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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가 외면한 '핏빛 인도', 한국의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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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가 외면한 '핏빛 인도', 한국의 오래된 미래?

[프레시안 books]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인도가 서양과 본격적으로 접촉한 것은 18세기 식민주의의 깃발 아래에서였다. 그때 인도는 인류가 잃어버린 정신세계의 뿌리를 간직한 나라로 해석되기도 했고, 역사의 발전이 없는 야만의 나라, 그래서 영국의 철도가 강력한 전제 군주를 무너뜨리고 자유로운 근대 시민 사회로 발전시켜야 하고, 그래서 백인들이 힘들더라도 그들을 교화해야 하는 박애의 짐을 져야 하는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인들이 인도인들의 동의 없이 그들을 식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이 자유주의를 전 인류에게 펴는 합당한 과정이었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과 식민주의의 결합은 문학과 예술, 언론, 역사학이나 인류학 혹은 종교학 등을 통해 전 세계에 널리 퍼졌다.

1970년대 한국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인도는 이미 이런 방식으로 왜곡된 곳이었다. 불교의 땅, 갠지스 강에서 죽음과 삶을 초월하며 사는 곳, 세상을 버리고 떠돌아다니면서 해탈을 추구하는 나라, 비틀즈가 찾아간 명상과 요가의 나라, 어디를 가나 스승을 만나는 영적인 나라,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나라 등 인도는 변치 않는 본질을 가진,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바깥 물질문명을 거부하면서 사는 나라로 한국인들의 뇌리에 박혔다. 수도 없이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류시화 씨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들고 인도로 가더니 심지어는 인도로 사업 출장을 가는 기업인도 그 책을 가지고 인도를 향했다. 사람이란 실재를 보는 게 아니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 그들은 인도를 직접 보고, 겪고 왔으나 인도에 대한 환상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그런 인도에 대한 이미지가 변화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으며 개방 경제를 실시하면서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나라, 우리 기업이 진출해서 성공해야 할 나라, 중국의 뒤를 이어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나라로 불려 왔다. 그리고 항상 빠지지 않는 평이 하나 있었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의 나라, 인도!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 인도 민주주의 르포르타주>(시대의창, 2014년 7월 펴냄)는 이 왜곡된 신화, 인도 민주주의의 허구를 통렬히 비판한 글 모음집이다.

변치 않는 본질을 가진 나라, 인도? 뿌리 깊은 환상

ⓒ시대의창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참으로 듣기 좋은 자랑스러운 역사임에는 분명하다. 인도의 헌법이 세계에서 가장 큰 헌법이 된 것은 다수의 입장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않고 소수를 존중해줬기 때문이라는 사실, 아시아에서 그 흔한 군사 쿠데타 한 번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삼권분립이 잘되어서 민주주의 체계가 잘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 1975년부터 2년 동안 인디라 간디 정권 아래 일어난 비상계엄 통치를 제외하고는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사실, 투표를 통한 정권 교체가 자주 있어 왔고 특히 1990년대부터는 양당제가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두 당 사이에서 정권을 주고받는 일이 평화적으로 지속된다는 사실, 케랄라와 서벵골 두 주에서 공산당이 30년 넘게 투표를 통해 정권을 잡고 정부를 구성했다는 사실 등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면이다. 그 이면을 보지 않고 겉면만 보면서 민주주의 어쩌고 하는 평가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 책은 작가 아룬다티 로이(Arundati Roy)가 2002년부터 2008년 사이에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묶어 편집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원제는 Field Notes on Democracy : Listening to Grasshoppers이니, 이것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인도) 민주주의에 대한 현장 기록 : 풀뿌리 민중에게 듣는다>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은<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 인도 민주주의 르포르타주>로 되어 있다. 책 제목이 이렇게 바뀐 것에서 두 가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이 글의 초두에서 말한 바 있듯, 많은 한국인들이 인도에 대해 모르고 있고 특히 그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가 크다는 사실과 르포르타주라는 현장성에 주목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원제가 갖는 의미는 더욱 심장하다. 인도라는 나라를 종교 현자나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단편적으로 듣지 말고 풀뿌리 민중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작가이면서, 정치 평론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로이의 현장 글은 왜곡된 인도,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 인도가 아닌, 살아 있는 현재의 생생한 인도를 꿰뚫는 눈이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문학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니컬하고, 냉정하면서 조롱하는 얼음으로 만든 면도날이다.

