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삼성전자 백혈병' 소송 2심에서 또다시 황상기 씨 등 2명의 손을 들어줬다.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주심 이종석)은 원고 황상기 등 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취소 소송'에서 고 황유미 씨와 고 이숙영 씨에 대해 21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소송 내내 피고 보조 참가인으로 참여했던 삼성전자는 지난 7월 8일부터 이번 소송에서 빠졌다.
재판부는 "고 황유미 씨와 고 이숙영 씨에 대해 업무 수행과 백혈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망인들이 습식·식각 공정에서 세척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망인들이 3라인에서 다른 작업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전리 방사선에 노출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그밖에 다른 사정에 비추어 인과관계가 존재하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고 황민웅, 김은경, 송창호 씨에 대해서 재판부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수행 업무와 작업 환경에 비춰 의학적으로 백혈병 발병 원인인 유해물질에 직접 노출됐다거나 다른 공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재판부는 "산재법에서 말하는 업무상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해야 하고, 반드시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없어도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만으로 산재를 인정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따랐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경우 인과관계 입증이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재해 내용과 발병 과정에서 인과관계를 (피해자들이) 일목요연하게 입증하기 어렵고, 상당한 시간이 경과해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우며, 입증 책임자인 원고들이 증거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결문 낭독이 끝나자 삼성전자 사내 커플이었던 고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는 눈물을 흘렸다.
재판이 끝나고 황상기 씨는 "이긴 두 사람은 좋지만 나머지 세 분도 똑같이 작업 현장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리신 분"이라며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화학약품을 다 감추고 있는데, 피해자 가족에게 입증 책임을 지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도 "1심을 유지한 판결은 반갑지만, 아픈 노동자에게 증명하라는 현행 법 제도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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