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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간과한 주체 내면의 전쟁을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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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간과한 주체 내면의 전쟁을 탐구하다

[프레시안 books] 심광현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

마르크스와 마음이라니? 게다가 '마음의 정치학'은 또 뭔가? 김홍중 교수의 <마음의 사회학>이란 저서가 있기는 했지만, 마음의 정치학은 뭔가 의아해하실 분들이 많겠다. 그것은 올해 8월 말 한국 사회에서 좌파의 이론과 실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심광현 교수가 쓴 두툼한 저서인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문화과학사, 2014년 8월 펴냄)이라는 책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고, 심광현 교수가 <문화과학> 편집인으로 일하던 때에 나온 제64호 <문화과학>의 특집 제목이기도 했다. '마음의 정치학'이란 한마디로,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에서 심광현 교수가 책의 부제로 지적했듯이,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이 필요함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책의 부제가 '생산양식과 주체양식의 변증법'으로 되어 있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 방식을 폭로한 마르크스의 <자본론>만으로는 세상의 변혁이 불가능하기에 생산양식의 고찰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생산양식이 주체양식과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절합'되는지를 고민해야 새로운 대안 사회의 전망이 열리리라는 의미를 보여준다. 심광현 교수가 책 서문에서 "맑스 역시 계급적 주체들 간의 전쟁에만 주목했지 주체 내면의 전쟁은 간과했다"(44쪽)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한국 사회를 가리켜 우울증을 부추기는 사회라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감정노동처럼 신자유주의적인 노동 통제 방식을 이야기한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난 후 한국 사회의 감정은 우울증을 넘어 거의 '감정의 진공 상태'로 진입한 듯하다. 심광현 교수가 마음의 정치학을 가동시키기 위해 역설하고 있는 능동적이고 진보적인 감정의 정치학의 싹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국가-아버지에 복종하고 예속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일베충'이 대학을 침투하고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처럼 생존의 공포와 불안이 지배적이며 대중들은 향락에 풍덩 빠져 살아가고 있다. 심광현 교수가 새로운 주체성으로 내세우는 자유-평등-연대의 이념에 부합하는 능동적이고 진보적인 감정의 정치학, 자기 통치적이고 협력적 상호 통치가 가능한 주체는 아직 소수자의 정치학이자 소수의 주체로 잔존하고 있는 듯하다. 자본이 손해배상 가압류 방식으로 노동자의 생명줄을 끊어버리는 동안 노동은 '파업가'를 부르되 파업은 하지 않으면서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듯하다. 그나마 법원의 현대차 정규직 전환 판결처럼 법의 판단에 기대어 근근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노동운동 세대는 고령화하고 대학은 대기업으로 변한 지 오래되었으며 진보 정치도 거의 실종되어 있거나 표류하고 있다. 상당히 비관적이긴 하지만 세월호 동조 단식 농성처럼 공감대가 완전히 실종한 것은 아니어서 운동의 자포자기는 아직 이른 듯하다.

우울증이 이처럼 만연한 가운데 21세기 GNR(G-유전자 혁명, N-나노 혁명, R-로봇 혁명) 프로젝트가 구현하려는 포스트-휴먼 프로젝트(19쪽)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확산일로에 있다. 에디슨 이후 세계 100대 발명가 중의 한 사람인 레이 커즈와일이 자기 책 <특이점이 온다>에서 설파하고 있는 장밋빛 '테크노피아'의 세계는 이제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되어 가고 있다. 커즈와일 같은 발명가들과 과학기술자들, 산업체와 국가 장치들의 연결망으로 구성된 강력한 거대과학·기술 체제가 현재 '강한 AI' 시스템의 작동 체계를 추진 중이다(28쪽). 오송에서 바이오 엑스포가 열리고 삼성이 바이오산업에 투자를 하는 것 등은 과학기술의 우경화가 빚어내고 있는 자본주의 공리계(19쪽) 중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제시된 생체 사이보그 시스템 전체와 크게 다르지 않고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대다수 인간은 "노동(력) 가치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생체 에너지 자원으로서의 가치만을 가진 존재로 간주될 수 있는"(19쪽) 시대가 성큼 다가와 있다. 심광현 교수는 과학과 유토피아의 관계를 다루는 곳에서 이러한 과학적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좀 더 자세하게 예시해주고 있는데(360쪽) 좌파는 자본이 준비하고 있는 기술과 조직의 혁신에 맞서는 이론을 구축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은 정곡을 찌른다. "진보는 과거와 현재에 매달리고 오히려 보수가 미래를 준비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355쪽)