이 책은 크게 열 편의 평론과 두 편의 짧은 문학 작품(희곡)으로 구성되었는데, 다루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부분은 인도 정치의 양대 축을 형성하는 인도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와 인도국민당(Bharatiya Janata Party)이 자행한 갖은 종류의 테러, 학살, 탄압 등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은 부분은 소위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라고 자처하는 인도 민주주의 체계를 지탱하는 법원, 언론, 기업 등이 허울뿐인 민주주의 체계와 '주식회사 인도'를 만들어가는 신자유주의 안에서 카르텔을 쌓으면서 풀뿌리 민중을 탄압하고 착취하고 죽이는 역사에 관한 것이다. 그 맥락에서 저자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 아프가니스탄과 얽힌 문제, 미국의 패권주의와 군사 행동에 대해 비판한다. 카시미르가 남아시아 문제의 근원이 되는 차원을 넘어 세계의 화약고로 비화되는 것에는 결국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가 그 뿌리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허구

그러면 현재 인도 민주주의의 실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인 인도국민회의와 인도국민당의 파시스트적 행태를 로이가 어떻게 비판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인도국민회의는 200년 가까운 영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면서 인도를 독립으로 이끈 정당이다. 네루와 그의 딸인 인디라 간디에 의해 국가 자본주의를 사회경제의 기본 체제로 삼아 1990년 초까지 약 40년 동안 거의 심각한 야당의 도전을 받아보지 않은 보수 정당이다. 40년 동안 변변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힌두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인도국민당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힌두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종교 공동체주의적 갈등을 일으키면서 적대 정치를 키워 권력을 키우는 데 성공한다. 1990년대 후반기부터 인도국민회의의 아성이 흔들리면서 단독 정당 정부가 세워지지 않았고, 따라서 두 당 모두 연립 정부를 구성하였는데, 인도국민회의는 통합진보연대(United Progressive Alliance)를, 인도국민당은 민족민주연대(National Democratic Alliance)를 구성하여 정권을 세웠다. 2014년 총선에서 인도국민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해 연립 정부를 세우지 않은 것은 20년 만의 일로서 실로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 책의 지은이 로이는 이 두 당의 정치를 파시즘으로 본다. 인도국민회의는 1984년에 델리에서 시크교도를 학살하였다. 정권의 위기를 막기 위해 펀자브 주에 있는 극렬한 시크교도를 자극하여 국가 불안 사태를 만들고자 조작하다가 인디라 간디 수상이 암살되고, 그 후 시크교도 학살 난동을 조작 내지 방조하여 사흘 만에 사망한 시크교도가 공식적으로 2733명에 달한다. 실종자와 행방불명자로 추정되는 수까지 합하면 5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국민당은 애초부터 종교 공동체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이다. 그들은 인도국민회의의 아성을 흔들기 위해 1980년대 후반부터 느닷없이 반(反)무슬림의 목청을 높이면서 힌두 근본주의를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1992년에는 무슬림의 성지 가운데 하나인 북인도 아요디야에 있는 한 무슬림 사원을 정치 깡패를 동원해 다 파괴해버리고, 500여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그 후 세력이 급속도로 불어나 중앙 정부 권력을 잡는 데 성공하여 1996년, 그리고 1998년부터 2004년 동안 중앙 정부를 구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사이 2002년 구자라트 주에서 무슬림 폭동을 사주, 조직, 방조하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 2000명에 달하는 무슬림이 칼에 베여 죽고, 산 채로 불에 타 죽고, 몽둥이나 돌로 머리를 짓이겨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 구자라트 난동은 현재로선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사상자 숫자를 파악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사망 1000여 명, 실종 200여 명, 부상 2500여 명으로 알려졌으나, 이 분야의 한 외국인 권위자는 무슬림 사망자만 2000여 명이고, 여기에 실종자와 강간을 당한 여성, 부상자까지 합하면 그 수를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힘들 정도라고 하였다. 더욱이 대낮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건 역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당시 구자라트 주지사로서 실질적인 학살 주모자인 나렌드라 모디는 승승장구했다. 모디는 2014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고 지금은 인도 공화국의 수상이다.

