그러한 신앙고백을 함께하며 오늘 그 첫발을 내디뎠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였는가에 대한 고대인들의 신앙고백이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그때는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그 어둠은 단지 절망의 어둠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기운은 어둠 가운데 휘돌고 있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겨났다.

우리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어둠은 우리를 새로운 창조의 시간으로 초대한다. 생명을 살리는 세상, 구조가 국가가 사람보다 우선되지 않는 세상, 진실은 드러나고 거짓은 물러나는 세상이 다가올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예수 또한 어둠이 가장 깊었을 때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이 어둠 속에서 희망을 본다. 그 희망을 믿는 사람들이 많기를 소망한다. 그것을 위해 또다시 일어나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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