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원자력을 사랑하는 교과서라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원자력을 사랑하는 교과서라고?

[민들레] '후쿠시마 사태' 이후에도 핵이 안전하다?

학생들을 동원하는 원자력 홍보

원자력 광고에는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밝게 웃고 있는 천진난만한 표정 뒤로 보이는 돔 모양의 건물은 동화 속 풍경처럼 친근하기만 하다.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뿐 아니라 빌딩 옥외 광고에서 보여주는 핵발전소의 이미지는 '순진한 미소'로 상징되고 있다. 그 미소 뒤에 얼마나 거대한 자본과 조직의 힘이 숨어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데 말이다.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초등학생은 물론 대학생까지 많은 청소년들이 원자력 체험대회, 글짓기와 포스터 공모전, 탐구 올림피아드, 기자단, 논문 발표대회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어쩌면 곧 태어날 내 아이도 나중에 선생님 손에 이끌려 이런 행사에 동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더욱 착잡하다. 일하는 단체에서 에너지 교육을 연구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국내 교과서를 샅샅이 훑어보니 천편일률 핵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 두산동아 <한국지리> 107쪽.

두산동아에서 나온 고등학교 <한국지리> 107쪽을 보면, 핵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는 주변 해조류에 도움을 준다며, 온배수를 이용해 핵발전소 내에 양식장을 운영해보니 "자연 상태보다 2~4배 정도 빠른 성장이 확인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최근에는 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온배수를 이용한 진주조개 시범양식이 성공을 거둬 지역 주민들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는 방사성물질 오염 등의 문제도 없어 온배수의 청정성과 유용성이 입증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는 설명도 붙어 있다.

'자원 개발에 따른 지역의 변화'의 예시를 다룬 해당 기사의 애초 제목은 '원자력발전소의 온배수로 인한 주변 환경의 피해'였다. 핵발전소에서 '증기와 열 교환에 의해 물을 끌어올릴 때보다 7도 정도 높아져 바다로 배출'되는 온배수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소개하던 기존의 맥락이 갑자기 정반대로 수정된 것이다.

교과서를 펼치면

이것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교학사에서 나온 고등학교 <화학1>에서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활용되는 방법들로 '풍력의 이용' 대신 '원자력의 이용'이 제시됐고, 사진도 교체됐다. 법문사의 고등학교 <경제> 중 '경제주체의 합리적 선택' 단원에서는 "정부는 강 하류 지역의 홍수 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목적 댐을 건설하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이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하였다"로 수정됐다.
지학사의 고등학교 1학년 <과학>의 '환경' 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온실 기체의 발생량을 줄이는 것이다. 즉,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석유, 석탄 등의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도 "신·재생 및 원자력 등 저탄소에너지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로 수정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상문사의 고등학교 <물리2> '원자와 원자핵' 단원에서는 "원자력 발전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효과적으로 줄이면서 에너지 수요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서술한다.

천재교육에서 나온 고등학교 <화학1>에서 "현재 방사능 폐기물은 폐광이나 지하 깊은 곳에 보관하고 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방사능 폐기물이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표현은 "방사능 폐기물의 대부분은 위험성이 크지는 않지만, 안전한 관리를 위해 보호 시설이 갖춰진 지하 깊은 곳으로 운반하여 저장한다"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최근이라고 다르지 않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에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2013년에 발간된 교학사의 중학교 <기술가정2> 222쪽을 보면, 2011년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에 대해 "최근 원전 사고로 인해 더욱 안전한 원자력 에너지 이용 방법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심각성에 비해 매우 가볍게 서술했고, 뒤이은 내용에서 핵융합 에너지의 안전성과 청정성을 단정적으로 기술했다.

2012년 판 교학사의 고등 <물리2>에서 원자로를 다룬 '생활 속의 물리'에서는 체르노빌 사고를 언급하며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뒤이어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가압경수로에 대해 "화재의 위험이 없으며",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설계"됐을 뿐 아니라, "방사능 차폐 시설은 다섯 겹의 방호벽으로 되어 있어 방사성 물질의 누출을 철저히 차단해 환경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과거 다른 나라의 원자로보다 우리나라 것이 기술적으로 우월하다는 핵산업계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왔다.

안전성뿐 아니라 국가 주도의 핵발전 추진에 따라 정부 논리를 교과서에 고스란히 반영한 서술 유형은 경제적 측면도 마찬가지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올해 출판한 고등학교 <공업과학> 215쪽에서는 국내 연구용 원자로 기술의 요르단 수출 관련 내용이 '폐기물' 단원의 '방사선 폐기물의 처리 방법'에서 함께 소개됐다. '원전 역사 50년 만에 국산 원자로 첫 수출'이란 제목의 글에서는 기술 수출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장밋빛으로 그렸다. 하지만 2010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수주한 해당 원자로 수출사업은 최근 핵발전소 부품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업체가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의 검증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논란을 빚고 있다. 비슷한 예로 지학사의 고등학교 <경제지리>에서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업의 사례가 '조선공업'에서 '원자력발전'으로 교체되고 UAE 핵발전소 수출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 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연합뉴스


교과서 수정에 목매는 원자력문화재단

연구 과정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핵발전에 대한 긍정 일색의 교과서 수정은 우연히 아니라, 원자력 홍보기관에 의해 장기간 주도면밀하게 추진됐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핵발전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는 원자력 르네상스 주장과 맞닿아있다.