로이는 인도국민회의의 델리 시크교도 학살을 야간에 은밀하게 벌인 학살극, 인도국민당의 구자라트 무슬림 학살을 대낮에 벌인 학살극이라고 하면서, 나치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행한 학살을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대낮에 자행하였다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가 아무 곳에서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자라트 사건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델리 학살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두 학살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고, 누구 하나 책임진 사람이 없다. 로이는 지금의 인도가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독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도에는 히틀러가 없는 대신 전국을 순회하는 교향악단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교향악단은 다름 아닌 전국적으로 다양한 조직들이 연해 있으면서 테러를 서슴지 않는 의용단일가(Sangh Parvivar)로 불리는 극우 파시스트 집단을 말한다.

지은이가 이 글을 집필할 때는 인도국민당 극우 세력이 집권을 하지 않았지만, 지은이는 여러 군데에서 그들이 집권할 것을 염려하였다. 지은이는 선거만 하면 그것이 만사형통의 민주주의인가라고 의문을 던졌다. 법 제도, 규칙, 언론, 체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인도 민주주의의 민낯을 여지없이 까발린다. 인종 학살이 여론 조사의 주제가 되고 대량 살육을 홍보하는 마케팅 캠페인이 벌어질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말하겠는가라는 대목에서 인도는 이제 더 이상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다. 인도는 이제 파시즘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는 저자의 염려가 과연 과한 것일까?

▲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2008년 모습). ⓒ위키미디어커먼스


폭력이 일상화된 '주식회사 인도', 한국의 오래된 미래?

지은이 로이가 질타하는 것은 '주식회사 인도'이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널리 쓰는 '발전'이나 '진보'라는 어휘가 다름 아닌 경제 개혁, 규제 철폐, 민영화와 동의어가 되었다고 한다. 개발은 하나같이 빈민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신흥 귀족의 탐욕을 위해서였다. 선거판은 이미 시장으로 전락하여 유권자는 시장의 소비자가 되었고, 기업과 정부는 효율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풀뿌리 민중을 주변으로 내쫓고 그들을 죽음으로 모는 데 여념이 없다. 국민이 오로지 '주식회사 인도'에 마취되어 버린 상태에서 소위 민주주의 기구들이라 하는 의회, 언론, 경찰, 행정부, 대중 등은 모두 파시즘과 놀아나면서 나라 전체를 내전 직전으로 몰고 가고 있다. 오로지 종교 감정에 쌓여 힌두와 무슬림이 철천지원수로 여기며 서로 죽이는 사이, 전국 수백 수천 수만의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다는 정당, 소외당한 이들을 위한다는 정당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오로지 일신의 영달이나, 현실 적응 없는 이상적 방식의 권력 쟁취에만 빠져 있다.

로이가 이 글들을 집필한 후 불행하게도 그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2014년 5월 총선에서 별명이 도살자(Butcher)인 모디는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둬 모든 혐의를 정치적으로 사면 받았다. 그는 로이의 염려대로 유능한 행정가이자, 인도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뛰어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이제 로이가 보는 인도의 앞날은 비교적 단순하다. 일상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파시즘의 나라, 부자들만 잘살고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는 나라. 로이는 분명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앞에 갈림길이 놓여 있다. 한쪽 표지판에는 '정의'라고 쓰여 있고 다른 쪽에는 '내전'이라고 쓰여 있다. 표지판은 둘뿐이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선택하라."

로이의 목소리는 과연 인도만을 향하는가? 인도는 혹시 한국의 오래된 미래는 아닐까? 정의가 없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고, 살인하지 말라는 기독교 바이블의 십계명을 현대판으로 해석하면 해고나 실직 등 경제적 방식으로 살인하는 것 또한 살인이라고 한 교황이 한국에서 낸 목소리는 인도에서 아룬다티 로이가 낸 목소리와 똑같이 폐부에 박힌다.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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