마음의 정치학과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

ⓒ문화과학사
심광현 교수는 그동안 <문화과학>을 중심으로 문화사회론을 정립해 왔고 2003년에 시작한 맑스 코뮤날레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코뮌주의, 생태적 문화사회론으로 그 이론적 실천의 보폭을 넓히는 한편 2008년 '민중의 집'을 창립해 코뮌적인 생태문화사회론을 직접 실천해오고 있다. 또한 작년부터 지식순환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해 적-녹-보 연대, 인간-사회-자연의 공진화,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특히 마음의 과학으로 불리는 인지과학)의 통섭 작업을 하면서 책의 부제인 생산양식과 주체양식의 변증법을 통해 새로운 주체성을 발명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심광현 교수 스스로 서문에서 밝히고 있지만 책의 제2부, 제3부는 문화과학과 맑스 코뮤날레의 공동 작업에 자극 받아 창발이 된 글이고 제4부 '새로운 주체 형성과 마음의 정치학'은 멀리 이종영의 <지배양식과 주체형식> 등의 저서에서 영향을 받고(232쪽) 1990년대부터 관심을 가진 인지과학 연구가 결합되어 사상적으로 발전해 나온 글들이다. 남달리 일찍부터 자연과학자들과 소통하고 협력해왔던 심광현 교수가 학문 전체를 전 방위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소이는 여기에 있다.

심광현 교수의 책을 평하는 일은 사실 상당히 어렵다. 책 제1부에 실린 '칸트-맑스-벤야민 변증법의 현대적 재해석'을 들고 나타나 현대사상연구소에서 발제를 할 때면 사람들은 웬만한 단행본 분량으로도 충분한 원고 분량에 질리곤 하였고 철학-예술-과학/인지과학-<자본론>의 중층적인 층위들을 파고드는 논리를 따라잡기 힘들어 했다. 2009년에 나온 심광현 교수의 저서인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 생산과 문화정치 : 예술 - 학문 - 사회의 수평적 통섭을 위하여>나 2005년에 나온 <프랙탈> 같은 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무지막지한 글을 사비를 털어 진보적인 후학 양성에 힘쓰고자 만든 잡지 <현대사상>에 실어주는 홍승용 대구대 교수의 배짱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다이어그램과 그림으로 가득 찬 책 또한 꼼꼼히 보지 않으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히나 심광현 교수가 지적하듯이 아직 한국 사회에 보편화되지 못한 인지과학에 대한 선지식이 없으면 감정의 정치학이니 프랙탈이니 다중지능(286쪽)적 네트워크니 하는 말들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심광현 교수가 서문에서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듯이 서문을 먼저 읽다 보면 책 안의 여러 다른 글들이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 쉽게 이해될 수 있고, 책에 자주 나오는 도표나 다이어그램과 그에 대한 설명을 보고 숫자로 주장하는 바를 요약 정리해 놓은 부분들을 읽으면 그래도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심광현 교수의 사상사적인 사유 맥락 속에는 한 편으로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 벤야민의 '꿈과 각성의 변증법 철학', 푸코의 자기 통치적인 주체 양식이라는 문제의식이 면면히 흐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피노자의 철학, 마음의 철학(그리고 제3세대 인지과학인 신체화된 마음의 철학, 바렐라 & 마투라나와 그 제자인 에반 톰슨의 인지과학, 에델만의 신경과학, 레이코프, 라투르의 정치생태학)이,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 조반니 아리기, 월러스틴, 앨버트, 레닌 등의 사회과학적 사유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사유가 심광현 교수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포이에르바흐의 두 가지 테제 위에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서문만이 아니라 책 속의 다른 글('통치 양식'의 문제설정과 새로운 주체이론의 탐색)에서도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는 포이에르바흐의 두 가지 테제는 마음의 정치학의 주요한 과제와 연결되어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 과정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계를 변혁하라는 포이에르바흐의 11번 테제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볼모로 만드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을 뿐, 이러한 세계의 해석과 변혁이 포이에르바흐의 3번 테제에서 강조하는 주체에 대한 해석과 변혁이라는 과제와 변증법적으로 절합되지 않으면,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 해방적 통치 양식의 발명(521쪽)은 불가능하다. 심광현 교수가 책 곳곳에서 말하는 주체의 문화적 역능, 코뮌주의적 문화, 전인(der ganzer Mensch)의 형성, 다중지능, 주체적 변화를 위한 실존의 기술들(412쪽) 등은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을 위해 마음의 정치학이 가져야 할 주요 과제이다(38쪽). 생산력의 비대화와 주체성(화)의 약체화라는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심광현 교수가 도달한 곳이 마음의 정치학이다. 미국 헤게모니가 해체기에 들어간 지금 능동적이고 진보적인 감정으로 충만한 새로운 주체가 혁명적 대중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좌파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좌파의 미래를 위한 심광현 교수의 실천적 프로젝트는 제3부 6장과 7장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심광현 교수의 저서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주체양식의 변혁)를 지적하면서 글을 맺는다.

"이렇게 몸과 감정과 이성을 포함하는 마음의 과학과 윤리를 새로운 생산양식을 만들어낼 새로운 주체양식의 창조를 위한 정치로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문제틀을 '신체화된 마음의 정치학'이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4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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