원자력문화재단은 1996년부터 '각급 학교 원자력 관련 수정 반영을 위한 교과과정 개편 추진 기본 계획'을 마련하고, 다음해부터 교과서 수정 내용의 반영을 교육부에 요청해왔다. 핵발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교과서를 저술하는 교육부의 교육과정 편수관을 대상으로 울진의 핵발전 시설을 시찰토록 했다. 통계 수정이나 단순 의견을 제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2005년부터 원자력문화재단은 교과서 개정 요구안을 만들고 이와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원자력문화재단은 초중등 교육과정 교과서에 대해 매년 각각 309건, 240건, 269건, 271건, 161건의 수정 의견을 제출했고, 이 가운데 95건, 35건, 77건, 65건, 34건이 이듬해 교과서 내용에 반영됐다. 2007년 수정 의견 제출이 최대 31%라는 반영 성공률을 나타내자 원자력문화재단은 '획기적인 발전'이라며 "이전까지는 어느 기관에서도 교과서 개정의견을 이렇게 받아들여서 이렇게 개선하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스스로를 높이 평가했다. 원자력문화재단의 '원자력 관련 교육과정·교과서 이해 교육 개발 연구'(2010)에서는 "원자력에 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의 방식이 효과적인 대안"이라며, 교과서 수정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런 행동에는 원자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막연하게' 부정적 태도로 치우쳐져 있다는 진단이 깔려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DDT나 고엽제의 문제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어떤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객관적으로 안전성이 확인되는 경우에도 주관적인 불안감으로 인해 과학기술을 거부하거나 도입에 반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자력의 경우 후자의 문제를 겪고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원자력문화재단은 교과서 내용 수정의 방향을 '원자력 이해 교육'에 두고, 이를 '대안적 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의 장·단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으로 정의하지만, 수정된 교과서를 보면 잘못된 어휘나 통계를 바로잡는 것을 제외하면 핵발전의 긍정성만을 강조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원자력문화재단이 매년 '대국민 홍보사업'에 쓰는 예산은 100억 원에 이른다. 그 중에서 교과과정 수정과 교재개발, 교원직무연수, 원자력탐구올림피아드, 원자력페스티벌, 체험전시를 비롯한 '차세대 이해증진사업'에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 동안 사용한 액수만 179억 원이다. 지식경제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 원자력문화재단의 원자력 홍보사업에는 총 442억 원이 사용된 반면, 신재생에너지센터의 신재생에너지 홍보사업에는 총 11억9000만 원이 사용됐다. 정부가 핵발전과 재생가능에너지 홍보에 대해 매우 차별적으로 투자한 셈이다.

에너지 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

원자력에 우호적이기만 한 지금의 교육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일본으로부터 전해온 고무적인 소식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매년 열리던 '원자력 포스터 대회'가 후쿠시마 핵 사고를 계기로 중단된 사례다. 이 대회는 '원자력과 방사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심화'하는 취지로 1993년부터 진행됐던 연례행사였다. 이런 변화는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시민과 환경단체가 원자력 포스터 대회의 중단을 요구하는 1만 2000명의 서명을 정부에 직접 전달했다. 이들은 핵발전소를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고 홍보하는 이 대회를 앞으로 영원히 폐지하고 유사한 광고 역시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우리나라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 문부과학성 관계자는 "원자력에 대해서 일본은 자원 부족에 따른 자원 수입 중 하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지금까지 원자력 홍보에 치우쳐 있던 것은 확실하다. 향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시민들이 요구했던 것은 단지 하나의 행사를 중단시키는 차원이 아니었다. 후쿠시마 사고처럼 핵발전소의 피해와 위험성에 대한 교육 내용을 포함할 것, 지금까지 '원자력 교육'을 '에너지 교육'으로 전환할 것, 핵발전소의 환경 사회적 영향과 비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것, 그리고 에너지 절약과 자연에너지(재생가능에너지)의 이용 확대를 염두에 둔 미래의 에너지 이용에 대해 어린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미약하지만, 우리 사회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난 해 6월에는 각 지역 교육청이 '생명을 구하는 원자력의 매력'이란 주제의 청소년 대상 원자력공모전에 후원한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그 동안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자력의 부정적 인식 제거'를 목적으로 매년 학생 대상으로 공모전을 비롯한 각종 행사를 진행해왔지만, 환경·교육단체들로부터 직접적인 반대에 직면한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에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강원도 교육청은 후원을 철회하는 등 곧바로 해명과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교사모임에 초대됐을 때 만난 선생님들은 원자력문화재단이 '연수기관'으로 지정돼 초중고 교원직무교육을 실시한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얼마 전 만난 교사 한 분은 '탈핵 교육'을 위해 자체적으로 만든 교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개인으로부터, 시민으로부터 시작된 인식의 변화가 원자력 교육에도 영향을 주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대안적 에너지 교육이 점차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